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대기

가대기

사전위치

한국생업기술사전 > 농업

집필자 정연학(鄭然鶴)

정의

보습 날 위에 볏을 달지 않은 대신 분살을 달아 높은 이랑을 짓는 데 유리하게 만든 쟁기.

내용

가대기는 함경도 산간지역에서 널리 사용하며, 넓은 면적의 밭에 크고 넓은 이랑을 짓기 위하여 만든 쟁기이다. 강석준은 가대기의 부분 명칭인 가닥성에・가닥멍에・가닥보(쟁기술) 등을 들어 가대기의 어원은 ‘가닥’이며, 그것이 발음상 변화에 따라 가대기가 되었다고 본다. 정시경은 함경도 지방에서 ‘대기’는 나무 몽둥이를 부를 때 덧붙이는 말로 ‘대기’라는 접미사와 땅을 갈다의 ‘갈’이 합성되어 갈대기가 가대기로 변화하였고 본다. 가대기는 견인하는 소의 수에 따라 두 마리가 견인하는 ‘쌍멍에 가대기’와 한 마리가 끄는 ‘외가대기’로 구분되는데, 이들은 형태와 용도가 다르다.
쌍멍에 가대기는 가닥보 앞채와 뒤채(술), 성에, 손잡이, 보습, 메뚜기, 비녀, 분쌀(분살), 모로리(한마루), 성에덧나무(덮방), 댕기나무(탕게), 멍에, 저패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쌍멍에 가대기는 그 구조가 다른 쟁기에 비해 좀 더 복잡하다. 첫째, 소 두 마리를 메우기 위하여 긴 멍에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수목이 엉키고 토양이 굳은 땅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둘째, 보습에 장치된 비녀와 분살은 이랑을 높게 짓기 위한 것인데, 함경도 지방은 일반적으로 강우량이 적은 관계로 고랑을 깊게 파서 배수 작용을 원활하게 할 필요가 없지만 높은 이랑으로 배수 기능과 수분 상실 방지를 할 수 있다. 셋째, 춤바의 장치도 굴곡 변화가 많은 산전을 갈 때 보습을 조절하기 위하여 생긴 것이다. 성에 구멍을 세 개 이상 뚫은 것도 산전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긴 것이다. 넷째, 다른 연장에는 흙밥의 반전을 위하여 볏을 장치하였으나 쌍멍에 가대기에는 조그마한 ‘메뚜기(쐐기)’를 붙인다. 따라서 쌍멍에 가대기는 산전이 많은 함경도에서 시작하였으며, 15세기 이후 남쪽 이주민이 이 지방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듯하다. 근대에 와서 쌍멍에 가대기는 두만강을 건너서 옌볜延邊과 연해주 지방까지 전파되었다.
가대기의 모든 부속품은 보습이 힘을 받도록 연결되어 있다. 그 가운데 가닥보와 분살이 가장 중요하다. 이 가닥보가 잘되고 못된 것의 여부에 따라 그 가대기를 평가한다. 농민들은 가닥보가 될 만한 나무를 눈여겨보고 일정한 시기에 가서 베어 온다. 천연적으로 자란 나무도 있지만 대개 ‘초다듬’이라고 하여 나무의 상태를 보고 끈으로 동여매거나 불에 구워 그 형태를 만들어 간다. 손잡이와 인접한 가닥보는 ‘뒤채’라고 하고, 보습 쪽은 ‘앞채’라고 한다. 가대기는 사용하는 곳에 따라 그 길이가 다른데 평지용은 앞채가 짧고, 산전용은 길어야 한다. 분살은 보습에서 벗어지는 흙밥을 슬슬 밀어서 이랑을 1~2척 이상 높게 지어 주는 동시에 이랑을 번듯하게 흙손질한 것처럼 만든다. 그러면 흙밥이 어느 정도로 진압되어 침하가 적게 되기 때문에 보리나 콩을 뿌리고 씨를 덮을 때도 흙밥이 어느 정도 눌러져 별도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분살 장치는 보기에는 극히 간단하지만, 그 작용은 매우 크다.
한국의 밭갈이법은 지난해 묵은 이랑을 갈아서 흙밥을 작년 고랑으로 모으고 그 가운데에 새로 이랑을 짓는다. 흙밥은 좌측으로 넘기기 때문에 좌편은 우편보다 몇 배의 힘이 든다. 그러므로 겨리로 쟁기질할 때 ‘안소’는 ‘마라소’보다 힘센 소를 쓴다. 그래도 균형이 맞지 않으면 저패말 이동을 통해 균형을 맞춘다.
외가대기는 쌍가대기와 같이 비녀와 분살이 장치되어 있고 춤바를 통하여 보습의 높낮이를 조정한다. 다만 외가대기는 두 갈래 성에 사이에 소 한 마리가 들어가 견인하고, 밭갈이보다는 주로 씨앗을 파종하기 위하여 골을 타고 뿌린 씨를 덮는 데 사용한다. 골을 탈 때는 오른쪽으로 가대기를 기울이고 돌아올 때는 왼쪽으로 기울여 뒷사람이 뿌린 씨앗을 덮는다. 가대기는 골을 타는 데 사용하는 후치보다 심경深耕이 가능하기 때문에 깊게 파종해야 하는 콩이나 보리 파종에 주로 쓴다. 또한 후치처럼 고랑을 갈아 잡풀을 제거하기도 한다. 한편 강희맹의 『금양잡록衿陽雜綠』에는 소 한 마리 대신에 아홉 사람이 가대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가대기가 다른 쟁기에 비해 크기 때문이다.

