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

권업모범장

한자명

勸業模範場

사전위치

한국생업기술사전 > 농업

집필자 우대형(禹大亨)

정의

일본식 농법을 국내에 이식·보급하기 위해 1906년 일제 통감부가 수원에 설치한 농사시험기관.

내용

개항 이후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던 일제가 조선농업개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러일전쟁 이후부터였다. 이때를 전후하여 토지 투자와 농사경영에 관심을 둔 일본인의 도래가 많아졌으며, 이에 따라 이민 안내 책자와 한국농업 보고서의 출간도 빈번해졌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한국에 대한 농업투자와 이민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평가하며 일본의 농법을 한국에 이식할 경우, 그리고 이를 위해 일본에 있는 농사시험장과 같은 농사시험연구기관을 한국에 설립할 경우 증산에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 농상무성은 1904년 12월 도쿄대학교 농학부 교수 등 일본 최고의 연구자들에게 한국 전역에 토지 및 농산에 관한 조사를 의뢰하였는데, 이들은 약 6개월에 걸쳐 진행된 조사를 토대로 일본 외무성과 당시 재정고문 메가타目賀田種太郞에게 농사모범장의 설치를 정식으로 요청하였다. 그리고 이에 따른 경비는 당시 재정 여건으로 보아 한국 정부가 마련하기 쉽지 않으며 또한 설립될 모범장은 기실 일본의 이익을 본위로 하기에 일본 정부가 그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하였다.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인 일본 정부는 창설비와 경상비를 마련하고 이토伊藤博文 통감을 통해 수원에 권업모범장을 짓겠다는 의사를 한국 정부에 전달하였다. 아울러 한국 정부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설립될 권업모범장은 통감부가 계속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듬해에 설비와 기사 모두 한국 정부에 양도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이러한 일본의 제안을 한국 정부가 수락함으로써 1906년 4월 ‘통감부 권업모범장관제’가 반포되고, 이에 근거하여 같은 해 6월 경기도 수원에 권업모범장이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종래의 원예모범장과 농사시험장 등 한국 정부에 의해 설립·운영되어 왔던 농업연구기관들은 모두 권업모범장 체제로 일원화되었다. 일본인 상인, 지주 및 농업 이민자들의 요구대로 일본의 주도하에 일본이 원하는 방식대로 그리고 일본의 재정으로 한국에서 설립되게 된 것이다.
권업모범장 관제에 따르면 권업모범장의 역할은 크게 ①조사와 시험 ②배부 ③지도 및 강습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이때 조사와 시험은 일본의 농사시험장과 같이 학술적인 연구의 시험이 아니라 일본에서 실험한 것으로 조선에 이식하는 데 필요한 적부適否 시험에 국한되었다. 실제 1910~1920년대 조선총독부에 의해 우랑품종으로 지정된 와세신리키早神力(조신력, 중부지방), 고쿠료미야코穀良都(곡량도, 남부지방) 히노데日ノ出(일출 북부지방) 등은 모두 원산지가 일본인 품종들이다. 일제가 자국의 농업시험기관인 농사시험장이라는 이름 대신 굳이 권업모범장이라고 명명한 것은 그 역할을 일본 품종의 이식과 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적부시험에만 국한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여기에는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 일본에 이미 다수확 품종이 존재하는 마당에 굳이 조선의 풍토에 적합한 품종을 돈을 들여 새로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도 깔려 있었다.

특징 및 의의

그러나 1920년대 중반 이후 일제는 일본 품종의 이식만으로는 더 이상의 증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1929년 9월 권업모범장을 농사시험장으로 확대 개편하였다. 일본 농법의 모범을 보여 준다는 의미로 창설된 권업모범장은 그 사명을 다하고 이제 육종연구 중심의 명실상부한 농업연구기관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농사시험장 시절 인공교합에 의해 탄생한 품종이 호교쿠豊玉(풍옥)・즈이코瑞光(서광)・에이코榮光(영광)・니신日進(일진) 등이었는데, 이들 품종은 패망 직전에 개발되어 실험실에서 잠자고 있다가 1950~1960년대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비로소 장려품종으로 지정되어 1970년대 통일벼가 도입되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주력 품종으로 활용되었다.

참고문헌

근대 지역농업사 연구(주봉규·소순열,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일제의 농업기술 기구와 식민지 농업지배(김도형, 국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 일제하 조선에서의 미곡기술정책의 전개(우대형, 한국근현대사연구38, 한국근현대사학회, 2006).

