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레인지

가스레인지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김혜숙(金惠淑)

정의

가스를 연료로 하여 음식을 가열, 조리하는 기구.

내용

국내에서 도시가스는 광복 이전부터 일부 사용되고 있었으나 6·25전쟁으로 공급시설이 파괴되면서 이용이 중단되었다. 이후 1964년 울산정유공장에서 LPG를 생산하게 되고, 1967년 LPG 용기가 국산화됨에 따라 가정에서 가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968년 정부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부이촌동에 취사용 연료로 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하였는데, 초기에는 용기에 담긴 LPG를 많이 사용하였다.

이러한 가스를 원료로 하는 가스레인지가 국내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까지도 국산 가스레인지는 생산되지 않았고, 일본·미국·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제품이 백화점 등에서 판매되었다. 이 가운데 일본 제품의 비중이 특히 높았다. 고가 제품임에도 가스레인지는 연탄에 비해 깨끗하고 편리하여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사용 미숙과 부주의로 초기에는 가스 누출로 인한 폭발 사고가 자주 발생하였다.

그런데 가스레인지도 고가였지만 가스 가격도 기존에 쓰고 있는 연탄 등 취사용 연료에 비하여 비쌌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연탄에서 가스레인지로 바로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1970년대까지는 가스레인지를 쓰기에 앞서 석유곤로, 즉 석유풍로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취사열과 난방열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탄으로 난방하는 계절에는 연탄과 함께 보조용으로 석유풍로를 취사에 사용하였지만 난방을 하지 않는 여름철에는 주로 석유풍로를 썼다.

1970년대 들어 가정용 가스 공급 여건이 좋아지고 국내에서 가스레인지가 생산되면서 가스레인지 사용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도시가스 공급 지역은 1969년 서울시 마장동, 홍익동, 도선동 내 2,000여 가정을 비롯하여 아파트 단지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1970년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공급용 도시가스 공장을 시작으로 여의도 시범단지용 공장이 세워졌고, 이어 전국 곳곳에 취사용 도시가스 공장이 건설되었다. 이에 따라 1970년대 말에는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취사용 연료로 가스를 사용하는 가정이 크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전국으로 보면 일반가정에서 주로 사용한 가스레인지 연료는 도시가스가 아니라 프로판가스였다.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외국산 가스레인지가 수입되거나 한국린나이, 흥한, 조일 등이 일본에서 수입한 부품으로 조립한 가스레인지가 유통되었다. 그러다 1974년 일본의 린나이가 합자회사로 린나이코리아를 설립하고 금성사에서 가스레인지를 출시하면서 가스레인지의 국내 생산이 본격화된다. 이후 가스레인지 시장이 크게 활성화된 것은 1970년대 말이다. 1978년 한국후지카공업주식회사에서 ‘가스테이블’이라 하여 가스레인지를 출시하고, 1979년부터 수출용 가스레인지만 생산하던 린나이코리아에서도 국내 판매를 개시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세하여 1985년에 대우, 1986년에는 삼성전자가 가스레인지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988년 당시에는 린나이코리아, 후지카, 한국린나이(코리나이), 삼성, 대우, 금성 등이 가스레인지를 생산하였다. 외국산도 여전히 수입, 판매되었다.

가스레인지는 화구火口 수에 따라 1구식, 2구식, 3구식 등으로 시판되었다. 가정용으로는 2구식 가스레인지가 가장 많이 이용되었다. 전자레인지 생산이 증가하면서 1980년대 후반에는 농촌에도 가스레인지 이용이 확산되었다. 농촌의 경우 1989년 기준으로 가스레인지가 100가구당 91.1대에 이르렀다. 따라서 1990년대 들어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전국에 거의 가스레인지가 보급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1인 가구나 맞벌이 가정이 증가함에 따라 식재료를 사서 집에서 직접 조리하지 않고 외식을 하거나 집에서 먹는다 해도 반조리 또는 조리된 간편식을 사다가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는 경우가 늘면서 가스레인지 이용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신축 주거시설에 전기레인지 설치가 증가하면서 가스레인지는 전자레인지, 전기레인지와 경쟁 관계에 놓인 상황이다.

