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배영동(裵永東)

정의

사람들이 생활하는 살림집에서 밥을 짓는 부엌에 붙어 있는 넓은 방으로, 집안 살림을 하는 주부가 주로 사용하는 방.

내용

안방이란 말은 유교의 내외윤리가 일반화되자 살림채에서 방의 용도가 변화되면서 등장하였다. 실제로 안방의 건축구조적 위치는 밥을 짓는 부엌에 붙어 있다. 규모가 큰 사대부 주택이든 소규모 서민주택이든 안방은 부엌에 연결되어 있는 넓은 방이었다. 자연히 안방의 주 사용자는 부엌에서 조리, 음식 배분, 상차림, 설거지 등을 책임지는 주부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으로 남아 있는 충청남도 아산의 맹씨행단孟氏杏壇은 본래 고려 말 최영崔瑩 장군의 집을 조선 초에 손녀사위 맹사성孟思誠에게 물려준 집으로, 안채사랑채의 구분이 없다. 16세기 건물로 알려진 경상북도 안동의 하회마을 풍산류씨豊山柳氏 대종택인 양진당養眞堂의 경우 사랑채가 안채보다 후대에 축조된 흔적이 역력하다. 이로 미루어 살림채에서 사랑채가 분화되기 시작한 초기의 건물로 판단된다. 안동에 있는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 종택인 금역당琴易堂은 1558년에 지어진 것으로, 18세기 전기의 건축 평면도가 전해지고 있다. 「금역당 구가도舊家圖」라는 평면도를 보면 ‘주廚’와 ‘조竈’에 연접한 곳에 ‘내방이간內房二間’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내방은 오늘날의 안방에 해당하며, 당시에도 평소에는 우리말로 ‘안방’이라고 불렀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인의 살림집에서 안방은 용도가 가장 다양한 공간이었다. 취침, 식사, 여성 손님맞이, 단란, 출산, 육아, 바느질, 베짜기, 다림질, 다듬이질, 메주 띄우기, 나물 다듬기, 콩나물 기르기, 떡 만들기, 음식 만들기 등 집안의 여러 가지 일을 안방에서 하였다. 그러므로 안방은 다른 방에 비하여 비중이 큰 방이었고, 쓰임이 다양해서 여러 가지 기물이 안방에 있었다. 게다가 전통사회에서는 가족 규모가 지금보다 커서 주부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려면 안방이 다른 방보다 넓어야 했다.

전통사회의 안방은 땔감으로 난방을 하는 온돌방이었다. 방바닥은 부엌에서 땐 불기운이 강한 아랫목과 불기운이 약한 윗목으로 나뉘었다. 추운 계절에는 안방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연장자와 같이 서열이 높은 사람은 아랫목에 앉고 서열이 낮은 사람은 윗목에 앉았다. 겨울철 안방 아랫목에는 보온할 필요가 있는 메주, 숙성 중인 막걸리, 밥주발 등과 같은 음식이나 물품을 두고 이불을 덮어 두는 일이 잦았다. 겨울에는 추위를 타지 않도록 콩나물시루도 아랫목에 설치하여 콩나물을 길렀다. 추위가 심할 때는 안방에 화로를 피워 된장뚝배기 같은 음식을 데워 먹기도 하고 밤이나 고구마 등을 구워 먹기도 하였다.

전통적으로 상류층의 안방에는 장과 농을 두고 거기에 옷을 보관하였다. 서민가의 안방에는 옷을 바구니에 담아 시렁 위에 올려 두는 예가 많았다. 또한 옷을 횃대에 많이 걸고 그 위에 횃대보를 덮어 정리하곤 하였다.

안방 한쪽 높은 곳에는 삼신이라는 가신家神을 모셨고, 이따금 삼신을 위한 의례를 행하였다. 안방은 산실로도 사용되었다. 육아를 하는 방이었기 때문이다. 삼신은 아기를 점지해 주고, 순산하도록 도우며, 10세 무렵까지 잘 자라도록 돌보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할머니가 삼신에게 감사의 뜻으로 상을 차려서 비손을 하고 무병장수를 빌었다. 주부들은 해마다 일정한 날 혹은 아기가 아픈 날에 삼신상을 차려 놓고 아기가 잘 자라도록 빌었다.

오늘날 안방은 전통 안방의 다양한 기능 가운데 일부만 수행하고 있다. 가구원 수가 감소한 이유도 크지만 서양식의 거실[living room]이 가족을 위한 공간이자 접빈 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안방 기능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안방의 용도가 크게 달라졌음에도 여전히 안방이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제 안방은 주부의 방이 아니라 부부의 방이 되었다.

