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란치마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노수정(盧洙正)

정의

궁중이나 반가의 부녀자가 예복용 하의로 갖추어 입던 스란단이 장식된 치마.

내용

조선시대 여성의 치마는 예복용과 평상용으로 분류된다. 예복용 치마인 스란치마는 왕실의 여성이나 품계가 높은 부녀자들이 관례冠禮·가례嘉禮·길례吉禮·절일節日 같은 행사 때 적의원삼, 당의 등 예복 차림에 갖추어 입었던 치마이다.
스란치마는 평상용 치마보다 치마 길이가 길고 치마폭은 더해 주어 너비가 넓으며 치마의 무릎 부분과 밑단에 스란단을 배치하였다. 스란단은 무늬를 금사金絲로 짜 넣거나, 금박金箔을 직접 찍거나 금박 찍은 스란을 덧대는 형태로 장식하였다. 초기에는 동자문·봉황기린문·봉황문·화조문 등 직금織金 형태 스란에서 조선 후기로 가면서 용문·봉황문·수복화문 등을 부금付金하는 스란 형태로 변화하였다.
스란치마의 색상은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 「발기[件記]」 등에서 청색·남색·다홍색·자적색·양남 등으로 기록되었다. 실물 자료로는 의친왕비義親王妃의 남색 스란치마, 영친왕비英親王妃의 홍색·자적색·남색 대란치마와 남색 스란치마, 익종비 조대비가 친정에 하사하였다는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의 자적색 스란치마 등으로 확인된다.
스란단에 관한 명칭은 쌍스란·스란·대란으로, 스란단의 수에 따라 한 단과 두 단으로 나뉜다. 조선 후기에는 스란단이 치마 아랫단으로 이동하면서 한 단일 때를 스란[膝襴]이라 하고, 치마의 무릎과 하단에 각각 한 단씩 배치되어 스란이 두 단으로 위치한 형태를 대란大襴으로 구분하였다.
스란에 관한 기록은 1504년(연산군 10) “동자포도쌍슬란童子葡萄雙膝襴과 연변蓮邊에 니금泥金으로 그린 치마감 9폭을 대궐로 들이라.”라는 내용에서 보인다. 이는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청주 한씨(1500년대 후반) 연화문단 동자포도문, 남양 홍씨 연화동자문 스란치마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행주 기씨(1600년대) 동자포도문 스란치마 등의 조선시대 출토유물에서 확인된다. 출토된 치마는 두 줄의 동자무늬를 금실[片金絲]로 넣어 제직한 스란단이 치마의 무릎 부분에 위치해 있어 쌍스란의 내용을 증명한다.
경기도박물관 소장 성산 이씨(1651~1671)의 스란치마는 봉황문이 치마에 직금된 형태로 출토되었는데, 치마의 무릎과 하단에 한단씩 스란이 있다. 이는 조선 전기의 두 줄 쌍스란의 형태에서 후기로 들어서며 점차 대란치마의 형태로 변화되는 양상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스란치마의 구성은 성산 이씨(1651~1671)의 수繡를 놓아 장식한 자수스란치마를 제외하면, 대부분 홑으로 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실물 자료는 홑·겹이 모두 보인다. 치마에 사용된 직물은 연꽃·모란문양의 문단紋緞이 보이고, 이후에는 화문花紋 등의 문단이나 문사紋紗를 사용하였다.
스란치마는 주로 왕실 여성을 비롯한 품계가 높은 여성들의 예복이었으나, 일반 사가에서는 혼례 때만 입었다. 박규수朴珪壽(1807~1877)가 1841년(헌종 7)에 저술한 복제사服制史 연구서인 『거가잡복고居家雜服攷』에는 시집갈 때 성대히 꾸미는 것 중에 스란치마[膝襴裙]라는 것이 있는데, 그 길이가 안에 입은 치마[裏裙]보다 조금 짧아서 무릎 아래에서 그치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생겼다고 기록하였다.

특징 및 의의

스란치마는 일반치마보다 길이가 길고 폭이 넓어 예복으로 입을 때는 앞 부분을 신체에 맞게 거들치마 형태로 제작하거나, 겹쳐 입으면서 앞 길이를 신체에 맞게 걷어 착용하였다. 조선시대 비빈들의 복식규정을 알 수 있는 헌종 후궁 경빈 김씨의 『순화궁첩초』의 스란치마 위에 ‘스란웃치마’를 입은 기록과 의화군 부인 「길례 발기」에 다홍 스란치마와 남색 스란웃치마의 기록이 있어, 스란치마를 겹쳐 입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궁중 예복으로 스란치마를 착용할 때 소례복으로 스란단을 무릎과 밑단에 두 층으로 붙인 대란치마를 한 벌 입고, 대례복에는 스란치마를 두 벌 겹쳐
입는다.
대한제국시기에는 신분에 따라 스란단의 문양을 달리하였는데 황후의 치마에는 용문, 황태자비의 치마에 봉황문, 공주와 옹주의 치마에는 화문花紋의 스란단으로 장식하였다. 반가에서는 스란단에 용문과 봉황문을 사용하지 못하고, 공주나 옹주와 같이 수복화문 부금을 장식하여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영친왕 일가 복식(국립고궁박물관, 2010), 이승에서의 마지막 치장(경기도박물관, 2011), 조선시대 여인의 멋과 차림새(박성실·조효숙·이은주, 단국대학교출판부, 2005), 조선시대 스란치마 연구(허정애·송미경, 한복문화17-3, 한복문화학회, 2014), 조선조 치마 재고-16세기 출토복식을 중심으로(박성실, 한국복식학회지30, 한국복식학회, 1996).

