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이관호(李官浩)

정의

발을 보호하기 위해 볏짚[稿]이나 삼[麻], 부들[香蒲] 등의 초고草稿 재료를 이용하여 엮어 만든 신.

역사

문헌에서는 짚신을 망리芒履·비구扉屨·초리草履· 초혜草鞋·초교草蹻·초교草屩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 짚신을 ‘짓석(경기)’, ‘짚세기·짚석이(경기, 경북, 전라, 충청)’, ‘초신(강원, 제주)’, ‘짚시기(강원)’, ‘미-신, 집씨개(경북)’, ‘메신(경남)’, ‘찍신·찍세기(제주)’ 등으로도 불린다.
짚신은 고무신이 등장하기 전까지 남녀노소,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나 신었던 신이다. 짚신에 관한 최초의 기록인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 한조韓條에 “남자들은 상투를 매고 도포를 입으며, 짚신을 신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통전通典』 변방문邊防門 동이편東夷篇 마한조馬韓條에 ‘초리草履’가 등장하고, 『진서晋書』 사이전四夷傳 마한조에 ‘초교草轎’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짚신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될 뿐 짚신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삼국시대 짚신은 아산 갈매리, 이성산성, 경주 황남동, 대구 동천동, 부여 궁남지와 관북리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그 중 부여 궁남지와 관북리 유적에서는 60점 이상의 짚신이 출토되었는데, 이를 분석한 결과 600년을 전후한 시기의 백제 짚신으로 확인되었으며, 여기에 사용된 짚신의 재료는 볏짚이 아닌 저습지에서 자라는 ‘부들’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고대 짚신의 재료는 짚이나 부들을 함께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짚신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나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 신윤복의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김홍도와 신윤복 풍속화를 통해서 조선시대 짚신의 형태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오늘날 짚신과 그 형태가 유사하다. 짚신은 1920년대 초반 고무신이 등장함으로써 우리 삶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내용

짚신의 종류는 신을 삼는 재료나 용도에 따라서 다양하다. 재료에 따른 짚신의 종류는 짚신, 삼신, 왕골신, 청올치신, 부들신 등이 있다. 여기서 ‘짚신’은 볏짚으로 엮은 신이고, ‘삼신’은 삼으로 엮은 신을 말하며, ‘왕골신’은 공예작물인 왕골로 엮은 신이다. 한편 ‘청올치신’은 칡 줄기의 속껍질을 꼬아 엮어 만들고, ‘부들신’은 저습지에서 서식하는 부들로 만든 신이다. 여기서 왕골이나 삼 등 다른 재료로 만든 짚신은 짚으로 만든 것보다 튼튼하고 질긴 것이 특징이다.
용도에 따른 짚신의 종류는 고운짚신, 막치, 엄짚신, 둥구니신 등이 있다. 먼저 ‘고운짚신’은 여성용 짚신으로 부드러운 짚을 사용해서 만든 것이고, ‘막치’는 마구잡이로 만들었다 하여 붙은 명칭으로 올이 굵고 투박한 것이 특징인데, 주로 머슴들이 신던 신이었다. 또한 ‘엄짚신’은 상주가 신는 신으로 일부러 허술하고 투박하게 엮은 신을 말하고, ‘둥구니신’은 방한용 짚신으로 눈 오는 날 미끄럼을 방지하고 방한防寒을 위해 만든 장화 모양의 짚신이다. 짚신의 종류는 짚신의 재료나 용도에 따라서 다양하지만 큰 범주에서 짚신으로 통용된다.
짚신은 일상생활에서 추위나 더위,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발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예를 들면, 베틀 아래 짚신 한 짝을 달아 눈썹노리를 손쉽게 열리게 했고, 디딜방아의 지렛목에 낡은 짚신을 끼워 소음을 막기도 했다. 또한 헌 짚신의 바닥만 떼어 내고 손잡이를 달아 파리채로 쓰거나, 논밭에 거름으로 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짚신을 액막이용으로도 사용하였다. 짚신에는 병마를 물리칠 강한 주술력呪術力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 이유는 오랫동안 발에 밟히고, 바닥에 끌리면서 강한 저항력이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질병을 예방하거나 물리치기 위해서 마을 입구나 집 대문금줄을 치고, 나무에 짚신을 걸어서 병마를 쫓기도 하였다.
한편 짚신은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기도 하였다.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사회에서는 옷이나 관, 신을 통해서 신분을 알 수 있었는데, 짚신의 경우 신을 삼는 재료나 날 수에 따라서 신분을 알 수 있었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대개 4날 짚신을 신었고, 상주나 수도승은 2날 짚신을 신었다. 여기서 상주는 죄인이라 하여 편한 옷이나 좋은 신을 신을 수 없었고, 수도승은 고행을 위해 2날 짚신을 신었다고 한다. 양반들은 삼이나 왕골로 섬세하게 삼은 짚신을 주로 신었는데, 이를 ‘미투리’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종9품이나 양반, 아전은 주로 6날 미투리를 신었고, 정3품 이상의 고관은 8날 미투리를 신었다.
짚신은 특별한 기술 없이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대개 자급자족 했지만 양반들은 하인에게 짚신을 삼게 하거나, 구입을 하여 신었다. 그래서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은 짚신을 삼아 장市에다 팔기도 했는데, 이러한 짚신 장수들은 1900년대 초반까지 장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렇듯 짚신은 발을 보호하는 기능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다용도로 쓰였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생계를 잇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특징 및 의의

