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관(翼善冠)

한자명

翼善冠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이민주(李民周)

정의

조선시대 왕, 왕세자, 왕세손이 곤룡포를 입을 때 쓰는 관모.

역사

익선관翼善冠은 당나라 태종太宗이 제정한 것으로, 후주後周 때 착용하던 복두幞頭를 개조하여 만든 관모이다. 이후 익선관은 원일元日(새해)·동지冬至·삭망朔望(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 등에 시사복視事服인 곤룡포衮龍袍와 함께 착용하였다. 명나라에서는 홍무년洪武年(1368~1398)에 오사절상건烏紗折上巾을 착용하였고 영락년永樂年(1403~1424)에는 오사절각향상건烏紗折角向上巾을 착용하였다. 절각향상의 형태는 복두의 양각을 위로 접어 올린 것과 같으나 익선관의 모부帽部 중앙에는 진보라색 끈을 2가닥으로 꼬아 붙이고 있어 장식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왕의 상복常服으로 오사모烏紗帽를 착용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1444년(세종 26)에 이르러 사은사 유수강柳守剛이 칙서와 함께 관복으로 향조추사香皂皺紗로 된 익선관 1정頂과 옥대玉帶 1개, 포복袍服 3건을 가져오면서 익선관을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왕세자의 익선관은 1450년(문종 즉위년)에 면복을 사여 받은 이후 착용하기 시작했다.

내용

익선관은 왕, 왕세자, 왕세손이 곤룡포를 입을 때 쓰는 관모이다. 익선관의 형태는 머리를 덮는 모체帽體가 이층으로 되어 있으며, 관모 뒤에 날개를 닮은 각 2개가 위를 향하도록 부착되어 있다. 『국조오례의보서례國朝五禮儀補序例』 도설을 보면 관은 모라帽羅로 싸고 양 대각 뒤에 각각 소각을 붙여 위로 올린 형태인데, 이마에서 정수리까지를 감싸는 하부와 정수리 위에서 상투를 덮도록 되어 있는 상부를 서로 연결하였다. 그러나 고종이 착용한 것으로 전해지는 ‘전傳 고종 익선관’은 모체와 양각兩角이 모두 자색 비단으로 되어 있으며, 하부와 상부가 연결되는 부분의 중앙에 짙은 자색 견사를 굵게 감아 만든 선을 가로와 세로로 붙여 장식했다. 모정은 영조의 익선관에 비해 낮은 편이고 양각의 가장자리를 철사처럼 단단한 것으로 형태를 잡아 고정하였다. 양대각과 양소각은 모두 가장자리를 검게 칠하여 모자 뒤에 부착된 직사각형 받침대에 꽂아 고정시켰다. 이 익선관은 모체의 내부 골격이 매우 단단하고 정교하게 짜여 있으며 여러 겹의 한지와 대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본다. 모체의 하단 선은 검은 칠을 해 마무리했는데, 전체적으로 지름 1 정도의 고른 간격으로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위를 자적색 비단으로 덮었다. 이는 통풍이 잘 되게 하여 쾌적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현재 태조, 영조, 고종, 순종의 어진을 통해 익선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유물로는 고종의 것으로 전하는 익선관이 남아 있다. 상중喪中에는 백색을 썼다.

특징 및 의의

익선관은 왕, 왕세자, 왕세손이 곤룡포와 함께 착용하는 관모로 그 형태에는 차이가 없다. 익선翼善은 모체 뒤쪽에 달린 매미 날개 모양의 소각小角을 말한다. 익선은 안쪽에 높이 10의 날개를 붙이고 그 위에 높이 15의 날개를 이중으로 덧붙여 제작하였다. 모체의 중앙부에는 비단실을 굵게 꼬아 두 줄로 장식하였다. 내부 뒷면에는 보라색 견사로 꼬아둔 끈에 직경 약 2의 대모가 달려 있다. 익선관에 사용하는 모피는 초피貂皮로 평안도 강계부에서 매년 상납上納하였는데 1562년(명종 17)에는 수량을 늘려 징수하였으므로 백성들의 피해가 컸다.
익선관은 면복과 같이 의례적으로 반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선에서 자유롭게 착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익선관은 시대에 따라 모정의 높이나 뿔의 모양이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틀에서는 차이가 없다. 어진에서 볼 수 있는 태조의 익선관은 모정이 둥글고 상부와 하부의 높이 차이가 크지 않으며 뿔이 작은 반면, 영조가 착용한 익선관은 모정이 높고 관 뒤에 있는 양 뿔도 상당히 넓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영친왕의 익선관은 가죽과 말총에 옻칠을 하여 모체를 만든 뒤 그 위에 진한 감색 비단을 배접하여 제작하였는데, 진보라색, 흑색, 자주색 등 색깔에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

관모연구4(강순제, 생활과학연구논집18-1, 가톨릭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1996), 영친왕일가복식(국립고궁박물관, 2010), 왕실문화도감-조선왕실복식(국립고궁박물관, 2012),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3), 전 고종 익선관(박성실, 문화재대관-복식·자수, 문화재청, 2006), 조선왕조실록사전(encysillok.aks.ac.kr).

