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김기덕(金起德)

정의

인간생활의 기본 구성인 가족 단위의 집들이 모여 제반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기초 사회 단위 집단.

개관

마을은 한자 뜻이 같은 촌, 촌락과 혼용된다. 취락은 가옥의 집적이라는 의미의 일반 용어이다. 그러므로 도시와 농촌에 모두 적용된다. 부락은 주로 일본에서 사용된 용어로, 그 영향을 받아 촌락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마을 용례는 매우 다양해서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지만 대체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기초 사회 단위로 이해되며, 주로 민속학에서 선호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마을은 발생 차원에서 자연촌·행정촌, 가옥의 밀집도에 따라 집촌集村·산촌散村, 주민들의 씨족 구성에 따라 동성마을·각성마을, 신분 구성에 따라 반촌班村·민촌民村·반상혼거촌班常混居村, 마을 크기에 따라 대촌·중촌·소촌, 생업 기반에 따라 농촌·어촌·산촌 등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될 수 있다.

내용

조선 후기 농촌의 전통마을 기본형을 그림으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자연공간(마을 입지 선택의 기본공간): 전통마을의 기본 입지는 무엇보다 자연환경 요소와 연관이 있다. 동서양 모두 인류는 산·구릉·강·바다와 같은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느 지역의 자연환경을 삶을 영위하는 장소로 택하여 마을이 형성될 경우 이 마을을 둘러싼 ‘자연환경’은 마을 공간구성의 한 요소로서 마을의 ‘자연공간’이 된다.
    어떠한 자연환경을 마을 입지로 택하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례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그것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기본 조건에 마을 주변 좌우에 산자락이 있고, 조금 멀리 앞산도 있어 사방에서 산들이 마을을 아늑하게 감싸 주는 자연환경이 있는 공간이다. 여기에서 만약 배산임수의 뒷산이 북에서 남으로 오는 산줄기라면 자연스럽게 마을의 가옥들은 남향이 되어 더욱 선호하는 장소가 된다.
    사례연구를 통한 이러한 마을의 입지 선택은 풍수 논리로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 풍수는 산 자의 주거지나 죽은 자의 무덤이나 모두 그 입지 조건의 기본은 사방四方으로 산의 보호 안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 사방에서 보호해 주는 산을 현무(뒷산), 주작(앞산), 청룡(왼쪽 산), 백호(오른쪽 산)라고 한다. 이를 총칭하여 사신사四神砂라고 한다. 사신사에서 핵심은 뒷산에 해당하는 현무이기 때문에 흔히 주산主山 또는 진산鎭山이라고 한다. 마을을 둘러싼 사신사는 그 조화 상태에 따라 우열이 매겨진다. 핵심 기준은 사방의 사신사가 마을을 향해 감싸는 형상이다. 예를 들어 왼쪽 청룡에 해당하는 산이 마을을 감싸지 못하고 밖으로 휘었을 경우는 물이 마을을 빠져나가는 수구水口가 열렸다고 하여 좋지 않게 본다. 그쪽 방향의 바람을 막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산에서 내려오는 좋은 마을의 기운도 담아내지 못하고, 물의 흐름도 마을을 감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은 산에서 만들어 낸다. 산이 마을을 감싸야 물도 마을을 감싸며 돌아 나가는 것이다.
    한국 전통마을의 입지가 처음부터 풍수 논리로 선택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으로부터의 보호, 편안한 경관, 윤택한 생산 조건, 편리한 일상생활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마을 입지에 대한 오랫동안 누적된 인간의 지혜는 결국 풍수 입지 논리와 일치한다. 그 결과 풍수사상이 유행하면서 마을 입지와 풍수 논리가 더욱 자연스럽게 결합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유명한 반촌일수록 입향시조가 입향할 때 지리와 산수를 보고 입지를 선택하였다는 구전이나 문헌기록, 와우형臥牛形이니 행주형行舟形이니 하여 전국 마을에 널리 전승되고 있는 마을 물형론物形論의 존재, 마을을 보호해 주는 주변 산들이 다소 부족할 경우 행해지는 다양한 비보裨補 행위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인간은 필요하면 사막, 열대지대, 고산지대, 험지, 물위에서도 삶을 영위한다. 또는 다양한 종교 논리와 신념이 반영되어 특별한 곳에 모여 살거나, 외부의 지속된 침입을 방어해야 하는 어려운 조건하에서는 성벽 안에 모여 살기도 한다. 이처럼 삶의 여러 조건 속에서 마을 입지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가장 일반적인 마을 입지는 동서양 모두 배산임수와 좌우의 산과 앞산이 있는 곳을 택하였다. 이 경우 모든 나라의 마을 입지에 동양의 풍수 논리가 게재되었을 리 없다. 그러나 역시 마을 입지에 대한 인간의 오래된 경험의 지혜가 동일한 자연환경을 택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마을 입지 논리는 차별성보다 동일성이 훨씬 더 크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서양 마을을 답사하면 풍수의 입지 논리로 그 마을의 자연공간을 동일하게 해석할 수 있다.
    한편 한국의 전통마을 자연공간에는 죽은 자의 묘지공간이 있었다. 주로 자연공간 내 마을로 내려오는 주산 아래 또는 좌우의 산능선(청룡, 백호) 또는 앞산에 묘지를 마련하였다. 동성마을의 경우 집안의 번영을 위하여 풍수에 맞는 명당을 찾아 마을과 떨어진 장소에 선산先山을 마련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이러한 묘지공간을 염두에 두고 마을의 자리를 잡기도 하였다. 또한 마을 뒷산이 내려오는 중요한 길목에 산신당, 입향시조入鄕始祖, 서낭당 등 마을 공동제사 대상물을 배치하기도 하였다. 동성마을의 경우 공동의 사당을 두기도 하였다.