짚신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신었던 신으로 발을 보호하는 용도 이외에도 의례용이나 생활용품 속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이다. 특히 짚신은 짚이나 왕골, 부들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었다는 데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짚신은 오늘날의 신들과 달리 쉽게 해진다는 단점이 있어서 먼 길을 떠날 때에는 등짐에 여러 켤레를 준비해야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기도 했다. 한편 짚신은 재료나 제작기술에 따라 신을 신는 사람의 신분이나 처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짚신은 1920년대 고무신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 삶에서 애용되던 전통 신으로 자연친화적이고 미적 예술성이 뛰어난 생활 필수품으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晋書, 通典, 後漢書, 미투리와 짚신(김민기, 평화문제연구소, 1984), 짚신의 민속학적 고찰1·2(배도식, 한국민속학23·24, 한국민속학회, 1990~1991), 우리나라 고대 짚신의 재료(김경희·김요정·박원규, 부산대학교 한국전통복식연구소 학술심포지움, 2006.7), 초·마혜에 관한 연구(김지희, 대한가정학회지28-3, 대한가정학회, 1990),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짚신

짚신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이관호(李官浩)

정의

발을 보호하기 위해 볏짚[稿]이나 삼[麻], 부들[香蒲] 등의 초고草稿 재료를 이용하여 엮어 만든 신.

역사

문헌에서는 짚신을 망리芒履·비구扉屨·초리草履· 초혜草鞋·초교草蹻·초교草屩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 짚신을 ‘짓석(경기)’, ‘짚세기·짚석이(경기, 경북, 전라, 충청)’, ‘초신(강원, 제주)’, ‘짚시기(강원)’, ‘미-신, 집씨개(경북)’, ‘메신(경남)’, ‘찍신·찍세기(제주)’ 등으로도 불린다.
짚신은 고무신이 등장하기 전까지 남녀노소,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나 신었던 신이다. 짚신에 관한 최초의 기록인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 한조韓條에 “남자들은 상투를 매고 도포를 입으며, 짚신을 신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통전通典』 변방문邊防門 동이편東夷篇 마한조馬韓條에 ‘초리草履’가 등장하고, 『진서晋書』 사이전四夷傳 마한조에 ‘초교草轎’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짚신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될 뿐 짚신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삼국시대 짚신은 아산 갈매리, 이성산성, 경주 황남동, 대구 동천동, 부여 궁남지와 관북리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그 중 부여 궁남지와 관북리 유적에서는 60점 이상의 짚신이 출토되었는데, 이를 분석한 결과 600년을 전후한 시기의 백제 짚신으로 확인되었으며, 여기에 사용된 짚신의 재료는 볏짚이 아닌 저습지에서 자라는 ‘부들’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고대 짚신의 재료는 짚이나 부들을 함께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짚신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나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 신윤복의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김홍도와 신윤복 풍속화를 통해서 조선시대 짚신의 형태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오늘날 짚신과 그 형태가 유사하다. 짚신은 1920년대 초반 고무신이 등장함으로써 우리 삶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내용

