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호랑이

백두산호랑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상징사전 > 호랑이

집필자 이항(李恒)

정의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일대에 역사적으로 서식하였거나 현재 서식하고 있는 호랑이 아종 중 하나.

개관

한반도 전체를 비롯하여 중국 동북지역과 극동 러시아 지역에 걸쳐 과거에 분포하던 호랑이 아종을 학명으로는 Panthera tigris altaica라 하고, 한국에서는 ‘백두산호랑이’나 ‘한국호랑이’ 또는 ‘한국범’이라고 한다. 현재는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북한·러시아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약 500마리의 개체군이 생존해 있다.
국가, 지역, 시대, 사회에 따라 같은 아종의 호랑이를 다른 이름으로 지칭해 왔다. 세계적으로는 시베리아호랑이로 일반인들에게 더 널리 알려져 있으나 실제 러시아에서 시베리아로 알려진 지역에는 현재 호랑이가 서식하지 않으므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 현재는 극동 러시아의 아무르강과 우수리강 유역이 주 서식지이기 때문에 아무르호랑이 또는 우수리호랑이가 더 적합한 명칭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는 한반도와 백두산 일대가 주 서식지였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백두산호랑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호랑(이)’이라는 용어는 한자의 호虎와 랑狼, 즉 범과 이리(늑대)를 합쳐 만들어진 단어이다. 본래는 무서운 동물을 의미하는 일반적 단어였으나 후대로 가면서 범이라는 특정 동물을 일컫는 단어로 굳어졌다. ‘범’은 호랑이를 의미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때로는 표범(돈범)과 구별하기 위해 호랑이를 갈범 또는 칡범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범은 호랑이라는 단일 종의 동물을 의미하기도 하였으나 때로는 호랑이와 표범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범의 새끼를 ‘개호주’ 또는 ‘갈가지’라고 하며, 호랑이의 별칭으로 대충大蟲·병표炳豹·산군山君이라는 한자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내용

