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장필구(張弼求)

정의

건물 대지의 경계 또는 시설물 주위의 일정한 공간을 둘러막기 위하여 흙, 돌, 벽돌 따위로 쌓아 올린 낮은 구축물.

개관

담장은 집을 보호하는 중요한 구조물이다. 고대에는 큰 짐승을 막기 위하여 울타리가 필요하였지만, 거주 인구가 늘어나고 취락이 커지면서 울타리는 가족공동체의 영역을 지키는 구조물로 발전하였다. 조선의 실학자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는 백성들에게 울타리 꾸미는 방법을 가르치고 울타리가 갖추어야 할 조건도 제시하였다. ‘사흘 굶어서 담 안 넘을 놈 없다’ 또는 ‘담 너머 불구경 하듯 한다’라는 속담은 담장의 높이가 몇 척에 불과할지라도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을 구분하는 사회적, 지리적 경계가 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내용

담장은 원장垣墻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담이라고도 불린다. 담은 대체로 흙, 벽돌, 돌, 널판 등으로 축조하는데, 경미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담장 내부가 들여다보이게 만들어진 것을 울타리, 울 또는 책柵이라고 한다. 담장의 역할은 일정한 공간을 둘러막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고,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차단하여 공간을 서로 다른 성격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는 담과 벽을 아울러 ‘장벽墻壁’이라고 하였다. 내외를 구분하고 내부를 보호하는 기능의 담과 벽을 동일한 건축 요소로 간주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동시에 담장에 표현되는 소박하거나 화사한 장식성은 담장을 지은 사람이 이웃이나 방문객들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장소와 경관을 고려하였음을 보여 준다.

『고려사高麗史』 권13 「세가世家」에서 궁궐에 높은 담장이 있는 사치스러운 화원을 조성하였다가 없앴다는 기록, 1503년(연산군 9) 2월 8일에 경복궁과 창덕궁의 안 담장을 모두 높게 쌓도록 명한 것은 궁궐 밖 불초不肖한 사람이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하기 위함이라는 기록이 있다. 궁궐 안에 높이 쌓은 담장이라는 공통의 내용은 담장이 일정한 높이를 물리적으로 확보하여 내부를 보호하는 차단막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 국내에서 담장에 대한 기록으로 가장 이른 사료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옥사조屋舍條로 알려져 있다. 옥사조에서는 신라시대 사회적 신분에 따라 주택의 규모와 위계를 제한하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현재의 건축 관련 규정에 비하면 적은 분량이지만, 당시 건축물 중요 부위의 규모와 장식 등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 구성의 세세한 이해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음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이 중 담장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옥사조 속 담장 규정에는 첫째, 신분에 따라 담장의 높이, 담장 상단 지붕장식의 유형, 담장표면의 회칠 여부가 반영되어 있다. 담장의 높이는 일반 백성부터 사두품까지, 오두품, 육두품에 따라 6척, 7척, 8척 높이로 제한된 반면 진골과 성골은 높이 제한이 없다. 일차적으로 담장의 위계는 높이가 중요하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으며, 돌이나 벽돌을 쌓아서 만드는 조적조 담장의 특성상 높이와 두께가 비례한다는 점에서 위계가 높을수록 높고 두꺼운 담장을 설치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둘째, 담장 상단에는 건물의 지붕과 유사한 시설을 신분에 따라 다르게 설치하였다. 성골은 제한이 없기 때문에 담장과 직교하는 양粱과 담장과 평행하는 동棟이 함께 사용된 지붕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진골과 육두품은 양으로만 구성된 지붕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오두품 이하는 양과 동이 전혀 없이 담장을 마무리하였다. 마지막으로 담장의 벽면을 미려하게 만드는 회칠 마감은 성골에게만 허락되었다. 회칠의 재료가 되는 석회는 손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골 이외에는 담장을 구성하는 재료가 그대로 노출되는 방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담장은 주로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서 흙으로 쌓은 토담[土墻], 벽돌로 쌓은 벽돌담[壁乭墻], 전돌로 쌓은 전돌담[塼墻], 돌로 쌓은 돌담[石墻], 사고석으로 쌓은 사고석담[四塊石墻], 막 생긴 돌[雜石]로 쌓은 막돌담, 목재 널로 막은 판장板墻 그리고 나무줄기를 엮어 세워 만든 울타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토담은 널판으로 틀을 만들고 그 사이에 진흙, 짚 등의 여물, 석회를 섞은 흙반죽을 눌러 쌓은 담으로 농촌주택에 많이 남아 있다.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널판의 경계선이 토벽면에 고스란히 남는다고 해서 ‘판담’이라 부르기도 한다.

