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고등어

간고등어

사전위치

한국생업기술사전 > 어업

집필자 배영동(裵永東)

정의

고등어의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물로 씻은 후 적당량의 소금을 쳐서 절인 것.

내용

간고등어는 고등어를 소금으로 가공한 것이다.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고등어는 고도어古島魚, 고등어皐登魚, 高等魚, 고동어古同魚, 古洞魚, 高同魚, 고망어古亡魚, 벽문어碧紋魚, 등필이어登必伊魚, 고돌이어古突伊魚 등으로 불리었다.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다는 것은 각지에서 고등어의 어획과 소비가 제법 있었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통계연보朝鮮總督府統計年報』를 보면 고등어 어획량은 1911년 1만 3,500t에서 1932년 10만 3,612t으로 21년 만에 8배 이상 증가하였다. 조선인은 1911년 전체 고등어 어획량의 30%를 차지하였으나, 1932년에는 13%만 어획하였다. 즉 20세기 전반 조선에서 잡히는 고등어는 대부분 일본인이 어획하고 있었다. 이를 보면 일제강점기 고등어 어획량과 소비량 증가에는 일본의 영향이 컸음을 알 수 있다.

바닷가에서는 신선한 고등어를 자주 먹을 수 있어도, 교통이 불편한 내륙지역에서는 갓 잡은 고등어를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륙에서는 고등어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낸 후에 물로 씻고 적당량의 소금을 쳐서 절인 간고등어를 주로 먹었다. 이렇게 환경적요인은 소금으로 간을 잡았다는 뜻의 ‘간잽이고등어’ 라는 말의 기원이 된다. 간고등어는 크기가 조금 차이 나는 두 마리를 ‘한 손’으로 끼워서 보관하고 판매한다. 염장한 고등어를 간고등어라고 부르고, 간고등어를 널리 먹는 내륙지역에서는 염장하지 않은 고등어를 ‘통 고등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20세기 중반까지는 우리나라 내륙지역 전역이 간고등어의 소비지역이었다.

냉동저장기술이 보급되기 전까지 간고등어를 만드는 지리적 위치는 다양하였다. 바다에서 잡힌 고등어를 해안에서 곧바로 만들기도 하고, 원거리 이동 상인이 해안과 종착지 중간쯤에 위치한 시장에 체류할 때 만들기도 하였다. 또 다양한 시장에서 어물전 상인이 만들기도 하고, 종착지 시장 상인이 만들기도 하였다. 냉장고나 냉동차량이 없던 시기에 간고등어는 통 고등어에 비해서 장기 저장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는 고등어를 취급하는 어물전 상인, 이동형 상인, 소비자 모두에게 장점이었다. 상인들은 장기간에 걸쳐 간고등어를 판매할 수 있고, 소비자들도 간고등어를 사서 실온에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간고등어를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는 소금단지에 넣어두기도 하였다. 특히 소금단지 속에 오래 보관한 고등어는 염도가 더 높아져서 실온에서만 보관한 간고등어보다 짜다. 이런 이유로 ‘자반고등어’라는 말이 생겼다.

이혜숙 시인은 다음과 같이 〈자반고등어〉라는 시를 지었다.

“칠월이면 생각난다/ 화롯불 석쇠 위에 지글지글 소리도 맛있다/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고등어 살 아껴가며 발라/ 먹었던 가난한 시절/ 할머니 생신날 소금 범벅 고등어/ 두어 손 사들고 와 소금 항아리 깊숙이/ 저장해 두고 먹었던 기억/ 온 식구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 지금은/ 그 소리 들을 수 없다.”

