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窓戶)

한자명

窓戶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이연노(李演魯)

정의

온갖 창과 문을 통틀어 이르는 말.

개관

창窓은 실室의 일조나 환기를 위한 개구부를 말하며, 호戶는 실의 출입을 위한 개구부를 말한다. 각각 전혀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설이다. 인류의 건축 역사는 커다란 개구부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건축은 오래전부터 돌을 쌓아 건물을 만드는 조적식 구조를 채택하였다. 돌을 쌓는 과정에 커다란 개구부를 만들려면 상부 돌의 무게를 지탱할 거대한 인방을 설치하여야 한다. 이런 까닭에 조적식 구조는 커다란 개구부를 만들기가 무척 어려운 구조였다. 개구부의 크기와 숫자가 한정되다 보니 실내는 항상 어둡기 마련이었다. 새로운 건축 방법과 스테인드글라스가 개발된 고딕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커다란 개구부를 낼 수 있었다.

이에 비하여 동양은 아주 오래전부터 목조가구식 구조를 채택하였다. 가구식의 장점은 외기에 접한 모든 면을 개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호를 전혀 설치하지 않는 누정건축이 아주 오래전부터 유행하였다. 개구부 설치가 서양보다 훨씬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조상 모든 면을 개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개방된 형식으로 창호를 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선시대에 지어진 많은 건물들은 창과 호의 구별이 어렵다. 또 창과 호를 만드는 방법에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창과 호는 따로 구분하지 않고 창호라는 이름으로 통칭해 왔다.

내용

인류가 고안한 최초의 창호는 판문 형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개의 나무판을 늘어놓고 띠장을 덧댄 다음 못을 박아 만든 창호이다. 차가운 외기로부터 실내를 보호하기 위하여 판문보다 더 유용한 창호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판문은 빛이 전혀 투과되지 않는다. 판문으로 문과 창을 막아 대면 실내공간은 암흑으로 변한다. 창호를 열 수 없는 겨울이라면 하루 종일 호롱불과 같은 조명을 밝혀야만 실내에서 생활할 수 있다. 현존하는 동양의 고대 건축물은 대부분 창호로 판문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건축물 가운데 출입하는 문을 판문으로 만든 사례는 영주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 배면과 영천 은해사銀海寺 거조암居祖庵 영산전靈 山殿을 들 수 있다. 거조암 영산전은 출입문을 이중으로 설치하였다. 안쪽 문이 판문으로 되어 있다. 창에 판문을 사용한 사례로는 부석사 조사당과 무량수전 배면이 있다. 두 건물 모두 바깥에는 열리지 않는 살창을 설치한 다음 안쪽에 판문을 달아 여닫았다. 거조암 영산전은 현재 창에 살창만 설치되어 있지만 원래는 내부에 판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창과 문에 육중한 판문을 달아 폐쇄된 공간을 형성하던 것에서 큰 변화가 일었다. 틀을 짜고 내부에 살대를 촘촘히 끼워 넣은 창호가 개발된 것이다. 창호의 안쪽이나 바깥쪽에는 종이를 발라 추위에 견딜 수 있게 하였다. 이 창호는 나무판으로 만든 것보다 훨씬 가벼워졌고, 빛이 투과돼 실내공간을 밝게 할 수 있었다. 다만 살대가 부러지기 쉬워 설치할 수 있는 장소가 한정되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좌식 생활이 정착된 고려 중기쯤에는 이런 창호가 널리 사용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고려 중기를 기점으로 사람들의 생활이 입식에서 좌식으로 변화하였다. 기존에는 서서 생활하였지만 이제부터는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너무나 단순해 보이지만 생활공간인 건축물은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겪어야만 하였다. 바닥 높이와 재질, 천장 높이, 난방 방법, 사용하는 가구 높이 등 모든 것이 변화되었다. 창호 역시 큰 변화가 불가피하였다. 부석사 조사당에 설치된 살창과 판문은 서거나 의자에 앉아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 창이었다. 이 창은 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사람에게 무용지물이었다. 바깥을 내다볼 수도 없으며 햇빛이 바닥에까지 도달하지도 않았다. 창의 높이가 현저하게 낮아져야 하였고, 결국 사람이 통과하는 문과 유사한 높이가 되었다. 그렇더라도 창과 문의 구분은 필요하였다. 실내에 가구도 놓아야 하고, 창을 여닫을 때 누운 사람과 부딪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 하단에는 낮은 높이의 칸막이인 머름[遠音]을 덧달아서 창과 문을 구분하였다.