벽돌담과 전돌담은 각각 벽돌과 전돌을 쌓아 만든 담장이다. 벽돌과 전돌은 모두 일정한 크기로 흙을 빚은 뒤 높은 열로 구워서 만드는 건축재료로 전문적인 생산과정을 필요로 한다. 벽돌과 전돌은 형태와 사용방식에서는 유사하지만, 전돌은 백제 고분에 사용될 만큼 역사가 오래된 전통 건축자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벽돌은 일정한 크기와 색상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담장면에 문양 디자인을 적용하기에 유리하다. 돌담은 돌을 쌓아 만든 담장인데, 크고 작은 막돌들을 허튼층쌓기로 쌓으면 막돌담이 되고, 비슷한 크기의 돌을 바른층쌓기로 정렬하면 돌담이 된다.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소소하게 다듬어서 만든 담장을 ‘토석담’이라고도 하며, 흙을 전혀 쓰지 않고 돌만 쌓은 담은 ‘강담’이라고 한다. 돌의 크기를방 한 뼘 정도의 정방형으로 반듯하게 다듬어서 쌓으면 사고석담이 된다. 사고석은 돌이 담장 깊숙이 박혀 있게 하기 위해서 몸체를 길게 다듬으며, 돌끼리 맞댄 면에는 삼화토를 빚어 넣고 돌 표면보다 높게 돌출시켜서 화장줄눈으로 꾸민다. 바닥에 굵은 돌을 놓고 위로 가면서 줄눈 없이 작은 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담장을 ‘돌각담’이라고 하는데, 제주도 민가에서 주로 보이는 유형이다.

판장은 널판을 켜는 제재술이 발달한 이후 도시주택에 쓰인 담장으로, 통나무 기둥을 세우고 띠장을 건너지른 뒤 세로널을 붙여서 만든다. 기둥은 6자(약 1.8m) 정도 간격으로 세우는데, 한두 칸 정도를 건너 버팀기둥을 추가로 세워서 풍력 등의 외력에 대비한다. 세로널을 횡방향으로 고정하는 띠장은 1.5~2치(4.5~6㎝)의 각재를 상하 1.5~2자(45~60㎝) 간격으로 못을 박아 고정한다. 목재용 방부재가 없던 시절에는 기둥 밑동을 불에 태워 지중에 묻었으며 널판은 불에 그슬어 박아 댔다. 울타리는 나뭇가지·풀대·싸리나무·수수깡 등 여러 가지 식물재료를 짜서 경계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농촌이나 산간의 주택에서 널리 사용해 왔다. 한자어로는 이락籬落·파리巴籬·번리藩籬·바자울[笆子籬] 등이라고 한다. 특히 나무를 직접 심어 그 나무 자체가 하나의 울타리 구실을 하게 하는 경우는 생울이라고 한다.

담장은 세운 위치와 규모에 따라서 세분화될 수 있다. 돌을 안팎 담장면에 마주 놓아 쌓은 보통의 돌담을 ‘맞담’이라고 한다. 안팎을 동시에 쌓아 올린 협축기법夾築技法을 사용하여 안과 밖이 서로 닮은 벽면이 만들어진다. 화방장과 같이 담장면의 한쪽에만 쌓고 뒤는 다르게 한 것을 ‘홑담’이라 하고, 축대 등의 표면을 싸 바른 담장으로 내구성과 기능을 위주로 조성한 것을 ‘외담’이라 한다. 궁궐 주위에 둘러쌓은 높은 담장을 궁장宮墻이라고 하며, 왕릉의 봉분 주변에 쌓은 반원형의 담장은 곡장曲墻이라고 한다. 안채와 바깥채 사이 또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막아 쌓은 담을 샛담[間墻]이라 하며, 주택의 바깥대문에서 내실이 들여다보이는 것을 막기 위하여 쌓은 장식담을 차면담[遮面墻], 면장 또는 조장照墻이라 한다. 낮은 담은 단장短墻 또는 반담[半墻]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담장 윗부분의 지붕 재료를 이엉이나 기와 등으로 다르게 사용할 수도 있으나, 이를 기준으로 담장을 구분하지는 않는다. 다만 『임원경제지』에서는 담장을 덮는 지붕의 길이는 담장 두께보다 1~2척을 더 길게 하고 양 끝을 가지런하게 하며, 빗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도록 지붕을 기울이거나 겹쳐지게 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특징 및 의의