전 세계에서 호랑이는 아시아 대륙에만 분포해 있었는데, 아시아의 호랑이는 20세기 초까지 모두 9개 아종subspecies이 존재하였다. 이 중 4개 아종(발리, 자바, 카스피, 남중국 호랑이)은 야생에서 멸종되었고, 5개 아종(벵골, 아무르, 인도차이나, 수마트라, 말레이 호랑이)만이 현재 남아 있다. 100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호랑이 뼈의 표본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한 유전학적 연구에서는 한반도의 백두산호랑이가 극동 러시아의 아무르호랑이와 동일한 아종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그러므로 한반도, 중국 동북부, 러시아 극동지역에 서식했던 호랑이들은 사실상 모두 같은 혈통으로 하나의 유전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호랑이는 한반도에서 적어도 10만 년 이상 사람과 함께 살아왔다. 충청북도 청원군(현재 충북 청주시) 두루봉 동굴유적에서 발견된 호랑이 뼈는 최소 12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오랜 기간 한민족과 함께한 호랑이가 한반도에서 사라진 것은 20세기 후반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이 한반도에서 호랑이의 절멸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나, 그 이전 500년간에 걸친 조선시대 포호정책捕虎政策도 한반도 호랑이 개체군의 쇠퇴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호랑이는 식육목 고양잇과 동물의 한 종이며, 황갈색 바탕에 몸의 아래위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짙은 갈색 줄무늬는 외관상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암·수 호랑이가 번식기에 함께 지낼 때, 그리고 암호랑이가 새끼를 키울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단독 생활을 한다. 호랑이는 그 서식 지역과 아종에 따라 그리고 개체에 따라 몸 크기, 바탕 및 줄무늬 색깔, 털 길이 등이 많이 다르다.
백두산호랑이는 모든 호랑이 아종 중 눈이 오는 추운 아시아 북방의 혹독한 기후에 적응한 유일한 아종으로, 털 색깔이 연하고 겨울털이 길며 몸집이 가장 큰 아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도의 벵골호랑이가 아무르호랑이보다 큰 경우도 있다. 수컷은 몸통 길이 190~230㎝에 몸무게 180~300㎏ 정도이고, 암컷은 몸통 길이 160~180㎝에 몸무게 100~170㎏ 정도이다.
호랑이는 나무 또는 덤불 등 주변 환경을 이용해 먹잇감 곁으로 몰래 다가가거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불시에 공격하는 습격형 포식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은폐물이 필요하다. 따라서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는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와 달리 호랑이는 사방이 트인 곳에 서식하지 않는다. 백두산호랑이의 주된 먹잇감은 멧돼지와 중대형 사슴류이지만, 때로 너구리·오소리·들개 같은 작은 동물을 사냥하기도 한다.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백두산호랑이는 험준한 산악지역보다는 평지 내지 구릉지를 서식지로 선호한다. 다만 이렇게 평탄하고 낮은 지역은 대부분 사람에 의해 이미 개발되었기 때문에 산악지역으로 쫓겨 들어간 것이다. 참나무 또는 잣나무가 풍부한 숲에는 먹이동물인 사슴과 멧돼지가 많기 때문에 호랑이 역시 이런 활엽수림 또는 혼효림을 좋아한다. 또한 호랑이는 고양잇과 동물 중 물을 마다하지 않고 헤엄을 잘 치는 동물에 속한다. 한반도의 여러 섬에서도 호랑이가 뭍을 오가며 서식한 많은 예가 있다.
한반도에서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후, 호랑이와 한민족은 수천 년간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하였다고 생각된다. 호랑이를 제거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체계적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 건국 이후였다. 조선은 호환虎患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포호정책을 시행했으며, 그 결과 16세기 초까지 호랑이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하였고, 양란을 거치며 일시 증가하였으나 이후 조선 말기까지 낮은 서식 밀도를 유지하였다는 여러 증거가 존재한다.
한반도에서 호랑이의 명줄이 완전히 끊긴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일제는 해수구제정책, 즉 식민지 백성을 해로운 짐승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대적인 맹수 사냥에 나섰고, 결국 1920년대에 호랑이는 일부 북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 땅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다. 남한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호랑이가 잡힌 것은 1940년대였으며, 북한에서는 1987년 자강도에서 잡힌 수컷 호랑이가 마지막으로 포획된 호랑이였다.
조선과 일제가 호랑이 포획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단지 호환 예방의 목적만은 아니었다. 때로 호랑이 사냥은 군사훈련의 한 방식이기도 하였고, 값비싼 호피와 호랑이 뼈·고기 등 약재를 얻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전쟁 중이 아닌 시기, 출세하거나 돈을 벌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바로 호랑이 포획이었다. 일제가 한민족의 기를 제거하기 위해 호랑이를 절멸시켰다는 주장이 있으나 확인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한반도에서 호랑이 사냥을 일본 제국주의 이념 확산의 한 수단으로 활용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특징 및 의의

