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게수리

각게수리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김삼대자(金三代子)

정의

여닫이 문 안에 여러 개의 서랍이 설치된 일종의 금고로, 귀중품 문서 등을 보관하는 데 사용하는 가구.

내용

각게수리는 일본의 현연懸硯, がけすずり이라는 말이다. 현연은 원래 아래에는 종이를 넣고 위에는 벼루를 넣은 상자를 걸치도록 만든 두 개의 상자를 포개 놓은, 상선商船에서 사용한 문방가구였다. 15~16세기에 중국과의 무역이 활발하던 오사카大阪의 사카이堺항에서 중국 영향을 받아 다도용茶道用 단스[簞笥]와 상선용商船用 가케스즈리懸硯, がけすずり의 두 가지 양식으로 발전되었고, 16~17세기에 상업이 발달되면서 중인中人계층에서 폭넓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각게수리는 안방사랑방에서 함께 쓰인 귀한 가구 중 하나이다. 조선시대 숙종 때 통제사로 재직 중이던 조이중趙爾重이 각기소리角其所里를 여덟 개 만들고 그 안에 기화奇貨를 넣어 진신搢紳(벼슬아치)에게 보낸 일로 문제가 있었다는 기사는 당시에 이미 각기소리를 사용하였음을 말해 준다.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각게수리를 왜궤倭几라 하여 ‘갓게슈리’, ‘갸계소리’, ‘각비슈리’, ‘각기소리’라고 그 표기를 각각 달리하였다. 한자어로는 중국식의 정궤頂櫃, 천안주天眼廚 또는 백안주百眼廚라고도 기록하였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각게수리는 내면 서랍에 약재 이름이 적혀 있다. 이러한 각게수리 약장은 대부분 가정에서 상비용으로 쓰였다. 또 내부에 여러 개의 서랍이 있으나 각을 하지 않은 것은 귀중품이나 어음 등을 보관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대부분의 중상층 이상의 가정에서 사용하였다.

특히 상술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개성에서는 각게수리를 많이 사용하였고, 경제력이 풍부한 개성인들 취향에 맞춰 제작하였기 때문에 우수한 제품은 대부분 개성산이었다.

특징 및 의의

각게수리란 명칭은 일본에서 온 것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정궤라는 중국식 명칭을 사용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 각게수리란 명칭이 통용되기 시작하였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정궤란 명칭은 사라지고 각게수리란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내면에 여러 개의 서랍이 있어 귀중품 또는 자료를 분류해서 보관하는 데 요긴하기 때문에 현대생활에서도 활용 가치가 높은 가구이다.

참고문헌

한국 민속의 세계4-주거환경(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1).

각게수리

각게수리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김삼대자(金三代子)

정의

여닫이 문 안에 여러 개의 서랍이 설치된 일종의 금고로, 귀중품 문서 등을 보관하는 데 사용하는 가구.

내용

각게수리는 일본의 현연懸硯, がけすずり이라는 말이다. 현연은 원래 아래에는 종이를 넣고 위에는 벼루를 넣은 상자를 걸치도록 만든 두 개의 상자를 포개 놓은, 상선商船에서 사용한 문방가구였다. 15~16세기에 중국과의 무역이 활발하던 오사카大阪의 사카이堺항에서 중국 영향을 받아 다도용茶道用 단스[簞笥]와 상선용商船用 가케스즈리懸硯, がけすずり의 두 가지 양식으로 발전되었고, 16~17세기에 상업이 발달되면서 중인中人계층에서 폭넓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각게수리는 안방과 사랑방에서 함께 쓰인 귀한 가구 중 하나이다. 조선시대 숙종 때 통제사로 재직 중이던 조이중趙爾重이 각기소리角其所里를 여덟 개 만들고 그 안에 기화奇貨를 넣어 진신搢紳(벼슬아치)에게 보낸 일로 문제가 있었다는 기사는 당시에 이미 각기소리를 사용하였음을 말해 준다.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각게수리를 왜궤倭几라 하여 ‘갓게슈리’, ‘갸계소리’, ‘각비슈리’, ‘각기소리’라고 그 표기를 각각 달리하였다. 한자어로는 중국식의 정궤頂櫃, 천안주天眼廚 또는 백안주百眼廚라고도 기록하였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각게수리는 내면 서랍에 약재 이름이 적혀 있다. 이러한 각게수리 약장은 대부분 가정에서 상비용으로 쓰였다. 또 내부에 여러 개의 서랍이 있으나 각을 하지 않은 것은 귀중품이나 어음 등을 보관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대부분의 중상층 이상의 가정에서 사용하였다.

특히 상술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개성에서는 각게수리를 많이 사용하였고, 경제력이 풍부한 개성인들 취향에 맞춰 제작하였기 때문에 우수한 제품은 대부분 개성산이었다.

특징 및 의의

각게수리란 명칭은 일본에서 온 것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정궤라는 중국식 명칭을 사용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 각게수리란 명칭이 통용되기 시작하였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정궤란 명칭은 사라지고 각게수리란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내면에 여러 개의 서랍이 있어 귀중품 또는 자료를 분류해서 보관하는 데 요긴하기 때문에 현대생활에서도 활용 가치가 높은 가구이다.

참고문헌

한국 민속의 세계4-주거환경(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