  2. 주거공간 및 생업공간(자연공간 하에서 요청되는 필수 생존공간): 마을은 자연환경에서 선택된 자연공간 이외에 다양한 공간이 기능하고 있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마을을 구성하는 개별 가족의 일상 삶이 전개되는 주거공간과 가족의 삶을 유지시켜 주는 생업공간은 마을의 필수 생존공간이라 할 수 있다.
    주거공간은 마을 성격에 따라, 그 구성원의 신분과 거주공간에 차이가 있다. 즉 앞에서 제시한 그림에서는 집을 똑같이 표시하였지만 반촌班村이나 동성마을의 경우와 그렇지 않은 마을은 당연히 전체 구성에서 양반집과 평민집 비율이 달랐다. 또한 동성마을의 경우 같은 성씨나 파 내에서도 혈연상의 상하 수직 구조를 반영하여 종가나 ‘큰집’은 마을의 높은 곳과 안쪽 중심선상에 배열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집의 배치는 자연공간의 경사도와 관계가 깊다. 뒷산의 경사가 완만하면 집을 산에 가깝게 붙이고, 급하면 산에서 거리를 두어 위치시킴으로써 산사태로 인한 재해를 방지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집의 좌향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좌坐는 집이 어디에 기대고 있는가, 향向은 집의 주축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를 각각 말한다. 이것은 출입문의 방향과는 관계가 없다. 모든 집의 형태는 앞과 뒤가 기본으로 있다. 집의 뒤가 좌이며 앞이 향이다. 오늘날의 아파트로 말하면 베란다 방향이 앞이다. 전통의 마을 입지가 배산임수라는 것은 집의 배치가 좌坐는 산山, 즉 높은 곳을 기댄다는 뜻이며 향向은 물, 즉 낮은 곳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흔히 마을 입지로 배산임수만 제시할 뿐 집의 좌향은 기본원칙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사례를 연구해보면 집의 배치는 기본적으로 높은 곳에 기대고[背山] 낮은 곳을 향함으로써[臨水], 사람들은 안정된 터전에서 가옥 앞으로 흐르는 시내 건너 펼쳐지는 앞산[案山]을 조망하는 경관 가치를 자연스럽게 향유해 왔다. 그런데 오늘날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농촌마을마저 이러한 기본 원칙이 남향南向만을 선호하는 가치관에 의해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앞에 제시한 그림에서 각각의 집들을 편의상 분리하여 그렸지만 실제로는 마을 안길을 따라 서로 접하면서 울타리 담장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울타리는 집과 집의 경계를 이루면서 마을 안길을 따라 집들을 이어 주는 동선 역할도 한다. 실제 어느 마을에 대한 느낌은 뒷산 배경하에 올망졸망한 초가와 ‘고래등 같다’는 양반 고택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으로도 구현되지만, 마을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안길을 따라 집과 집을 이어 주는 담장의 정겨움에서도 잘 나타난다. 개별 집들이 집 안 세계와 집 밖 세계를 구분해 주는 경계이자 연결점이라는 점에서, 마을 담장의 모습은 그 마을 구성원의 공동체성과 성정性情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거공간에는 집 이외에 효자비·열녀비와 같이 널리 알려야 할 시설물이 있기도 하며, 상을 당할 때 시신을 모시는 꽃가마를 두는 상여집 등 마을 공동소유물 보관 장소도 있었다. 앞의 그림에서 광장이라고 표시된 것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의 마을은 서양처럼 마을 한 가운데에 성당이 있고 그 앞에 광장이 조성되어 있는 구조는 아니다. 여기에서 광장이라고 표현한 것은 서양식의 명실상부한 광장이 아니라 필요시 공동의 논의가 전개되는 장소를 제시해 본 것이다. 지형상 항상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동의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우물터, 종가집이나 부잣집 큰마당터, 마을 가운데에 존재하는 당산목이 있는 곳 또는 공동마당 등은 비교적 많은 사람이 함께 할 수 있으므로 필요시 광장의 의미가 있다.
    우리의 마을은 서양처럼 온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종교행사나 이를 정기 집행하는 교회가 없었고, 그로 인하여 교회 앞 광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필요한 기존 공간을 활용하여 공동체 논의를 하였다. 이와 함께 저녁에 때때로 전개되던 사랑방 문화가 있었다. 또한 우리의 마을 가옥은 건물 크기에 비하여 커다란 마당공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마당은 휴식·놀이·의례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며, 수시로 전개되던 소규모 마을 구성원 교류의 장이기도 하였다. 한편 민촌에서 지속해서 존재해 왔던 촌계村契는 자치 체제로 운영되면서 마을제사 및 마을의 중요 사항을 논의하여 시행되었다. 또한 노동공동체로서의 두레를 운용하였다는 점은 모두 한국형 광장문화의 실질적 구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이 하나의 모듬살이로서 지속성을 띠려면 생업을 영위할 수 있는 일터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생업공간 또한 필수 생존공간이었다. 그런데 가장 좋은 토지는 ‘문전옥답’이라는 표현처럼 본래 주거공간과 생업공간은 가까이 있을수록 좋다. 생업공간의 기본은 주거공간의 연장선에서 시작한다. 물론 어촌마을처럼 주거공간과 생업공간이 완전히 분리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농촌마을은 마을의 자연공간을 구성하는 뒷산과 좌·우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중심으로 농경지가 펼쳐진다. 그러나 마을 인구가 증가하거나 인간 능력이 확장될수록 생업공간은 마을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다. 어떠한 생업공간이라 하더라도 농업용수로서의 하천이나 최소한의 작은 시내가 있어야 한다. 시내가 부족한 경우 하천의 물을 경작지까지 끌어들이기 위하여 보洑를 설치해서 강물을 막고 봇도랑을 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관개시설 또한 생업공간에 포함된다. 또한 자연공간에 해당하는 뒷산은 땔감과 건축자재, 나물 등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생업공간 역할도 하였다.