특징 및 의의

함경도 산간지역 주민들에게 가대기는 귀중한 쟁기이다. 소를 포함해서 가대기까지 집에 비치하는 것은 중농 이상의 부유층에서만 가능하다. 가대기는 중국 옌볜 및 연해주 일대의 함경도 이주민들도 사용하며, 연장 등 다른 유형의 쟁기도 구별 없이 모두 가대기라고 할 정도로 함경도를 대표하는 쟁기이다. 함경도를 제외한 기타 지역의 주민들은 가대기라는 이름조차 모르는 것을 보면 지역성이 두드러진 쟁기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경상도에서 이주한 지린성 안투현安圖縣 신촌新村 주민들은 함경도의 전통적인 외가대기에 굽은 성에, 까막머리에 봇줄을 달고 가대기 좌측 한마루와 귀살 사이에 세로목을 묶어 이것으로 종자를 심기 위한 골을 가르도록 변형시켰다. 경상도 출신 이주민들이 그들의 습관에 맞게 함경도의 가대기를 변형시킨 것이다.

참고문헌

기경용 재래농기구의 유형과 그 분포(정시경, 문화유산6,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1960), 쌍멍에 가대기(강석준, 문화유산2,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1959), 중국 길림성 한인동포의 생활문화(김광언, 국립민속박물관, 1996), 한중농기구 비교연구-따비에서 쟁기까지(정연학, 민속원, 2003).

가대기

가대기
사전위치

한국생업기술사전 > 농업

집필자 정연학(鄭然鶴)

정의

보습 날 위에 볏을 달지 않은 대신 분살을 달아 높은 이랑을 짓는 데 유리하게 만든 쟁기.

