간척지(干拓地)

간척지

한자명

干拓地

사전위치

한국생업기술사전 > 어업

집필자 김경완(金京完)

정의

강 하구나 연안 또는 바다의 갯벌이나 해양에 석축 제방(방조제, 둑)을 쌓아 바닷물의 유입을 막은 후 안쪽을 돌이나 흙 따위로 메워 돋운 땅.

내용

우리나라 간척干拓의 역사는 1235년(고종 22)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한 후 해상 방어를 목적으로 연안 제방을 구축한 것이 시초이다. 그 후 1248년 몽골의 4차 침입 당시 청천강 하구의 갈대섬에 제방을 쌓아 농지를 만든 뒤 군량미를 조달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16~17세기 이후 인구 증가로 인한 인구압人口壓과 수리시설 및 축조기술의 발달로 궁이나 관청은 물론 척신세력과 지주를 비롯해 농민들에 의한 간척사업도 활발해졌고, 부를 쌓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해남, 진도 굴포, 노화도, 고금도 등을 간척해 경제적 부를 축적한 해남윤씨海南尹氏 가문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간척지는 언답堰畓 또는 언전堰田이란 명사로 언급되며, 기록에서도 ‘~포浦’로 불리던 곳이 ‘~평坪’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에서 쌀 증산과 토지 개량사업을 목적으로 간척이 진행되었다. 광복 후에는 기근 해결을 위한 식량 증산 목적으로 소규모 간척이 이루어졌고, 1970년대 이후에는 농업종합개발 목적으로, 1990년대 이후에는 농지확보를 넘어 산업단지나 항만 건설 등 다목적 종합개발로 대단위 간척이 이루어졌다.

한반도의 서해안은 조수 간만의 차이가 크고 경사가 완만한 곳에 갯벌이 넓게 발달하여 수심이 낮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리아스식 해안으로 만이 발달하여 만 입구 양단의 거리는 짧으면서도 내부 갯벌의 면적이 넓어 짧은 방조제를 축조하고서도 넓은 땅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간척에 유리하였다. 또한 연안 일대에 섬들이 많아 섬 사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방조제를 쉽게 축조할 수 있었으며, 많은 섬이 바람을 막아 파도가 낮고 방조제 축조에 필요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이런 조건들로 인해 간척기술이나 장비가 미비하던 시대에도 서해안에서 간척이 대거 이루어졌고, 대부분 농경지로 이용되었다.

간척은 지형적 조건에 따라 해면간척, 하구간척, 호소간척으로 구분한다. 그중 해면간척이란 ‘만조 때는 해수면을 이루고 간조 때에는 갯벌로 노출되는 지역을 방조제로 둘러싸 바닷물을 차단하고, 내부의 물을 배수갑문이나 배수펌프로 없애 내부 토지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하구간척은 ‘하천의 하류에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하구언이나 배수갑문을 축조하여 하천의 일부를 농업·공업용수를 위한 저수지로 이용하고, 하구 연변의 갯벌을 개답하여 농경지 또는 택지나 산업단지로 이용하는 것’이다. 호소간척은 ‘조석이 일어나지 않는 육지부의 낮은 습지나 호수 등에 제방을 쌓고, 배수·증발·매립 등의 방법으로 물기를 제거하여 땅을 만드는 것’이다.

종종 간척지와 간석지干潟地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간척지는 매립된 땅을 말하지만, 간석지의 사전적 정의는 “밀물 때는 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물 밖으로 드러나는 모래 점토질의 평탄한 땅. 펄, 갯벌, 혼성 갯벌, 모래 갯벌 따위가 있으며 생물상이 다양하게 분포한다.”이다. 즉 간석지는 ‘갯벌’로 이해하면 된다. ‘간석’ 및 ‘간석지’는 근대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용어로, 우리말의 ‘갯벌·개땅·개펄’ 등으로 다듬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바닷가에 둑을 쌓아 조성한 간척지는 토양에 염분이 많아 농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저수지를 확보하는 등 관개시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구 연안의 간척지를 농지로 사용할 때 수원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해안의 옛 갯골을 이용하여 양수저수지揚水貯水池, tank reservoir를 축조하고 농한기에 간선수로를 관류해 온 물을 기계로 퍼 올려 저장하였다가 농번기에 이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해 농사를 지어 왔다.

