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屛風)

한자명

屛風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박선희(朴善姬)

정의

목재 판재에 부착된 한지나 비단 등의 표면에 서화 또는 자수로 예술 작품을 담은, 2폭에서 12폭 크기의 차폐용 장식물.

내용

병풍屛風은 본래 중국 주나라의 천자가 높이 8척의 판에 자루가 없는 여러 개의 도끼를 도안화로 그려 뒷벽을 장식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기록이 있다. 당시의 병풍은 일상 기물이 아닌 특수한 의미를 띤 것이었다. 즉 병풍은 본래 제례와 관련된 제단화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시대 신분제도를 기록한 항목에 진골과 육두품은 병풍에 수繡를 금한다는 조항이 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관청의 사면에 꽃을 수놓은 병풍을 쳐 놓았다는 기록과 묵화 병풍을 하인에게 선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병풍 역사가 꽤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병풍은 장방형으로 짠 나무틀에 종이를 바르고 종이·비단·삼베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자수 등을 붙이고, 폭과 폭은 돌쩌귀로 접합시켜 접었다 폈다 하기에 편리하도록 만든다. 병풍은 접힐 때를 고려하여 2폭에서 12폭까지 모두 짝수로 제작되었다. 그림의 내용과 방식도 사용 및 목적에 따라 다양하였다. 12폭과 같이 가장 큰 것은 다루기에 편하도록 둘로 나누어 6폭씩 만들기도 한다. 병풍의 한 장 폭은 36~45㎝, 높이는 60~180㎝ 정도가 일반적이다. 높낮이는 장식과 용도에 따라 다르다. 2폭 병풍은 가리개 혹은 곡병曲屛이라 하며, 머리맡에 치는 얕은 병풍은 머리병풍 또는 침병枕屛이라 한다. 한 가지 주제로만 그린 것은 일본에서 전해진 형식이라 하여 왜장병倭粧屛이라 일컫는다.

병풍에 사용된 그림 내용은 사용 계층과 목적에 따라 매우 다양하였다. 궁중에서는 어좌병풍御座屛風(정전의 용상 뒤에 치는 의전용 병풍), 행렬도병풍行列 圖屛風(국가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그림을 그린 병풍), 의궤도병풍儀軌圖屛風(궁중 예법과 규모 등 일의 경과나 경비 등을 알리는 용도의 병풍), 궁궐지리도병풍宮闕地理圖屛風(궁궐과 성곽 등의 모습을 치밀하게 묘사한 그림), 경직도병풍耕織圖屛風(농민이 일하는 모습을 교육적으로 그린 병풍), 세화병歲華屛(정월 초 장수와 복을 비는 그림), 백수백복도병풍百壽百福圖屛風(연회용에서 많이 사용하는, 장수와 행운을 기원하는 그림), 십장생도병풍十長生圖屛風(십장생을 주제로 그린 민화 그림) 등을 사용하였다. 일반 행사나 의례에는 혼병婚屛(혼인식에 사용되는 병풍), 연회도병풍宴會圖屛風(연회·시회·계회 모습을 그린 기념 병풍), 수렵도병풍狩獵圖屛風(사냥하는 그림) 등이 사용되었다. 사대부와 민간의 주택 실내에서는 연병硏屛(먼지나 먹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벼루 머리에 치는 작은 병풍), 수병繡屛(자수로 꾸민 병풍), 백납병풍百衲屛風(여러 가지 주제의 글씨나 탁본, 도장 등으로 구성한 병풍), 삽병揷屛(한 주제의 그림이 이어져 그린 병풍), 평생도병풍平生圖屛風(사람의 출생과 죽음까지의 생활 모습을 단계별로 표현한 그림), 계언병戒言屛(사람의 살아가는 도리나 인륜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 문방도병풍文房圖屛風(선비들의 문방 기물을 표현한 그림), 백동자도병풍百童子圖屛風(어린이들의 갖가지 놀이 모습을 그린 병풍으로, 무병장수의 뜻이 내포됨), 노안도병풍蘆雁圖屛風(기러기 떼와 갈대밭을 묘사한 그림으로, 형제간의 우애와 화목을 상징함) 등이 사용되었다. 그 외 도형설명도병풍圖形說明圖屛風(고대 중국의 주역과 이를 설명한 글귀가 표현됨), 군선도병풍君仙圖屛風(신선도) 등도 나타났다.