짚신의 종류는 신을 삼는 재료나 용도에 따라서 다양하다. 재료에 따른 짚신의 종류는 짚신, 삼신, 왕골신, 청올치신, 부들신 등이 있다. 여기서 ‘짚신’은 볏짚으로 엮은 신이고, ‘삼신’은 삼으로 엮은 신을 말하며, ‘왕골신’은 공예작물인 왕골로 엮은 신이다. 한편 ‘청올치신’은 칡 줄기의 속껍질을 꼬아 엮어 만들고, ‘부들신’은 저습지에서 서식하는 부들로 만든 신이다. 여기서 왕골이나 삼 등 다른 재료로 만든 짚신은 짚으로 만든 것보다 튼튼하고 질긴 것이 특징이다.
용도에 따른 짚신의 종류는 고운짚신, 막치, 엄짚신, 둥구니신 등이 있다. 먼저 ‘고운짚신’은 여성용 짚신으로 부드러운 짚을 사용해서 만든 것이고, ‘막치’는 마구잡이로 만들었다 하여 붙은 명칭으로 올이 굵고 투박한 것이 특징인데, 주로 머슴들이 신던 신이었다. 또한 ‘엄짚신’은 상주가 신는 신으로 일부러 허술하고 투박하게 엮은 신을 말하고, ‘둥구니신’은 방한용 짚신으로 눈 오는 날 미끄럼을 방지하고 방한防寒을 위해 만든 장화 모양의 짚신이다. 짚신의 종류는 짚신의 재료나 용도에 따라서 다양하지만 큰 범주에서 짚신으로 통용된다.
짚신은 일상생활에서 추위나 더위,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발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예를 들면, 베틀 아래 짚신 한 짝을 달아 눈썹노리를 손쉽게 열리게 했고, 디딜방아의 지렛목에 낡은 짚신을 끼워 소음을 막기도 했다. 또한 헌 짚신의 바닥만 떼어 내고 손잡이를 달아 파리채로 쓰거나, 논밭에 거름으로 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짚신을 액막이용으로도 사용하였다. 짚신에는 병마를 물리칠 강한 주술력呪術力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 이유는 오랫동안 발에 밟히고, 바닥에 끌리면서 강한 저항력이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질병을 예방하거나 물리치기 위해서 마을 입구나 집 대문에 금줄을 치고, 나무에 짚신을 걸어서 병마를 쫓기도 하였다.
한편 짚신은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기도 하였다.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사회에서는 옷이나 관, 신을 통해서 신분을 알 수 있었는데, 짚신의 경우 신을 삼는 재료나 날 수에 따라서 신분을 알 수 있었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대개 4날 짚신을 신었고, 상주나 수도승은 2날 짚신을 신었다. 여기서 상주는 죄인이라 하여 편한 옷이나 좋은 신을 신을 수 없었고, 수도승은 고행을 위해 2날 짚신을 신었다고 한다. 양반들은 삼이나 왕골로 섬세하게 삼은 짚신을 주로 신었는데, 이를 ‘미투리’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종9품이나 양반, 아전은 주로 6날 미투리를 신었고, 정3품 이상의 고관은 8날 미투리를 신었다.
짚신은 특별한 기술 없이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대개 자급자족 했지만 양반들은 하인에게 짚신을 삼게 하거나, 구입을 하여 신었다. 그래서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은 짚신을 삼아 장市에다 팔기도 했는데, 이러한 짚신 장수들은 1900년대 초반까지 장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렇듯 짚신은 발을 보호하는 기능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다용도로 쓰였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생계를 잇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특징 및 의의

짚신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신었던 신으로 발을 보호하는 용도 이외에도 의례용이나 생활용품 속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이다. 특히 짚신은 짚이나 왕골, 부들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었다는 데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짚신은 오늘날의 신들과 달리 쉽게 해진다는 단점이 있어서 먼 길을 떠날 때에는 등짐에 여러 켤레를 준비해야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기도 했다. 한편 짚신은 재료나 제작기술에 따라 신을 신는 사람의 신분이나 처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짚신은 1920년대 고무신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 삶에서 애용되던 전통 신으로 자연친화적이고 미적 예술성이 뛰어난 생활 필수품으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晋書, 通典, 後漢書, 미투리와 짚신(김민기, 평화문제연구소, 1984), 짚신의 민속학적 고찰1·2(배도식, 한국민속학23·24, 한국민속학회, 1990~1991), 우리나라 고대 짚신의 재료(김경희·김요정·박원규, 부산대학교 한국전통복식연구소 학술심포지움, 2006.7), 초·마혜에 관한 연구(김지희, 대한가정학회지28-3, 대한가정학회, 1990),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