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주머니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백영자(白英子)

정의

몸에 지니는 조그만 소지품이나 돈 등을 넣어 허리에 차거나, 손에 들고 다니는 생활용품.

역사

주머니에 대해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경덕왕조景德王條에 “왕이 돌날로부터 왕위에 오를 때까지 항상 부녀의 짓을 하여 비단주머니 차기를 좋아했다自期晬至於登位 常爲婦女之戲 好佩錦囊.”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신라 여인들이 비단주머니[錦囊]를 찼던 모습을 알 수 있다. 또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고려 귀가貴家 부녀자들은 감람늑건橄欖勒巾에 채조금탁采條金鐸을 달고 금향낭錦香囊을 찼는데 많은 것을 귀히 여겼다.”라고 기록된 것을 통해 고려시대에 오면 신라시대보다 더 많이 비단 향주머니를 찼던 것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후기의 유물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기록에서 볼 수 있는 주머니는 궁중의 「낭囊발기」와 민간에서 기록한 건기件記에 나타나 있다. 특히, 궁중의 주머니는 순종의 첫 번째 결혼인 임오가례壬午嘉禮 때 모든 물목이 양적으로 가장 많다. 이를 통해 인조 이후의 의궤儀軌를 뒤져 보아도 유례없이 호화로웠던 것을 엿 볼 수 있다.
또한 이들 궁중의 「낭발기」는 가례 시나 정월 첫 해일亥日에 대내大內에나 왕비의 친정, 기타 종친들에게 ‘염낭’ 또는 ‘줌치’를 보낸 것을 기록하였다. 이들 낭은 조그마한 물건이지만, 손이 가고 아기자기한데다가 부적 같은 뜻을 지녔기 때문에 당시에는 무척 환영받는 선물이었다. 그 주머니 속에는 종이 봉지에 콩을 볶아 꼭 한 알씩을 넣어서 보냈는데, 이것을 해일亥日에 차면 1년 내내 귀신을 물리치고 만복이 온다는 풍습이 있었다.
그 밖에 최남선의 『조선상식朝鮮常識』에 민간과 궁중의 주머니에 대한 민속 기록을 볼 수 있다. “호서지방에는 큰 횃불[炬火]로 대규모의 쥐를 태우는 풍속이 있다. 조정에는 궁중의 어린 내시 수십 명이 횃불행진을 하게 하는데 ‘돗희부리 지진다’를 외치면서 궁중을 돌아다니게 하고, 곡물의 종류를 태워서 둥글고 긴 두 가지 형태의 비단주머니에 넣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니 모두 다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기를 기축하는 의미이다. 이 주머니의 둥근 것을 해낭亥囊, 긴 것을 자낭子囊이라고 일렀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를 통해 복을 받아 곡식이 잘 여물어 평안한 생활을 누리기를 염원하는 뜻에서 곡종을 태워 넣은 낭을 차는 것이 전통적인 습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 주머니는 1894년 이전에는 실용성과 장식성에 주술성까지 결합되어 민중 깊숙이 침투한 생활 용품이었다. 갑오개혁 이후 복식의 근대화로 남성 복식의 조끼에 호주머니가 생기고 여성 복식에 핸드백이 동반되어 필요성이 감소하였다.