  3. 이동공간 및 경계공간(마을 구성원 상호소통망에서 파생된 관계공간): 마을의 이동공간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지만 사실상 물의 속성과 같은 것이다. 물의 흐름은 직진성直進性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그 물이 돌아서 흘러가는 것은 자연 지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동공간인 길도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으로 가장 짧은 거리로 직진하도록 만들어지는 것이며,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일부러 길을 돌아가게 만들지는 않는다. 길을 돌아가는 이유는 역시 자연지형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 물길을 따라 사람이 힘을 덜 들이고 걸을 수 있는 구배가 연결되면서 길이 만들어진다. 만약 돌아가는 길이 너무 불편한 경우에는 물을 건너는 다리를 놓을 뿐이지 무리하게 지형을 훼손하며 빠른 길을 내지는 않았다. 간혹 지형을 무시하고 시간을 단축하는 지름길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정식 길이 아니었다. 이처럼 전통마을의 모든 공간은 자연을 인위로 거스르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설정되었다.
    이동공간은 크게 주거공간 내의 안길, 주거공간에서 마을 입구까지의 진입길, 마을 입구부터 다른 마을을 이어 주는 외부도로인 큰 길로 나뉜다. 모든 길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지세의 영향을 받으며, 그러한 지세에 맞춘 길에 따라 주거공간 집들의 배열 상태가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또한 자연지세에 맞추면서도 집의 위상, 집들 간의 관계, 마을 상징물의 위치, 경작지의 영역 등에 의하여 다양한 길의 모습이 형성된다. 특히 동성마을의 경우 큰 길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주 통로가 되는 길은 마을의 중심되는 집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경계공간은 다른 마을과 구별되는 공간으로, 이동공간인 길과 관련되어 있음을 기본으로 한다. 마을의 핵심 경계공간은 마을 입구의 길가이다. 마을 입구에 문門이 있는 일본의 마을과는 달리 우리의 마을은 문이 따로 없다. 그 대신 마을 입구의 장승, 당산목, 정자 등이 그 역할을 한다. 마을의 경계공간은 지리상의 경계 개념과 다르다. 지리상의 경계공간은 산과 강, 큰길 등이 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마을 입구의 경계공간 상징물들은 다른 마을과 구분되는 관념의 존재물이다. 따라서 그 경계는 지리상의 선線이 아닌 점點으로 존재하며, 결국 그 점點에서 제의 의식을 통해 마을 전체로 확산되는 장場의 개념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휴식공간인 정자를 제외하면 마을의 경계공간 상징물들은 관념상의 상징물이 아니라 대부분 그대로 동제에서 제의 대상이 된다. 또한 상제에서도 마을에는 상징물인 울타리가 있어 상여가 나갈 때 울타리가 상징하는 한계 지점에서 노제를 지내고 죽은 이를 위로한다. 노제는 마을 입구나 약간 떨어진 적당한 장소에 상여를 내려놓은 다음 망자의 마지막 길을 애도한다. 그리고 상여를 뒤따르던 부녀자들은 노제를 끝으로 마을 끝을 상징하는 경계 밖으로 더 이상 따라가지 않는다. 이처럼 경계공간의 상징물들은 점으로 존재하면서도 다른 마을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항상 제의 행위의 대상이 되면서 그 제의를 통하여 마을 전체 공간 속으로 관념적 세계관을 공유한다. 또한 당산제를 거행할 때 풍물패가 마을 둘레를 돌거나, 줄다리기를 행하기 전후에 어깨에 줄을 메고 마을 주변을 돌았다. 이는 마을의 외곽 둘레도 다른 마을과 구별되는, 일종의 경계공간임을 마을 사람들이 인식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4. 놀이공간 및 제의공간(장場의 개념으로 확산되는 가변공간): 놀이공간 및 제의공간은 교회나 광장을 둔 서양과 달리 고정공간이 아닌 가변공간이라는 특성이 있다. 산과 강, 들이 모두 놀이공간으로 전환될 뿐만 아니라 주거공간이나 이동공간은 물론 생업공간과 제의공간도 필요에 따라 놀이공간으로 바뀐다는 점에서 마을의 모든 공간이 놀이공간으로 이용될 수 있다.
    먼저 아이들은 시간과 계절에 맞추어 마당·골목길·텃논·강변, 심지어 동구 밖과 묘지 주변까지 놀이터로 활용한다. 생업공간을 담당하는 어른들은 세시풍속과 명절, 혼례날에 맞추어 노동과 대비되는 휴식과 놀이를 즐긴다. 그리고 그 장소 역시 마을의 모든 공간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명절 풍물놀이를 할 때 마당과 골목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풍물을 친다. 두레패가 풍물을 치면서 일터로 나가며, 일터에서나 일터에서 돌아올 때도 풍물을 치고 놀이판을 벌인다. 일터인 생업공간이 곧 놀이공간으로 바뀐다.
    때로는 마을을 감아 도는 하천의 경우 경관이 수려하면 단순한 농업용수 범주를 넘어 놀이공간으로 적극 전환된다. 하회마을의 경우 휘감아 도는 물을 화천花川이라 하여 ‘꽃내’로 인식하고 ‘줄불놀이’로 알려진 뱃놀이를 즐겼다. 또한 놀이공간은 자기 마을을 넘어 다른 마을로까지 확산되기도 하였다. 마을끼리 겨루는 집단 놀이가 두 마을의 경계표로 인식되는 강이나 시내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거나 산고개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기도 하였다.
    한편 놀이공간과 관련하여 정자가 주목된다. 마을 입구에 있는 마을 구성원 전체의 휴식공간으로서의 정자 외에, 선비들이 많이 있던 마을의 경우 마을 내 또는 마을 외곽에 물좋고 산좋은 곳을 선택하여 음풍농월을 즐기는 정자문화가 발달하였다.
    마을은 가족 단위의 집을 넘어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집단이다. 그러므로 마을은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마을 단위의 제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 제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크게 세 곳이다. 하나는 마을공동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동제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주로 뒷산 아래 산신당·서낭당과 경계공간의 상징 중심으로 행하여졌다. 이들 상징물은 공통으로 동신洞神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동신당의 성격을 지닌다. 이처럼 평소의 경계공간 상징물이 제의공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마을 비보를 위하여 세워진 장소이다. 물길을 관장하는 수구맥이와 마을 길목을 지키는 골맥이 등이다. 이것들은 마을을 지켜 주는 중요한 상징물이기 때문에 역시 제의 대상이 된다. 자연공간을 보완해 주는 상징물이 제의공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혈연공동체 산물로서의 유교 제의장소이다. 동성마을의 경우 마을 뒤 중앙에 모시는 사당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묘지나 각자 집에서 올리는 일반 제사도 제의 행위이나 이것은 마을 공동의 제의가 아니라 가족 단위의 개별 차원에 해당한다. 그러나 같은 성씨로 구성된 동성마을의 묘지 공간은 집단 제사를 통하여 역시 마을 공동의 제의공간으로 기능한다.
    사람이 만든 공간은 사람들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 그릇이 편리하고 쓰임새가 있기 위해서는 삶의 틀이 맞추어진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전통마을 공간에는 구성원들의 자연관, 생활양식, 세계관이라는 삶의 틀이 잘 구현되어 있다. 자연관은 마을 공간 전체에 반영되지만 특히 자연공간에 잘 반영되어 있다. 생활양식은 주거공간·경작공간·이동공간·놀이공간, 세계관은 경계공간·제의공간에 각각 특색 있게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을 긴밀하게 작동시키기 위하여 공동체 규약이 있었다. 특히 촌계는 지배층의 지배 이념이나 사족의 지방 지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기층민의 생활공동체로서 자생적인 필요성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마을의 자연관, 생활양식, 세계관을 유지시켜 준 마을 구성원들의 합의 산물이었다.

