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갈남마을백호서낭제

삼척갈남마을백호서낭제

사전위치

한국민속상징사전 > 호랑이

집필자 김도현(金道賢)

정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갈남1리(갈남마을) 서낭당에서 호서낭[白虎]을 주신主神으로 모셔서 마을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낸 마을 서낭제.

개관

갈남마을 주민 중에는 갈남항을 통해 어업에 종사하면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많다. 마을제당은 마을 전체를 관장하는 서낭당과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해당이 있다.
서낭당은 호당虎堂, 백호서낭[白虎城隍], 큰당, 할아버지당이라고 한다. 동네산 또는 동네가산이라 불리는 산 중턱에 있다. 서낭당은 신수神樹에 돌담이 둘러쳐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에 서낭당 자리에 철도를 내기 위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후 건물 형태로 서낭당을 만들었는데, 1955년(을미년) 3월 14일 상량하였고, 1982년(임술년)에 고쳐 지었으며, 1993년 6월 8일 다시 지어 유지하다가 현재 운영하는 제당을 2012년 6월 11일 상량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낭당 정면에 ‘성황당城隍堂’이라 쓴 편액을 걸었다. 성황당은 서낭당의 원말이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에 맞배지붕 형태이다. 내부 정면에 제단을 설치하고, 오른쪽 벽면에 작은 제단, 왼쪽에는 용품을 두는 선반을 설치하였다. 해당은 뒷개라 불리는 마을 어귀 해변의 산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마을에서 하당 또는 할머니당이라고 하며, 제의는 바다에서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어민들을 중심으로 지낸다.
매년 정월 첫 자일子日과 10월 첫 오일午日에 서낭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정월에만 지낸다. 마을에서는 서낭제사를 ‘마을 치성’이라고도 부르며, 치성을 올리기 위해 날을 받아 놓으면 눈 위에 호랑이 발자국이 있었다는 말이 전한다.
서낭당에 모신 신령을 ‘백호서낭’ 또는 산을 관장하는 하얀 호랑이로 여겨 ‘백호 서낭신’이라 한다. 『해신이 지켜온 어촌』에 의하면 1960년대에는 신목[향나무]에 ‘토지원신土地元神’이라 묵서墨書한 위목을 걸었으나 이후 ‘토지지신 신위土地之神 神位’라고 쓴 위패 형태로 신령을 모셨다. 지금은 한지에 묵서하여 신령을 모신다. 서낭제 축문을 보면 제단에 모신 신령의 명칭이 ‘가람토지 성황대신 대성자’인 것으로 보아 서낭신과 토지신을 모시며 서낭제사를 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를 소개하면 범이 이 마을을 개창하였기에 범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서낭님 치성을 드리기 사나흘 전쯤 호랑이가 나타나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고, 날을 받으면 계수의 눈에만 호랑이가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바닷가에는 호랑이굴이 있으며, 이전에 날을 받아서 3년에 한 번 2박 3일간 굿을 할 때 ‘호랑이 종이탈 놀이’라 하여 굿의 말미에 소나무로 우리를 만든 후 호랑이 종이탈을 쓰고, 풀어 놓은 닭을 놀리는 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내용

1967년 자료를 보면 서낭제를 지내는 순서는 ‘상신—중신—하신—음복—결산 계의計議’이며, 준비한 제수는 우육·백병·어물·과실 등이었다. 이와 함께 접(집)시밥 세 그릇을 수부신에게 올렸다고 한다.
2017년에 지낸 서낭제는 ‘부정을 가셔내기 위해 짚불 놓고 넘어가기—진설—부정풀이—위목지 걸기—초헌—축문 읽기—축문 소지—제관 삼배—제관 재배—아헌—제관 재배—시식—제관 재배—첨잔—소지 올림—수부 물림—금줄 벗기기’의 순서로 진행하였다. 준비한 제물은 메(1), 채국(1), 탕(1), 떡(백설기), 채소(고사리, 미역, 숙주나물), 돼지머리, 소고기 적, 명태전, 생선(열기, 가자미, 명태), 과줄, 포, 두부전, 달걀, 과일(배·사과·단감), 삼실과(대추·밤·곶감)이다.
마을 서낭당에서 모신 신령이 ‘호서낭’이기에 개고기를 좋아한다고 여겨 1960년대까지 개고기를 제물로 올렸다. 이후 소의 머리와 다리 그리고 간을 올리다가 현재는 돼지머리를 올린다.

