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개치마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윤지원(尹智嫄)

정의

조선 중기 이후 양반층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사용한 치마모양의 내외용 쓰개.

역사

한국복식에서 여성의 폐면용蔽面用 쓰개가 착용되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시대부터로 추정되는데, 문헌상으로 확인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그러나 이 시기 사용되었던 쓰개류는 수隋와 당唐을 거쳐 전래된 몽수蒙首라는 것으로, 귀부인의 사치용 쓰개였다.
내외용 쓰개류가 일반화된 것은 조선 후기 유교의 영향이 생활 전반에 침투하면서부터이다. 남녀 간의 내외가 심해지고 여인들의 외출도 금지되자 다양한 폐면용 쓰개류가 발달하였다. 쓰개치마가 언제부터 어떠한 계층에서 내외용으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1526년(중종 21) 2월반가 부녀자의 장의 착용이 문제가 되자 상류층에서 사용하던 너울 대신 더 간편하게 만든 것이 쓰개치마이다. 그러나 조선 말기 반상班常의 구별이 없어지면서 장옷보다 쓰개치마의 착용이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개화기 의제 개혁과 여성의 사회 진출로 인하여 차츰 실효성을 잃게 되면서 사라졌다. 사회에 진출한 또는 개화한 일부 고관부인들은 이때 이미 쓰개를 벗고 자유로이 행동하였다.
폐면용 쓰개류에 대한 개혁은 신식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장옷이나 쓰개를 벗고 얼굴을 내놓고 다닌다는 것은 오랜 습속에 젖은 당시 풍토 탓에 이들 여학생들에게도 매우 어려웠다. 쓰개치마를 벗도록 하자 이를 반대하는 부모들의 영향으로 자퇴생이 늘었고, 학교에서는 이를 막고자 검은 우산을 얼굴을 가리는 도구로 사용하게 하였다.
1908년 이화학당에서 쓰개치마가 사라지게 되고, 같은 해 연동여학교(정신여학교 전신)에서 사라졌으며, 이어서 1911년 배화학당에서 쓰개치마가 금지되었다. 배화학당에서는 1914년 쓰개치마를 벗는 대신 우산을 하나씩 내주어 외출할 때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게 하였다. 그러나 쓰개치마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얼굴을 내놓거나 우산으로 가리기는 1940년대까지도 용납되기 어려웠다. 특히 시골에서 양반 행세를 했다는 집에서는 혼례를 치른 새댁이 외출할 때는 반드시 치마라도 뒤집어쓰고 나갔다.

내용

쓰개치마의 형태는 치마와 같으나 치마보다 길이가 30 정도 짧고 폭도 좁게 했다. 치마허리는 10 정도로 폭이 좁고, 붉은색이나 옥색의 홑치마로 만들었다. 주름을 잡아 옥양목허리를 달아서 치마허리가 이마를 덮을 정도로 둘러쓰고 허리에 달린 양쪽 끝을 턱밑으로 모아 흘러내리지 않도록 손으로 잡고 다녔다. 머리를 둘러 손으로 쥘 수 있을 정도의 폭이지만 속주름을 충분히 넣어 머리 위로 볼록하게 올라왔으며, 뒷모습은 잔주름이 곱게 잡혀 자연스럽게 늘어진 모양이다. 주로 백색이나 옥색의 옥양목이나 명주로 만들었으며, 흔히들 옥색 옥양목 치마를 방 안에 걸어두었다가 문밖에 나갈 때 손쉽게 쓸 수 있게 하였다. 계절에 따라 겹으로 하거나 솜을 두어 방한용으로 쓰기도 하였다. 여름철에는 사紗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는데 아무리 더운 날씨라도 외출할 때는 쓰개치마를 사용하였다.

특징 및 의의

조선 후기 균열된 사회신분제도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유교적 윤리이념을 강화함에 따라 여성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낮아져 부계중심의 사회로 전환된다. 폐면용 쓰개류는 여자만이 사용했던 것으로 유교의 남존여비사상이 깔려 있으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주종관계로 나타냈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였다. 폐면용 쓰개류도 계급에 따라 구분되었는데 너울은 궁중에서, 쓰개치마양반계급에서, 장옷은 중인 이하 서민계급에서 사용하였다. 쓰개치마는 장옷이나 너울에 비해 제작 및 착용이 간편하여 반상의 구분이 모호해진 후로 더 널리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차츰 길이가 짧아지다가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여성쓰개의 역사(홍나영, 학연문화사, 1995), 우리 생활 100년·옷(고부자, 현암사, 2001), 이조시대 여인의 내외용 쓰개류에 대한 고찰(강태임, 안성농업전문대학논문집, 1988), 조선시대 여성의 두식에 관한 연구(이선재·고미연, 숙명여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지, 숙명여자대학교 1997), 한국복식문화사전(김영숙, 미술문화, 1998).

