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도배

가거도배

사전위치

한국생업기술사전 > 어업

집필자 곽유석(郭儒晳)

정의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지역에서 멸치잡이에 쓰였던 전통 배.

개관

가거도에는 논이 없고, 밭도 규모가 작아 주민들은 주로 어업에 의존하여 생계를 꾸려 왔다. 가거도의 어업은 멸치잡이나 해조류·패류 채취 등인데, 가거도 배는 주로 멸치잡이에 이용되었다. 가거도는 육지와 연안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주민들은 어업과 교통수단에 필요한 선박을 섬에 자생하는 가시나무·소나무·구실잣밤나무 등을 사용하여 자체적으로 건조하였다. 이러한 전통이 수백 년 동안 전해지면서 전통 가거도배 만드는 기술과 그 일을 하는 목수들의 명맥이 이어져 왔다.

최덕원 교수가 1987년 『신안군의 문화유적』에 가거도배 도면을 소개하였고, 이후 1997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전통 배 제작기술을 전승하는 차원에서 가거도배를 실제 가거도 지역에서 쓰였던 배의 크기로 복원하였다. 배의 규모는 길이 9.4m, 너비 4.2m, 깊이 2.45m이다.

내용

배의 제작은 우선 3개의 판을 깔고 서로 단단히 결구하여 배밑을 만든다. 그다음에는 배밑에서 좌우로 올라가며 뱃전을 붙인다. ‘외판’이나 ‘삼’ 등으로도 불리는 뱃전을 현지에서는 가장 밑단부터 배금(1단), 초삼(2단), 두차삼(3단), 아랫장거리(4단), 웃장거리(5단), 지래배이(6단), 윗도리삼(7·8단)이라고 한다. 좌우 뱃전 사이에는 서로 연결해 고정하는 게롱(가룡)이라는 횡강력 부재를 설치한다. 횡강력 부재는 판재와 판재를 연결하고, 서로 강하게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뱃전을 완성한 후 선수 부분을 제작한다. 선재 3~4판을 세로로 세워 배밑 선수 끝에서부터 뱃전이 이어지는 곳까지 부착한다. 선미도 역시 끝 터진 부분을 막아주는데, 이 부분을 ‘하반’이라고 한다.

배밑과 뱃전, 선수, 선미가 완성되면 뱃전 4단 위에 ‘날지’를 깐다. 날지는 어로작업이나 항해하면서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갑판을 만드는 나뭇가지이다. 배의 몸체가 완성되면 돛대와 키, 호롱 등의 부속도구를 설치한다.

가거도배의 멸치잡이 어로 방법은 밤에 섬 주변 바다에서 횃불을 켜고 몰려드는 멸치 떼를 그물로 떠서 잡는 방식이다. 장대 두 개를 교차하여 그물을 채운 채 그물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두 개의 장대를 ‘챗대’라 하는데, 이 챗대를 바다에 넣었다가 멸치가 들면 들어 올려 잡았다. 멸치잡이는 5월부터 9월까지 행해지고, 작업인원은 주로 12명이 한 팀이 된다.

멸치잡이를 하면서 고된 노동의 피로를 잊기 위해 부르던 노래가 ‘가거도멸치잡이노래’이다. 이 노래가 전승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8년 전라남도무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가거도배와 관련된 민속으로 ‘배발올리기’와 ‘배발올리기소리’가 있다. 배발올리기는 이곳의 독특한 풍습인데, 풍랑이 세지면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마을의 배를 모두 육지로 옮겨놓는다. 그 방법은 사람들이 누워서 발로 뱃전을 들어 올려 조금씩 육지로 올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때 좌우에 각각 젊은 사람 3명 또는 4명씩 눕고, 나머지 사람들은 배에 줄을 묶어 끌고, 일부는 배 밑에 원통형 나무를 대고 잘 미끄러지게 한다. 이 과정에서 전체 지휘자는 배발올리기소리로 작업하는 사람들의 힘을 북돋는다. 이는 작업의 능률을 높여 준다.

특징 및 의의

가거도배는 멸치잡이 등 어업에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육지나 이웃 섬을 다닐 때는 운송용이나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어선으로 사용할 때는 뱃전을 6단까지만 유지하고, 운송·교통수단으로 사용할 때는 뱃전 2단을 더 붙여 운행하였다. 이는 파도에 의해 바닷물이 선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육지와 연안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섬에서 가거도 주민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배를 만들어 어업과 교통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특히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전통 배의 특징을 그대로 유지한 점은 전통 선박의 원형을 찾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신안군의 문화유적(목포대학교박물관·신안군, 1987), 신안군지3 섬사람들의 생활문화(신안군지편찬위원회, 2017), 전통한선과 어로민속(국립해양유물전시관, 1997).