간척지를 농지로 만든 이후에도 홍수나 태풍 등으로 인해 원둑(방조제)이 터지거나, 침수 또는 가뭄으로 인한 염해를 입기도 하였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주민들은 계를 조직해 둑을 관리하거나 보수하는 노력을 계속 진행해 왔다. 1980년대 이후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방조제를 관리하면서 둑의 유실 같은 피해는 크게 줄어들었다.

한편 대규모 간척사업은 해양생물의 서식지를 완전히 파괴하며 육상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로 해양생태계 건강성을 악화시키고 생물다양성을 훼손한다. 이 때문에 새만금 간척사업은 한국 사회에 커다란 갈등으로 수십 년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새만금 간척은 전북 군산시 비응도와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사이의 바다에 방조제를 쌓아 4만 100㏊의 갯벌을 농지와 호수로 전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1991년 시작되었고, 2006년 4월 외곽 방조제의 최종 물막이가 끝났다. 2010년 4월에 준공된 새만금 방조제는 그해 8월 세계 최장 방조제(33.9㎞)로 기네스북에 공식 등재되었다. 당시까지 공식적으로 네덜란드의 자위더르 방조제(32.5㎞)가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록되어 있었다.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은 “새만금 개발로 인해 거의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은 하구 갯벌이 사라지면서 많은 해양 어족자원도 함께 없어진 것은 국가의 커다란 손실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외국은 국가 하구 프로그램을 통해 하구 습지를 보전하고 복원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는 하구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을 파괴하고 서식지를 없애고 있다는 점에서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대규모 간척지 조성은 공유자원으로서의 바다와 갯벌이 사유화되는 문제가 있다. 또한 간척 이전까지는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주민들이 농업으로 강제적인 생업기술의 변화를 겪어야 하였다. 이에 따라 연안과 갯벌에 의존해 대대로 살아온 삶과 전통지식 체계가 해체되고 파괴되는 문제도 낳았다.

한국에서 대규모 간척공사가 계획되었다가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반대로 계획을 철회한 사례가 있다. 영산강 유역 종합개발사업 4단계 간척사업은 전라남도 목포시와 함평군 등 1개 시 4개 군의 주변 바다를 메워 1억 3,000만 평의 땅을 조성하는 사업이었는데,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1998년 7월 백지화되었다. 정부의 간척 포기 선언은 그동안 고수해 온 간척 위주의 우량농지확보정책을 전면 수정한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매립 위기에서 벗어난 전남 무안군 갯벌은 2001년 우리나라 최초의 갯벌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특징 및 의의

간척을 통한 토지의 확보로 영토를 확장하고 부족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간척이 가져오는 환경파괴와 경제적 손실이 여러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간척사업이라고 하는 새만금 간척사업은 어업자원 고갈과 어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관련 산업을 붕괴시키는 재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갯벌과 해양의 경제적 가치가 새롭게 평가되고 있고, 최근에는 기후위기와 관련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환경적·생태적 가치가 새롭게 조명을 받으면서 간척지를 다시 갯벌로 복원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를 역간척이라고 하는데, 이미 네덜란드에서는 성공사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참고문헌

불만의 새만금(박순열, 한국학술정보, 2009), 새만금 간척으로 인한 생활장소의 변화와 주민대응(김경완, 목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조선후기 간척의 전개와 개간의 정치(양선아,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한국의 간척(농어촌진흥공사, 1995), 행정용어순화편람(대한민국정부, 1992).