스란치마

스란치마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노수정(盧洙正)

정의

궁중이나 반가의 부녀자가 예복용 하의로 갖추어 입던 스란단이 장식된 치마.

내용

조선시대 여성의 치마는 예복용과 평상용으로 분류된다. 예복용 치마인 스란치마는 왕실의 여성이나 품계가 높은 부녀자들이 관례冠禮·가례嘉禮·길례吉禮·절일節日 같은 행사 때 적의나 원삼, 당의 등 예복 차림에 갖추어 입었던 치마이다.
스란치마는 평상용 치마보다 치마 길이가 길고 치마폭은 더해 주어 너비가 넓으며 치마의 무릎 부분과 밑단에 스란단을 배치하였다. 스란단은 무늬를 금사金絲로 짜 넣거나, 금박金箔을 직접 찍거나 금박 찍은 스란을 덧대는 형태로 장식하였다. 초기에는 동자문·봉황기린문·봉황문·화조문 등 직금織金 형태 스란에서 조선 후기로 가면서 용문·봉황문·수복화문 등을 부금付金하는 스란 형태로 변화하였다.
스란치마의 색상은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 「발기[件記]」 등에서 청색·남색·다홍색·자적색·양남 등으로 기록되었다. 실물 자료로는 의친왕비義親王妃의 남색 스란치마, 영친왕비英親王妃의 홍색·자적색·남색 대란치마와 남색 스란치마, 익종비 조대비가 친정에 하사하였다는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의 자적색 스란치마 등으로 확인된다.
스란단에 관한 명칭은 쌍스란·스란·대란으로, 스란단의 수에 따라 한 단과 두 단으로 나뉜다. 조선 후기에는 스란단이 치마 아랫단으로 이동하면서 한 단일 때를 스란[膝襴]이라 하고, 치마의 무릎과 하단에 각각 한 단씩 배치되어 스란이 두 단으로 위치한 형태를 대란大襴으로 구분하였다.
스란에 관한 기록은 1504년(연산군 10) “동자포도쌍슬란童子葡萄雙膝襴과 연변蓮邊에 니금泥金으로 그린 치마감 9폭을 대궐로 들이라.”라는 내용에서 보인다. 이는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청주 한씨(1500년대 후반) 연화문단 동자포도문, 남양 홍씨 연화동자문 스란치마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행주 기씨(1600년대) 동자포도문 스란치마 등의 조선시대 출토유물에서 확인된다. 출토된 치마는 두 줄의 동자무늬를 금실[片金絲]로 넣어 제직한 스란단이 치마의 무릎 부분에 위치해 있어 쌍스란의 내용을 증명한다.
경기도박물관 소장 성산 이씨(1651~1671)의 스란치마는 봉황문이 치마에 직금된 형태로 출토되었는데, 치마의 무릎과 하단에 한단씩 스란이 있다. 이는 조선 전기의 두 줄 쌍스란의 형태에서 후기로 들어서며 점차 대란치마의 형태로 변화되는 양상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스란치마의 구성은 성산 이씨(1651~1671)의 수繡를 놓아 장식한 자수스란치마를 제외하면, 대부분 홑으로 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실물 자료는 홑·겹이 모두 보인다. 치마에 사용된 직물은 연꽃·모란문양의 문단紋緞이 보이고, 이후에는 화문花紋 등의 문단이나 문사紋紗를 사용하였다.
스란치마는 주로 왕실 여성을 비롯한 품계가 높은 여성들의 예복이었으나, 일반 사가에서는 혼례 때만 입었다. 박규수朴珪壽(1807~1877)가 1841년(헌종 7)에 저술한 복제사服制史 연구서인 『거가잡복고居家雜服攷』에는 시집갈 때 성대히 꾸미는 것 중에 스란치마[膝襴裙]라는 것이 있는데, 그 길이가 안에 입은 치마[裏裙]보다 조금 짧아서 무릎 아래에서 그치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생겼다고 기록하였다.

특징 및 의의

스란치마는 일반치마보다 길이가 길고 폭이 넓어 예복으로 입을 때는 앞 부분을 신체에 맞게 거들치마 형태로 제작하거나, 겹쳐 입으면서 앞 길이를 신체에 맞게 걷어 착용하였다. 조선시대 비빈들의 복식규정을 알 수 있는 헌종 후궁 경빈 김씨의 『순화궁첩초』의 스란치마 위에 ‘스란웃치마’를 입은 기록과 의화군 부인 「길례 발기」에 다홍 스란치마와 남색 스란웃치마의 기록이 있어, 스란치마를 겹쳐 입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궁중 예복으로 스란치마를 착용할 때 소례복으로 스란단을 무릎과 밑단에 두 층으로 붙인 대란치마를 한 벌 입고, 대례복에는 스란치마를 두 벌 겹쳐
입는다.
대한제국시기에는 신분에 따라 스란단의 문양을 달리하였는데 황후의 치마에는 용문, 황태자비의 치마에 봉황문, 공주와 옹주의 치마에는 화문花紋의 스란단으로 장식하였다. 반가에서는 스란단에 용문과 봉황문을 사용하지 못하고, 공주나 옹주와 같이 수복화문 부금을 장식하여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영친왕 일가 복식(국립고궁박물관, 2010), 이승에서의 마지막 치장(경기도박물관, 2011), 조선시대 여인의 멋과 차림새(박성실·조효숙·이은주, 단국대학교출판부, 2005), 조선시대 스란치마 연구(허정애·송미경, 한복문화17-3, 한복문화학회, 2014), 조선조 치마 재고-16세기 출토복식을 중심으로(박성실, 한국복식학회지30, 한국복식학회,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