가거도배

가거도배
사전위치

한국생업기술사전 > 어업

집필자 곽유석(郭儒晳)

정의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지역에서 멸치잡이에 쓰였던 전통 배.

개관

가거도에는 논이 없고, 밭도 규모가 작아 주민들은 주로 어업에 의존하여 생계를 꾸려 왔다. 가거도의 어업은 멸치잡이나 해조류·패류 채취 등인데, 가거도 배는 주로 멸치잡이에 이용되었다. 가거도는 육지와 연안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주민들은 어업과 교통수단에 필요한 선박을 섬에 자생하는 가시나무·소나무·구실잣밤나무 등을 사용하여 자체적으로 건조하였다. 이러한 전통이 수백 년 동안 전해지면서 전통 가거도배 만드는 기술과 그 일을 하는 목수들의 명맥이 이어져 왔다.

최덕원 교수가 1987년 『신안군의 문화유적』에 가거도배 도면을 소개하였고, 이후 1997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전통 배 제작기술을 전승하는 차원에서 가거도배를 실제 가거도 지역에서 쓰였던 배의 크기로 복원하였다. 배의 규모는 길이 9.4m, 너비 4.2m, 깊이 2.45m이다.

내용

배의 제작은 우선 3개의 판을 깔고 서로 단단히 결구하여 배밑을 만든다. 그다음에는 배밑에서 좌우로 올라가며 뱃전을 붙인다. ‘외판’이나 ‘삼’ 등으로도 불리는 뱃전을 현지에서는 가장 밑단부터 배금(1단), 초삼(2단), 두차삼(3단), 아랫장거리(4단), 웃장거리(5단), 지래배이(6단), 윗도리삼(7·8단)이라고 한다. 좌우 뱃전 사이에는 서로 연결해 고정하는 게롱(가룡)이라는 횡강력 부재를 설치한다. 횡강력 부재는 판재와 판재를 연결하고, 서로 강하게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뱃전을 완성한 후 선수 부분을 제작한다. 선재 3~4판을 세로로 세워 배밑 선수 끝에서부터 뱃전이 이어지는 곳까지 부착한다. 선미도 역시 끝 터진 부분을 막아주는데, 이 부분을 ‘하반’이라고 한다.

배밑과 뱃전, 선수, 선미가 완성되면 뱃전 4단 위에 ‘날지’를 깐다. 날지는 어로작업이나 항해하면서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갑판을 만드는 나뭇가지이다. 배의 몸체가 완성되면 돛대와 키, 호롱 등의 부속도구를 설치한다.

가거도배의 멸치잡이 어로 방법은 밤에 섬 주변 바다에서 횃불을 켜고 몰려드는 멸치 떼를 그물로 떠서 잡는 방식이다. 장대 두 개를 교차하여 그물을 채운 채 그물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두 개의 장대를 ‘챗대’라 하는데, 이 챗대를 바다에 넣었다가 멸치가 들면 들어 올려 잡았다. 멸치잡이는 5월부터 9월까지 행해지고, 작업인원은 주로 12명이 한 팀이 된다.

멸치잡이를 하면서 고된 노동의 피로를 잊기 위해 부르던 노래가 ‘가거도멸치잡이노래’이다. 이 노래가 전승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8년 전라남도무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가거도배와 관련된 민속으로 ‘배발올리기’와 ‘배발올리기소리’가 있다. 배발올리기는 이곳의 독특한 풍습인데, 풍랑이 세지면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마을의 배를 모두 육지로 옮겨놓는다. 그 방법은 사람들이 누워서 발로 뱃전을 들어 올려 조금씩 육지로 올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때 좌우에 각각 젊은 사람 3명 또는 4명씩 눕고, 나머지 사람들은 배에 줄을 묶어 끌고, 일부는 배 밑에 원통형 나무를 대고 잘 미끄러지게 한다. 이 과정에서 전체 지휘자는 배발올리기소리로 작업하는 사람들의 힘을 북돋는다. 이는 작업의 능률을 높여 준다.

특징 및 의의

가거도배는 멸치잡이 등 어업에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육지나 이웃 섬을 다닐 때는 운송용이나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어선으로 사용할 때는 뱃전을 6단까지만 유지하고, 운송·교통수단으로 사용할 때는 뱃전 2단을 더 붙여 운행하였다. 이는 파도에 의해 바닷물이 선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육지와 연안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섬에서 가거도 주민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배를 만들어 어업과 교통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특히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전통 배의 특징을 그대로 유지한 점은 전통 선박의 원형을 찾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신안군의 문화유적(목포대학교박물관·신안군, 1987), 신안군지3 섬사람들의 생활문화(신안군지편찬위원회, 2017), 전통한선과 어로민속(국립해양유물전시관,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