내용

주머니는 필요와 쓰임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고 남녀노소 지위에 상관없이 패용되어 형태·용도·문양· 신분 등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서로 달랐다. 주머니의 기본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둥근 모양의 두루주머니(혹은 염낭, 환형낭丸形囊)와 각진 귀주머니(혹은 줌치, 각형낭角形囊)로 나뉜다.
두루주머니는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주머니로 반원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주머니의 끈이 주머니 상단에 꿰어져 있는 것을 고뉴高紐, 중간에 매어져 있는 것을 중뉴中紐, 하단에 매어져 있는 것을 저뉴低紐라고 한다. 귀주머니는 네모지게 꾸며서 입구 위를 두 번 접어 아래 양쪽으로 귀가 나와 양옆이 모가 진 형태의 주머니이다.
그 밖에 직선주머니형과 사선주머니형이 있는데, 직선주머니형에는 일상생활에 많이 쓰이는 물건에 맞게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수젓집·부채주머니·필낭 등이 있다. 또한 사선주머니형은 사각형의 천을 사선으로 접어 솔기를 맞물려 바느질한 후, 중앙에서 주름을 잡아 끈을 꿰고 나머지 부분을 앞으로 넘겨서 뚜껑을 만들었는데 약주머니가 이러한 형태이다.
주머니는 용도에 따라 향을 담은 향주머니, 환약을 담는 약주머니, 부싯돌과 담배를 담아 둔 부시주머니와 쌈지, 군대를 동원하는 징표로 쓰이던 발병부를 넣던 병부주머니, 도장을 보관하는 도장주머니가 있다. 또한 시계를 넣은 시계주머니, 안경을 보관하는 안경주머니, 붓을 넣어 다니던 필낭, 침선과 구급 처방을 위해 침을 넣었던 침낭, 시집가는 처녀가 혼수로 만들어 가던 수저주머니, 버선본을 보관하는 버선본주머니, 선비들의 풍류가 담긴 부채주머니 외에도 장도주머니, 노리개주머니, 돈주머니 등이 있다.
주머니는 금박이나 자수로 문양을 찍거나 수놓았는데 문양은 크게 동물·식물무늬 중심이다. 그 밖에 자연 무늬와 길상을 나타내는 문자무늬, 장수를 염원하는 십장생무늬, 부귀를 나타내는 모란무늬, 기하무늬 등 여러 무늬를 볼 수 있다. 자연 문양의 주머니에는 산수낭이 있는데, 산수의 무늬는 흉배의 하단에 쓰인 삼산·파도·불로초 등의 무늬가 주로 쓰였다. 문자무늬로는 자식을 기원하는 뜻인 ‘다남자多男子’, ‘다남다복多男多福’의 글자를 수놓았으며, 한 쌍의 원앙이나 장생문을 함께 수놓기도 했다. 또, 나이든 어른이 사용하는 주머니에는 ‘수복壽福’이라는 글자를 수놓아 장수와 복을 빌었다. 비단에 오복문자를 수놓은 오복수낭五福繡囊이 있으며, 수젓집 등의 하부에는 만卍자문을 중심으로 양쪽에 파도·바위·삼산·불로초를 수놓았다. 수복강녕壽福康寧의 네 글자가 새겨 복을 비는 염원을 담았다. 한편 신분에 따라 문양 및 색과 부금 여부가 달랐는데, 황룡자낭·봉자낭·부금낭은 지배 계급의 권위를 나타내는 주머니 명칭이다.

특징 및 의의

우리의 전통복식은 서양복식과는 다르게 포켓이 없었으므로 모든 소지품은 주머니를 따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따라서 주머니는 남녀노소 신분에 상관없이 애용되었고,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또한 주머니는 자수나 금박으로 장식하여 장식품으로도 사용되었다. 그 문양에는 부귀·장생·자손 번창 같은 주술적 기원을 표현하여 주머니 본래의 물건을 담는 실용적 목적과 장식적 역할 외에도 주술적 의미까지 포함하였다. 또한 주머니 속에 콩을 볶아 한 알씩 넣어 정초에 친지들에게 선물하고 이것을 해일에 차면 만복이 온다는 풍습이 있었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宣和奉使高麗圖經, 朝鮮常識, 이조시대 문양을 중심으로 한 자수노리개의 연구(백영자,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1), 조선조자수주머니 문양을 응용한 의상디자인 연구(정윤진,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한국생활문화 100년(백영자 외, 도서출판 장원, 1995), 한국 복식문화의 흐름(백영자·최정, 경춘사, 2014), 한국의 주머니 연구 및 현대화(김옥현, 예술논총5,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2002), 한국전통주머니에 나타난 감성이미지(강정현·권영숙, 복식53-4, 한국복식학회, 2003).