이렇듯이 1970년대까지 내륙지역 사람 대부분은 간고등어에 대해서 상당한 가치를 부여하였다. 변변한 반찬이 없던 시절에 간고등어는 맛있고 저렴하고 오래 보관해 두고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집안에서 어른을 예우하는 반찬이었고, 손님이 찾아왔을 때 대표적인 접빈용 반찬이었다. 경상북도 안동 일원에서는 간고등어에 대해서 한층 더 특별하게 생각하여 제사상에 올리는 경우도 제법 있다. 안동 도산서원 1904년 8월 향례享禮 제수 물목을 보면 어류로는 북어(7냥 7푼), 청어(8냥), 방어(4냥 2전), 삼치(4냥 1전), 고등어(5냥 6전 5푼)가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1980년대 초에 안동 지역에서 관광음식으로 개발된 ‘안동 헛제삿밥’에도 간고등어가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가난한 시절에 간고등어는 실용적인 어류였고, 전 국민의 반찬거리였다. 안동 지역에서는 1999년부터 간고등어를 진공 비닐팩에 넣어서 상품화하여 판매하고 있다. 이는 해당 지역 사람들이 갖는 간고등어에 대한 특별한 마음이 담긴 전통문화 상품이다.

특징 및 의의

고등어를 염장한 간고등어는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맛도 있고 장기 보관이 쉬워서 실용적인 식품이었다. 식재료가 풍부하지 않고 냉동저장기술이 없던 시절에 내륙지역 사람들에게 간고등어는 언제나 무리 없이 손님치레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고급 반찬이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간고등어를 제사상에 올리기도 한다.

참고문헌

안동지역 간고등어의 소비전통과 문화상품화 과정(배영동, 비교민속학31, 비교민속학회, 2006), 안동 헛제삿밥으로 본 제사음식의 관광상품화와 의미 변화(배영동, 한국민속학67, 한국민속학회, 2018), 일제강점기 청산도 고등어 어업의 실태와 영향(최성환, 서강인문논총50,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7), 일제시대 고등어어업과 일본인 이주어촌(김수희, 역사민속학20, 한국역사민속학회, 2005), 자반고등어(이혜숙, 고시계64, 고시계사, 2019), 유교(ugyo.net).

간고등어

간고등어
사전위치

한국생업기술사전 > 어업

집필자 배영동(裵永東)

정의

고등어의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물로 씻은 후 적당량의 소금을 쳐서 절인 것.

내용

간고등어는 고등어를 소금으로 가공한 것이다.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고등어는 고도어古島魚, 고등어皐登魚, 高等魚, 고동어古同魚, 古洞魚, 高同魚, 고망어古亡魚, 벽문어碧紋魚, 등필이어登必伊魚, 고돌이어古突伊魚 등으로 불리었다.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다는 것은 각지에서 고등어의 어획과 소비가 제법 있었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통계연보朝鮮總督府統計年報』를 보면 고등어 어획량은 1911년 1만 3,500t에서 1932년 10만 3,612t으로 21년 만에 8배 이상 증가하였다. 조선인은 1911년 전체 고등어 어획량의 30%를 차지하였으나, 1932년에는 13%만 어획하였다. 즉 20세기 전반 조선에서 잡히는 고등어는 대부분 일본인이 어획하고 있었다. 이를 보면 일제강점기 고등어 어획량과 소비량 증가에는 일본의 영향이 컸음을 알 수 있다.

바닷가에서는 신선한 고등어를 자주 먹을 수 있어도, 교통이 불편한 내륙지역에서는 갓 잡은 고등어를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륙에서는 고등어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낸 후에 물로 씻고 적당량의 소금을 쳐서 절인 간고등어를 주로 먹었다. 이렇게 환경적요인은 소금으로 간을 잡았다는 뜻의 ‘간잽이고등어’ 라는 말의 기원이 된다. 간고등어는 크기가 조금 차이 나는 두 마리를 ‘한 손’으로 끼워서 보관하고 판매한다. 염장한 고등어를 간고등어라고 부르고, 간고등어를 널리 먹는 내륙지역에서는 염장하지 않은 고등어를 ‘통 고등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20세기 중반까지는 우리나라 내륙지역 전역이 간고등어의 소비지역이었다.

