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호(伏虎)

복호

한자명

伏虎

사전위치

한국민속상징사전 > 호랑이

집필자 오세길(吳世吉)

정의

호랑이가 엎드린 지형이라는 의미로 묏자리·산봉우리·마을 이름 등의 앞에 쓰이는 지명의 하나.

개관

복호는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보다 복호혈·복호봉·복호마을 등처럼 묏자리, 산봉우리, 마을 이름 등과 연계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풍수지리 상 명당자리 중 하나인 복호혈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으며 내용도 구체적이다.

내용

전라남도 순천, 전라북도 정읍, 경상북도 김천·예천 등지에서는 마을 주변 산의 형세가 호랑이가 엎드린 것과 같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복호마을이라 한다. 또 전라북도 진안에서처럼 산봉우리가 호랑이가 엎드린 것과 비슷하다 하여 복호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호랑이의 모습과 산세나 지형의 유사성만 설명하는 등 유래담의 내용이 단순한 편이다. 그러나 명당자리의 하나로 꼽히는 복호혈과 관련해서 그 내용이 풍부하고 구체적이다. 여기에서는 명당자리로서의 복호혈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인식이 동시에 나타나 있다.
복호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해진다. 복호혈인 줄 모르고 그곳에 조상의 묘를 썼는데, 해마다 참배한 자손 중 한 명이 죽게 되었다. 문중에서 지관을 불러 물어보니 그곳이 복호혈이라 호랑이가 자손들에게 해를 가해서 생긴 일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문중에서는 멀리서 묘를 바라보고 망배만 하였고 결국 폐묘에 이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유래담은 복호혈이 비록 명당이기는 하지만 호랑이의 위해가 상존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극복하고 명당자리로서의 기능을 회복하는 이야기가 개바위 전설과 함께 전하기도 한다. 충남 서산 지역에서 묏자리를 찾던 지관이 복호혈 명당을 보고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가 인근에서 개바위를 찾아내고 흔쾌히 묘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먹이가 없는 복호혈에 묘를 썼다가는 그 해가 자손에게 닿을 수 있어 개바위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것으로 명당의 조건으로 주변 지세와의 조화가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참고문헌

바위 소재 지명어의 명명 근거와 전부지명소1(김정태, 지명학12, 한국지명학회, 2006), 서산민속지 하(최운식 외, 서산문화원, 1991), 암천 박증과 모곡서원(강성복·박철희, 암천정신연구소, 2003), 진안군 향토 문화 백과사전(진안군·진안문화원, 2004).

복호

복호
한자명

伏虎

사전위치

한국민속상징사전 > 호랑이

집필자 오세길(吳世吉)

정의

호랑이가 엎드린 지형이라는 의미로 묏자리·산봉우리·마을 이름 등의 앞에 쓰이는 지명의 하나.

개관

복호는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보다 복호혈·복호봉·복호마을 등처럼 묏자리, 산봉우리, 마을 이름 등과 연계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풍수지리 상 명당자리 중 하나인 복호혈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으며 내용도 구체적이다.

내용

전라남도 순천, 전라북도 정읍, 경상북도 김천·예천 등지에서는 마을 주변 산의 형세가 호랑이가 엎드린 것과 같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복호마을이라 한다. 또 전라북도 진안에서처럼 산봉우리가 호랑이가 엎드린 것과 비슷하다 하여 복호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호랑이의 모습과 산세나 지형의 유사성만 설명하는 등 유래담의 내용이 단순한 편이다. 그러나 명당자리의 하나로 꼽히는 복호혈과 관련해서 그 내용이 풍부하고 구체적이다. 여기에서는 명당자리로서의 복호혈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인식이 동시에 나타나 있다.
복호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해진다. 복호혈인 줄 모르고 그곳에 조상의 묘를 썼는데, 해마다 참배한 자손 중 한 명이 죽게 되었다. 문중에서 지관을 불러 물어보니 그곳이 복호혈이라 호랑이가 자손들에게 해를 가해서 생긴 일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문중에서는 멀리서 묘를 바라보고 망배만 하였고 결국 폐묘에 이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유래담은 복호혈이 비록 명당이기는 하지만 호랑이의 위해가 상존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극복하고 명당자리로서의 기능을 회복하는 이야기가 개바위 전설과 함께 전하기도 한다. 충남 서산 지역에서 묏자리를 찾던 지관이 복호혈 명당을 보고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가 인근에서 개바위를 찾아내고 흔쾌히 묘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먹이가 없는 복호혈에 묘를 썼다가는 그 해가 자손에게 닿을 수 있어 개바위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것으로 명당의 조건으로 주변 지세와의 조화가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참고문헌

바위 소재 지명어의 명명 근거와 전부지명소1(김정태, 지명학12, 한국지명학회, 2006), 서산민속지 하(최운식 외, 서산문화원, 1991), 암천 박증과 모곡서원(강성복·박철희, 암천정신연구소, 2003), 진안군 향토 문화 백과사전(진안군·진안문화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