내용

가대기는 함경도 산간지역에서 널리 사용하며, 넓은 면적의 밭에 크고 넓은 이랑을 짓기 위하여 만든 쟁기이다. 강석준은 가대기의 부분 명칭인 가닥성에・가닥멍에・가닥보(쟁기술) 등을 들어 가대기의 어원은 ‘가닥’이며, 그것이 발음상 변화에 따라 가대기가 되었다고 본다. 정시경은 함경도 지방에서 ‘대기’는 나무 몽둥이를 부를 때 덧붙이는 말로 ‘대기’라는 접미사와 땅을 갈다의 ‘갈’이 합성되어 갈대기가 가대기로 변화하였고 본다. 가대기는 견인하는 소의 수에 따라 두 마리가 견인하는 ‘쌍멍에 가대기’와 한 마리가 끄는 ‘외가대기’로 구분되는데, 이들은 형태와 용도가 다르다.
쌍멍에 가대기는 가닥보 앞채와 뒤채(술), 성에, 손잡이, 보습, 메뚜기, 비녀, 분쌀(분살), 모로리(한마루), 성에덧나무(덮방), 댕기나무(탕게), 멍에, 저패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쌍멍에 가대기는 그 구조가 다른 쟁기에 비해 좀 더 복잡하다. 첫째, 소 두 마리를 메우기 위하여 긴 멍에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수목이 엉키고 토양이 굳은 땅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둘째, 보습에 장치된 비녀와 분살은 이랑을 높게 짓기 위한 것인데, 함경도 지방은 일반적으로 강우량이 적은 관계로 고랑을 깊게 파서 배수 작용을 원활하게 할 필요가 없지만 높은 이랑으로 배수 기능과 수분 상실 방지를 할 수 있다. 셋째, 춤바의 장치도 굴곡 변화가 많은 산전을 갈 때 보습을 조절하기 위하여 생긴 것이다. 성에 구멍을 세 개 이상 뚫은 것도 산전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긴 것이다. 넷째, 다른 연장에는 흙밥의 반전을 위하여 볏을 장치하였으나 쌍멍에 가대기에는 조그마한 ‘메뚜기(쐐기)’를 붙인다. 따라서 쌍멍에 가대기는 산전이 많은 함경도에서 시작하였으며, 15세기 이후 남쪽 이주민이 이 지방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듯하다. 근대에 와서 쌍멍에 가대기는 두만강을 건너서 옌볜延邊과 연해주 지방까지 전파되었다.
가대기의 모든 부속품은 보습이 힘을 받도록 연결되어 있다. 그 가운데 가닥보와 분살이 가장 중요하다. 이 가닥보가 잘되고 못된 것의 여부에 따라 그 가대기를 평가한다. 농민들은 가닥보가 될 만한 나무를 눈여겨보고 일정한 시기에 가서 베어 온다. 천연적으로 자란 나무도 있지만 대개 ‘초다듬’이라고 하여 나무의 상태를 보고 끈으로 동여매거나 불에 구워 그 형태를 만들어 간다. 손잡이와 인접한 가닥보는 ‘뒤채’라고 하고, 보습 쪽은 ‘앞채’라고 한다. 가대기는 사용하는 곳에 따라 그 길이가 다른데 평지용은 앞채가 짧고, 산전용은 길어야 한다. 분살은 보습에서 벗어지는 흙밥을 슬슬 밀어서 이랑을 1~2척 이상 높게 지어 주는 동시에 이랑을 번듯하게 흙손질한 것처럼 만든다. 그러면 흙밥이 어느 정도로 진압되어 침하가 적게 되기 때문에 보리나 콩을 뿌리고 씨를 덮을 때도 흙밥이 어느 정도 눌러져 별도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분살 장치는 보기에는 극히 간단하지만, 그 작용은 매우 크다.
한국의 밭갈이법은 지난해 묵은 이랑을 갈아서 흙밥을 작년 고랑으로 모으고 그 가운데에 새로 이랑을 짓는다. 흙밥은 좌측으로 넘기기 때문에 좌편은 우편보다 몇 배의 힘이 든다. 그러므로 겨리로 쟁기질할 때 ‘안소’는 ‘마라소’보다 힘센 소를 쓴다. 그래도 균형이 맞지 않으면 저패말 이동을 통해 균형을 맞춘다.
외가대기는 쌍가대기와 같이 비녀와 분살이 장치되어 있고 춤바를 통하여 보습의 높낮이를 조정한다. 다만 외가대기는 두 갈래 성에 사이에 소 한 마리가 들어가 견인하고, 밭갈이보다는 주로 씨앗을 파종하기 위하여 골을 타고 뿌린 씨를 덮는 데 사용한다. 골을 탈 때는 오른쪽으로 가대기를 기울이고 돌아올 때는 왼쪽으로 기울여 뒷사람이 뿌린 씨앗을 덮는다. 가대기는 골을 타는 데 사용하는 후치보다 심경深耕이 가능하기 때문에 깊게 파종해야 하는 콩이나 보리 파종에 주로 쓴다. 또한 후치처럼 고랑을 갈아 잡풀을 제거하기도 한다. 한편 강희맹의 『금양잡록衿陽雜綠』에는 소 한 마리 대신에 아홉 사람이 가대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가대기가 다른 쟁기에 비해 크기 때문이다.

특징 및 의의

함경도 산간지역 주민들에게 가대기는 귀중한 쟁기이다. 소를 포함해서 가대기까지 집에 비치하는 것은 중농 이상의 부유층에서만 가능하다. 가대기는 중국 옌볜 및 연해주 일대의 함경도 이주민들도 사용하며, 연장 등 다른 유형의 쟁기도 구별 없이 모두 가대기라고 할 정도로 함경도를 대표하는 쟁기이다. 함경도를 제외한 기타 지역의 주민들은 가대기라는 이름조차 모르는 것을 보면 지역성이 두드러진 쟁기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경상도에서 이주한 지린성 안투현安圖縣 신촌新村 주민들은 함경도의 전통적인 외가대기에 굽은 성에, 까막머리에 봇줄을 달고 가대기 좌측 한마루와 귀살 사이에 세로목을 묶어 이것으로 종자를 심기 위한 골을 가르도록 변형시켰다. 경상도 출신 이주민들이 그들의 습관에 맞게 함경도의 가대기를 변형시킨 것이다.

참고문헌

기경용 재래농기구의 유형과 그 분포(정시경, 문화유산6,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1960), 쌍멍에 가대기(강석준, 문화유산2,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1959), 중국 길림성 한인동포의 생활문화(김광언, 국립민속박물관, 1996), 한중농기구 비교연구-따비에서 쟁기까지(정연학, 민속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