익선관

익선관
한자명

翼善冠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이민주(李民周)

정의

조선시대 왕, 왕세자, 왕세손이 곤룡포를 입을 때 쓰는 관모.

역사

익선관翼善冠은 당나라 태종太宗이 제정한 것으로, 후주後周 때 착용하던 복두幞頭를 개조하여 만든 관모이다. 이후 익선관은 원일元日(새해)·동지冬至·삭망朔望(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 등에 시사복視事服인 곤룡포衮龍袍와 함께 착용하였다. 명나라에서는 홍무년洪武年(1368~1398)에 오사절상건烏紗折上巾을 착용하였고 영락년永樂年(1403~1424)에는 오사절각향상건烏紗折角向上巾을 착용하였다. 절각향상의 형태는 복두의 양각을 위로 접어 올린 것과 같으나 익선관의 모부帽部 중앙에는 진보라색 끈을 2가닥으로 꼬아 붙이고 있어 장식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왕의 상복常服으로 오사모烏紗帽를 착용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1444년(세종 26)에 이르러 사은사 유수강柳守剛이 칙서와 함께 관복으로 향조추사香皂皺紗로 된 익선관 1정頂과 옥대玉帶 1개, 포복袍服 3건을 가져오면서 익선관을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왕세자의 익선관은 1450년(문종 즉위년)에 면복을 사여 받은 이후 착용하기 시작했다.

내용

익선관은 왕, 왕세자, 왕세손이 곤룡포를 입을 때 쓰는 관모이다. 익선관의 형태는 머리를 덮는 모체帽體가 이층으로 되어 있으며, 관모 뒤에 날개를 닮은 각 2개가 위를 향하도록 부착되어 있다. 『국조오례의보서례國朝五禮儀補序例』 도설을 보면 관은 모라帽羅로 싸고 양 대각 뒤에 각각 소각을 붙여 위로 올린 형태인데, 이마에서 정수리까지를 감싸는 하부와 정수리 위에서 상투를 덮도록 되어 있는 상부를 서로 연결하였다. 그러나 고종이 착용한 것으로 전해지는 ‘전傳 고종 익선관’은 모체와 양각兩角이 모두 자색 비단으로 되어 있으며, 하부와 상부가 연결되는 부분의 중앙에 짙은 자색 견사를 굵게 감아 만든 선을 가로와 세로로 붙여 장식했다. 모정은 영조의 익선관에 비해 낮은 편이고 양각의 가장자리를 철사처럼 단단한 것으로 형태를 잡아 고정하였다. 양대각과 양소각은 모두 가장자리를 검게 칠하여 모자 뒤에 부착된 직사각형 받침대에 꽂아 고정시켰다. 이 익선관은 모체의 내부 골격이 매우 단단하고 정교하게 짜여 있으며 여러 겹의 한지와 대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본다. 모체의 하단 선은 검은 칠을 해 마무리했는데, 전체적으로 지름 1 정도의 고른 간격으로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위를 자적색 비단으로 덮었다. 이는 통풍이 잘 되게 하여 쾌적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현재 태조, 영조, 고종, 순종의 어진을 통해 익선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유물로는 고종의 것으로 전하는 익선관이 남아 있다. 상중喪中에는 백색을 썼다.

특징 및 의의

익선관은 왕, 왕세자, 왕세손이 곤룡포와 함께 착용하는 관모로 그 형태에는 차이가 없다. 익선翼善은 모체 뒤쪽에 달린 매미 날개 모양의 소각小角을 말한다. 익선은 안쪽에 높이 10의 날개를 붙이고 그 위에 높이 15의 날개를 이중으로 덧붙여 제작하였다. 모체의 중앙부에는 비단실을 굵게 꼬아 두 줄로 장식하였다. 내부 뒷면에는 보라색 견사로 꼬아둔 끈에 직경 약 2의 대모가 달려 있다. 익선관에 사용하는 모피는 초피貂皮로 평안도 강계부에서 매년 상납上納하였는데 1562년(명종 17)에는 수량을 늘려 징수하였으므로 백성들의 피해가 컸다.
익선관은 면복과 같이 의례적으로 반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선에서 자유롭게 착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익선관은 시대에 따라 모정의 높이나 뿔의 모양이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틀에서는 차이가 없다. 어진에서 볼 수 있는 태조의 익선관은 모정이 둥글고 상부와 하부의 높이 차이가 크지 않으며 뿔이 작은 반면, 영조가 착용한 익선관은 모정이 높고 관 뒤에 있는 양 뿔도 상당히 넓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영친왕의 익선관은 가죽과 말총에 옻칠을 하여 모체를 만든 뒤 그 위에 진한 감색 비단을 배접하여 제작하였는데, 진보라색, 흑색, 자주색 등 색깔에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

관모연구4(강순제, 생활과학연구논집18-1, 가톨릭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1996), 영친왕일가복식(국립고궁박물관, 2010), 왕실문화도감-조선왕실복식(국립고궁박물관, 2012),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3), 전 고종 익선관(박성실, 문화재대관-복식·자수, 문화재청, 2006), 조선왕조실록사전(encysillok.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