특징 및 의의

강원도를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호랑이를 산신으로 여기는데, 갈남마을 서낭당을 ‘호당虎堂’, 모신 신령을 ‘호서낭’이라 여긴 것으로 보아 산신의 성격을 지닌 신령을 주신主神으로 모셨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산신’은 역할에 따라 산신山神, 산령山靈, 천왕天王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산신은 지리적 공간을 주재하고, 산령은 ‘신령—인간’의 직접적 관계에 주목하여 길흉화복을 관장하는데 인간이 산신령(또는 산령)에게 귀의하고자 할 때 모신다. 천왕은 신화상의 시조이다. 갈남마을에서 모신 호랑이는 다른 마을과는 달리 ‘백호白虎’라고 여기며, 서낭제사를 ‘마을 치성’이라 한 것으로 보아 마을을 수호하면서 풍요를 가져다주는 대상 신령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에 갈남마을에서 모신 호서낭은 산신이 지닌 의미 중 산신과 산령의 역할을 복합적으로 기대하여 모셔졌다고 볼 수 있다.
호랑이를 신령으로 모시거나 유인하기 위해 홍천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거리제사를 지낼 때 개[犬]를 주요 제물로 올리며, 기우제를 지낼 때도 개를 제물로 준비한 사례들이 있다. 그러나 마을제사에서 개를 주요 제수로 올린 사례들이 많지 않다. 갈남마을에서 백호를 주신으로 모셨기에 1960년대까지 개를 준비하여 올렸다는 점과 현재 서낭신과 토지신을 모셔서 마을제사를 지낸다는 점은 마을에서 산신을 모셨던 전통이 서낭신으로 그 명칭이 변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기에 마을제사가 지닌 전승 양상이나 의미를 분석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강원도 영동 남부지역 고을 및 마을신앙(김도현,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인제지역 마을에서 모시는 산신의 성격(김도현, 종교학연구37, 한국종교학연구회, 2019), 큰섬이 지켜주는 갈남마을(김창일·이승형,국립민속박물관, 2014), 해신이 지켜온 어촌(문화관광부·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문화체육부·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1996), 홍천강 지류별 마을제의 존재양상(이영식, 사회과학연구54-1, 강원대학교사회과학연구원, 2015).

삼척갈남마을백호서낭제

삼척갈남마을백호서낭제
사전위치

한국민속상징사전 > 호랑이

집필자 김도현(金道賢)

정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갈남1리(갈남마을) 서낭당에서 호서낭[白虎]을 주신主神으로 모셔서 마을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낸 마을 서낭제.

개관

갈남마을 주민 중에는 갈남항을 통해 어업에 종사하면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많다. 마을제당은 마을 전체를 관장하는 서낭당과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해당이 있다.
서낭당은 호당虎堂, 백호서낭[白虎城隍], 큰당, 할아버지당이라고 한다. 동네산 또는 동네가산이라 불리는 산 중턱에 있다. 서낭당은 신수神樹에 돌담이 둘러쳐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에 서낭당 자리에 철도를 내기 위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후 건물 형태로 서낭당을 만들었는데, 1955년(을미년) 3월 14일 상량하였고, 1982년(임술년)에 고쳐 지었으며, 1993년 6월 8일 다시 지어 유지하다가 현재 운영하는 제당을 2012년 6월 11일 상량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낭당 정면에 ‘성황당城隍堂’이라 쓴 편액을 걸었다. 성황당은 서낭당의 원말이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에 맞배지붕 형태이다. 내부 정면에 제단을 설치하고, 오른쪽 벽면에 작은 제단, 왼쪽에는 용품을 두는 선반을 설치하였다. 해당은 뒷개라 불리는 마을 어귀 해변의 산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마을에서 하당 또는 할머니당이라고 하며, 제의는 바다에서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어민들을 중심으로 지낸다.
매년 정월 첫 자일子日과 10월 첫 오일午日에 서낭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정월에만 지낸다. 마을에서는 서낭제사를 ‘마을 치성’이라고도 부르며, 치성을 올리기 위해 날을 받아 놓으면 눈 위에 호랑이 발자국이 있었다는 말이 전한다.
서낭당에 모신 신령을 ‘백호서낭’ 또는 산을 관장하는 하얀 호랑이로 여겨 ‘백호 서낭신’이라 한다. 『해신이 지켜온 어촌』에 의하면 1960년대에는 신목[향나무]에 ‘토지원신土地元神’이라 묵서墨書한 위목을 걸었으나 이후 ‘토지지신 신위土地之神 神位’라고 쓴 위패 형태로 신령을 모셨다. 지금은 한지에 묵서하여 신령을 모신다. 서낭제 축문을 보면 제단에 모신 신령의 명칭이 ‘가람토지 성황대신 대성자’인 것으로 보아 서낭신과 토지신을 모시며 서낭제사를 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를 소개하면 범이 이 마을을 개창하였기에 범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서낭님 치성을 드리기 사나흘 전쯤 호랑이가 나타나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고, 날을 받으면 계수의 눈에만 호랑이가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바닷가에는 호랑이굴이 있으며, 이전에 날을 받아서 3년에 한 번 2박 3일간 굿을 할 때 ‘호랑이 종이탈 놀이’라 하여 굿의 말미에 소나무로 우리를 만든 후 호랑이 종이탈을 쓰고, 풀어 놓은 닭을 놀리는 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내용