호랑이는 청동기시대에 그려진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부터 한민족의 문화에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신도四神圖를 비롯하여 민화와 그림·장식품·석상·속담·전설·설화 등에 빈번히 나타난다. 한국인은 수천 년 동안 호랑이와 함께 살아오면서 호랑이의 엄청난 파괴력을 두려워하고 또 부러워하였으며, 그 힘과 용맹을 사랑하였다. 호랑이는 영험한 동물로 대접받았으며, 산신령 또는 산군山君으로서 산신각에 모셔졌다. 최남선崔南善(1890~1957)은 우리나라만큼 호랑이 이야기가 많은 나라는 없다고 하여 호담국虎談國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반도에서 호랑이는 사라졌으나 그 역사·민속·언어·문화적 상징성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3/4 이상은 호랑이를 대한민국의 상징동물로 생각하고 있다. 호랑이는 서울올림픽대회(1988)와 평창 동계올림픽대회(2018)의 마스코트였다. 또한 도쿄올림픽대회(2020) 한국선수단의 캐치프레이즈는 〈범 내려온다〉였다. 이는 이날치밴드가 판소리를 현대적 팝으로 재해석하여 전 세계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은 퓨전 국악 〈범 내려온다〉에서 차용한 것이다.
모든 민속·문화적 상징성은 그 실물이 존재할 때 빛을 발한다. 일반적으로 백두산호랑이의 실체는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사라졌다고 백두산호랑이의 명맥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다. 북한·러시아·중국 접경지역 그리고 극동 러시아 지역에 아직도 약 500마리로 이루어진 백두산호랑이 개체군이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 당국은 이 호랑이와 표범 개체군을 보호하기 위해 북한과 인접한 접경지역에 광범위한 대규모 보호구역을 설치하고 적극적인 보전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지역의 호랑이 개체군은 중국 내륙 쪽으로 급속히 확장하고 있으며, 머지않은 장래에 북한 지역으로도 확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접경지역 호랑이 개체군이 살아 있는 한 미래 한반도에 호랑이가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국내에서도 북한·러시아·중국 접경지역 호랑이 보호와 확산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가 활동하고 있다.

참고문헌

정호기(山本唯三郞, 이은옥 역, 에이도스, 2014), 조선전기 포호정책 연구—농지개간의 관점에서(김동진, 선인, 2009),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遠藤公男, 이은옥 역, 이담북스, 2009), Mitochondrial Phylogeography Illuminates the Origin of the Extinct Caspian Tiger and Its Relationship to the Amur Tiger(Driscoll CA et al, PLoS one4, Public Library of Science, 2009), Subspecific Status of the Korean Tiger Inferred by Ancient DNA Analysis(Mu-Yeong Lee et al, Evolution and Diversity28-1, Animal Systematics, 2012).

백두산호랑이

백두산호랑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상징사전 > 호랑이

집필자 이항(李恒)

정의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일대에 역사적으로 서식하였거나 현재 서식하고 있는 호랑이 아종 중 하나.

개관

한반도 전체를 비롯하여 중국 동북지역과 극동 러시아 지역에 걸쳐 과거에 분포하던 호랑이 아종을 학명으로는 Panthera tigris altaica라 하고, 한국에서는 ‘백두산호랑이’나 ‘한국호랑이’ 또는 ‘한국범’이라고 한다. 현재는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북한·러시아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약 500마리의 개체군이 생존해 있다.
국가, 지역, 시대, 사회에 따라 같은 아종의 호랑이를 다른 이름으로 지칭해 왔다. 세계적으로는 시베리아호랑이로 일반인들에게 더 널리 알려져 있으나 실제 러시아에서 시베리아로 알려진 지역에는 현재 호랑이가 서식하지 않으므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 현재는 극동 러시아의 아무르강과 우수리강 유역이 주 서식지이기 때문에 아무르호랑이 또는 우수리호랑이가 더 적합한 명칭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는 한반도와 백두산 일대가 주 서식지였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백두산호랑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호랑(이)’이라는 용어는 한자의 호虎와 랑狼, 즉 범과 이리(늑대)를 합쳐 만들어진 단어이다. 본래는 무서운 동물을 의미하는 일반적 단어였으나 후대로 가면서 범이라는 특정 동물을 일컫는 단어로 굳어졌다. ‘범’은 호랑이를 의미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때로는 표범(돈범)과 구별하기 위해 호랑이를 갈범 또는 칡범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범은 호랑이라는 단일 종의 동물을 의미하기도 하였으나 때로는 호랑이와 표범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범의 새끼를 ‘개호주’ 또는 ‘갈가지’라고 하며, 호랑이의 별칭으로 대충大蟲·병표炳豹·산군山君이라는 한자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내용