우리나라 담장은 건축주의 신분에 따라 재료와 축조방법이 달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서민층 주택에서는 울타리·토담·돌담과 같은 자연 재료가 그대로 드러나는 담장을 축조하는 반면, 중상류층 주택이나 궁궐에서는 사고석담·벽돌담·화초담과 같이 가공된 자재가 사용되고 전문 인력이 참여하여 담장을 축조한다. 담의 높이도 서민주택에 비하여 상류주택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또한 담의 지붕도 주거공간의 몸채가 초가지붕이면 초가지붕으로, 기와지붕이면 기와지붕으로 조성하는 현상은 담장 역시 주택의 일부로서 사용자의 사회적 위상을 표현함을 보여 준다.

서민주택의 담장은 집터의 경계에 안과 밖을 구별할 목적으로 쌓는 성격이 강한 반면, 상류 주택이나 궁궐에서는 외부에 대한 방어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담이 경사지에 건축될 때는 담의 윗면과 지붕이 경사면을 따라 나란히 축조되는 것이 아니라 단段을 만들며 축조되는 것이 특색으로 율동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 주고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三國史記, 林園經濟志, 朝鮮王朝實錄, 빛깔있는 책들21-꽃담(조정현, 대원사, 1995), 한국건축대계2-벽돌(장기인, 보성각, 1997), 한국건축대계4-신편 한국건축사전(장기인, 보성각, 1998), 한국건축대계5-목조(장기인, 보성각, 2001), 한국의 살림집(신영훈, 열화당, 197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

담장

담장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장필구(張弼求)

정의

건물 대지의 경계 또는 시설물 주위의 일정한 공간을 둘러막기 위하여 흙, 돌, 벽돌 따위로 쌓아 올린 낮은 구축물.

개관

담장은 집을 보호하는 중요한 구조물이다. 고대에는 큰 짐승을 막기 위하여 울타리가 필요하였지만, 거주 인구가 늘어나고 취락이 커지면서 울타리는 가족공동체의 영역을 지키는 구조물로 발전하였다. 조선의 실학자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는 백성들에게 울타리 꾸미는 방법을 가르치고 울타리가 갖추어야 할 조건도 제시하였다. ‘사흘 굶어서 담 안 넘을 놈 없다’ 또는 ‘담 너머 불구경 하듯 한다’라는 속담은 담장의 높이가 몇 척에 불과할지라도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을 구분하는 사회적, 지리적 경계가 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내용

담장은 원장垣墻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담이라고도 불린다. 담은 대체로 흙, 벽돌, 돌, 널판 등으로 축조하는데, 경미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담장 내부가 들여다보이게 만들어진 것을 울타리, 울 또는 책柵이라고 한다. 담장의 역할은 일정한 공간을 둘러막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고,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차단하여 공간을 서로 다른 성격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는 담과 벽을 아울러 ‘장벽墻壁’이라고 하였다. 내외를 구분하고 내부를 보호하는 기능의 담과 벽을 동일한 건축 요소로 간주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동시에 담장에 표현되는 소박하거나 화사한 장식성은 담장을 지은 사람이 이웃이나 방문객들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장소와 경관을 고려하였음을 보여 준다.

