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석(方席)

한자명

方席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김영재(金永才)

정의

밑이 배기거나 바닥에 앉을 때 까는 사각형의 자리.

개관

방석方席은 앉을 때 밑이 배기지 않고 차가움과 뜨거움으로부터 앉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용된 생활용품이다. 『역어유해보譯語類解補』에서는 중국어의 ‘좌욕坐褥’을 ‘방셕’으로 해석하고 있다.

『광재물보廣才物譜』에서는 방석을 ‘인욕茵蓐’ ‘포단蒲團’ ‘수돈繡墪’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인욕’은 ‘왕골리’, ‘포단’은 ‘부들로 짠 자리[織蒲爲席]’로 설명하고 있다. ‘수돈’은 ‘슈방셕’이라고 하여 수를 놓은 방석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氈’을 ‘담’이라 쓰고 ‘모석毛席’이라 하여 털로 만든 자리라고 하였다. ‘고비皐比’는 범의 가죽으로 만든 스승이 깔던 ‘호피방석虎皮方席’이라고 설명하였다. 재료에 따라 명칭을 달리하고 그 종류가 다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조실록世祖實錄』(세조 2, 6월 15일)에 명나라 사신에게 준 선물 가운데 ‘아다개[豹皮阿多介]’는 표범이나 호랑이 등의 가죽으로 만든 요나 방석 등 깔개의 속칭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방석은 신분에 따라 사용 여부가 제한되어 6품 이상 관원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世宗實錄』(세종 24, 11월 27일)에 왕세자가 종묘 제사를 대행한 후 음복하는 절차 중에 6품 이상의 관원은 방석方席을 설치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 야인野人을 접대하는 좌차座次에 대하여서도 “만호萬戶를 받은 야인은 좌석이 없고 적당하게 방석方席을 설치해 대접한다.”고 하였다(세종 24, 10월 25일). 또 이러한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에는 해당 관리자를 국문鞠問한 것을 알 수 있다. 『세조실록世祖實錄』(세조 6, 12월 9일 신사)에 사정司正을 제수받은 보랑합甫郞哈 등 세 사람이 대단히 추웠는데 예빈시禮賓寺에서 포진鋪陳을 베풀지 않아 의금부에 명하여 해당 관리를 국문하도록 하였다고 전해진다.

『성종실록成宗實錄』(성종 3, 1월 22일)에는 서인 부녀가 안장 위의 좌자坐子에 채단을 사용하는 것은 사치라 하여 이를 금하여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

『태종실록太宗實錄』에는 왜倭에 보내는 토산물 목록에 ‘만화방석萬花方席’이 있으며(태종 2, 6월 6일), 이후 만화방석은 중국 명에 보내는 방물표에도 빠지지 않고 포함되었다(태종 17, 8월 2일).

특징 및 의의

방석 등의 자리좌식생활에 적합한 생활용품으로, 방바닥에 오래 앉아 있을 경우 밑이 배기기 때문에 사용하였다. 난방이 충분하지 않은 주거 환경에서 방석은 추울 때는 물론 더울 때도 유용한 생활용품이었다.

방석은 대개 정사각형이지만 직사각형, 원형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든다. 직물이나 가죽 등으로 만들 경우 사각형이 많으며, 왕골·부들·대나무 등 식물을 재료로 만들 경우에는 원형으로도 가능하다. 식물 재료를 쓸 경우에는 방석 안에 속을 넣지 않고 대개 여름용으로 사용한다. 직물 등으로 방석을 만들 경우에는 방석 안에 보충재를 넣는다. 솜이나 곡물 껍질 등으로 속을 채우고, 겉은 비단 등으로 만들어서 화려하게 수를 놓기도 하였다.

방석은 재료에 따라 왕골방석, 부들방석, 죽방석竹方席, 죽피방석竹皮方席이 있다. 모직물이나 동물 가죽을 이용한 것으로는 털방석·양모방석·가죽방석 등이 있고, 직물을 이용한 것으로는 비단방석과 삼베방석 등이 있다.

참고문헌

광재물보(홍윤표, 홍문각, 1998), 한한대사전(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99~2008), 조선왕조실록(sillok.history.go.kr), 한국학자료센터(kostma.aks.ac.kr).