특징 및 의의

마을은 한반도 역사가 시작된 후 20세기 중반의 농업사회 시대까지 다수의 사람들이 거주해 온 생활공간이자 민속·의례·신앙 등 전통문화를 일궈 온 문화공간이었다. 20세기 후반부터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과 도시 중심의 지역개발로 인해 전통마을의 기능이 쇠락하고 있지만, 이 시점에서 한국의 전통마을이 담아내고 있는 삶의 지혜와 정신을 현대 감각으로 재창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본문에서 제시한 전통마을에 담긴 구성원들의 자연관, 생활양식, 세계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연환경과의 교감과 마을 구성원들의 공동체성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환경과의 교감 차원에서 풍수상의 입지 논리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마을 입지에 대한 보편 논리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공동체성 구현이라는 전통마을의 지혜는 현대 도시마을의 경우에도 원용될 필요가 있다. 농촌마을뿐만 아니라 도시마을의 공동체성 역시 중요한 과제이며, 도시마을에도 전통마을이 오랫동안 축적해 온 공동체성 구현을 위한 지혜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공간과 문화(이영진, 민속원, 2007), 굿의 사회사(주강현, 웅진출판, 1992), 마을신앙으로 보는 우리문화 이야기(이필영, 웅진닷컴, 1994), 마을의 입지와 모듬살이의 공간구성, 기층문화를 통해본 한국인의 상상체계-상(임재해, 민속원, 1998),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최원석, 한길사, 2014), 우리 국토전체와 각 지역1(임덕순, 법문사, 1992), 조선 후기 촌락민 조직과 촌계(박경하, 정신문화연구5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한국 전통마을의 공간구성 재론(김기덕, 역사민속학57, 역사민속학회, 2019).

