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김지민(金知民)

정의

남해와 서해 도서지역 민가안채에 속한 독립된 단위 공간(실)으로, 주로 곡물을 보관하는 광의 기능과 함께 제례 기능을 하던 공간.

내용

남해와 서해 도서지역은 역사상 임진왜란 이후 입도조入島祖에 의하여 새롭게 구성된 곳이다. 그 시기는 17~18세기이다. 입도인의 전 거주지는 현재의 전라남도 영암, 해남, 장흥 등 인근 내륙이었다. 그 전에도 왜구의 침략으로 정부가 섬 거주민들을 본토로 이주시키는 공도정책을 여러 번 펴는 바람에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 많았다. 따라서 현존하는 남해와 서해 도서지역 민가의 역사 역시 그 시기부터 시작된 셈이다.

‘마리’ 또는 ‘마래’는 ‘마루’의 남·서해 도서지역 방언이다. 마룻바닥이 나무이든 흙이든 상관없이 도서 지역에서는 마리(마래)라고 부른다. 대체로 규모가 작고 영세한 가옥의 경우는 마리가 흙바닥으로 되어 있다. 마리는 가옥 규모와 관계없이 남해와 서해 모든 민가에서 설치하였다. 3실 구조로 된 소규모 가옥의 경우 내륙에서는 보통 부엌 하나에 거주용 방 두 개를 두었지만 도서지역 민가에서는 방을 하나만 두더라도 꼭 마리를 설치하였다. 그만큼 마리의 가치를 방보다 높게 본 것이다.

마리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이다. 마리는 내륙지역의 안채 한쪽 구석에 위치한 광과 같은 수장收藏 기능을 한다. 내륙지역의 가옥에 보통 설치되는 마루 구조의 ‘대청’과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이곳에는 곡물을 넣은 다소 큰 항아리를 벽선에 따라 1열로 놓고 다시 그 위로 대개 잡곡 등이 담긴 작은 항아리를 얹는다. 이외에도 각종 살림도구, 자주 쓰이지 않는 부엌기구, 제사용구 등을 벽에 걸어 두거나 시렁 위에 얹어 둔다. 즉 마리는 곡식부터 집안의 각종 생활용구까지 보관하는 수장 기능을 하는 공간이다.

수장 기능 외에 조상 숭배의 실천을 보여 주는 제례 공간으로도 활용되었다. 이곳에 사대부 가옥의 사당과 같이 조상의 위패봉안하고 제사도 지냈다. 즉 장소와 행위가 일원화되었다. 이는 사당에는 위패만 봉안하고 제례는 안채의 대청에서 지내는, 즉 장소와 행위가 이원화된 내륙의 사대부 가옥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위패는 실 후면 벽에 선반을 설치하고 그 위에 ‘독’을 안치한다. 가옥에 따라 감실장龕室藏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사대봉사가 원칙인 내륙의 사대부 가옥과 달리 조상 신위는 2대 내지 3대까지만 모셨다.

마리는 집의 수호신인 성주를 모시는 공간도 된다. 즉 종도리 밑에 성주가 모셔져 있다. 작은 대나무 가지에 한지를 접어서 꿰어 달고, 거기에 마른 명태를 달아 놓기도 한다. 새로 집을 지었거나 새로 이사하였을 때 이 성주신을 모셔야만 집안이 순탄하고 풍요롭게 된다고 믿었다. 이 성주신을 모시는 의례가 곧 ‘성주올리기’라는 굿이다. 이런 의례는 집이라는 것이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 세계관이 얽힌 문화 공간임을 말해 준다.

특징 및 의의

마리는 규모와 관계없이 남해와 서해 모든 도서지역 민가안채에 꾸며진 독특한 공간이다. 가옥의 머리에 해당하는 위쪽에 마리를 두었다. 즉 ‘마리’ 위로는 어떠한 실도 배치하지 않는 공간의 위계 질서를 지켰다. 지극히 유교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민가건축 규범으로 내륙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없다. 이상의 사실로 볼 때 마리는 유교사회에서 제의 의식을 담당하던 장소로서 그 공간의 의미가 어느 공간 못지않게 크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19세기 한국 남서해 도서 지역 민가의 유형적 체계(김지민, 건축역사연구1-1, 한국건축역사학회, 1992), 남서해 도서민가의 마리 공간 연구(김지민, 건축역사연구20-6, 한국건축역사학회, 2011), 남서해 도서지역의 전통가옥·마을(김지민, 전라남도·목포대학교박물관, 1989).

