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私田)

사전

한자명

私田

사전위치

한국생업기술사전 > 농업

집필자 위은숙(魏恩淑)

정의

고려시대에 국가가 관직 복무, 직역 담당 등의 대가로 개인에게 분급한 토지.

내용

고려에서는 토지 지목을 공전公田과 사전私田으로 구분하였다. 공전이라는 용어는 통일신라 시기에도 보이지만, 사전은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한다. 『고려사高麗史』 권78 식화지食貨志 전제田制 서문에는 “고려의 토지제도는 대체로 당제唐制를 모방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중국 역사에서 토지 지목을 공전과 사전으로 구분한 것이 당대가 유일한 것을 보면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더라도 당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당에서는 국가가 개인에게 분급하는 토지가 사전이었다. 다만 고려와 당의 차이를 보면 당에서는 상속과 처분권이 주어진 관인 영업전과 일반 백성에게 지급된 영업전이나 구분전 등이 사전으로 분류되지만, 고려에서는 일반 백성에게는 토지를 분급하지 않고 일반 백성 소유의 토지인 민전을 3과 공전으로 분류하였다는 것이다.
사전에 해당하는 토지는 1023년(현종 14)에 마련된 제주현의창지법諸州縣義倉之法에 따라 크게 궁원전宮院田, 사원전寺院田, 양반전兩班田, 군인호정軍人戶丁, 기인호정其人戶丁 등으로 나뉜다.
우선 양반전은 전시과田柴科 규정에 따라 문무양반 관료가 관직에 복무하는 대가로 지급받은 토지이며 시지柴地도 지급되었다. 양반전은 관직을 그만두거나 사망 등으로 수급자의 봉공奉供이 끝나면 원칙적으로 국가에 반납하여야 한다. 한편 관직 복무의 대가로 지급된 양반전과는 별도로 지배층인 양반 신분 그 자체에 대한 우대의 특전으로 지급되는 공음전시功蔭田柴도 있었다. 공음전시는 자손에게 세습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아들이 죄를 범해도 손자에게 상속할 수 있었고 자식이 없을 경우 방계 자손에게 상속할 수 있을 정도로 세습성이 강한 토지였다. 양반전의 성격과 경영에 대해서는 민전의 수조권을 분급하였다는 설, 분급지를 각 지방 수령이 전호佃戶 혹은 전군佃軍을 동원하여 경작하게 하고 생산물의 2분의 1을 지급하였다는 설, 양반 개인의 토지에 대한 면조권을 부여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궁원전은 궁•원에 지급된 토지이다. 궁•원은 주로 왕태후를 비롯하여 왕후•궁주 등 왕의 비빈이나 왕족이 거주하던 곳을 의미하는데, 이들에 대한 예우로 지급된 토지로 왕족의 중요한 재정적 기반이 되었다. 궁원전도 다른 사전과 마찬가지로 세습이 허용되었는데 궁주나 원주가 죽으면 그 소생 자녀에게 분배•상속되었다.
사원전은 사원에게 지급된 토지이다. 불교는 고려 왕조의 통치에 있어 중요한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정책적 지원과 더불어 많은 토지가 시납되었다. 궁원전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액수는 알려지지 않는다.
군인호정은 군인전軍人田으로 경군京軍 소속의 군인에게 군역에 복무하는 대가로 국가가 지급한 토지이다. 군인전은 전정연립田丁連立의 원칙에 따라 군역의 세습과 함께 전해졌다. 기인호정은 향리전鄕吏田이라 할 수 있는데, 지방 통치에서 행정 실무를 담당하던 향리에게 직역 수행의 대가로 지급된 토지로 향리외역전鄕吏外役田이라고도 한다. 향리전은 군인전과 마찬가지로 전정연립의 원칙에 따라 직역을 계승한 자손에 의해 세습되었다.
이 외의 사전으로는 왕자나 왕손 등 종친과 왕실의 외척, 공신에게 지급한 식읍食邑, 외국인이 고려에 귀화하였을 때 지급한 투화전投化田, 과거에 합격한 자에게 지급한 등과전登科田, 현직 관료는 아니지만 동정직을 제수받아 실직에 임명되기까지 구체적인 직사가 없는 한인에게 지급한 한인전閑人田, 하급관료나 군인이 사망하였을 때 그 처와 미혼의 딸에게 지급하거나 연로한 퇴직군인에게 지급한 구분전口分田 등이 있다.

특징 및 의의

고려 왕조에서는 왕족에서부터 문무양반과 군인, 향리 그리고 사원에 이르기까지 왕조에 대한 복무와 직역의 대가로 국가가 사전을 분급하고 이들을 국가운영에 동원하여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고려시기토지제도연구(이경식, 지식산업사, 2012), 고려시대 토지개념에 대한 재검토(위은숙, 한국사연구124, 한국사연구회, 2004),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김재명, 한국사14, 국사편찬위원회, 1993), 고려토지제도사연구(강진철, 고려대학교출판부, 1980).