냉동저장기술이 보급되기 전까지 간고등어를 만드는 지리적 위치는 다양하였다. 바다에서 잡힌 고등어를 해안에서 곧바로 만들기도 하고, 원거리 이동 상인이 해안과 종착지 중간쯤에 위치한 시장에 체류할 때 만들기도 하였다. 또 다양한 시장에서 어물전 상인이 만들기도 하고, 종착지 시장 상인이 만들기도 하였다. 냉장고나 냉동차량이 없던 시기에 간고등어는 통 고등어에 비해서 장기 저장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는 고등어를 취급하는 어물전 상인, 이동형 상인, 소비자 모두에게 장점이었다. 상인들은 장기간에 걸쳐 간고등어를 판매할 수 있고, 소비자들도 간고등어를 사서 실온에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간고등어를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는 소금단지에 넣어두기도 하였다. 특히 소금단지 속에 오래 보관한 고등어는 염도가 더 높아져서 실온에서만 보관한 간고등어보다 짜다. 이런 이유로 ‘자반고등어’라는 말이 생겼다.

이혜숙 시인은 다음과 같이 〈자반고등어〉라는 시를 지었다.

“칠월이면 생각난다/ 화롯불 석쇠 위에 지글지글 소리도 맛있다/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고등어 살 아껴가며 발라/ 먹었던 가난한 시절/ 할머니 생신날 소금 범벅 고등어/ 두어 손 사들고 와 소금 항아리 깊숙이/ 저장해 두고 먹었던 기억/ 온 식구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 지금은/ 그 소리 들을 수 없다.”

이렇듯이 1970년대까지 내륙지역 사람 대부분은 간고등어에 대해서 상당한 가치를 부여하였다. 변변한 반찬이 없던 시절에 간고등어는 맛있고 저렴하고 오래 보관해 두고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집안에서 어른을 예우하는 반찬이었고, 손님이 찾아왔을 때 대표적인 접빈용 반찬이었다. 경상북도 안동 일원에서는 간고등어에 대해서 한층 더 특별하게 생각하여 제사상에 올리는 경우도 제법 있다. 안동 도산서원 1904년 8월 향례享禮 제수 물목을 보면 어류로는 북어(7냥 7푼), 청어(8냥), 방어(4냥 2전), 삼치(4냥 1전), 고등어(5냥 6전 5푼)가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1980년대 초에 안동 지역에서 관광음식으로 개발된 ‘안동 헛제삿밥’에도 간고등어가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가난한 시절에 간고등어는 실용적인 어류였고, 전 국민의 반찬거리였다. 안동 지역에서는 1999년부터 간고등어를 진공 비닐팩에 넣어서 상품화하여 판매하고 있다. 이는 해당 지역 사람들이 갖는 간고등어에 대한 특별한 마음이 담긴 전통문화 상품이다.

특징 및 의의

고등어를 염장한 간고등어는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맛도 있고 장기 보관이 쉬워서 실용적인 식품이었다. 식재료가 풍부하지 않고 냉동저장기술이 없던 시절에 내륙지역 사람들에게 간고등어는 언제나 무리 없이 손님치레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고급 반찬이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간고등어를 제사상에 올리기도 한다.

참고문헌

안동지역 간고등어의 소비전통과 문화상품화 과정(배영동, 비교민속학31, 비교민속학회, 2006), 안동 헛제삿밥으로 본 제사음식의 관광상품화와 의미 변화(배영동, 한국민속학67, 한국민속학회, 2018), 일제강점기 청산도 고등어 어업의 실태와 영향(최성환, 서강인문논총50,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7), 일제시대 고등어어업과 일본인 이주어촌(김수희, 역사민속학20, 한국역사민속학회, 2005), 자반고등어(이혜숙, 고시계64, 고시계사, 2019), 유교(ugy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