쓰개치마

쓰개치마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윤지원(尹智嫄)

정의

조선 중기 이후 양반층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사용한 치마모양의 내외용 쓰개.

역사

한국복식에서 여성의 폐면용蔽面用 쓰개가 착용되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시대부터로 추정되는데, 문헌상으로 확인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그러나 이 시기 사용되었던 쓰개류는 수隋와 당唐을 거쳐 전래된 몽수蒙首라는 것으로, 귀부인의 사치용 쓰개였다.
내외용 쓰개류가 일반화된 것은 조선 후기 유교의 영향이 생활 전반에 침투하면서부터이다. 남녀 간의 내외가 심해지고 여인들의 외출도 금지되자 다양한 폐면용 쓰개류가 발달하였다. 쓰개치마가 언제부터 어떠한 계층에서 내외용으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1526년(중종 21) 2월 양반가 부녀자의 장의 착용이 문제가 되자 상류층에서 사용하던 너울 대신 더 간편하게 만든 것이 쓰개치마이다. 그러나 조선 말기 반상班常의 구별이 없어지면서 장옷보다 쓰개치마의 착용이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개화기 의제 개혁과 여성의 사회 진출로 인하여 차츰 실효성을 잃게 되면서 사라졌다. 사회에 진출한 또는 개화한 일부 고관부인들은 이때 이미 쓰개를 벗고 자유로이 행동하였다.
폐면용 쓰개류에 대한 개혁은 신식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장옷이나 쓰개를 벗고 얼굴을 내놓고 다닌다는 것은 오랜 습속에 젖은 당시 풍토 탓에 이들 여학생들에게도 매우 어려웠다. 쓰개치마를 벗도록 하자 이를 반대하는 부모들의 영향으로 자퇴생이 늘었고, 학교에서는 이를 막고자 검은 우산을 얼굴을 가리는 도구로 사용하게 하였다.
1908년 이화학당에서 쓰개치마가 사라지게 되고, 같은 해 연동여학교(정신여학교 전신)에서 사라졌으며, 이어서 1911년 배화학당에서 쓰개치마가 금지되었다. 배화학당에서는 1914년 쓰개치마를 벗는 대신 우산을 하나씩 내주어 외출할 때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게 하였다. 그러나 쓰개치마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얼굴을 내놓거나 우산으로 가리기는 1940년대까지도 용납되기 어려웠다. 특히 시골에서 양반 행세를 했다는 집에서는 혼례를 치른 새댁이 외출할 때는 반드시 치마라도 뒤집어쓰고 나갔다.

내용

쓰개치마의 형태는 치마와 같으나 치마보다 길이가 30 정도 짧고 폭도 좁게 했다. 치마허리는 10 정도로 폭이 좁고, 붉은색이나 옥색의 홑치마로 만들었다. 주름을 잡아 옥양목허리를 달아서 치마허리가 이마를 덮을 정도로 둘러쓰고 허리에 달린 양쪽 끝을 턱밑으로 모아 흘러내리지 않도록 손으로 잡고 다녔다. 머리를 둘러 손으로 쥘 수 있을 정도의 폭이지만 속주름을 충분히 넣어 머리 위로 볼록하게 올라왔으며, 뒷모습은 잔주름이 곱게 잡혀 자연스럽게 늘어진 모양이다. 주로 백색이나 옥색의 옥양목이나 명주로 만들었으며, 흔히들 옥색 옥양목 치마를 방 안에 걸어두었다가 문밖에 나갈 때 손쉽게 쓸 수 있게 하였다. 계절에 따라 겹으로 하거나 솜을 두어 방한용으로 쓰기도 하였다. 여름철에는 사紗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는데 아무리 더운 날씨라도 외출할 때는 쓰개치마를 사용하였다.

특징 및 의의

조선 후기 균열된 사회신분제도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유교적 윤리이념을 강화함에 따라 여성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낮아져 부계중심의 사회로 전환된다. 폐면용 쓰개류는 여자만이 사용했던 것으로 유교의 남존여비사상이 깔려 있으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주종관계로 나타냈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였다. 폐면용 쓰개류도 계급에 따라 구분되었는데 너울은 궁중에서, 쓰개치마는 양반계급에서, 장옷은 중인 이하 서민계급에서 사용하였다. 쓰개치마는 장옷이나 너울에 비해 제작 및 착용이 간편하여 반상의 구분이 모호해진 후로 더 널리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차츰 길이가 짧아지다가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여성쓰개의 역사(홍나영, 학연문화사, 1995), 우리 생활 100년·옷(고부자, 현암사, 2001), 이조시대 여인의 내외용 쓰개류에 대한 고찰(강태임, 안성농업전문대학논문집, 1988), 조선시대 여성의 두식에 관한 연구(이선재·고미연, 숙명여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지, 숙명여자대학교 1997), 한국복식문화사전(김영숙, 미술문화,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