사전

사전
한자명

私田

사전위치

한국생업기술사전 > 농업

집필자 위은숙(魏恩淑)

정의

고려시대에 국가가 관직 복무, 직역 담당 등의 대가로 개인에게 분급한 토지.

내용

고려에서는 토지 지목을 공전公田과 사전私田으로 구분하였다. 공전이라는 용어는 통일신라 시기에도 보이지만, 사전은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한다. 『고려사高麗史』 권78 식화지食貨志 전제田制 서문에는 “고려의 토지제도는 대체로 당제唐制를 모방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중국 역사에서 토지 지목을 공전과 사전으로 구분한 것이 당대가 유일한 것을 보면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더라도 당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당에서는 국가가 개인에게 분급하는 토지가 사전이었다. 다만 고려와 당의 차이를 보면 당에서는 상속과 처분권이 주어진 관인 영업전과 일반 백성에게 지급된 영업전이나 구분전 등이 사전으로 분류되지만, 고려에서는 일반 백성에게는 토지를 분급하지 않고 일반 백성 소유의 토지인 민전을 3과 공전으로 분류하였다는 것이다.
사전에 해당하는 토지는 1023년(현종 14)에 마련된 제주현의창지법諸州縣義倉之法에 따라 크게 궁원전宮院田, 사원전寺院田, 양반전兩班田, 군인호정軍人戶丁, 기인호정其人戶丁 등으로 나뉜다.
우선 양반전은 전시과田柴科 규정에 따라 문무양반 관료가 관직에 복무하는 대가로 지급받은 토지이며 시지柴地도 지급되었다. 양반전은 관직을 그만두거나 사망 등으로 수급자의 봉공奉供이 끝나면 원칙적으로 국가에 반납하여야 한다. 한편 관직 복무의 대가로 지급된 양반전과는 별도로 지배층인 양반 신분 그 자체에 대한 우대의 특전으로 지급되는 공음전시功蔭田柴도 있었다. 공음전시는 자손에게 세습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아들이 죄를 범해도 손자에게 상속할 수 있었고 자식이 없을 경우 방계 자손에게 상속할 수 있을 정도로 세습성이 강한 토지였다. 양반전의 성격과 경영에 대해서는 민전의 수조권을 분급하였다는 설, 분급지를 각 지방 수령이 전호佃戶 혹은 전군佃軍을 동원하여 경작하게 하고 생산물의 2분의 1을 지급하였다는 설, 양반 개인의 토지에 대한 면조권을 부여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궁원전은 궁•원에 지급된 토지이다. 궁•원은 주로 왕태후를 비롯하여 왕후•궁주 등 왕의 비빈이나 왕족이 거주하던 곳을 의미하는데, 이들에 대한 예우로 지급된 토지로 왕족의 중요한 재정적 기반이 되었다. 궁원전도 다른 사전과 마찬가지로 세습이 허용되었는데 궁주나 원주가 죽으면 그 소생 자녀에게 분배•상속되었다.
사원전은 사원에게 지급된 토지이다. 불교는 고려 왕조의 통치에 있어 중요한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정책적 지원과 더불어 많은 토지가 시납되었다. 궁원전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액수는 알려지지 않는다.
군인호정은 군인전軍人田으로 경군京軍 소속의 군인에게 군역에 복무하는 대가로 국가가 지급한 토지이다. 군인전은 전정연립田丁連立의 원칙에 따라 군역의 세습과 함께 전해졌다. 기인호정은 향리전鄕吏田이라 할 수 있는데, 지방 통치에서 행정 실무를 담당하던 향리에게 직역 수행의 대가로 지급된 토지로 향리외역전鄕吏外役田이라고도 한다. 향리전은 군인전과 마찬가지로 전정연립의 원칙에 따라 직역을 계승한 자손에 의해 세습되었다.
이 외의 사전으로는 왕자나 왕손 등 종친과 왕실의 외척, 공신에게 지급한 식읍食邑, 외국인이 고려에 귀화하였을 때 지급한 투화전投化田, 과거에 합격한 자에게 지급한 등과전登科田, 현직 관료는 아니지만 동정직을 제수받아 실직에 임명되기까지 구체적인 직사가 없는 한인에게 지급한 한인전閑人田, 하급관료나 군인이 사망하였을 때 그 처와 미혼의 딸에게 지급하거나 연로한 퇴직군인에게 지급한 구분전口分田 등이 있다.

특징 및 의의

고려 왕조에서는 왕족에서부터 문무양반과 군인, 향리 그리고 사원에 이르기까지 왕조에 대한 복무와 직역의 대가로 국가가 사전을 분급하고 이들을 국가운영에 동원하여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고려시기토지제도연구(이경식, 지식산업사, 2012), 고려시대 토지개념에 대한 재검토(위은숙, 한국사연구124, 한국사연구회, 2004),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김재명, 한국사14, 국사편찬위원회, 1993), 고려토지제도사연구(강진철, 고려대학교출판부,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