간척지

간척지
한자명

干拓地

사전위치

한국생업기술사전 > 어업

집필자 김경완(金京完)

정의

강 하구나 연안 또는 바다의 갯벌이나 해양에 석축 제방(방조제, 둑)을 쌓아 바닷물의 유입을 막은 후 안쪽을 돌이나 흙 따위로 메워 돋운 땅.

내용

우리나라 간척干拓의 역사는 1235년(고종 22)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한 후 해상 방어를 목적으로 연안 제방을 구축한 것이 시초이다. 그 후 1248년 몽골의 4차 침입 당시 청천강 하구의 갈대섬에 제방을 쌓아 농지를 만든 뒤 군량미를 조달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16~17세기 이후 인구 증가로 인한 인구압人口壓과 수리시설 및 축조기술의 발달로 궁이나 관청은 물론 척신세력과 지주를 비롯해 농민들에 의한 간척사업도 활발해졌고, 부를 쌓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해남, 진도 굴포, 노화도, 고금도 등을 간척해 경제적 부를 축적한 해남윤씨海南尹氏 가문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간척지는 언답堰畓 또는 언전堰田이란 명사로 언급되며, 기록에서도 ‘~포浦’로 불리던 곳이 ‘~평坪’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에서 쌀 증산과 토지 개량사업을 목적으로 간척이 진행되었다. 광복 후에는 기근 해결을 위한 식량 증산 목적으로 소규모 간척이 이루어졌고, 1970년대 이후에는 농업종합개발 목적으로, 1990년대 이후에는 농지확보를 넘어 산업단지나 항만 건설 등 다목적 종합개발로 대단위 간척이 이루어졌다.

한반도의 서해안은 조수 간만의 차이가 크고 경사가 완만한 곳에 갯벌이 넓게 발달하여 수심이 낮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리아스식 해안으로 만이 발달하여 만 입구 양단의 거리는 짧으면서도 내부 갯벌의 면적이 넓어 짧은 방조제를 축조하고서도 넓은 땅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간척에 유리하였다. 또한 연안 일대에 섬들이 많아 섬 사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방조제를 쉽게 축조할 수 있었으며, 많은 섬이 바람을 막아 파도가 낮고 방조제 축조에 필요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이런 조건들로 인해 간척기술이나 장비가 미비하던 시대에도 서해안에서 간척이 대거 이루어졌고, 대부분 농경지로 이용되었다.

간척은 지형적 조건에 따라 해면간척, 하구간척, 호소간척으로 구분한다. 그중 해면간척이란 ‘만조 때는 해수면을 이루고 간조 때에는 갯벌로 노출되는 지역을 방조제로 둘러싸 바닷물을 차단하고, 내부의 물을 배수갑문이나 배수펌프로 없애 내부 토지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하구간척은 ‘하천의 하류에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하구언이나 배수갑문을 축조하여 하천의 일부를 농업·공업용수를 위한 저수지로 이용하고, 하구 연변의 갯벌을 개답하여 농경지 또는 택지나 산업단지로 이용하는 것’이다. 호소간척은 ‘조석이 일어나지 않는 육지부의 낮은 습지나 호수 등에 제방을 쌓고, 배수·증발·매립 등의 방법으로 물기를 제거하여 땅을 만드는 것’이다.

종종 간척지와 간석지干潟地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간척지는 매립된 땅을 말하지만, 간석지의 사전적 정의는 “밀물 때는 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물 밖으로 드러나는 모래 점토질의 평탄한 땅. 펄, 갯벌, 혼성 갯벌, 모래 갯벌 따위가 있으며 생물상이 다양하게 분포한다.”이다. 즉 간석지는 ‘갯벌’로 이해하면 된다. ‘간석’ 및 ‘간석지’는 근대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용어로, 우리말의 ‘갯벌·개땅·개펄’ 등으로 다듬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바닷가에 둑을 쌓아 조성한 간척지는 토양에 염분이 많아 농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저수지를 확보하는 등 관개시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구 연안의 간척지를 농지로 사용할 때 수원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해안의 옛 갯골을 이용하여 양수저수지揚水貯水池, tank reservoir를 축조하고 농한기에 간선수로를 관류해 온 물을 기계로 퍼 올려 저장하였다가 농번기에 이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해 농사를 지어 왔다.