조선시대 한옥 실내에서 사용된 병풍은 다양성과 기능 면에서 매우 활발하게 적용되었다. 중국의 병풍은 대개 목판으로 만들어 실내의 차면 설비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 용도이다. 그러나 한국은 제사·혼례·장례 등 의례 생활에 사용된 필수 집기였다. 또한 일상에서는 상류가옥의 안방사랑방에서 방 주인이 좌정하는 위치의 배경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병풍의 그림 내용은 이러한 기능과 사용 목적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특히 모란병풍은 전통혼례, 폐백, 경사 의례 때 사용되었다. 상류가옥 안방에서는 화조도 등이 화사한 배경 병풍으로 사용되었으며, 다양한 색상의 꽃과 나비 등이 수놓아진 자수병풍도 애용되었다. 자수병풍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다양한 자수 기법이 교육되면서 크게 확산되기도 하였다. 사랑방에서는 서예, 책가도, 산수화, 문인화 등이 사용되었다.

병풍은 1980년대까지도 보수성의 기풍이 남아 있는 지역에서는 신부가 지참하는 중요한 혼수 품목이었다. 오늘날에도 병풍은 한국에서 제례를 지낼 때와 전통혼례 때는 반드시 비치하는 주요 배경 용품이다. 그 외에 현대 인테리어에서 전통 양식의 특성을 보여 주는 호텔이나 한정식을 제공하는 고급 식당, 전통한식 주거공간 등에 한국의 미를 표현하기 위한 주요 실내장식 요소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병풍은 차폐 용구이지만 전통미술을 일상에 끌어들인 다용도 인테리어 용품으로, 배경 장식에서 큰 몫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민화(부산박물관, 2008), 병풍의 기능에 따른 공간 및 조형성 연구(홍경태, 전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3),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연구(박정혜, 일지사, 2000), 한국민속대사전(한국민속사전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7).

병풍

병풍
한자명

屛風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박선희(朴善姬)

정의

목재 판재에 부착된 한지나 비단 등의 표면에 서화 또는 자수로 예술 작품을 담은, 2폭에서 12폭 크기의 차폐용 장식물.

내용

병풍屛風은 본래 중국 주나라의 천자가 높이 8척의 판에 자루가 없는 여러 개의 도끼를 도안화로 그려 뒷벽을 장식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기록이 있다. 당시의 병풍은 일상 기물이 아닌 특수한 의미를 띤 것이었다. 즉 병풍은 본래 제례와 관련된 제단화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시대 신분제도를 기록한 항목에 진골과 육두품은 병풍에 수繡를 금한다는 조항이 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관청의 사면에 꽃을 수놓은 병풍을 쳐 놓았다는 기록과 묵화 병풍을 하인에게 선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병풍 역사가 꽤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병풍은 장방형으로 짠 나무틀에 종이를 바르고 종이·비단·삼베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자수 등을 붙이고, 폭과 폭은 돌쩌귀로 접합시켜 접었다 폈다 하기에 편리하도록 만든다. 병풍은 접힐 때를 고려하여 2폭에서 12폭까지 모두 짝수로 제작되었다. 그림의 내용과 방식도 사용 및 목적에 따라 다양하였다. 12폭과 같이 가장 큰 것은 다루기에 편하도록 둘로 나누어 6폭씩 만들기도 한다. 병풍의 한 장 폭은 36~45㎝, 높이는 60~180㎝ 정도가 일반적이다. 높낮이는 장식과 용도에 따라 다르다. 2폭 병풍은 가리개 혹은 곡병曲屛이라 하며, 머리맡에 치는 얕은 병풍은 머리병풍 또는 침병枕屛이라 한다. 한 가지 주제로만 그린 것은 일본에서 전해진 형식이라 하여 왜장병倭粧屛이라 일컫는다.