전 세계에서 호랑이는 아시아 대륙에만 분포해 있었는데, 아시아의 호랑이는 20세기 초까지 모두 9개 아종subspecies이 존재하였다. 이 중 4개 아종(발리, 자바, 카스피, 남중국 호랑이)은 야생에서 멸종되었고, 5개 아종(벵골, 아무르, 인도차이나, 수마트라, 말레이 호랑이)만이 현재 남아 있다. 100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호랑이 뼈의 표본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한 유전학적 연구에서는 한반도의 백두산호랑이가 극동 러시아의 아무르호랑이와 동일한 아종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그러므로 한반도, 중국 동북부, 러시아 극동지역에 서식했던 호랑이들은 사실상 모두 같은 혈통으로 하나의 유전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호랑이는 한반도에서 적어도 10만 년 이상 사람과 함께 살아왔다. 충청북도 청원군(현재 충북 청주시) 두루봉 동굴유적에서 발견된 호랑이 뼈는 최소 12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오랜 기간 한민족과 함께한 호랑이가 한반도에서 사라진 것은 20세기 후반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이 한반도에서 호랑이의 절멸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나, 그 이전 500년간에 걸친 조선시대 포호정책捕虎政策도 한반도 호랑이 개체군의 쇠퇴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호랑이는 식육목 고양잇과 동물의 한 종이며, 황갈색 바탕에 몸의 아래위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짙은 갈색 줄무늬는 외관상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암·수 호랑이가 번식기에 함께 지낼 때, 그리고 암호랑이가 새끼를 키울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단독 생활을 한다. 호랑이는 그 서식 지역과 아종에 따라 그리고 개체에 따라 몸 크기, 바탕 및 줄무늬 색깔, 털 길이 등이 많이 다르다.
백두산호랑이는 모든 호랑이 아종 중 눈이 오는 추운 아시아 북방의 혹독한 기후에 적응한 유일한 아종으로, 털 색깔이 연하고 겨울털이 길며 몸집이 가장 큰 아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도의 벵골호랑이가 아무르호랑이보다 큰 경우도 있다. 수컷은 몸통 길이 190~230㎝에 몸무게 180~300㎏ 정도이고, 암컷은 몸통 길이 160~180㎝에 몸무게 100~170㎏ 정도이다.
호랑이는 나무 또는 덤불 등 주변 환경을 이용해 먹잇감 곁으로 몰래 다가가거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불시에 공격하는 습격형 포식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은폐물이 필요하다. 따라서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는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와 달리 호랑이는 사방이 트인 곳에 서식하지 않는다. 백두산호랑이의 주된 먹잇감은 멧돼지와 중대형 사슴류이지만, 때로 너구리·오소리·들개 같은 작은 동물을 사냥하기도 한다.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백두산호랑이는 험준한 산악지역보다는 평지 내지 구릉지를 서식지로 선호한다. 다만 이렇게 평탄하고 낮은 지역은 대부분 사람에 의해 이미 개발되었기 때문에 산악지역으로 쫓겨 들어간 것이다. 참나무 또는 잣나무가 풍부한 숲에는 먹이동물인 사슴과 멧돼지가 많기 때문에 호랑이 역시 이런 활엽수림 또는 혼효림을 좋아한다. 또한 호랑이는 고양잇과 동물 중 물을 마다하지 않고 헤엄을 잘 치는 동물에 속한다. 한반도의 여러 섬에서도 호랑이가 뭍을 오가며 서식한 많은 예가 있다.
한반도에서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후, 호랑이와 한민족은 수천 년간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하였다고 생각된다. 호랑이를 제거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체계적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 건국 이후였다. 조선은 호환虎患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포호정책을 시행했으며, 그 결과 16세기 초까지 호랑이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하였고, 양란을 거치며 일시 증가하였으나 이후 조선 말기까지 낮은 서식 밀도를 유지하였다는 여러 증거가 존재한다.
한반도에서 호랑이의 명줄이 완전히 끊긴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일제는 해수구제정책, 즉 식민지 백성을 해로운 짐승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대적인 맹수 사냥에 나섰고, 결국 1920년대에 호랑이는 일부 북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 땅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다. 남한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호랑이가 잡힌 것은 1940년대였으며, 북한에서는 1987년 자강도에서 잡힌 수컷 호랑이가 마지막으로 포획된 호랑이였다.
조선과 일제가 호랑이 포획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단지 호환 예방의 목적만은 아니었다. 때로 호랑이 사냥은 군사훈련의 한 방식이기도 하였고, 값비싼 호피와 호랑이 뼈·고기 등 약재를 얻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전쟁 중이 아닌 시기, 출세하거나 돈을 벌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바로 호랑이 포획이었다. 일제가 한민족의 기를 제거하기 위해 호랑이를 절멸시켰다는 주장이 있으나 확인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한반도에서 호랑이 사냥을 일본 제국주의 이념 확산의 한 수단으로 활용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특징 및 의의