주머니

주머니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백영자(白英子)

정의

몸에 지니는 조그만 소지품이나 돈 등을 넣어 허리에 차거나, 손에 들고 다니는 생활용품.

역사

주머니에 대해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경덕왕조景德王條에 “왕이 돌날로부터 왕위에 오를 때까지 항상 부녀의 짓을 하여 비단주머니 차기를 좋아했다自期晬至於登位 常爲婦女之戲 好佩錦囊.”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신라 여인들이 비단주머니[錦囊]를 찼던 모습을 알 수 있다. 또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고려 귀가貴家 부녀자들은 감람늑건橄欖勒巾에 채조금탁采條金鐸을 달고 금향낭錦香囊을 찼는데 많은 것을 귀히 여겼다.”라고 기록된 것을 통해 고려시대에 오면 신라시대보다 더 많이 비단 향주머니를 찼던 것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후기의 유물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기록에서 볼 수 있는 주머니는 궁중의 「낭囊발기」와 민간에서 기록한 건기件記에 나타나 있다. 특히, 궁중의 주머니는 순종의 첫 번째 결혼인 임오가례壬午嘉禮 때 모든 물목이 양적으로 가장 많다. 이를 통해 인조 이후의 의궤儀軌를 뒤져 보아도 유례없이 호화로웠던 것을 엿 볼 수 있다.
또한 이들 궁중의 「낭발기」는 가례 시나 정월 첫 해일亥日에 대내大內에나 왕비의 친정, 기타 종친들에게 ‘염낭’ 또는 ‘줌치’를 보낸 것을 기록하였다. 이들 낭은 조그마한 물건이지만, 손이 가고 아기자기한데다가 부적 같은 뜻을 지녔기 때문에 당시에는 무척 환영받는 선물이었다. 그 주머니 속에는 종이 봉지에 콩을 볶아 꼭 한 알씩을 넣어서 보냈는데, 이것을 해일亥日에 차면 1년 내내 귀신을 물리치고 만복이 온다는 풍습이 있었다.
그 밖에 최남선의 『조선상식朝鮮常識』에 민간과 궁중의 주머니에 대한 민속 기록을 볼 수 있다. “호서지방에는 큰 횃불[炬火]로 대규모의 쥐를 태우는 풍속이 있다. 조정에는 궁중의 어린 내시 수십 명이 횃불행진을 하게 하는데 ‘돗희부리 지진다’를 외치면서 궁중을 돌아다니게 하고, 곡물의 종류를 태워서 둥글고 긴 두 가지 형태의 비단주머니에 넣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니 모두 다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기를 기축하는 의미이다. 이 주머니의 둥근 것을 해낭亥囊, 긴 것을 자낭子囊이라고 일렀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를 통해 복을 받아 곡식이 잘 여물어 평안한 생활을 누리기를 염원하는 뜻에서 곡종을 태워 넣은 낭을 차는 것이 전통적인 습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 주머니는 1894년 이전에는 실용성과 장식성에 주술성까지 결합되어 민중 깊숙이 침투한 생활 용품이었다. 갑오개혁 이후 복식의 근대화로 남성 복식의 조끼에 호주머니가 생기고 여성 복식에 핸드백이 동반되어 필요성이 감소하였다.