특징 및 의의

안방은 사랑방에 상대되는 개념이다. 조선 중기에 유교의 종법宗法과 내외윤리가 중시되면서 안채로부터 사랑채가 분화되었다. 사랑채가 분화되기 전에는 살림채에서 가장 넓은 방이 난방과 취사를 겸하는 부엌에 붙어 있었다. 이를 ‘큰방’으로 불렀다. 안채에서 사랑채가 분화된 후로는 큰방을 차츰 ‘안방’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큰방이라는 말과 안방이라는 말이 혼용되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사랑채가 없던 시대에는 살림채에서 핵심이 되는 공간이 취사와 난방을 겸하는 부엌과 그에 접한 안방이었다. 부엌에서 불을 때 밥을 짓는 일은 주부의 몫이었으므로 안방은 자연히 그 집에서 주부권主婦權을 행사하는 여성의 방이었다. 주부가 며느리를 맞은 후 일정 기간이 지나서 며느리가 가풍을 익히고 나면 ‘안방물림’이라 하여 안방을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아랫방 혹은 상방으로 물러나서 지냈다.

안방은 정말 다용도로 이용되었다. 어린아이들도 안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기거하였으므로 다른 방보다 면적이 넓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안방은 가족생활의 기본 공간이면서 주부 중심 방이었고 여러 가족이 모일 수 있는 회합 공간이기도 하였다. 현대에 와서 서양식 단독주택아파트에도 안방이 있지만 그 기능이 종전보다 대폭 축소되어 부부의 방으로 자리 잡았다. ‘부부유별’의 규범이 주거공간에서 사라지면서 안방은 ‘부부공동’ 공간이 되었다.

참고문헌

민속학으로 읽는 민가 주거문화의 전통(배영동, 건축54-3, 대한건축학회, 2010), 유교이념의 실천공간으로서 주거(배영동, 유교민속의 연구시각, 한국국학진흥원, 2006), 종가의 사당을 통해본 조상관(배영동, 한국민속학39, 한국민속학회, 2004), 주거공간 이용과 집 다스리기의 전통(배영동, 비교민속학26, 비교민속학회, 2004), 흥해배씨 종가 금역당의 건축과 조선후기의 구조 변화(이종서, 건축역사연구25-4, 한국건축역사학회, 2016).

안방

안방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배영동(裵永東)

정의

사람들이 생활하는 살림집에서 밥을 짓는 부엌에 붙어 있는 넓은 방으로, 집안 살림을 하는 주부가 주로 사용하는 방.

내용

안방이란 말은 유교의 내외윤리가 일반화되자 살림채에서 방의 용도가 변화되면서 등장하였다. 실제로 안방의 건축구조적 위치는 밥을 짓는 부엌에 붙어 있다. 규모가 큰 사대부 주택이든 소규모 서민주택이든 안방은 부엌에 연결되어 있는 넓은 방이었다. 자연히 안방의 주 사용자는 부엌에서 조리, 음식 배분, 상차림, 설거지 등을 책임지는 주부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으로 남아 있는 충청남도 아산의 맹씨행단孟氏杏壇은 본래 고려 말 최영崔瑩 장군의 집을 조선 초에 손녀사위 맹사성孟思誠에게 물려준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의 구분이 없다. 16세기 건물로 알려진 경상북도 안동의 하회마을 풍산류씨豊山柳氏 대종택인 양진당養眞堂의 경우 사랑채가 안채보다 후대에 축조된 흔적이 역력하다. 이로 미루어 살림채에서 사랑채가 분화되기 시작한 초기의 건물로 판단된다. 안동에 있는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 종택인 금역당琴易堂은 1558년에 지어진 것으로, 18세기 전기의 건축 평면도가 전해지고 있다. 「금역당 구가도舊家圖」라는 평면도를 보면 ‘주廚’와 ‘조竈’에 연접한 곳에 ‘내방이간內房二間’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내방은 오늘날의 안방에 해당하며, 당시에도 평소에는 우리말로 ‘안방’이라고 불렀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인의 살림집에서 안방은 용도가 가장 다양한 공간이었다. 취침, 식사, 여성 손님맞이, 단란, 출산, 육아, 바느질, 베짜기, 다림질, 다듬이질, 메주 띄우기, 나물 다듬기, 콩나물 기르기, 떡 만들기, 음식 만들기 등 집안의 여러 가지 일을 안방에서 하였다. 그러므로 안방은 다른 방에 비하여 비중이 큰 방이었고, 쓰임이 다양해서 여러 가지 기물이 안방에 있었다. 게다가 전통사회에서는 가족 규모가 지금보다 커서 주부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려면 안방이 다른 방보다 넓어야 했다.