마리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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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김지민(金知民)

정의

남해와 서해 도서지역 민가의 안채에 속한 독립된 단위 공간(실)으로, 주로 곡물을 보관하는 광의 기능과 함께 제례 기능을 하던 공간.

내용

남해와 서해 도서지역은 역사상 임진왜란 이후 입도조入島祖에 의하여 새롭게 구성된 곳이다. 그 시기는 17~18세기이다. 입도인의 전 거주지는 현재의 전라남도 영암, 해남, 장흥 등 인근 내륙이었다. 그 전에도 왜구의 침략으로 정부가 섬 거주민들을 본토로 이주시키는 공도정책을 여러 번 펴는 바람에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 많았다. 따라서 현존하는 남해와 서해 도서지역 민가의 역사 역시 그 시기부터 시작된 셈이다.

‘마리’ 또는 ‘마래’는 ‘마루’의 남·서해 도서지역 방언이다. 마룻바닥이 나무이든 흙이든 상관없이 도서 지역에서는 마리(마래)라고 부른다. 대체로 규모가 작고 영세한 가옥의 경우는 마리가 흙바닥으로 되어 있다. 마리는 가옥 규모와 관계없이 남해와 서해 모든 민가에서 설치하였다. 3실 구조로 된 소규모 가옥의 경우 내륙에서는 보통 부엌 하나에 거주용 방 두 개를 두었지만 도서지역 민가에서는 방을 하나만 두더라도 꼭 마리를 설치하였다. 그만큼 마리의 가치를 방보다 높게 본 것이다.

마리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이다. 마리는 내륙지역의 안채 한쪽 구석에 위치한 광과 같은 수장收藏 기능을 한다. 내륙지역의 가옥에 보통 설치되는 마루 구조의 ‘대청’과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이곳에는 곡물을 넣은 다소 큰 항아리를 벽선에 따라 1열로 놓고 다시 그 위로 대개 잡곡 등이 담긴 작은 항아리를 얹는다. 이외에도 각종 살림도구, 자주 쓰이지 않는 부엌기구, 제사용구 등을 벽에 걸어 두거나 시렁 위에 얹어 둔다. 즉 마리는 곡식부터 집안의 각종 생활용구까지 보관하는 수장 기능을 하는 공간이다.

수장 기능 외에 조상 숭배의 실천을 보여 주는 제례 공간으로도 활용되었다. 이곳에 사대부 가옥의 사당과 같이 조상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도 지냈다. 즉 장소와 행위가 일원화되었다. 이는 사당에는 위패만 봉안하고 제례는 안채의 대청에서 지내는, 즉 장소와 행위가 이원화된 내륙의 사대부 가옥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위패는 실 후면 벽에 선반을 설치하고 그 위에 ‘독’을 안치한다. 가옥에 따라 감실장龕室藏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사대봉사가 원칙인 내륙의 사대부 가옥과 달리 조상 신위는 2대 내지 3대까지만 모셨다.

마리는 집의 수호신인 성주를 모시는 공간도 된다. 즉 종도리 밑에 성주가 모셔져 있다. 작은 대나무 가지에 한지를 접어서 꿰어 달고, 거기에 마른 명태를 달아 놓기도 한다. 새로 집을 지었거나 새로 이사하였을 때 이 성주신을 모셔야만 집안이 순탄하고 풍요롭게 된다고 믿었다. 이 성주신을 모시는 의례가 곧 ‘성주올리기’라는 굿이다. 이런 의례는 집이라는 것이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 세계관이 얽힌 문화 공간임을 말해 준다.

특징 및 의의

마리는 규모와 관계없이 남해와 서해 모든 도서지역 민가의 안채에 꾸며진 독특한 공간이다. 가옥의 머리에 해당하는 위쪽에 마리를 두었다. 즉 ‘마리’ 위로는 어떠한 실도 배치하지 않는 공간의 위계 질서를 지켰다. 지극히 유교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민가건축 규범으로 내륙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없다. 이상의 사실로 볼 때 마리는 유교사회에서 제의 의식을 담당하던 장소로서 그 공간의 의미가 어느 공간 못지않게 크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19세기 한국 남서해 도서 지역 민가의 유형적 체계(김지민, 건축역사연구1-1, 한국건축역사학회, 1992), 남서해 도서민가의 마리 공간 연구(김지민, 건축역사연구20-6, 한국건축역사학회, 2011), 남서해 도서지역의 전통가옥·마을(김지민, 전라남도·목포대학교박물관,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