호랑이는 청동기시대에 그려진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부터 한민족의 문화에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신도四神圖를 비롯하여 민화와 그림·장식품·석상·속담·전설·설화 등에 빈번히 나타난다. 한국인은 수천 년 동안 호랑이와 함께 살아오면서 호랑이의 엄청난 파괴력을 두려워하고 또 부러워하였으며, 그 힘과 용맹을 사랑하였다. 호랑이는 영험한 동물로 대접받았으며, 산신령 또는 산군山君으로서 산신각에 모셔졌다. 최남선崔南善(1890~1957)은 우리나라만큼 호랑이 이야기가 많은 나라는 없다고 하여 호담국虎談國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반도에서 호랑이는 사라졌으나 그 역사·민속·언어·문화적 상징성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3/4 이상은 호랑이를 대한민국의 상징동물로 생각하고 있다. 호랑이는 서울올림픽대회(1988)와 평창 동계올림픽대회(2018)의 마스코트였다. 또한 도쿄올림픽대회(2020) 한국선수단의 캐치프레이즈는 〈범 내려온다〉였다. 이는 이날치밴드가 판소리를 현대적 팝으로 재해석하여 전 세계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은 퓨전 국악 〈범 내려온다〉에서 차용한 것이다.
모든 민속·문화적 상징성은 그 실물이 존재할 때 빛을 발한다. 일반적으로 백두산호랑이의 실체는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사라졌다고 백두산호랑이의 명맥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다. 북한·러시아·중국 접경지역 그리고 극동 러시아 지역에 아직도 약 500마리로 이루어진 백두산호랑이 개체군이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 당국은 이 호랑이와 표범 개체군을 보호하기 위해 북한과 인접한 접경지역에 광범위한 대규모 보호구역을 설치하고 적극적인 보전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지역의 호랑이 개체군은 중국 내륙 쪽으로 급속히 확장하고 있으며, 머지않은 장래에 북한 지역으로도 확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접경지역 호랑이 개체군이 살아 있는 한 미래 한반도에 호랑이가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국내에서도 북한·러시아·중국 접경지역 호랑이 보호와 확산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가 활동하고 있다.

참고문헌

정호기(山本唯三郞, 이은옥 역, 에이도스, 2014), 조선전기 포호정책 연구—농지개간의 관점에서(김동진, 선인, 2009),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遠藤公男, 이은옥 역, 이담북스, 2009), Mitochondrial Phylogeography Illuminates the Origin of the Extinct Caspian Tiger and Its Relationship to the Amur Tiger(Driscoll CA et al, PLoS one4, Public Library of Science, 2009), Subspecific Status of the Korean Tiger Inferred by Ancient DNA Analysis(Mu-Yeong Lee et al, Evolution and Diversity28-1, Animal Systematics,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