『고려사高麗史』 권13 「세가世家」에서 궁궐에 높은 담장이 있는 사치스러운 화원을 조성하였다가 없앴다는 기록, 1503년(연산군 9) 2월 8일에 경복궁과 창덕궁의 안 담장을 모두 높게 쌓도록 명한 것은 궁궐 밖 불초不肖한 사람이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하기 위함이라는 기록이 있다. 궁궐 안에 높이 쌓은 담장이라는 공통의 내용은 담장이 일정한 높이를 물리적으로 확보하여 내부를 보호하는 차단막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 국내에서 담장에 대한 기록으로 가장 이른 사료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옥사조屋舍條로 알려져 있다. 옥사조에서는 신라시대 사회적 신분에 따라 주택의 규모와 위계를 제한하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현재의 건축 관련 규정에 비하면 적은 분량이지만, 당시 건축물 중요 부위의 규모와 장식 등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 구성의 세세한 이해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음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이 중 담장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옥사조 속 담장 규정에는 첫째, 신분에 따라 담장의 높이, 담장 상단 지붕장식의 유형, 담장표면의 회칠 여부가 반영되어 있다. 담장의 높이는 일반 백성부터 사두품까지, 오두품, 육두품에 따라 6척, 7척, 8척 높이로 제한된 반면 진골과 성골은 높이 제한이 없다. 일차적으로 담장의 위계는 높이가 중요하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으며, 돌이나 벽돌을 쌓아서 만드는 조적조 담장의 특성상 높이와 두께가 비례한다는 점에서 위계가 높을수록 높고 두꺼운 담장을 설치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둘째, 담장 상단에는 건물의 지붕과 유사한 시설을 신분에 따라 다르게 설치하였다. 성골은 제한이 없기 때문에 담장과 직교하는 양粱과 담장과 평행하는 동棟이 함께 사용된 지붕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진골과 육두품은 양으로만 구성된 지붕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오두품 이하는 양과 동이 전혀 없이 담장을 마무리하였다. 마지막으로 담장의 벽면을 미려하게 만드는 회칠 마감은 성골에게만 허락되었다. 회칠의 재료가 되는 석회는 손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골 이외에는 담장을 구성하는 재료가 그대로 노출되는 방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담장은 주로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서 흙으로 쌓은 토담[土墻], 벽돌로 쌓은 벽돌담[壁乭墻], 전돌로 쌓은 전돌담[塼墻], 돌로 쌓은 돌담[石墻], 사고석으로 쌓은 사고석담[四塊石墻], 막 생긴 돌[雜石]로 쌓은 막돌담, 목재 널로 막은 판장板墻 그리고 나무줄기를 엮어 세워 만든 울타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토담은 널판으로 틀을 만들고 그 사이에 진흙, 짚 등의 여물, 석회를 섞은 흙반죽을 눌러 쌓은 담으로 농촌주택에 많이 남아 있다.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널판의 경계선이 토벽면에 고스란히 남는다고 해서 ‘판담’이라 부르기도 한다.

벽돌담과 전돌담은 각각 벽돌과 전돌을 쌓아 만든 담장이다. 벽돌과 전돌은 모두 일정한 크기로 흙을 빚은 뒤 높은 열로 구워서 만드는 건축재료로 전문적인 생산과정을 필요로 한다. 벽돌과 전돌은 형태와 사용방식에서는 유사하지만, 전돌은 백제 고분에 사용될 만큼 역사가 오래된 전통 건축자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벽돌은 일정한 크기와 색상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담장면에 문양 디자인을 적용하기에 유리하다. 돌담은 돌을 쌓아 만든 담장인데, 크고 작은 막돌들을 허튼층쌓기로 쌓으면 막돌담이 되고, 비슷한 크기의 돌을 바른층쌓기로 정렬하면 돌담이 된다.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소소하게 다듬어서 만든 담장을 ‘토석담’이라고도 하며, 흙을 전혀 쓰지 않고 돌만 쌓은 담은 ‘강담’이라고 한다. 돌의 크기를방 한 뼘 정도의 정방형으로 반듯하게 다듬어서 쌓으면 사고석담이 된다. 사고석은 돌이 담장 깊숙이 박혀 있게 하기 위해서 몸체를 길게 다듬으며, 돌끼리 맞댄 면에는 삼화토를 빚어 넣고 돌 표면보다 높게 돌출시켜서 화장줄눈으로 꾸민다. 바닥에 굵은 돌을 놓고 위로 가면서 줄눈 없이 작은 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담장을 ‘돌각담’이라고 하는데, 제주도 민가에서 주로 보이는 유형이다.

