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복(燕尾服)

연미복

한자명

燕尾服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이경미(李京美)

정의

남성들이 연회 때 착용한 서양 정장.

내용

연미복은 서양에서 들어온 남성 예복 중 하나로 앞자락이 허리 아래에서 수평선으로 잘리고 옆쪽에서 사선으로 떨어져서 뒷자락으로 연결되는 형태를 지닌다. 허리 아래의 뒷자락은 중심선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갈라진 테일형코트로 뒷자락의 모습이 제비의 꼬리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연미복燕尾服이라고 부른다.
연미복은 19세기 중반 무렵부터 예복으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밤의 정식 예복으로 입었는데, 궁정의 행사 같은 공식적인 행사 때 함께 착용하는 조끼도 같은 재질로 만들었다. 연미복이라는 명칭은 영어의 스왈로우테일코트swallow tail coat에서 온 것인데, 이 외에도 드레스코트dress coat·테일코트tail coat·이브닝드레스코트evening dress coat라고도 한다.
서양에서 연미복은 19세기 초반에 싱글브레스티드single breasted 또는 더블브레스티드double breasted로 디자인되었다. 1820년대가 되면 주로 싱글브레스티드로만 디자인했는데,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낮에는 잘 사용하지 않고 밤에 공식적인 행사에 참석할 때 입는 예복이 되었다. 이 시기에 낮의 예복은 모닝코트morning coat, 밤의 예복은 연미복으로 정착되었다.
일본에서는 연미복을 1872년 통상예복으로 규정하여 받아들였다. 우리나라에 연미복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00년 4월 17일에 발표된 칙령 제14호 문관복장규칙으로, 제7조에서 소례복 일습의 구성품으로 진사고모眞絲高帽·구제歐制 연미복·조끼·바지로 정해졌다. 진사고모는 서양 남성 예복을 입을 때 함께 착용한 실크해트silk hat를 의미한다. 문관복장규칙 제2조에서 대례복을 착용할 수 있는 관직은 칙임관과 주임관에 한정된데 비해 소례복은 칙주판임관이 공통으로 착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연미복은 문관들이 착용하는 예복으로 받아들여진 것을 알 수 있다. 소례복은 문관복장규칙 제4조에서 궁내에 진현할 때[宮內進見時], 공식적으로 연회할 때[公式宴會時], 상관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할 때[禮拜上官時], 사적으로 서로 축하하고 위로할 때[仕相賀慰時]에 착용하게 하였다.
이후 1905년 1월 16일 관보의 정오正誤를 통해 문관복장규칙의 개정이 있을 때 프록코트와 함께 연미복은 소례복으로 다시 정리되었다. 이 개정을 통해 같은 소례복 규정이지만 프록코트를 입어야 할 때와 연미복을 입어야 할 때가 구분되었다. 프록코트는 궁내에서 왕을 알현할 때, 각국 경절에 하례할 때, 사적으로 예방할 때의 소례복으로 규정되었다. 연미복은 각국 사신을 만날 때,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 때, 외국 관인이 만찬할 때에 착용하게 하여 프록코트보다 좀 더 격식을 갖춘 자리의 소례복이었다. 연미복을 착용할 때 함께 갖춘 복식 품목으로는 진사고모, 가슴 부분에서 열린 형태로 제작된 조끼, 상의와 같은 색 재질의 바지와 구두였다.
우리나라에서 착용된 연미복의 대표적인 모습은 대한제국의 외교관으로 서양에 파견되었던 이범진의 연미복 착용 사진과 일제강점기 촬영된 것으로 전해지는 고종의 사진이다. 이를 통해 서양에서 유행하던 형태가 그대로 도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에도 연미복은 남성 예복으로 여전히 외교 현장에서 주로 입는다. 일반적으로는 성악가나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연미복을 입는 대표적인 집단이다.

특징 및 의의

허리에서 앞자락이 수평으로 잘려 뒷자락과 사선으로 연결되는 형태의 서양 남성 예복으로 대한제국때 소례복으로 도입된 이후 남성 예복으로 착용되었다.

참고문헌

舊韓國官報, 대한제국기 서구식 문관 대례복 제도의 개정과 국가정체성 상실(이경미, 복식61-4, 한국복식학회, 2011), 제복의 탄생(이경미, 민속원, 2012), Men’s Garments, 1830~1900(R. I. Davis, Players Press, 1994).