마을

마을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김기덕(金起德)

정의

인간생활의 기본 구성인 가족 단위의 집들이 모여 제반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기초 사회 단위 집단.

개관

마을은 한자 뜻이 같은 촌, 촌락과 혼용된다. 취락은 가옥의 집적이라는 의미의 일반 용어이다. 그러므로 도시와 농촌에 모두 적용된다. 부락은 주로 일본에서 사용된 용어로, 그 영향을 받아 촌락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마을 용례는 매우 다양해서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지만 대체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기초 사회 단위로 이해되며, 주로 민속학에서 선호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마을은 발생 차원에서 자연촌·행정촌, 가옥의 밀집도에 따라 집촌集村·산촌散村, 주민들의 씨족 구성에 따라 동성마을·각성마을, 신분 구성에 따라 반촌班村·민촌民村·반상혼거촌班常混居村, 마을 크기에 따라 대촌·중촌·소촌, 생업 기반에 따라 농촌·어촌·산촌 등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될 수 있다.

내용

조선 후기 농촌의 전통마을 기본형을 그림으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자연공간(마을 입지 선택의 기본공간): 전통마을의 기본 입지는 무엇보다 자연환경 요소와 연관이 있다. 동서양 모두 인류는 산·구릉·강·바다와 같은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느 지역의 자연환경을 삶을 영위하는 장소로 택하여 마을이 형성될 경우 이 마을을 둘러싼 ‘자연환경’은 마을 공간구성의 한 요소로서 마을의 ‘자연공간’이 된다.
어떠한 자연환경을 마을 입지로 택하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례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그것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기본 조건에 마을 주변 좌우에 산자락이 있고, 조금 멀리 앞산도 있어 사방에서 산들이 마을을 아늑하게 감싸 주는 자연환경이 있는 공간이다. 여기에서 만약 배산임수의 뒷산이 북에서 남으로 오는 산줄기라면 자연스럽게 마을의 가옥들은 남향이 되어 더욱 선호하는 장소가 된다.
사례연구를 통한 이러한 마을의 입지 선택은 풍수 논리로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 풍수는 산 자의 주거지나 죽은 자의 무덤이나 모두 그 입지 조건의 기본은 사방四方으로 산의 보호 안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 사방에서 보호해 주는 산을 현무(뒷산), 주작(앞산), 청룡(왼쪽 산), 백호(오른쪽 산)라고 한다. 이를 총칭하여 사신사四神砂라고 한다. 사신사에서 핵심은 뒷산에 해당하는 현무이기 때문에 흔히 주산主山 또는 진산鎭山이라고 한다. 마을을 둘러싼 사신사는 그 조화 상태에 따라 우열이 매겨진다. 핵심 기준은 사방의 사신사가 마을을 향해 감싸는 형상이다. 예를 들어 왼쪽 청룡에 해당하는 산이 마을을 감싸지 못하고 밖으로 휘었을 경우는 물이 마을을 빠져나가는 수구水口가 열렸다고 하여 좋지 않게 본다. 그쪽 방향의 바람을 막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산에서 내려오는 좋은 마을의 기운도 담아내지 못하고, 물의 흐름도 마을을 감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은 산에서 만들어 낸다. 산이 마을을 감싸야 물도 마을을 감싸며 돌아 나가는 것이다.
한국 전통마을의 입지가 처음부터 풍수 논리로 선택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으로부터의 보호, 편안한 경관, 윤택한 생산 조건, 편리한 일상생활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마을 입지에 대한 오랫동안 누적된 인간의 지혜는 결국 풍수 입지 논리와 일치한다. 그 결과 풍수사상이 유행하면서 마을 입지와 풍수 논리가 더욱 자연스럽게 결합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유명한 반촌일수록 입향시조가 입향할 때 지리와 산수를 보고 입지를 선택하였다는 구전이나 문헌기록, 와우형臥牛形이니 행주형行舟形이니 하여 전국 마을에 널리 전승되고 있는 마을 물형론物形論의 존재, 마을을 보호해 주는 주변 산들이 다소 부족할 경우 행해지는 다양한 비보裨補 행위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인간은 필요하면 사막, 열대지대, 고산지대, 험지, 물위에서도 삶을 영위한다. 또는 다양한 종교 논리와 신념이 반영되어 특별한 곳에 모여 살거나, 외부의 지속된 침입을 방어해야 하는 어려운 조건하에서는 성벽 안에 모여 살기도 한다. 이처럼 삶의 여러 조건 속에서 마을 입지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가장 일반적인 마을 입지는 동서양 모두 배산임수와 좌우의 산과 앞산이 있는 곳을 택하였다. 이 경우 모든 나라의 마을 입지에 동양의 풍수 논리가 게재되었을 리 없다. 그러나 역시 마을 입지에 대한 인간의 오래된 경험의 지혜가 동일한 자연환경을 택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마을 입지 논리는 차별성보다 동일성이 훨씬 더 크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서양 마을을 답사하면 풍수의 입지 논리로 그 마을의 자연공간을 동일하게 해석할 수 있다.
한편 한국의 전통마을 자연공간에는 죽은 자의 묘지공간이 있었다. 주로 자연공간 내 마을로 내려오는 주산 아래 또는 좌우의 산능선(청룡, 백호) 또는 앞산에 묘지를 마련하였다. 동성마을의 경우 집안의 번영을 위하여 풍수에 맞는 명당을 찾아 마을과 떨어진 장소에 선산先山을 마련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이러한 묘지공간을 염두에 두고 마을의 자리를 잡기도 하였다. 또한 마을 뒷산이 내려오는 중요한 길목에 산신당, 입향시조入鄕始祖, 서낭당 등 마을 공동제사 대상물을 배치하기도 하였다. 동성마을의 경우 공동의 사당을 두기도 하였다.