고려시대의 창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는 아산의 맹씨행단孟氏杏壇과 부석사 무량수전을 들 수 있다. 맹씨행단은 조선 초기 명재상인 맹사성孟思誠(1360~1438)의 주택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에 두 칸의 대청을 두었다. 전면에는 칸마다 세 짝의 만살[滿箭] 창호를 설치하였다. 이 가운데 좌측 칸 중앙에 놓인 창호만 하단에 머름을 두지 않았다. 또 좌측칸 중앙의 창호만 여닫이로 하고 다른 창호는 모두 들어열개로 되어 있다. 즉 이 창호만 문으로 설치하였고 나머지 다섯 짝의 창호는 모두 창으로 설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정면 창호는 칸마다 네 짝으로 구성하였다. 중앙 두 짝은 여닫이로 만들었고, 좌우측 창호는 들어열개로 만들었다. 역시 좌우측 창호 하단에는 머름을 두었다. 이와 같이 하나의 칸을 구성하는 데 문과 창을 동시에 설치하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이다. 대부분 하나의 칸에 설치하는 창호는 창과 문의 구별을 명확히 하였다. 하단에 머름을 두고 있으면 창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머름이 없는 경우는 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창호는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필요에 따라 설치하는 위치와 형태가 너무나 다양하다. 이런 까닭에 창호의 개폐 방식에 따라, 구성에 따라, 형태에 따라, 설치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명칭으로 불리었다. 몇 짝으로 창호를 구성하는지에 따라 독창獨窓, 쌍창雙窓, 분합分閤으로 나뉘었다. 또 창호를 어떻게 여닫는지에 따라 붙박이, 여닫이, 미닫이, 미서기, 벼락닫이, 들어열개, 안고지기[按具支只] 등으로 나뉜다. 붙박이는 창호가 열리지 않는 고정된 창호를 말한다. 세로나 빗방향으로 살대만을 설치한 살창과 교창이 붙박이에 해당한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이다. 칸마다 정면과 배면에 상하로 두 짝씩 살창을 설치하였다. 배면에 설치한 살창은 위쪽 살창이 아래보다 크고, 정면에 설치한 살창은 아래쪽의 살창이 위보다 크게 만들어졌다. 장경판전 뒤쪽 산에서 불어오는 높새바람이 건물 내부로 들어와 제대로 순환해서 경판을 오래도록 보관하기 위함이었다. 안고지기는 미닫이와 여닫이가 일체화된 창호를 말한다. 현재 논산의 명재고택 사랑채에서만 볼 수 있는 창호이다. 세 짝의 창호로 만들어졌다. 가운데 창호를 좌측으로 밀어 두 개의 창호를 일체화한 다음 이것을 밖으로 여닫는 방법이다. 궁궐에서 많이 사용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경운궁 함녕전 남쪽 행각에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창호를 어떤 형태의 재료로 만들었는지에 따라 널판창과 살대창으로 구분한다. 몇 장의 나무판을 이어서 만든 창호를 판문이라고 한다. 판문 가운데에는 나무판 주위에 울거미(테두리)를 둘러 고급스럽게 만든 창호가 있다. 이것을 울판문[亐里板門] 또는 당판문唐板門이라고 한다. 창호를 가볍게 하기 위하여 나무판 대신 살대를 사용한 창호가 널리 사용되었다. 각 살대를 어떻게 기하학 형태로 만들었는지에 따라 무수히 많은 이름이 붙여졌다. 문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살대의 명칭은 만살과 세살[細箭]이다. 만살창호는 바둑판 모양으로 가로와 세로에 살대를 가득 설치한 창호이다. 살대로 만든 창호 가운데에서 내구성이 가장 뛰어나다. 세살창호는 세로의 경우 만살창호와 유사하지만 중간중간에 가로로 놓이는 살대를 생략해서 만든다. 경제성과 내구성이 모두 뛰어나기 때문에 궁궐을 비롯하여 민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건축물에서 널리 사용하였다. 이 외에 완자完字살, 만자卍字살 등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또 한자 형태에 따라 용用자살과 아亞자살, 살대 방향에 따라 빗살과 소슬빗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징 및 의의

창호는 건축물의 외관을 최종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아무리 똑같은 형태의 건물이라 하더라도 개인별로 선호하는 동선, 밝기, 주변 환경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쳐 각기 다른 형태의 창호를 설치하기 마련이다. 동양건축에서 건물을 구성하는 구조체는 나라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목조가구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목조가구식은 모든 면에 창호를 설치해서 개방할 수 있는 구조이다. 하지만 나라마다, 시대 상황에 따라, 주변 환경에 따라 개방하는 정도는 천차만별이었다. 그 결과 각 나라의 건물은 외관에서 전혀 다른 독특한 모습을 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김왕직, 동녘, 2007), 영건의궤(영건의궤연구회, 동녘, 2010), 지혜로 지은 집 한국건축(김도경, 현암사, 2011), 한국의 문과 창호(주남철, 대원사, 2001),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경기문화재단, 2007).