내용

주머니는 필요와 쓰임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고 남녀노소 지위에 상관없이 패용되어 형태·용도·문양· 신분 등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서로 달랐다. 주머니의 기본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둥근 모양의 두루주머니(혹은 염낭, 환형낭丸形囊)와 각진 귀주머니(혹은 줌치, 각형낭角形囊)로 나뉜다.
두루주머니는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주머니로 반원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주머니의 끈이 주머니 상단에 꿰어져 있는 것을 고뉴高紐, 중간에 매어져 있는 것을 중뉴中紐, 하단에 매어져 있는 것을 저뉴低紐라고 한다. 귀주머니는 네모지게 꾸며서 입구 위를 두 번 접어 아래 양쪽으로 귀가 나와 양옆이 모가 진 형태의 주머니이다.
그 밖에 직선주머니형과 사선주머니형이 있는데, 직선주머니형에는 일상생활에 많이 쓰이는 물건에 맞게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수젓집·부채주머니·필낭 등이 있다. 또한 사선주머니형은 사각형의 천을 사선으로 접어 솔기를 맞물려 바느질한 후, 중앙에서 주름을 잡아 끈을 꿰고 나머지 부분을 앞으로 넘겨서 뚜껑을 만들었는데 약주머니가 이러한 형태이다.
주머니는 용도에 따라 향을 담은 향주머니, 환약을 담는 약주머니, 부싯돌과 담배를 담아 둔 부시주머니와 쌈지, 군대를 동원하는 징표로 쓰이던 발병부를 넣던 병부주머니, 도장을 보관하는 도장주머니가 있다. 또한 시계를 넣은 시계주머니, 안경을 보관하는 안경주머니, 붓을 넣어 다니던 필낭, 침선과 구급 처방을 위해 침을 넣었던 침낭, 시집가는 처녀가 혼수로 만들어 가던 수저주머니, 버선본을 보관하는 버선본주머니, 선비들의 풍류가 담긴 부채주머니 외에도 장도주머니, 노리개주머니, 돈주머니 등이 있다.
주머니는 금박이나 자수로 문양을 찍거나 수놓았는데 문양은 크게 동물·식물무늬 중심이다. 그 밖에 자연 무늬와 길상을 나타내는 문자무늬, 장수를 염원하는 십장생무늬, 부귀를 나타내는 모란무늬, 기하무늬 등 여러 무늬를 볼 수 있다. 자연 문양의 주머니에는 산수낭이 있는데, 산수의 무늬는 흉배의 하단에 쓰인 삼산·파도·불로초 등의 무늬가 주로 쓰였다. 문자무늬로는 자식을 기원하는 뜻인 ‘다남자多男子’, ‘다남다복多男多福’의 글자를 수놓았으며, 한 쌍의 원앙이나 장생문을 함께 수놓기도 했다. 또, 나이든 어른이 사용하는 주머니에는 ‘수복壽福’이라는 글자를 수놓아 장수와 복을 빌었다. 비단에 오복문자를 수놓은 오복수낭五福繡囊이 있으며, 수젓집 등의 하부에는 만卍자문을 중심으로 양쪽에 파도·바위·삼산·불로초를 수놓았다. 수복강녕壽福康寧의 네 글자가 새겨 복을 비는 염원을 담았다. 한편 신분에 따라 문양 및 색과 부금 여부가 달랐는데, 황룡자낭·봉자낭·부금낭은 지배 계급의 권위를 나타내는 주머니 명칭이다.

특징 및 의의

우리의 전통복식은 서양복식과는 다르게 포켓이 없었으므로 모든 소지품은 주머니를 따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따라서 주머니는 남녀노소 신분에 상관없이 애용되었고,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또한 주머니는 자수나 금박으로 장식하여 장식품으로도 사용되었다. 그 문양에는 부귀·장생·자손 번창 같은 주술적 기원을 표현하여 주머니 본래의 물건을 담는 실용적 목적과 장식적 역할 외에도 주술적 의미까지 포함하였다. 또한 주머니 속에 콩을 볶아 한 알씩 넣어 정초에 친지들에게 선물하고 이것을 해일에 차면 만복이 온다는 풍습이 있었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宣和奉使高麗圖經, 朝鮮常識, 이조시대 문양을 중심으로 한 자수노리개의 연구(백영자,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1), 조선조자수주머니 문양을 응용한 의상디자인 연구(정윤진,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한국생활문화 100년(백영자 외, 도서출판 장원, 1995), 한국 복식문화의 흐름(백영자·최정, 경춘사, 2014), 한국의 주머니 연구 및 현대화(김옥현, 예술논총5,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2002), 한국전통주머니에 나타난 감성이미지(강정현·권영숙, 복식53-4, 한국복식학회,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