주거공간 및 생업공간(자연공간 하에서 요청되는 필수 생존공간): 마을은 자연환경에서 선택된 자연공간 이외에 다양한 공간이 기능하고 있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마을을 구성하는 개별 가족의 일상 삶이 전개되는 주거공간과 가족의 삶을 유지시켜 주는 생업공간은 마을의 필수 생존공간이라 할 수 있다.
주거공간은 마을 성격에 따라, 그 구성원의 신분과 거주공간에 차이가 있다. 즉 앞에서 제시한 그림에서는 집을 똑같이 표시하였지만 반촌班村이나 동성마을의 경우와 그렇지 않은 마을은 당연히 전체 구성에서 양반집과 평민집 비율이 달랐다. 또한 동성마을의 경우 같은 성씨나 파 내에서도 혈연상의 상하 수직 구조를 반영하여 종가나 ‘큰집’은 마을의 높은 곳과 안쪽 중심선상에 배열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집의 배치는 자연공간의 경사도와 관계가 깊다. 뒷산의 경사가 완만하면 집을 산에 가깝게 붙이고, 급하면 산에서 거리를 두어 위치시킴으로써 산사태로 인한 재해를 방지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집의 좌향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좌坐는 집이 어디에 기대고 있는가, 향向은 집의 주축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를 각각 말한다. 이것은 출입문의 방향과는 관계가 없다. 모든 집의 형태는 앞과 뒤가 기본으로 있다. 집의 뒤가 좌이며 앞이 향이다. 오늘날의 아파트로 말하면 베란다 방향이 앞이다. 전통의 마을 입지가 배산임수라는 것은 집의 배치가 좌坐는 산山, 즉 높은 곳을 기댄다는 뜻이며 향向은 물, 즉 낮은 곳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흔히 마을 입지로 배산임수만 제시할 뿐 집의 좌향은 기본원칙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사례를 연구해보면 집의 배치는 기본적으로 높은 곳에 기대고[背山] 낮은 곳을 향함으로써[臨水], 사람들은 안정된 터전에서 가옥 앞으로 흐르는 시내 건너 펼쳐지는 앞산[案山]을 조망하는 경관 가치를 자연스럽게 향유해 왔다. 그런데 오늘날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농촌마을마저 이러한 기본 원칙이 남향南向만을 선호하는 가치관에 의해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앞에 제시한 그림에서 각각의 집들을 편의상 분리하여 그렸지만 실제로는 마을 안길을 따라 서로 접하면서 울타리 담장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울타리는 집과 집의 경계를 이루면서 마을 안길을 따라 집들을 이어 주는 동선 역할도 한다. 실제 어느 마을에 대한 느낌은 뒷산 배경하에 올망졸망한 초가와 ‘고래등 같다’는 양반 고택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으로도 구현되지만, 마을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안길을 따라 집과 집을 이어 주는 담장의 정겨움에서도 잘 나타난다. 개별 집들이 집 안 세계와 집 밖 세계를 구분해 주는 경계이자 연결점이라는 점에서, 마을 담장의 모습은 그 마을 구성원의 공동체성과 성정性情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거공간에는 집 이외에 효자비·열녀비와 같이 널리 알려야 할 시설물이 있기도 하며, 상을 당할 때 시신을 모시는 꽃가마를 두는 상여집 등 마을 공동소유물 보관 장소도 있었다. 앞의 그림에서 광장이라고 표시된 것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의 마을은 서양처럼 마을 한 가운데에 성당이 있고 그 앞에 광장이 조성되어 있는 구조는 아니다. 여기에서 광장이라고 표현한 것은 서양식의 명실상부한 광장이 아니라 필요시 공동의 논의가 전개되는 장소를 제시해 본 것이다. 지형상 항상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동의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우물터, 종가집이나 부잣집 큰마당터, 마을 가운데에 존재하는 당산목이 있는 곳 또는 공동마당 등은 비교적 많은 사람이 함께 할 수 있으므로 필요시 광장의 의미가 있다.
우리의 마을은 서양처럼 온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종교행사나 이를 정기 집행하는 교회가 없었고, 그로 인하여 교회 앞 광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필요한 기존 공간을 활용하여 공동체 논의를 하였다. 이와 함께 저녁에 때때로 전개되던 사랑방 문화가 있었다. 또한 우리의 마을 가옥은 건물 크기에 비하여 커다란 마당공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마당은 휴식·놀이·의례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며, 수시로 전개되던 소규모 마을 구성원 교류의 장이기도 하였다. 한편 민촌에서 지속해서 존재해 왔던 촌계村契는 자치 체제로 운영되면서 마을제사 및 마을의 중요 사항을 논의하여 시행되었다. 또한 노동공동체로서의 두레를 운용하였다는 점은 모두 한국형 광장문화의 실질적 구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이 하나의 모듬살이로서 지속성을 띠려면 생업을 영위할 수 있는 일터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생업공간 또한 필수 생존공간이었다. 그런데 가장 좋은 토지는 ‘문전옥답’이라는 표현처럼 본래 주거공간과 생업공간은 가까이 있을수록 좋다. 생업공간의 기본은 주거공간의 연장선에서 시작한다. 물론 어촌마을처럼 주거공간과 생업공간이 완전히 분리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농촌마을은 마을의 자연공간을 구성하는 뒷산과 좌·우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중심으로 농경지가 펼쳐진다. 그러나 마을 인구가 증가하거나 인간 능력이 확장될수록 생업공간은 마을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다. 어떠한 생업공간이라 하더라도 농업용수로서의 하천이나 최소한의 작은 시내가 있어야 한다. 시내가 부족한 경우 하천의 물을 경작지까지 끌어들이기 위하여 보洑를 설치해서 강물을 막고 봇도랑을 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관개시설 또한 생업공간에 포함된다. 또한 자연공간에 해당하는 뒷산은 땔감과 건축자재, 나물 등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생업공간 역할도 하였다.