특징 및 의의

가스레인지의 도입은 입식 부엌 확산과 관련이 깊다. 입식 부엌이라고 하면 적어도 싱크대(설거지통), 조리대, 가열대, 수납장 등을 갖춘 부엌을 이른다. 여기에 가스레인지를 설치함으로써 허리를 굽히지 않고 조리할 수 있는 편리한 취사열을 확보했던 것이다. 특히 아파트의 보급으로 부엌에 입식 싱크대와 수납공간을 당연히 설치하게 되면서 가스레인지 보급률은 아파트 생활의 보편화와 비례하여 더욱 높아졌다.

가스레인지는 연탄불이나 석유풍로에 비해 냄새가 없고, 화력이 세고 화력 조절이 쉽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화구가 두 개 이상이기 때문에 동시 조리가 가능하여 조리 시간을 단축시키는 장점이 있다. 장작불에는 무쇠솥을 쓰고 연탄불이나 석유풍로를 사용할 때는 가볍고 열전도성이 좋은 양은 재질의 솥과 냄비를 많이 썼지만, 가스레인지 사용이 보편화되는 1980년대 이후에는 열에 강한 스테인리스 제품의 인기가 높아졌다.

한편 냄새가 없고 깨끗한 가스레인지의 설치는 주방을 조리 공간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식탁을 들여놓고 식사 공간으로 활용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주방의 식탁에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게 되었고, 끼니때마다 상을 접고 펴거나 부엌에서 마련한 음식을 방 또는 마루까지 날라야 하는 주부의 수고가 줄었다. 주방이 주부와 가족의 생활 중심 공간으로 점차 변화하면서 냄새가 심한 음식은 주방이 아니라 다용도실에 별도의 가스레인지를 설치해서 조리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참고문헌

대한주택공사삼십년사(대한주택공사, 1992), 한국인 무엇을 먹고 살았나(양미경 외,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7), 한국인 어떤 집에서 살았나(김혜숙 외,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7), 국내 가스연소기기 90년 역사와 전망(가스신문, 2001.4.30), 금성사 가스레인지(매일경제, 1974.7.10), 농어가 살림 갈수록 속 빈 강정(매일경제, 1990.4.25), 연료 가스 25일부터 공급(매일경제, 1969.12.4).

가스레인지

가스레인지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주생활

집필자 김혜숙(金惠淑)

정의

가스를 연료로 하여 음식을 가열, 조리하는 기구.

내용

국내에서 도시가스는 광복 이전부터 일부 사용되고 있었으나 6·25전쟁으로 공급시설이 파괴되면서 이용이 중단되었다. 이후 1964년 울산정유공장에서 LPG를 생산하게 되고, 1967년 LPG 용기가 국산화됨에 따라 가정에서 가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968년 정부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부이촌동에 취사용 연료로 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하였는데, 초기에는 용기에 담긴 LPG를 많이 사용하였다.

이러한 가스를 원료로 하는 가스레인지가 국내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까지도 국산 가스레인지는 생산되지 않았고, 일본·미국·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제품이 백화점 등에서 판매되었다. 이 가운데 일본 제품의 비중이 특히 높았다. 고가 제품임에도 가스레인지는 연탄에 비해 깨끗하고 편리하여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사용 미숙과 부주의로 초기에는 가스 누출로 인한 폭발 사고가 자주 발생하였다.

그런데 가스레인지도 고가였지만 가스 가격도 기존에 쓰고 있는 연탄 등 취사용 연료에 비하여 비쌌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연탄에서 가스레인지로 바로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1970년대까지는 가스레인지를 쓰기에 앞서 석유곤로, 즉 석유풍로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취사열과 난방열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탄으로 난방하는 계절에는 연탄과 함께 보조용으로 석유풍로를 취사에 사용하였지만 난방을 하지 않는 여름철에는 주로 석유풍로를 썼다.