연미복

연미복
한자명

燕尾服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이경미(李京美)

정의

남성들이 연회 때 착용한 서양 정장.

내용

연미복은 서양에서 들어온 남성 예복 중 하나로 앞자락이 허리 아래에서 수평선으로 잘리고 옆쪽에서 사선으로 떨어져서 뒷자락으로 연결되는 형태를 지닌다. 허리 아래의 뒷자락은 중심선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갈라진 테일형코트로 뒷자락의 모습이 제비의 꼬리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연미복燕尾服이라고 부른다.
연미복은 19세기 중반 무렵부터 예복으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밤의 정식 예복으로 입었는데, 궁정의 행사 같은 공식적인 행사 때 함께 착용하는 조끼도 같은 재질로 만들었다. 연미복이라는 명칭은 영어의 스왈로우테일코트swallow tail coat에서 온 것인데, 이 외에도 드레스코트dress coat·테일코트tail coat·이브닝드레스코트evening dress coat라고도 한다.
서양에서 연미복은 19세기 초반에 싱글브레스티드single breasted 또는 더블브레스티드double breasted로 디자인되었다. 1820년대가 되면 주로 싱글브레스티드로만 디자인했는데,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낮에는 잘 사용하지 않고 밤에 공식적인 행사에 참석할 때 입는 예복이 되었다. 이 시기에 낮의 예복은 모닝코트morning coat, 밤의 예복은 연미복으로 정착되었다.
일본에서는 연미복을 1872년 통상예복으로 규정하여 받아들였다. 우리나라에 연미복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00년 4월 17일에 발표된 칙령 제14호 문관복장규칙으로, 제7조에서 소례복 일습의 구성품으로 진사고모眞絲高帽·구제歐制 연미복·조끼·바지로 정해졌다. 진사고모는 서양 남성 예복을 입을 때 함께 착용한 실크해트silk hat를 의미한다. 문관복장규칙 제2조에서 대례복을 착용할 수 있는 관직은 칙임관과 주임관에 한정된데 비해 소례복은 칙주판임관이 공통으로 착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연미복은 문관들이 착용하는 예복으로 받아들여진 것을 알 수 있다. 소례복은 문관복장규칙 제4조에서 궁내에 진현할 때[宮內進見時], 공식적으로 연회할 때[公式宴會時], 상관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할 때[禮拜上官時], 사적으로 서로 축하하고 위로할 때[仕相賀慰時]에 착용하게 하였다.
이후 1905년 1월 16일 관보의 정오正誤를 통해 문관복장규칙의 개정이 있을 때 프록코트와 함께 연미복은 소례복으로 다시 정리되었다. 이 개정을 통해 같은 소례복 규정이지만 프록코트를 입어야 할 때와 연미복을 입어야 할 때가 구분되었다. 프록코트는 궁내에서 왕을 알현할 때, 각국 경절에 하례할 때, 사적으로 예방할 때의 소례복으로 규정되었다. 연미복은 각국 사신을 만날 때,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 때, 외국 관인이 만찬할 때에 착용하게 하여 프록코트보다 좀 더 격식을 갖춘 자리의 소례복이었다. 연미복을 착용할 때 함께 갖춘 복식 품목으로는 진사고모, 가슴 부분에서 열린 형태로 제작된 조끼, 상의와 같은 색 재질의 바지와 구두였다.
우리나라에서 착용된 연미복의 대표적인 모습은 대한제국의 외교관으로 서양에 파견되었던 이범진의 연미복 착용 사진과 일제강점기 촬영된 것으로 전해지는 고종의 사진이다. 이를 통해 서양에서 유행하던 형태가 그대로 도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에도 연미복은 남성 예복으로 여전히 외교 현장에서 주로 입는다. 일반적으로는 성악가나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연미복을 입는 대표적인 집단이다.

특징 및 의의

허리에서 앞자락이 수평으로 잘려 뒷자락과 사선으로 연결되는 형태의 서양 남성 예복으로 대한제국때 소례복으로 도입된 이후 남성 예복으로 착용되었다.

참고문헌

舊韓國官報, 대한제국기 서구식 문관 대례복 제도의 개정과 국가정체성 상실(이경미, 복식61-4, 한국복식학회, 2011), 제복의 탄생(이경미, 민속원, 2012), Men’s Garments, 1830~1900(R. I. Davis, Players Press,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