창호

창호
한자명

窓戶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이연노(李演魯)

정의

온갖 창과 문을 통틀어 이르는 말.

개관

창窓은 실室의 일조나 환기를 위한 개구부를 말하며, 호戶는 실의 출입을 위한 개구부를 말한다. 각각 전혀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설이다. 인류의 건축 역사는 커다란 개구부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건축은 오래전부터 돌을 쌓아 건물을 만드는 조적식 구조를 채택하였다. 돌을 쌓는 과정에 커다란 개구부를 만들려면 상부 돌의 무게를 지탱할 거대한 인방을 설치하여야 한다. 이런 까닭에 조적식 구조는 커다란 개구부를 만들기가 무척 어려운 구조였다. 개구부의 크기와 숫자가 한정되다 보니 실내는 항상 어둡기 마련이었다. 새로운 건축 방법과 스테인드글라스가 개발된 고딕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커다란 개구부를 낼 수 있었다.

이에 비하여 동양은 아주 오래전부터 목조가구식 구조를 채택하였다. 가구식의 장점은 외기에 접한 모든 면을 개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호를 전혀 설치하지 않는 누정건축이 아주 오래전부터 유행하였다. 개구부 설치가 서양보다 훨씬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조상 모든 면을 개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개방된 형식으로 창호를 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선시대에 지어진 많은 건물들은 창과 호의 구별이 어렵다. 또 창과 호를 만드는 방법에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창과 호는 따로 구분하지 않고 창호라는 이름으로 통칭해 왔다.

내용

인류가 고안한 최초의 창호는 판문 형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개의 나무판을 늘어놓고 띠장을 덧댄 다음 못을 박아 만든 창호이다. 차가운 외기로부터 실내를 보호하기 위하여 판문보다 더 유용한 창호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판문은 빛이 전혀 투과되지 않는다. 판문으로 문과 창을 막아 대면 실내공간은 암흑으로 변한다. 창호를 열 수 없는 겨울이라면 하루 종일 호롱불과 같은 조명을 밝혀야만 실내에서 생활할 수 있다. 현존하는 동양의 고대 건축물은 대부분 창호로 판문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건축물 가운데 출입하는 문을 판문으로 만든 사례는 영주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 배면과 영천 은해사銀海寺 거조암居祖庵 영산전靈 山殿을 들 수 있다. 거조암 영산전은 출입문을 이중으로 설치하였다. 안쪽 문이 판문으로 되어 있다. 창에 판문을 사용한 사례로는 부석사 조사당과 무량수전 배면이 있다. 두 건물 모두 바깥에는 열리지 않는 살창을 설치한 다음 안쪽에 판문을 달아 여닫았다. 거조암 영산전은 현재 창에 살창만 설치되어 있지만 원래는 내부에 판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창과 문에 육중한 판문을 달아 폐쇄된 공간을 형성하던 것에서 큰 변화가 일었다. 틀을 짜고 내부에 살대를 촘촘히 끼워 넣은 창호가 개발된 것이다. 창호의 안쪽이나 바깥쪽에는 종이를 발라 추위에 견딜 수 있게 하였다. 이 창호는 나무판으로 만든 것보다 훨씬 가벼워졌고, 빛이 투과돼 실내공간을 밝게 할 수 있었다. 다만 살대가 부러지기 쉬워 설치할 수 있는 장소가 한정되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좌식 생활이 정착된 고려 중기쯤에는 이런 창호가 널리 사용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고려 중기를 기점으로 사람들의 생활이 입식에서 좌식으로 변화하였다. 기존에는 서서 생활하였지만 이제부터는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너무나 단순해 보이지만 생활공간인 건축물은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겪어야만 하였다. 바닥 높이와 재질, 천장 높이, 난방 방법, 사용하는 가구 높이 등 모든 것이 변화되었다. 창호 역시 큰 변화가 불가피하였다. 부석사 조사당에 설치된 살창과 판문은 서거나 의자에 앉아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 창이었다. 이 창은 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사람에게 무용지물이었다. 바깥을 내다볼 수도 없으며 햇빛이 바닥에까지 도달하지도 않았다. 창의 높이가 현저하게 낮아져야 하였고, 결국 사람이 통과하는 문과 유사한 높이가 되었다. 그렇더라도 창과 문의 구분은 필요하였다. 실내에 가구도 놓아야 하고, 창을 여닫을 때 누운 사람과 부딪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 하단에는 낮은 높이의 칸막이인 머름[遠音]을 덧달아서 창과 문을 구분하였다.

