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발(周鉢)

한자명

周鉢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식생활

집필자 정희정(鄭熙靜)

정의

유기로 만든 밥그릇.

내용

주발은 놋쇠, 즉 유기로 만든 밥그릇을 지칭한다. 운두가 대체로 높고 직선을 이루는 남성용 밥그릇을 주발, 측면이 둥근 여성용 밥그릇을 바리로 구분하기도 한다. 때로는 밥그릇을 대표하는 그릇으로, 재료와 무관하게 밥그릇을 통칭하기도 한다.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은반상과 유기반상의 밥그릇은 남녀 구분 없이 주발周鉢로 적혀 있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우리나라 민간에서 가장 귀한 그릇이 유기이다. 아침저녁으로 밥상에 올리는 그릇은 모두 놋쇠로 만든 제품을 쓴다. 유기 제도는 한결같지 않아서 발이 있는 그릇도 있고 발이 없는 그릇도 있으며, 밥그릇[飯盂] 국그릇[羹碗]에만 뚜껑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뚜껑이 없는 것도 있고 혹 쟁첩, 종지 모두 뚜껑이 있는 그릇도 있다. 예전에는 여름에 자기를 쓰고 겨울에 유기를 썼는데, 유기를 쓴 이유는 담은 음식이 쉽게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겨울이건 여름이건 모두 놋밥그릇[鍮盂]에 밥을 담는다. 예전에는 서울의 재산이 넉넉하고 세력이 있는 집안에서나 유기를 썼지만, 지금은 외딴 마을 집집마다 놋밥그릇[鍮盂]과 놋국그릇[鍮碗] 2~3벌 정도는 없는데가 없다.”고 하여 조선시대에 귀한 유기 밥그릇을 선호하였고, 점차 보편화된 것을 알 수 있다.

유기 산지로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는 동래·덕평·안성,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는 구례·송도를 각각 꼽고 있다. 그중 안성의 유기는 안성에다 유기를 주문하여 만든 것과 같이 튼튼하고 잘된 물건을 ‘안성맞춤’이라고 이르는 말이 생길 정도로 유명하였다. 두드려 만든 방짜유기는 품질이 좋고, 녹여서 주물로 만든 유기는 질이 조금 떨어진다. 일제강점기에 병기용으로 공출해 갈 때까지 우리나라 가정에서 널리 쓰였다.

광복 후 집필된 문헌에 남자용 유기밥그릇은 주발, 여성용은 바리라고 하였다. 『전통적 생활양식의 연구』에서 “반기·갱접·수저에는 남녀의 것이 유별하며, 남자용은 구경口徑에서 복경腹徑까지는 거의 직선형인 주발 모양이고 여자용은 꼭지가 있는 둥근 뚜껑이 달리고 구경에 비하여 복경이 크고 고운 선의 둥근바리 모양이고, 갱접과 수저는 같은 모양에 크기가 다르다.”고 했다. 그 이유로 식기에까지 건곤乾坤 개념이 상징화된 것이라 했다. 형태에 따라 연엽주발, 오목주발이라 했다. 조선 후기에도 남녀 구분 없이 주발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말기에 남녀용 다른 기형의 사용으로 분화된 것으로 보인다. 크기가 작은 주발은 중발中鉢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閨閤叢書, 園幸乙卯整理儀軌, 林園經濟志, 전통적 생활양식의 연구(윤서석,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한국 식생활사(강인희, 삼영사, 1978).

주발

주발
한자명

周鉢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식생활

집필자 정희정(鄭熙靜)

정의

유기로 만든 밥그릇.

내용

주발은 놋쇠, 즉 유기로 만든 밥그릇을 지칭한다. 운두가 대체로 높고 직선을 이루는 남성용 밥그릇을 주발, 측면이 둥근 여성용 밥그릇을 바리로 구분하기도 한다. 때로는 밥그릇을 대표하는 그릇으로, 재료와 무관하게 밥그릇을 통칭하기도 한다.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은반상과 유기반상의 밥그릇은 남녀 구분 없이 주발周鉢로 적혀 있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우리나라 민간에서 가장 귀한 그릇이 유기이다. 아침저녁으로 밥상에 올리는 그릇은 모두 놋쇠로 만든 제품을 쓴다. 유기 제도는 한결같지 않아서 발이 있는 그릇도 있고 발이 없는 그릇도 있으며, 밥그릇[飯盂] 국그릇[羹碗]에만 뚜껑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뚜껑이 없는 것도 있고 혹 쟁첩, 종지 모두 뚜껑이 있는 그릇도 있다. 예전에는 여름에 자기를 쓰고 겨울에 유기를 썼는데, 유기를 쓴 이유는 담은 음식이 쉽게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겨울이건 여름이건 모두 놋밥그릇[鍮盂]에 밥을 담는다. 예전에는 서울의 재산이 넉넉하고 세력이 있는 집안에서나 유기를 썼지만, 지금은 외딴 마을 집집마다 놋밥그릇[鍮盂]과 놋국그릇[鍮碗] 2~3벌 정도는 없는데가 없다.”고 하여 조선시대에 귀한 유기 밥그릇을 선호하였고, 점차 보편화된 것을 알 수 있다.

유기 산지로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는 동래·덕평·안성,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는 구례·송도를 각각 꼽고 있다. 그중 안성의 유기는 안성에다 유기를 주문하여 만든 것과 같이 튼튼하고 잘된 물건을 ‘안성맞춤’이라고 이르는 말이 생길 정도로 유명하였다. 두드려 만든 방짜유기는 품질이 좋고, 녹여서 주물로 만든 유기는 질이 조금 떨어진다. 일제강점기에 병기용으로 공출해 갈 때까지 우리나라 가정에서 널리 쓰였다.

광복 후 집필된 문헌에 남자용 유기밥그릇은 주발, 여성용은 바리라고 하였다. 『전통적 생활양식의 연구』에서 “반기·갱접·수저에는 남녀의 것이 유별하며, 남자용은 구경口徑에서 복경腹徑까지는 거의 직선형인 주발 모양이고 여자용은 꼭지가 있는 둥근 뚜껑이 달리고 구경에 비하여 복경이 크고 고운 선의 둥근바리 모양이고, 갱접과 수저는 같은 모양에 크기가 다르다.”고 했다. 그 이유로 식기에까지 건곤乾坤 개념이 상징화된 것이라 했다. 형태에 따라 연엽주발, 오목주발이라 했다. 조선 후기에도 남녀 구분 없이 주발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말기에 남녀용 다른 기형의 사용으로 분화된 것으로 보인다. 크기가 작은 주발은 중발中鉢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閨閤叢書, 園幸乙卯整理儀軌, 林園經濟志, 전통적 생활양식의 연구(윤서석,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한국 식생활사(강인희, 삼영사,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