권업모범장

권업모범장
한자명

勸業模範場

사전위치

한국생업기술사전 > 농업

집필자 우대형(禹大亨)

정의

일본식 농법을 국내에 이식·보급하기 위해 1906년 일제 통감부가 수원에 설치한 농사시험기관.

내용

개항 이후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던 일제가 조선의 농업개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러일전쟁 이후부터였다. 이때를 전후하여 토지 투자와 농사경영에 관심을 둔 일본인의 도래가 많아졌으며, 이에 따라 이민 안내 책자와 한국농업 보고서의 출간도 빈번해졌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한국에 대한 농업투자와 이민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평가하며 일본의 농법을 한국에 이식할 경우, 그리고 이를 위해 일본에 있는 농사시험장과 같은 농사시험연구기관을 한국에 설립할 경우 증산에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 농상무성은 1904년 12월 도쿄대학교 농학부 교수 등 일본 최고의 연구자들에게 한국 전역에 토지 및 농산에 관한 조사를 의뢰하였는데, 이들은 약 6개월에 걸쳐 진행된 조사를 토대로 일본 외무성과 당시 재정고문 메가타目賀田種太郞에게 농사모범장의 설치를 정식으로 요청하였다. 그리고 이에 따른 경비는 당시 재정 여건으로 보아 한국 정부가 마련하기 쉽지 않으며 또한 설립될 모범장은 기실 일본의 이익을 본위로 하기에 일본 정부가 그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하였다.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인 일본 정부는 창설비와 경상비를 마련하고 이토伊藤博文 통감을 통해 수원에 권업모범장을 짓겠다는 의사를 한국 정부에 전달하였다. 아울러 한국 정부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설립될 권업모범장은 통감부가 계속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듬해에 설비와 기사 모두 한국 정부에 양도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이러한 일본의 제안을 한국 정부가 수락함으로써 1906년 4월 ‘통감부 권업모범장관제’가 반포되고, 이에 근거하여 같은 해 6월 경기도 수원에 권업모범장이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종래의 원예모범장과 농사시험장 등 한국 정부에 의해 설립·운영되어 왔던 농업연구기관들은 모두 권업모범장 체제로 일원화되었다. 일본인 상인, 지주 및 농업 이민자들의 요구대로 일본의 주도하에 일본이 원하는 방식대로 그리고 일본의 재정으로 한국에서 설립되게 된 것이다.
권업모범장 관제에 따르면 권업모범장의 역할은 크게 ①조사와 시험 ②배부 ③지도 및 강습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이때 조사와 시험은 일본의 농사시험장과 같이 학술적인 연구의 시험이 아니라 일본에서 실험한 것으로 조선에 이식하는 데 필요한 적부適否 시험에 국한되었다. 실제 1910~1920년대 조선총독부에 의해 우랑품종으로 지정된 와세신리키早神力(조신력, 중부지방), 고쿠료미야코穀良都(곡량도, 남부지방) 히노데日ノ出(일출 북부지방) 등은 모두 원산지가 일본인 품종들이다. 일제가 자국의 농업시험기관인 농사시험장이라는 이름 대신 굳이 권업모범장이라고 명명한 것은 그 역할을 일본 품종의 이식과 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적부시험에만 국한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여기에는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 일본에 이미 다수확 품종이 존재하는 마당에 굳이 조선의 풍토에 적합한 품종을 돈을 들여 새로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도 깔려 있었다.

특징 및 의의

그러나 1920년대 중반 이후 일제는 일본 품종의 이식만으로는 더 이상의 증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1929년 9월 권업모범장을 농사시험장으로 확대 개편하였다. 일본 농법의 모범을 보여 준다는 의미로 창설된 권업모범장은 그 사명을 다하고 이제 육종연구 중심의 명실상부한 농업연구기관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농사시험장 시절 인공교합에 의해 탄생한 품종이 호교쿠豊玉(풍옥)・즈이코瑞光(서광)・에이코榮光(영광)・니신日進(일진) 등이었는데, 이들 품종은 패망 직전에 개발되어 실험실에서 잠자고 있다가 1950~1960년대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비로소 장려품종으로 지정되어 1970년대 통일벼가 도입되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주력 품종으로 활용되었다.

참고문헌

근대 지역농업사 연구(주봉규·소순열,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일제의 농업기술 기구와 식민지 농업지배(김도형, 국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 일제하 조선에서의 미곡기술정책의 전개(우대형, 한국근현대사연구38, 한국근현대사학회,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