이동공간 및 경계공간(마을 구성원 상호소통망에서 파생된 관계공간): 마을의 이동공간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지만 사실상 물의 속성과 같은 것이다. 물의 흐름은 직진성直進性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그 물이 돌아서 흘러가는 것은 자연 지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동공간인 길도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으로 가장 짧은 거리로 직진하도록 만들어지는 것이며,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일부러 길을 돌아가게 만들지는 않는다. 길을 돌아가는 이유는 역시 자연지형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 물길을 따라 사람이 힘을 덜 들이고 걸을 수 있는 구배가 연결되면서 길이 만들어진다. 만약 돌아가는 길이 너무 불편한 경우에는 물을 건너는 다리를 놓을 뿐이지 무리하게 지형을 훼손하며 빠른 길을 내지는 않았다. 간혹 지형을 무시하고 시간을 단축하는 지름길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정식 길이 아니었다. 이처럼 전통마을의 모든 공간은 자연을 인위로 거스르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설정되었다.
이동공간은 크게 주거공간 내의 안길, 주거공간에서 마을 입구까지의 진입길, 마을 입구부터 다른 마을을 이어 주는 외부도로인 큰 길로 나뉜다. 모든 길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지세의 영향을 받으며, 그러한 지세에 맞춘 길에 따라 주거공간 집들의 배열 상태가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또한 자연지세에 맞추면서도 집의 위상, 집들 간의 관계, 마을 상징물의 위치, 경작지의 영역 등에 의하여 다양한 길의 모습이 형성된다. 특히 동성마을의 경우 큰 길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주 통로가 되는 길은 마을의 중심되는 집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경계공간은 다른 마을과 구별되는 공간으로, 이동공간인 길과 관련되어 있음을 기본으로 한다. 마을의 핵심 경계공간은 마을 입구의 길가이다. 마을 입구에 문門이 있는 일본의 마을과는 달리 우리의 마을은 문이 따로 없다. 그 대신 마을 입구의 장승, 당산목, 정자 등이 그 역할을 한다. 마을의 경계공간은 지리상의 경계 개념과 다르다. 지리상의 경계공간은 산과 강, 큰길 등이 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마을 입구의 경계공간 상징물들은 다른 마을과 구분되는 관념의 존재물이다. 따라서 그 경계는 지리상의 선線이 아닌 점點으로 존재하며, 결국 그 점點에서 제의 의식을 통해 마을 전체로 확산되는 장場의 개념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휴식공간인 정자를 제외하면 마을의 경계공간 상징물들은 관념상의 상징물이 아니라 대부분 그대로 동제에서 제의 대상이 된다. 또한 상제에서도 마을에는 상징물인 울타리가 있어 상여가 나갈 때 울타리가 상징하는 한계 지점에서 노제를 지내고 죽은 이를 위로한다. 노제는 마을 입구나 약간 떨어진 적당한 장소에 상여를 내려놓은 다음 망자의 마지막 길을 애도한다. 그리고 상여를 뒤따르던 부녀자들은 노제를 끝으로 마을 끝을 상징하는 경계 밖으로 더 이상 따라가지 않는다. 이처럼 경계공간의 상징물들은 점으로 존재하면서도 다른 마을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항상 제의 행위의 대상이 되면서 그 제의를 통하여 마을 전체 공간 속으로 관념적 세계관을 공유한다. 또한 당산제를 거행할 때 풍물패가 마을 둘레를 돌거나, 줄다리기를 행하기 전후에 어깨에 줄을 메고 마을 주변을 돌았다. 이는 마을의 외곽 둘레도 다른 마을과 구별되는, 일종의 경계공간임을 마을 사람들이 인식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놀이공간 및 제의공간(장場의 개념으로 확산되는 가변공간): 놀이공간 및 제의공간은 교회나 광장을 둔 서양과 달리 고정공간이 아닌 가변공간이라는 특성이 있다. 산과 강, 들이 모두 놀이공간으로 전환될 뿐만 아니라 주거공간이나 이동공간은 물론 생업공간과 제의공간도 필요에 따라 놀이공간으로 바뀐다는 점에서 마을의 모든 공간이 놀이공간으로 이용될 수 있다.
먼저 아이들은 시간과 계절에 맞추어 마당·골목길·텃논·강변, 심지어 동구 밖과 묘지 주변까지 놀이터로 활용한다. 생업공간을 담당하는 어른들은 세시풍속과 명절, 혼례날에 맞추어 노동과 대비되는 휴식과 놀이를 즐긴다. 그리고 그 장소 역시 마을의 모든 공간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명절 풍물놀이를 할 때 마당과 골목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풍물을 친다. 두레패가 풍물을 치면서 일터로 나가며, 일터에서나 일터에서 돌아올 때도 풍물을 치고 놀이판을 벌인다. 일터인 생업공간이 곧 놀이공간으로 바뀐다.
때로는 마을을 감아 도는 하천의 경우 경관이 수려하면 단순한 농업용수 범주를 넘어 놀이공간으로 적극 전환된다. 하회마을의 경우 휘감아 도는 물을 화천花川이라 하여 ‘꽃내’로 인식하고 ‘줄불놀이’로 알려진 뱃놀이를 즐겼다. 또한 놀이공간은 자기 마을을 넘어 다른 마을로까지 확산되기도 하였다. 마을끼리 겨루는 집단 놀이가 두 마을의 경계표로 인식되는 강이나 시내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거나 산고개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기도 하였다.
한편 놀이공간과 관련하여 정자가 주목된다. 마을 입구에 있는 마을 구성원 전체의 휴식공간으로서의 정자 외에, 선비들이 많이 있던 마을의 경우 마을 내 또는 마을 외곽에 물좋고 산좋은 곳을 선택하여 음풍농월을 즐기는 정자문화가 발달하였다.
마을은 가족 단위의 집을 넘어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집단이다. 그러므로 마을은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마을 단위의 제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 제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크게 세 곳이다. 하나는 마을공동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동제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주로 뒷산 아래 산신당·서낭당과 경계공간의 상징 중심으로 행하여졌다. 이들 상징물은 공통으로 동신洞神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동신당의 성격을 지닌다. 이처럼 평소의 경계공간 상징물이 제의공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마을 비보를 위하여 세워진 장소이다. 물길을 관장하는 수구맥이와 마을 길목을 지키는 골맥이 등이다. 이것들은 마을을 지켜 주는 중요한 상징물이기 때문에 역시 제의 대상이 된다. 자연공간을 보완해 주는 상징물이 제의공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혈연공동체 산물로서의 유교 제의장소이다. 동성마을의 경우 마을 뒤 중앙에 모시는 사당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묘지나 각자 집에서 올리는 일반 제사도 제의 행위이나 이것은 마을 공동의 제의가 아니라 가족 단위의 개별 차원에 해당한다. 그러나 같은 성씨로 구성된 동성마을의 묘지 공간은 집단 제사를 통하여 역시 마을 공동의 제의공간으로 기능한다.
사람이 만든 공간은 사람들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 그릇이 편리하고 쓰임새가 있기 위해서는 삶의 틀이 맞추어진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전통마을 공간에는 구성원들의 자연관, 생활양식, 세계관이라는 삶의 틀이 잘 구현되어 있다. 자연관은 마을 공간 전체에 반영되지만 특히 자연공간에 잘 반영되어 있다. 생활양식은 주거공간·경작공간·이동공간·놀이공간, 세계관은 경계공간·제의공간에 각각 특색 있게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을 긴밀하게 작동시키기 위하여 공동체 규약이 있었다. 특히 촌계는 지배층의 지배 이념이나 사족의 지방 지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기층민의 생활공동체로서 자생적인 필요성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마을의 자연관, 생활양식, 세계관을 유지시켜 준 마을 구성원들의 합의 산물이었다.