판장은 널판을 켜는 제재술이 발달한 이후 도시주택에 쓰인 담장으로, 통나무 기둥을 세우고 띠장을 건너지른 뒤 세로널을 붙여서 만든다. 기둥은 6자(약 1.8m) 정도 간격으로 세우는데, 한두 칸 정도를 건너 버팀기둥을 추가로 세워서 풍력 등의 외력에 대비한다. 세로널을 횡방향으로 고정하는 띠장은 1.5~2치(4.5~6㎝)의 각재를 상하 1.5~2자(45~60㎝) 간격으로 못을 박아 고정한다. 목재용 방부재가 없던 시절에는 기둥 밑동을 불에 태워 지중에 묻었으며 널판은 불에 그슬어 박아 댔다. 울타리는 나뭇가지·풀대·싸리나무·수수깡 등 여러 가지 식물재료를 짜서 경계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농촌이나 산간의 주택에서 널리 사용해 왔다. 한자어로는 이락籬落·파리巴籬·번리藩籬·바자울[笆子籬] 등이라고 한다. 특히 나무를 직접 심어 그 나무 자체가 하나의 울타리 구실을 하게 하는 경우는 생울이라고 한다.

담장은 세운 위치와 규모에 따라서 세분화될 수 있다. 돌을 안팎 담장면에 마주 놓아 쌓은 보통의 돌담을 ‘맞담’이라고 한다. 안팎을 동시에 쌓아 올린 협축기법夾築技法을 사용하여 안과 밖이 서로 닮은 벽면이 만들어진다. 화방장과 같이 담장면의 한쪽에만 쌓고 뒤는 다르게 한 것을 ‘홑담’이라 하고, 축대 등의 표면을 싸 바른 담장으로 내구성과 기능을 위주로 조성한 것을 ‘외담’이라 한다. 궁궐 주위에 둘러쌓은 높은 담장을 궁장宮墻이라고 하며, 왕릉의 봉분 주변에 쌓은 반원형의 담장은 곡장曲墻이라고 한다. 안채와 바깥채 사이 또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막아 쌓은 담을 샛담[間墻]이라 하며, 주택의 바깥대문에서 내실이 들여다보이는 것을 막기 위하여 쌓은 장식담을 차면담[遮面墻], 면장 또는 조장照墻이라 한다. 낮은 담은 단장短墻 또는 반담[半墻]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담장 윗부분의 지붕 재료를 이엉이나 기와 등으로 다르게 사용할 수도 있으나, 이를 기준으로 담장을 구분하지는 않는다. 다만 『임원경제지』에서는 담장을 덮는 지붕의 길이는 담장 두께보다 1~2척을 더 길게 하고 양 끝을 가지런하게 하며, 빗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도록 지붕을 기울이거나 겹쳐지게 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특징 및 의의

우리나라 담장은 건축주의 신분에 따라 재료와 축조방법이 달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서민층 주택에서는 울타리·토담·돌담과 같은 자연 재료가 그대로 드러나는 담장을 축조하는 반면, 중상류층 주택이나 궁궐에서는 사고석담·벽돌담·화초담과 같이 가공된 자재가 사용되고 전문 인력이 참여하여 담장을 축조한다. 담의 높이도 서민주택에 비하여 상류주택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또한 담의 지붕도 주거공간의 몸채가 초가지붕이면 초가지붕으로, 기와지붕이면 기와지붕으로 조성하는 현상은 담장 역시 주택의 일부로서 사용자의 사회적 위상을 표현함을 보여 준다.

서민주택의 담장은 집터의 경계에 안과 밖을 구별할 목적으로 쌓는 성격이 강한 반면, 상류 주택이나 궁궐에서는 외부에 대한 방어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담이 경사지에 건축될 때는 담의 윗면과 지붕이 경사면을 따라 나란히 축조되는 것이 아니라 단段을 만들며 축조되는 것이 특색으로 율동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 주고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三國史記, 林園經濟志, 朝鮮王朝實錄, 빛깔있는 책들21-꽃담(조정현, 대원사, 1995), 한국건축대계2-벽돌(장기인, 보성각, 1997), 한국건축대계4-신편 한국건축사전(장기인, 보성각, 1998), 한국건축대계5-목조(장기인, 보성각, 2001), 한국의 살림집(신영훈, 열화당, 197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