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배지붕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김왕직(金王稙)

정의

건물 앞뒤에만 지붕이 있고 추녀와 추녀마루 없이 용마루와 내림마루로만 구성된 지붕.

내용

맞배지붕은 한국건축 지붕 중에서 그 구성이 가장 단순하고 간결하다. 건물 앞뒤로 서까래를 경사지게 걸어 지붕면을 만들고 양쪽 측면은 삼각형의 벽, 즉 박공을 둔 형태의 지붕이다. 일명 ‘뱃집’이라고도 한다. 철기시대 이전인 초기 원시 움집의 경우는 평면이 원형이나 정방형이 많아서 지붕도 모임지붕이 일반적인 형태였다. 그러나 철기시대 이후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살림 규모가 커지고 연장이 발달함에 따라 장방형의 움집이 탄생하였다. 장방형 움집의 경우는 모임지붕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맞배지붕이나 우진각 지붕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맞배지붕의 탄생은 움집이 장방형화하는 철기시대 이후 본격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건축이 점차 지상화하고 지붕가구가 벽체와 별도로 독립되면서 가구가 복잡해짐에 따라 현재와 같은 맞배지붕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남한에 현존하는 6개 동의 고려시대 건물 중에서 부석사 무량수전이 팔작지붕인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5개 동은 모두 맞배지붕이다. 북한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주심포 건물 2개 동도 맞배지붕이고 다포건물 2개 동만이 팔작지붕이다. 이에 따르면 고려시대까지 주심포 건물에서는 주로 맞배지붕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다포 형식이 유행하였고 주전은 대개 다포로 만들어짐에 따라 점차 맞배지붕보다 팔작지붕이 늘어났다. 이 시기의 부속건물이나 작은 건물은 대체로 맞배지붕 형식을 하였다. 그래서 맞배지붕은 작은 건물에 사용한다는 인식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런것만은 아니다. 고려시대 맞배건물은 대부분 주전이었다. 조선 초 맞배건물인 무위사 극락전, 정수사 법당 등도 주전이면서 규모도 컸다. 따라서 맞배지붕이 격이 낮거나 규모가 작은 건물에 사용된 것은 아니다. 맞배지붕도 3량가에서 5량가, 7량가 등 규모가 다양하고 부연이 있는 겹처마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주전이 다포 형식의 팔작지붕을 사용함에 따라 맞배지붕은 부속건물이나 회랑 등 작은 건물에 사용되었다. 건물 성격으로는 규모와 관계없이 서원, 향교의 사당, 종묘, 가묘 등 제사 건물은 맞배지붕을 사용하였다.

특징 및 의의

맞배지붕은 규모와 관계없이 사용되었지만 측면에는 지붕면이 없기 때문에 비가 들이치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측면에 창이 필요한 거실 용도의 실이 배치되지 않는 사당과 회랑, 부속건물 등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시 맞배건물 중에서는 일본에서 많이 나타나는 역사다리꼴 맞배지붕이 있다. 용마루를 많이 빼내서 가능하면 측면의 비바람을 막고자 한 것이다. 현존하는 한국의 맞배건물 중에서도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측면으로 돌출한 지붕의 길이가 길다. 측면을 많이 돌출시키기 위해서는 도리가 내부로 그 이상 물려야 하기 때문에 도리의 길이가 길어진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전쟁을 치르면서 산림이 황폐화되고 목재가 고갈되어 긴 도리를 사용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돌출 길이가 줄어들어 측면에 문제가 발생하여 비바람을 막을 목적으로 박공면에 풍판風板이라는 것을 새롭게 덧붙였다. 풍판이 있어도 측면에 창호를 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측면 가구를 구성하는 기둥과 보, 인방재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맞배지붕도 앙곡昂曲을 주기 때문에 양쪽 어깨가 처져 보이지 않고 역동적이며, 앙곡이 많은 경우는 팔작지붕과 같이 갈모산방을 쓰기도 한다. 풍판이 없는 경우는 박공으로 마감되고, 그 하부는 수덕사 대웅전과 같이 기둥과 보로 구획된 벽체가 노출된다. 이 경우 면 비례가 주는 아름다움도 건축을 감상하는 맛이라 할 수 있다. 박공은 방환이라고 불리는, 머리가 크고 둥근 장식 못에 의하여 도리에 고정된다. 박공이 만나는 부분에서는 지네철로 연결하여 벌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지네철의 모양과 재질은 매우 다양하였다. 그리고 지네철 아래에는 현어懸魚를 달아 도리 말구를 가리고 장식을 해 주었다. 마치 물고기를 닮아 현어라고 하였으며, 금은 황동 장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매우 화려하였다. 조선시대 풍판은 대들보 정도까지 가렸으며, 널판을 세로로 대고 사이를 쫄대목으로 연결한 판벽이다. 풍판에는 통기구멍을 뚫어 가구부재의 부식을 방지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김왕직, 동녘, 2007), 지혜로 지은 집 한국건축(김도경, 현암사, 2011), 한국건축대계4-신편 한국건축사전(장기인, 보성각, 1998).