특징 및 의의

마을은 한반도 역사가 시작된 후 20세기 중반의 농업사회 시대까지 다수의 사람들이 거주해 온 생활공간이자 민속·의례·신앙 등 전통문화를 일궈 온 문화공간이었다. 20세기 후반부터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과 도시 중심의 지역개발로 인해 전통마을의 기능이 쇠락하고 있지만, 이 시점에서 한국의 전통마을이 담아내고 있는 삶의 지혜와 정신을 현대 감각으로 재창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본문에서 제시한 전통마을에 담긴 구성원들의 자연관, 생활양식, 세계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연환경과의 교감과 마을 구성원들의 공동체성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환경과의 교감 차원에서 풍수상의 입지 논리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마을 입지에 대한 보편 논리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공동체성 구현이라는 전통마을의 지혜는 현대 도시마을의 경우에도 원용될 필요가 있다. 농촌마을뿐만 아니라 도시마을의 공동체성 역시 중요한 과제이며, 도시마을에도 전통마을이 오랫동안 축적해 온 공동체성 구현을 위한 지혜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공간과 문화(이영진, 민속원, 2007), 굿의 사회사(주강현, 웅진출판, 1992), 마을신앙으로 보는 우리문화 이야기(이필영, 웅진닷컴, 1994), 마을의 입지와 모듬살이의 공간구성, 기층문화를 통해본 한국인의 상상체계-상(임재해, 민속원, 1998),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최원석, 한길사, 2014), 우리 국토전체와 각 지역1(임덕순, 법문사, 1992), 조선 후기 촌락민 조직과 촌계(박경하, 정신문화연구5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한국 전통마을의 공간구성 재론(김기덕, 역사민속학57, 역사민속학회,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