병풍에 사용된 그림 내용은 사용 계층과 목적에 따라 매우 다양하였다. 궁중에서는 어좌병풍御座屛風(정전의 용상 뒤에 치는 의전용 병풍), 행렬도병풍行列 圖屛風(국가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그림을 그린 병풍), 의궤도병풍儀軌圖屛風(궁중 예법과 규모 등 일의 경과나 경비 등을 알리는 용도의 병풍), 궁궐지리도병풍宮闕地理圖屛風(궁궐과 성곽 등의 모습을 치밀하게 묘사한 그림), 경직도병풍耕織圖屛風(농민이 일하는 모습을 교육적으로 그린 병풍), 세화병歲華屛(정월 초 장수와 복을 비는 그림), 백수백복도병풍百壽百福圖屛風(연회용에서 많이 사용하는, 장수와 행운을 기원하는 그림), 십장생도병풍十長生圖屛風(십장생을 주제로 그린 민화 그림) 등을 사용하였다. 일반 행사나 의례에는 혼병婚屛(혼인식에 사용되는 병풍), 연회도병풍宴會圖屛風(연회·시회·계회 모습을 그린 기념 병풍), 수렵도병풍狩獵圖屛風(사냥하는 그림) 등이 사용되었다. 사대부와 민간의 주택 실내에서는 연병硏屛(먼지나 먹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벼루 머리에 치는 작은 병풍), 수병繡屛(자수로 꾸민 병풍), 백납병풍百衲屛風(여러 가지 주제의 글씨나 탁본, 도장 등으로 구성한 병풍), 삽병揷屛(한 주제의 그림이 이어져 그린 병풍), 평생도병풍平生圖屛風(사람의 출생과 죽음까지의 생활 모습을 단계별로 표현한 그림), 계언병戒言屛(사람의 살아가는 도리나 인륜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 문방도병풍文房圖屛風(선비들의 문방 기물을 표현한 그림), 백동자도병풍百童子圖屛風(어린이들의 갖가지 놀이 모습을 그린 병풍으로, 무병장수의 뜻이 내포됨), 노안도병풍蘆雁圖屛風(기러기 떼와 갈대밭을 묘사한 그림으로, 형제간의 우애와 화목을 상징함) 등이 사용되었다. 그 외 도형설명도병풍圖形說明圖屛風(고대 중국의 주역과 이를 설명한 글귀가 표현됨), 군선도병풍君仙圖屛風(신선도) 등도 나타났다.

조선시대 한옥 실내에서 사용된 병풍은 다양성과 기능 면에서 매우 활발하게 적용되었다. 중국의 병풍은 대개 목판으로 만들어 실내의 차면 설비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 용도이다. 그러나 한국은 제사·혼례·장례 등 의례 생활에 사용된 필수 집기였다. 또한 일상에서는 상류가옥의 안방과 사랑방에서 방 주인이 좌정하는 위치의 배경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병풍의 그림 내용은 이러한 기능과 사용 목적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특히 모란병풍은 전통혼례, 폐백, 경사 의례 때 사용되었다. 상류가옥 안방에서는 화조도 등이 화사한 배경 병풍으로 사용되었으며, 다양한 색상의 꽃과 나비 등이 수놓아진 자수병풍도 애용되었다. 자수병풍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다양한 자수 기법이 교육되면서 크게 확산되기도 하였다. 사랑방에서는 서예, 책가도, 산수화, 문인화 등이 사용되었다.

병풍은 1980년대까지도 보수성의 기풍이 남아 있는 지역에서는 신부가 지참하는 중요한 혼수 품목이었다. 오늘날에도 병풍은 한국에서 제례를 지낼 때와 전통혼례 때는 반드시 비치하는 주요 배경 용품이다. 그 외에 현대 인테리어에서 전통 양식의 특성을 보여 주는 호텔이나 한정식을 제공하는 고급 식당, 전통한식 주거공간 등에 한국의 미를 표현하기 위한 주요 실내장식 요소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병풍은 차폐 용구이지만 전통미술을 일상에 끌어들인 다용도 인테리어 용품으로, 배경 장식에서 큰 몫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민화(부산박물관, 2008), 병풍의 기능에 따른 공간 및 조형성 연구(홍경태, 전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3),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연구(박정혜, 일지사, 2000), 한국민속대사전(한국민속사전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