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례원류(家禮源流)

가례원류

한자명

家禮源流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고영진(高英津)

정의

유계兪棨(1607~1664)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대해 주석을 붙인 책.

내용

고려 말 도입된 『주가가례』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본격화하는 것은 16세기 중반부터였다. 그 결과, 다양한 예서가 편찬되었다. 김인후金麟厚(1510~1560)의『가례고오家禮考誤』는 『주자가례』의 의문점을 자기 나름대로 수정한 최초의 예서禮書로 초보적인 가례주석서家禮註釋書의 성격을 띠고 있다. 『주자가례』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본격화하는 시초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가례주석서의 흐름은 이후 이덕홍李德興의 『가례주해家禮註解』, 김륭金隆(1549~1594)의 『가례강록家禮講錄』, 송익필宋翼弼(1534~1599)의 『가례주설家禮註說』 등을 거쳐 김장생金長生(1548~1631)의 『가례집람家禮輯覽』에 이르러 분수령을 이루었다. 유계가 1640년대 전반에 저술한 『가례원류家禮源流』는 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이었다. 이 책은 1713년 손자 유상기兪相基(1651~1718)가 용담현령으로 있을 때 임금의 허락을 받아 간행되었다. 그러나 유계의 제자이기도 했던 윤증尹拯(1629~1714)이 자신의 아버지 윤선거尹宣擧(1610~1669)도 『가례원류』를 같이 편찬했다는 이의를 제기해, 두 집안 간에 분쟁이 빚어졌을 뿐만 아니라 회니시비懷尼是非에 이어 노론과 소론 사이에 다시 배사론背師論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14권 8책으로, 제1권은 통례通禮 사당祠堂, 제2권은 통례 심의제도深衣制度, 제3권은 통례 사마씨거가잡의司馬氏居家雜儀, 제4권은 관례, 제5권은 혼례, 제6권은 상례 초종初終~대렴大斂, 제7권은 상례 성복成服, 제8권은 상례 조석곡전朝夕哭奠~분상奔喪, 제9권은 상례 치장治葬, 제10권은 상례 천구遷柩~반곡反哭, 제11권은 상례 우제虞祭~담禫, 제12권은 상례 거상잡의居喪雜儀~조부모망답인계장祖父母亡答人啓狀, 제13권은 제례 사시제四時祭, 제14권은 제례 초조初祖~묘제墓祭로 구성되어 있다. 아울러 중간중간 종법, 반장의절보反葬儀節補, 개장의절보改葬儀節補, 길제비요보吉祭備要補, 사토지의절보祀土地儀節補, 사조의절보祀竈儀節補 같은 『주자가례』에 없으나 『가례의절家禮儀節』 등에서 보완한 항목들도 눈에 띈다. 이 책은 『주자가례』의 본문을 경經으로 하고 『의례儀禮』,『주례周禮』, 『예기禮記』 등 경전에서 취한 것을 큰 글씨로 주석을 달아 ‘원源’이라 하고, 후대 중국과 조선 학자들의 예설 가운데 참고할 만할 것을 취하여 작은 글씨로 기록하고 ‘류流’라 하여, 『주자가례』의 연원과 전개과정을 밝히고자 하였다. 특히 『주자가례』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주석한 이전의 가례주석서와는 달리 『주자가례』의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수록하고 주석을 붙인 최초의 가례주석서라 할 수 있다.

가례원류

가례원류
한자명

家禮源流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고영진(高英津)

정의

유계兪棨(1607~1664)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대해 주석을 붙인 책.

내용

고려 말 도입된 『주가가례』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본격화하는 것은 16세기 중반부터였다. 그 결과, 다양한 예서가 편찬되었다. 김인후金麟厚(1510~1560)의『가례고오家禮考誤』는 『주자가례』의 의문점을 자기 나름대로 수정한 최초의 예서禮書로 초보적인 가례주석서家禮註釋書의 성격을 띠고 있다. 『주자가례』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본격화하는 시초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가례주석서의 흐름은 이후 이덕홍李德興의 『가례주해家禮註解』, 김륭金隆(1549~1594)의 『가례강록家禮講錄』, 송익필宋翼弼(1534~1599)의 『가례주설家禮註說』 등을 거쳐 김장생金長生(1548~1631)의 『가례집람家禮輯覽』에 이르러 분수령을 이루었다. 유계가 1640년대 전반에 저술한 『가례원류家禮源流』는 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이었다. 이 책은 1713년 손자 유상기兪相基(1651~1718)가 용담현령으로 있을 때 임금의 허락을 받아 간행되었다. 그러나 유계의 제자이기도 했던 윤증尹拯(1629~1714)이 자신의 아버지 윤선거尹宣擧(1610~1669)도 『가례원류』를 같이 편찬했다는 이의를 제기해, 두 집안 간에 분쟁이 빚어졌을 뿐만 아니라 회니시비懷尼是非에 이어 노론과 소론 사이에 다시 배사론背師論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14권 8책으로, 제1권은 통례通禮 사당祠堂, 제2권은 통례 심의제도深衣制度, 제3권은 통례 사마씨거가잡의司馬氏居家雜儀, 제4권은 관례, 제5권은 혼례, 제6권은 상례 초종初終~대렴大斂, 제7권은 상례 성복成服, 제8권은 상례 조석곡전朝夕哭奠~분상奔喪, 제9권은 상례 치장治葬, 제10권은 상례 천구遷柩~반곡反哭, 제11권은 상례 우제虞祭~담禫, 제12권은 상례 거상잡의居喪雜儀~조부모망답인계장祖父母亡答人啓狀, 제13권은 제례 사시제四時祭, 제14권은 제례 초조初祖~묘제墓祭로 구성되어 있다. 아울러 중간중간 종법, 반장의절보反葬儀節補, 개장의절보改葬儀節補, 길제비요보吉祭備要補, 사토지의절보祀土地儀節補, 사조의절보祀竈儀節補 같은 『주자가례』에 없으나 『가례의절家禮儀節』 등에서 보완한 항목들도 눈에 띈다. 이 책은 『주자가례』의 본문을 경經으로 하고 『의례儀禮』,『주례周禮』, 『예기禮記』 등 경전에서 취한 것을 큰 글씨로 주석을 달아 ‘원源’이라 하고, 후대 중국과 조선 학자들의 예설 가운데 참고할 만할 것을 취하여 작은 글씨로 기록하고 ‘류流’라 하여, 『주자가례』의 연원과 전개과정을 밝히고자 하였다. 특히 『주자가례』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주석한 이전의 가례주석서와는 달리 『주자가례』의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수록하고 주석을 붙인 최초의 가례주석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