1970년대 들어 가정용 가스 공급 여건이 좋아지고 국내에서 가스레인지가 생산되면서 가스레인지 사용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도시가스 공급 지역은 1969년 서울시 마장동, 홍익동, 도선동 내 2,000여 가정을 비롯하여 아파트 단지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1970년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공급용 도시가스 공장을 시작으로 여의도 시범단지용 공장이 세워졌고, 이어 전국 곳곳에 취사용 도시가스 공장이 건설되었다. 이에 따라 1970년대 말에는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취사용 연료로 가스를 사용하는 가정이 크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전국으로 보면 일반가정에서 주로 사용한 가스레인지 연료는 도시가스가 아니라 프로판가스였다.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외국산 가스레인지가 수입되거나 한국린나이, 흥한, 조일 등이 일본에서 수입한 부품으로 조립한 가스레인지가 유통되었다. 그러다 1974년 일본의 린나이가 합자회사로 린나이코리아를 설립하고 금성사에서 가스레인지를 출시하면서 가스레인지의 국내 생산이 본격화된다. 이후 가스레인지 시장이 크게 활성화된 것은 1970년대 말이다. 1978년 한국후지카공업주식회사에서 ‘가스테이블’이라 하여 가스레인지를 출시하고, 1979년부터 수출용 가스레인지만 생산하던 린나이코리아에서도 국내 판매를 개시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세하여 1985년에 대우, 1986년에는 삼성전자가 가스레인지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988년 당시에는 린나이코리아, 후지카, 한국린나이(코리나이), 삼성, 대우, 금성 등이 가스레인지를 생산하였다. 외국산도 여전히 수입, 판매되었다.

가스레인지는 화구火口 수에 따라 1구식, 2구식, 3구식 등으로 시판되었다. 가정용으로는 2구식 가스레인지가 가장 많이 이용되었다. 전자레인지 생산이 증가하면서 1980년대 후반에는 농촌에도 가스레인지 이용이 확산되었다. 농촌의 경우 1989년 기준으로 가스레인지가 100가구당 91.1대에 이르렀다. 따라서 1990년대 들어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전국에 거의 가스레인지가 보급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1인 가구나 맞벌이 가정이 증가함에 따라 식재료를 사서 집에서 직접 조리하지 않고 외식을 하거나 집에서 먹는다 해도 반조리 또는 조리된 간편식을 사다가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는 경우가 늘면서 가스레인지 이용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신축 주거시설에 전기레인지 설치가 증가하면서 가스레인지는 전자레인지, 전기레인지와 경쟁 관계에 놓인 상황이다.

특징 및 의의

가스레인지의 도입은 입식 부엌 확산과 관련이 깊다. 입식 부엌이라고 하면 적어도 싱크대(설거지통), 조리대, 가열대, 수납장 등을 갖춘 부엌을 이른다. 여기에 가스레인지를 설치함으로써 허리를 굽히지 않고 조리할 수 있는 편리한 취사열을 확보했던 것이다. 특히 아파트의 보급으로 부엌에 입식 싱크대와 수납공간을 당연히 설치하게 되면서 가스레인지 보급률은 아파트 생활의 보편화와 비례하여 더욱 높아졌다.

가스레인지는 연탄불이나 석유풍로에 비해 냄새가 없고, 화력이 세고 화력 조절이 쉽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화구가 두 개 이상이기 때문에 동시 조리가 가능하여 조리 시간을 단축시키는 장점이 있다. 장작불에는 무쇠솥을 쓰고 연탄불이나 석유풍로를 사용할 때는 가볍고 열전도성이 좋은 양은 재질의 솥과 냄비를 많이 썼지만, 가스레인지 사용이 보편화되는 1980년대 이후에는 열에 강한 스테인리스 제품의 인기가 높아졌다.

한편 냄새가 없고 깨끗한 가스레인지의 설치는 주방을 조리 공간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식탁을 들여놓고 식사 공간으로 활용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주방의 식탁에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게 되었고, 끼니때마다 상을 접고 펴거나 부엌에서 마련한 음식을 방 또는 마루까지 날라야 하는 주부의 수고가 줄었다. 주방이 주부와 가족의 생활 중심 공간으로 점차 변화하면서 냄새가 심한 음식은 주방이 아니라 다용도실에 별도의 가스레인지를 설치해서 조리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참고문헌

대한주택공사삼십년사(대한주택공사, 1992), 한국인 무엇을 먹고 살았나(양미경 외,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7), 한국인 어떤 집에서 살았나(김혜숙 외,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7), 국내 가스연소기기 90년 역사와 전망(가스신문, 2001.4.30), 금성사 가스레인지(매일경제, 1974.7.10), 농어가 살림 갈수록 속 빈 강정(매일경제, 1990.4.25), 연료 가스 25일부터 공급(매일경제, 1969.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