전통사회의 안방은 땔감으로 난방을 하는 온돌방이었다. 방바닥은 부엌에서 땐 불기운이 강한 아랫목과 불기운이 약한 윗목으로 나뉘었다. 추운 계절에는 안방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연장자와 같이 서열이 높은 사람은 아랫목에 앉고 서열이 낮은 사람은 윗목에 앉았다. 겨울철 안방 아랫목에는 보온할 필요가 있는 메주, 숙성 중인 막걸리, 밥주발 등과 같은 음식이나 물품을 두고 이불을 덮어 두는 일이 잦았다. 겨울에는 추위를 타지 않도록 콩나물시루도 아랫목에 설치하여 콩나물을 길렀다. 추위가 심할 때는 안방에 화로를 피워 된장뚝배기 같은 음식을 데워 먹기도 하고 밤이나 고구마 등을 구워 먹기도 하였다.

전통적으로 상류층의 안방에는 장과 농을 두고 거기에 옷을 보관하였다. 서민가의 안방에는 옷을 바구니에 담아 시렁 위에 올려 두는 예가 많았다. 또한 옷을 횃대에 많이 걸고 그 위에 횃대보를 덮어 정리하곤 하였다.

안방 한쪽 높은 곳에는 삼신이라는 가신家神을 모셨고, 이따금 삼신을 위한 의례를 행하였다. 안방은 산실로도 사용되었다. 육아를 하는 방이었기 때문이다. 삼신은 아기를 점지해 주고, 순산하도록 도우며, 10세 무렵까지 잘 자라도록 돌보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할머니가 삼신에게 감사의 뜻으로 상을 차려서 비손을 하고 무병장수를 빌었다. 주부들은 해마다 일정한 날 혹은 아기가 아픈 날에 삼신상을 차려 놓고 아기가 잘 자라도록 빌었다.

오늘날 안방은 전통 안방의 다양한 기능 가운데 일부만 수행하고 있다. 가구원 수가 감소한 이유도 크지만 서양식의 거실[living room]이 가족을 위한 공간이자 접빈 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안방 기능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안방의 용도가 크게 달라졌음에도 여전히 안방이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제 안방은 주부의 방이 아니라 부부의 방이 되었다.

특징 및 의의

안방은 사랑방에 상대되는 개념이다. 조선 중기에 유교의 종법宗法과 내외윤리가 중시되면서 안채로부터 사랑채가 분화되었다. 사랑채가 분화되기 전에는 살림채에서 가장 넓은 방이 난방과 취사를 겸하는 부엌에 붙어 있었다. 이를 ‘큰방’으로 불렀다. 안채에서 사랑채가 분화된 후로는 큰방을 차츰 ‘안방’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큰방이라는 말과 안방이라는 말이 혼용되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사랑채가 없던 시대에는 살림채에서 핵심이 되는 공간이 취사와 난방을 겸하는 부엌과 그에 접한 안방이었다. 부엌에서 불을 때 밥을 짓는 일은 주부의 몫이었으므로 안방은 자연히 그 집에서 주부권主婦權을 행사하는 여성의 방이었다. 주부가 며느리를 맞은 후 일정 기간이 지나서 며느리가 가풍을 익히고 나면 ‘안방물림’이라 하여 안방을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아랫방 혹은 상방으로 물러나서 지냈다.

안방은 정말 다용도로 이용되었다. 어린아이들도 안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기거하였으므로 다른 방보다 면적이 넓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안방은 가족생활의 기본 공간이면서 주부 중심 방이었고 여러 가족이 모일 수 있는 회합 공간이기도 하였다. 현대에 와서 서양식 단독주택과 아파트에도 안방이 있지만 그 기능이 종전보다 대폭 축소되어 부부의 방으로 자리 잡았다. ‘부부유별’의 규범이 주거공간에서 사라지면서 안방은 ‘부부공동’ 공간이 되었다.

참고문헌

민속학으로 읽는 민가 주거문화의 전통(배영동, 건축54-3, 대한건축학회, 2010), 유교이념의 실천공간으로서 주거(배영동, 유교민속의 연구시각, 한국국학진흥원, 2006), 종가의 사당을 통해본 조상관(배영동, 한국민속학39, 한국민속학회, 2004), 주거공간 이용과 집 다스리기의 전통(배영동, 비교민속학26, 비교민속학회, 2004), 흥해배씨 종가 금역당의 건축과 조선후기의 구조 변화(이종서, 건축역사연구25-4, 한국건축역사학회,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