1967년 자료를 보면 서낭제를 지내는 순서는 ‘상신—중신—하신—음복—결산 계의計議’이며, 준비한 제수는 우육·백병·어물·과실 등이었다. 이와 함께 접(집)시밥 세 그릇을 수부신에게 올렸다고 한다.
2017년에 지낸 서낭제는 ‘부정을 가셔내기 위해 짚불 놓고 넘어가기—진설—부정풀이—위목지 걸기—초헌—축문 읽기—축문 소지—제관 삼배—제관 재배—아헌—제관 재배—시식—제관 재배—첨잔—소지 올림—수부 물림—금줄 벗기기’의 순서로 진행하였다. 준비한 제물은 메(1), 채국(1), 탕(1), 떡(백설기), 채소(고사리, 미역, 숙주나물), 돼지머리, 소고기 적, 명태전, 생선(열기, 가자미, 명태), 과줄, 포, 두부전, 달걀, 과일(배·사과·단감), 삼실과(대추·밤·곶감)이다.
마을 서낭당에서 모신 신령이 ‘호서낭’이기에 개고기를 좋아한다고 여겨 1960년대까지 개고기를 제물로 올렸다. 이후 소의 머리와 다리 그리고 간을 올리다가 현재는 돼지머리를 올린다.

특징 및 의의

강원도를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호랑이를 산신으로 여기는데, 갈남마을 서낭당을 ‘호당虎堂’, 모신 신령을 ‘호서낭’이라 여긴 것으로 보아 산신의 성격을 지닌 신령을 주신主神으로 모셨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산신’은 역할에 따라 산신山神, 산령山靈, 천왕天王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산신은 지리적 공간을 주재하고, 산령은 ‘신령—인간’의 직접적 관계에 주목하여 길흉화복을 관장하는데 인간이 산신령(또는 산령)에게 귀의하고자 할 때 모신다. 천왕은 신화상의 시조이다. 갈남마을에서 모신 호랑이는 다른 마을과는 달리 ‘백호白虎’라고 여기며, 서낭제사를 ‘마을 치성’이라 한 것으로 보아 마을을 수호하면서 풍요를 가져다주는 대상 신령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에 갈남마을에서 모신 호서낭은 산신이 지닌 의미 중 산신과 산령의 역할을 복합적으로 기대하여 모셔졌다고 볼 수 있다.
호랑이를 신령으로 모시거나 유인하기 위해 홍천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거리제사를 지낼 때 개[犬]를 주요 제물로 올리며, 기우제를 지낼 때도 개를 제물로 준비한 사례들이 있다. 그러나 마을제사에서 개를 주요 제수로 올린 사례들이 많지 않다. 갈남마을에서 백호를 주신으로 모셨기에 1960년대까지 개를 준비하여 올렸다는 점과 현재 서낭신과 토지신을 모셔서 마을제사를 지낸다는 점은 마을에서 산신을 모셨던 전통이 서낭신으로 그 명칭이 변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기에 마을제사가 지닌 전승 양상이나 의미를 분석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강원도 영동 남부지역 고을 및 마을신앙(김도현,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인제지역 마을에서 모시는 산신의 성격(김도현, 종교학연구37, 한국종교학연구회, 2019), 큰섬이 지켜주는 갈남마을(김창일·이승형,국립민속박물관, 2014), 해신이 지켜온 어촌(문화관광부·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문화체육부·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1996), 홍천강 지류별 마을제의 존재양상(이영식, 사회과학연구54-1, 강원대학교사회과학연구원,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