고려시대의 창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는 아산의 맹씨행단孟氏杏壇과 부석사 무량수전을 들 수 있다. 맹씨행단은 조선 초기 명재상인 맹사성孟思誠(1360~1438)의 주택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에 두 칸의 대청을 두었다. 전면에는 칸마다 세 짝의 만살[滿箭] 창호를 설치하였다. 이 가운데 좌측 칸 중앙에 놓인 창호만 하단에 머름을 두지 않았다. 또 좌측칸 중앙의 창호만 여닫이로 하고 다른 창호는 모두 들어열개로 되어 있다. 즉 이 창호만 문으로 설치하였고 나머지 다섯 짝의 창호는 모두 창으로 설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정면 창호는 칸마다 네 짝으로 구성하였다. 중앙 두 짝은 여닫이로 만들었고, 좌우측 창호는 들어열개로 만들었다. 역시 좌우측 창호 하단에는 머름을 두었다. 이와 같이 하나의 칸을 구성하는 데 문과 창을 동시에 설치하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이다. 대부분 하나의 칸에 설치하는 창호는 창과 문의 구별을 명확히 하였다. 하단에 머름을 두고 있으면 창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머름이 없는 경우는 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창호는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필요에 따라 설치하는 위치와 형태가 너무나 다양하다. 이런 까닭에 창호의 개폐 방식에 따라, 구성에 따라, 형태에 따라, 설치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명칭으로 불리었다. 몇 짝으로 창호를 구성하는지에 따라 독창獨窓, 쌍창雙窓, 분합分閤으로 나뉘었다. 또 창호를 어떻게 여닫는지에 따라 붙박이, 여닫이, 미닫이, 미서기, 벼락닫이, 들어열개, 안고지기[按具支只] 등으로 나뉜다. 붙박이는 창호가 열리지 않는 고정된 창호를 말한다. 세로나 빗방향으로 살대만을 설치한 살창과 교창이 붙박이에 해당한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이다. 칸마다 정면과 배면에 상하로 두 짝씩 살창을 설치하였다. 배면에 설치한 살창은 위쪽 살창이 아래보다 크고, 정면에 설치한 살창은 아래쪽의 살창이 위보다 크게 만들어졌다. 장경판전 뒤쪽 산에서 불어오는 높새바람이 건물 내부로 들어와 제대로 순환해서 경판을 오래도록 보관하기 위함이었다. 안고지기는 미닫이와 여닫이가 일체화된 창호를 말한다. 현재 논산의 명재고택 사랑채에서만 볼 수 있는 창호이다. 세 짝의 창호로 만들어졌다. 가운데 창호를 좌측으로 밀어 두 개의 창호를 일체화한 다음 이것을 밖으로 여닫는 방법이다. 궁궐에서 많이 사용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경운궁 함녕전 남쪽 행각에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창호를 어떤 형태의 재료로 만들었는지에 따라 널판창과 살대창으로 구분한다. 몇 장의 나무판을 이어서 만든 창호를 판문이라고 한다. 판문 가운데에는 나무판 주위에 울거미(테두리)를 둘러 고급스럽게 만든 창호가 있다. 이것을 울판문[亐里板門] 또는 당판문唐板門이라고 한다. 창호를 가볍게 하기 위하여 나무판 대신 살대를 사용한 창호가 널리 사용되었다. 각 살대를 어떻게 기하학 형태로 만들었는지에 따라 무수히 많은 이름이 붙여졌다. 문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살대의 명칭은 만살과 세살[細箭]이다. 만살창호는 바둑판 모양으로 가로와 세로에 살대를 가득 설치한 창호이다. 살대로 만든 창호 가운데에서 내구성이 가장 뛰어나다. 세살창호는 세로의 경우 만살창호와 유사하지만 중간중간에 가로로 놓이는 살대를 생략해서 만든다. 경제성과 내구성이 모두 뛰어나기 때문에 궁궐을 비롯하여 민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건축물에서 널리 사용하였다. 이 외에 완자完字살, 만자卍字살 등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또 한자 형태에 따라 용用자살과 아亞자살, 살대 방향에 따라 빗살과 소슬빗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징 및 의의

창호는 건축물의 외관을 최종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아무리 똑같은 형태의 건물이라 하더라도 개인별로 선호하는 동선, 밝기, 주변 환경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쳐 각기 다른 형태의 창호를 설치하기 마련이다. 동양건축에서 건물을 구성하는 구조체는 나라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목조가구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목조가구식은 모든 면에 창호를 설치해서 개방할 수 있는 구조이다. 하지만 나라마다, 시대 상황에 따라, 주변 환경에 따라 개방하는 정도는 천차만별이었다. 그 결과 각 나라의 건물은 외관에서 전혀 다른 독특한 모습을 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김왕직, 동녘, 2007), 영건의궤(영건의궤연구회, 동녘, 2010), 지혜로 지은 집 한국건축(김도경, 현암사, 2011), 한국의 문과 창호(주남철, 대원사, 2001),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경기문화재단,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