방석

방석
한자명

方席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김영재(金永才)

정의

밑이 배기거나 바닥에 앉을 때 까는 사각형의 자리.

개관

방석方席은 앉을 때 밑이 배기지 않고 차가움과 뜨거움으로부터 앉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용된 생활용품이다. 『역어유해보譯語類解補』에서는 중국어의 ‘좌욕坐褥’을 ‘방셕’으로 해석하고 있다.

『광재물보廣才物譜』에서는 방석을 ‘인욕茵蓐’ ‘포단蒲團’ ‘수돈繡墪’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인욕’은 ‘왕골리’, ‘포단’은 ‘부들로 짠 자리[織蒲爲席]’로 설명하고 있다. ‘수돈’은 ‘슈방셕’이라고 하여 수를 놓은 방석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氈’을 ‘담’이라 쓰고 ‘모석毛席’이라 하여 털로 만든 자리라고 하였다. ‘고비皐比’는 범의 가죽으로 만든 스승이 깔던 ‘호피방석虎皮方席’이라고 설명하였다. 재료에 따라 명칭을 달리하고 그 종류가 다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조실록世祖實錄』(세조 2, 6월 15일)에 명나라 사신에게 준 선물 가운데 ‘아다개[豹皮阿多介]’는 표범이나 호랑이 등의 가죽으로 만든 요나 방석 등 깔개의 속칭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방석은 신분에 따라 사용 여부가 제한되어 6품 이상 관원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世宗實錄』(세종 24, 11월 27일)에 왕세자가 종묘 제사를 대행한 후 음복하는 절차 중에 6품 이상의 관원은 방석方席을 설치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 야인野人을 접대하는 좌차座次에 대하여서도 “만호萬戶를 받은 야인은 좌석이 없고 적당하게 방석方席을 설치해 대접한다.”고 하였다(세종 24, 10월 25일). 또 이러한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에는 해당 관리자를 국문鞠問한 것을 알 수 있다. 『세조실록世祖實錄』(세조 6, 12월 9일 신사)에 사정司正을 제수받은 보랑합甫郞哈 등 세 사람이 대단히 추웠는데 예빈시禮賓寺에서 포진鋪陳을 베풀지 않아 의금부에 명하여 해당 관리를 국문하도록 하였다고 전해진다.

『성종실록成宗實錄』(성종 3, 1월 22일)에는 서인 부녀가 안장 위의 좌자坐子에 채단을 사용하는 것은 사치라 하여 이를 금하여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

『태종실록太宗實錄』에는 왜倭에 보내는 토산물 목록에 ‘만화방석萬花方席’이 있으며(태종 2, 6월 6일), 이후 만화방석은 중국 명에 보내는 방물표에도 빠지지 않고 포함되었다(태종 17, 8월 2일).

특징 및 의의

방석 등의 자리는 좌식생활에 적합한 생활용품으로, 방바닥에 오래 앉아 있을 경우 밑이 배기기 때문에 사용하였다. 난방이 충분하지 않은 주거 환경에서 방석은 추울 때는 물론 더울 때도 유용한 생활용품이었다.

방석은 대개 정사각형이지만 직사각형, 원형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든다. 직물이나 가죽 등으로 만들 경우 사각형이 많으며, 왕골·부들·대나무 등 식물을 재료로 만들 경우에는 원형으로도 가능하다. 식물 재료를 쓸 경우에는 방석 안에 속을 넣지 않고 대개 여름용으로 사용한다. 직물 등으로 방석을 만들 경우에는 방석 안에 보충재를 넣는다. 솜이나 곡물 껍질 등으로 속을 채우고, 겉은 비단 등으로 만들어서 화려하게 수를 놓기도 하였다.

방석은 재료에 따라 왕골방석, 부들방석, 죽방석竹方席, 죽피방석竹皮方席이 있다. 모직물이나 동물 가죽을 이용한 것으로는 털방석·양모방석·가죽방석 등이 있고, 직물을 이용한 것으로는 비단방석과 삼베방석 등이 있다.

참고문헌

광재물보(홍윤표, 홍문각, 1998), 한한대사전(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99~2008), 조선왕조실록(sillok.history.go.kr), 한국학자료센터(kostm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