맞배지붕

맞배지붕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김왕직(金王稙)

정의

건물 앞뒤에만 지붕이 있고 추녀와 추녀마루 없이 용마루와 내림마루로만 구성된 지붕.

내용

맞배지붕은 한국건축 지붕 중에서 그 구성이 가장 단순하고 간결하다. 건물 앞뒤로 서까래를 경사지게 걸어 지붕면을 만들고 양쪽 측면은 삼각형의 벽, 즉 박공을 둔 형태의 지붕이다. 일명 ‘뱃집’이라고도 한다. 철기시대 이전인 초기 원시 움집의 경우는 평면이 원형이나 정방형이 많아서 지붕도 모임지붕이 일반적인 형태였다. 그러나 철기시대 이후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살림 규모가 커지고 연장이 발달함에 따라 장방형의 움집이 탄생하였다. 장방형 움집의 경우는 모임지붕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맞배지붕이나 우진각 지붕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맞배지붕의 탄생은 움집이 장방형화하는 철기시대 이후 본격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건축이 점차 지상화하고 지붕가구가 벽체와 별도로 독립되면서 가구가 복잡해짐에 따라 현재와 같은 맞배지붕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남한에 현존하는 6개 동의 고려시대 건물 중에서 부석사 무량수전이 팔작지붕인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5개 동은 모두 맞배지붕이다. 북한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주심포 건물 2개 동도 맞배지붕이고 다포건물 2개 동만이 팔작지붕이다. 이에 따르면 고려시대까지 주심포 건물에서는 주로 맞배지붕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다포 형식이 유행하였고 주전은 대개 다포로 만들어짐에 따라 점차 맞배지붕보다 팔작지붕이 늘어났다. 이 시기의 부속건물이나 작은 건물은 대체로 맞배지붕 형식을 하였다. 그래서 맞배지붕은 작은 건물에 사용한다는 인식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런것만은 아니다. 고려시대 맞배건물은 대부분 주전이었다. 조선 초 맞배건물인 무위사 극락전, 정수사 법당 등도 주전이면서 규모도 컸다. 따라서 맞배지붕이 격이 낮거나 규모가 작은 건물에 사용된 것은 아니다. 맞배지붕도 3량가에서 5량가, 7량가 등 규모가 다양하고 부연이 있는 겹처마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주전이 다포 형식의 팔작지붕을 사용함에 따라 맞배지붕은 부속건물이나 회랑 등 작은 건물에 사용되었다. 건물 성격으로는 규모와 관계없이 서원, 향교의 사당, 종묘, 가묘 등 제사 건물은 맞배지붕을 사용하였다.

특징 및 의의

맞배지붕은 규모와 관계없이 사용되었지만 측면에는 지붕면이 없기 때문에 비가 들이치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측면에 창이 필요한 거실 용도의 실이 배치되지 않는 사당과 회랑, 부속건물 등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시 맞배건물 중에서는 일본에서 많이 나타나는 역사다리꼴 맞배지붕이 있다. 용마루를 많이 빼내서 가능하면 측면의 비바람을 막고자 한 것이다. 현존하는 한국의 맞배건물 중에서도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측면으로 돌출한 지붕의 길이가 길다. 측면을 많이 돌출시키기 위해서는 도리가 내부로 그 이상 물려야 하기 때문에 도리의 길이가 길어진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전쟁을 치르면서 산림이 황폐화되고 목재가 고갈되어 긴 도리를 사용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돌출 길이가 줄어들어 측면에 문제가 발생하여 비바람을 막을 목적으로 박공면에 풍판風板이라는 것을 새롭게 덧붙였다. 풍판이 있어도 측면에 창호를 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측면 가구를 구성하는 기둥과 보, 인방재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맞배지붕도 앙곡昂曲을 주기 때문에 양쪽 어깨가 처져 보이지 않고 역동적이며, 앙곡이 많은 경우는 팔작지붕과 같이 갈모산방을 쓰기도 한다. 풍판이 없는 경우는 박공으로 마감되고, 그 하부는 수덕사 대웅전과 같이 기둥과 보로 구획된 벽체가 노출된다. 이 경우 면 비례가 주는 아름다움도 건축을 감상하는 맛이라 할 수 있다. 박공은 방환이라고 불리는, 머리가 크고 둥근 장식 못에 의하여 도리에 고정된다. 박공이 만나는 부분에서는 지네철로 연결하여 벌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지네철의 모양과 재질은 매우 다양하였다. 그리고 지네철 아래에는 현어懸魚를 달아 도리 말구를 가리고 장식을 해 주었다. 마치 물고기를 닮아 현어라고 하였으며, 금은 황동 장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매우 화려하였다. 조선시대 풍판은 대들보 정도까지 가렸으며, 널판을 세로로 대고 사이를 쫄대목으로 연결한 판벽이다. 풍판에는 통기구멍을 뚫어 가구부재의 부식을 방지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김왕직, 동녘, 2007), 지혜로 지은 집 한국건축(김도경, 현암사, 2011), 한국건축대계4-신편 한국건축사전(장기인, 보성각,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