간척지를 농지로 만든 이후에도 홍수나 태풍 등으로 인해 원둑(방조제)이 터지거나, 침수 또는 가뭄으로 인한 염해를 입기도 하였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주민들은 계를 조직해 둑을 관리하거나 보수하는 노력을 계속 진행해 왔다. 1980년대 이후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방조제를 관리하면서 둑의 유실 같은 피해는 크게 줄어들었다.

한편 대규모 간척사업은 해양생물의 서식지를 완전히 파괴하며 육상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로 해양생태계 건강성을 악화시키고 생물다양성을 훼손한다. 이 때문에 새만금 간척사업은 한국 사회에 커다란 갈등으로 수십 년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새만금 간척은 전북 군산시 비응도와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사이의 바다에 방조제를 쌓아 4만 100㏊의 갯벌을 농지와 호수로 전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1991년 시작되었고, 2006년 4월 외곽 방조제의 최종 물막이가 끝났다. 2010년 4월에 준공된 새만금 방조제는 그해 8월 세계 최장 방조제(33.9㎞)로 기네스북에 공식 등재되었다. 당시까지 공식적으로 네덜란드의 자위더르 방조제(32.5㎞)가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록되어 있었다.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은 “새만금 개발로 인해 거의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은 하구 갯벌이 사라지면서 많은 해양 어족자원도 함께 없어진 것은 국가의 커다란 손실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외국은 국가 하구 프로그램을 통해 하구 습지를 보전하고 복원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는 하구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을 파괴하고 서식지를 없애고 있다는 점에서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대규모 간척지 조성은 공유자원으로서의 바다와 갯벌이 사유화되는 문제가 있다. 또한 간척 이전까지는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주민들이 농업으로 강제적인 생업기술의 변화를 겪어야 하였다. 이에 따라 연안과 갯벌에 의존해 대대로 살아온 삶과 전통지식 체계가 해체되고 파괴되는 문제도 낳았다.

한국에서 대규모 간척공사가 계획되었다가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반대로 계획을 철회한 사례가 있다. 영산강 유역 종합개발사업 4단계 간척사업은 전라남도 목포시와 함평군 등 1개 시 4개 군의 주변 바다를 메워 1억 3,000만 평의 땅을 조성하는 사업이었는데,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1998년 7월 백지화되었다. 정부의 간척 포기 선언은 그동안 고수해 온 간척 위주의 우량농지확보정책을 전면 수정한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매립 위기에서 벗어난 전남 무안군 갯벌은 2001년 우리나라 최초의 갯벌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특징 및 의의

간척을 통한 토지의 확보로 영토를 확장하고 부족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간척이 가져오는 환경파괴와 경제적 손실이 여러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간척사업이라고 하는 새만금 간척사업은 어업자원 고갈과 어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관련 산업을 붕괴시키는 재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갯벌과 해양의 경제적 가치가 새롭게 평가되고 있고, 최근에는 기후위기와 관련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환경적·생태적 가치가 새롭게 조명을 받으면서 간척지를 다시 갯벌로 복원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를 역간척이라고 하는데, 이미 네덜란드에서는 성공사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참고문헌

불만의 새만금(박순열, 한국학술정보, 2009), 새만금 간척으로 인한 생활장소의 변화와 주민대응(김경완, 목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조선후기 간척의 전개와 개간의 정치(양선아,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한국의 간척(농어촌진흥공사, 1995), 행정용어순화편람(대한민국정부,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