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배영동(裵永東)

정의

대마의 껍질을 벗겨 가늘게 찢어 실로 만들어서 짠 직물.

개관

삼베는 무명[綿布], 모시[苧布], 명주明紬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직물이다. 삼베는 대마大麻를 재배하여 껍질을 벗겨 가늘게 째서 실로 만들어 여러 공정을 거친 후에 베틀에서 짠 직물이다. 따라서 동물성 직물인 명주와 달리 삼베는 무명, 모시와 마찬가지식물성 직물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삼베는 가장 오래된 직물이고 전국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직조되고 활용된 직물이다.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이 1490년에 펴낸 『조선부朝鮮賦』에서 ‘포이직마布而織麻’, 곧 조선의 포(직물)는 마로 만든다고 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용도상으로 보면 삼베는 모시와 마찬가지로 통기성이 좋아서 기본적으로 여름철 옷을 만드는 직물이었고, 또한 상례에도 광범하게 사용되었다. 이후 공장제 직물이 보급되면서 생산량이 급감하였다. 1976년에 대마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전국적으로 대마를 재배하여 삼베를 생산하는 곳이 제한되었다. 오늘날 삼베는 극히 부분적으로 하절기 외출복 재료로 쓰이고, 대부분 수의를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내용

삼베를 직조하기 위해서는 대마 농사에서부터 베틀로 짜기까지 긴 공정을 거친다. 대마 농사를 지은 후 전체 공정을 총칭하여 ‘삼베길쌈’이라고 부른다. 먼저 봄에 대마씨를 빽빽하게 파종하여 대마가 곧고 가늘며 키가 크게 자라도록 한다. 초여름에 대마를 베어서 단으로 묶어 ‘삼굿’(삼구덩이라는 뜻, 광복 이후 초대형 철제 솥을 이용)에 눕혀서 증기로 익힌(이런 과정을 ‘삼굿한다’고 함) 다음 껍질을 벗긴다. 증기로 익히는 것은 대마의 껍질이 잘 벗겨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 껍질을 가늘게 째면 실처럼 되는데, 여기서부터 삼실을 잇는 삼삼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두 종류의 삼베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삼삼기를 한 후에 잿물에 익혀서(숙성시켜서) 생산하는 익냉이삼베[熟布]이고, 다른 하나는 잿물에 익히지 않고 생산하는 생냉이삼베[生布]이다. 여기서 ‘냉이’는 ‘낳이’에서 온 말인데, ‘낳이’는 낳은 것, 생산한 것이라는 뜻이다. 익냉이의 경우 삼삼기를 할 때 대마의 껍질 가운데 섬유질이 없는 겉껍질을 벗기지 않는다. 삼삼기가 끝난 후에 물레로 돌려서 삼실을 꼰 다음, 삼실을 잿물로 익혀서 물에 씻으면 겉껍질이 제거된다. 반면 생냉이는 대마의 겉껍질을 처음부터 벗긴 다음 속껍질만 갖고 삼삼기를 하고, 날실[經絲]을 삼을 때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비벼서 꼰다. 하지만, 생냉이를 직조하기 위한 씨실[緯絲]을 삼을 때는 비벼서 꼬지 않는다. 익냉이는 전국적으로 일반적인 삼베이며, 생냉이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안동포가 대표적이다.
조선시대에 전국에서 명성이 있었던 삼베는 함경도의 육진 지역에 해당하는 종성, 온성, 경원, 길주, 명천 등지에서 생산하던 세칭 북포北布였다. 서유구徐有榘(1764~1845)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보면 함경도 삼베가 워낙 고와서 한 필이 대나무 통에 들어간다고 하여 통포筒布라고 하였다. 이는 삼베 한 필이 주발 속에 들어간다고 하는 바리포[鉢內布]와 마찬가지로 고운 삼베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북포 이외에도 영남의 삼베를 영포嶺布, 강원도 삼베를 강포江布라 하였으니, 이런 지역에서 양질의 삼베가 다량으로 생산되었다는 뜻이다. 19세기 말에 저술된 것으로 알려지는 가사집 『한양가漢陽歌』에는 서울 육의전六矣廛의 베전[布廛]에 함흥咸興 오승五升 심의포襑衣布, 육진장포六鎭長布, 안동포安東布, 해남포海南布, 영춘포永春布, 길주吉州 명천明川 가는 베 등이 진열되었음을 노래한다.
삼베의 고운 정도는 새수[升數]로 표현되는데, 한 새는 날실 80올로 이루어진다. 새수에 관계없이 같은 너비의 바디(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약 35~38)
에 날실을 꿰어서 직조하는데, 새수가 높을수록 바디의 구멍이 촘촘하여 실이 가늘고 곱다. 그럼에도 사람이 삼실을 가늘게 삼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삼베 보름새(15새, 날실 1,200올)를 최고로 쳤다. 지역에 따라 고운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전통적으로 일상용 삼베옷은 6~7새 정도, 외출용 삼베옷은 7~8새 정도의 삼베로 지었다. 그런데 오늘날 전국 각지에서 짜는 삼베는 대개 상례용이므로 4~5새에 불과하며, 안동포의 경우에는 주로 7새이다. 20세기에 전국적으로 고운 삼베의 표본은 안동포였다. 1912년에 안동에는 안동마포개량조합이 결성되어 개량안동포 직조법을 교육하기 위해 전라북도까지 가서 강습회를 열었던 사실이 신문에 실렸다. 이런 기사로 보아 안동포의 개량이 있었다고 판단되나 구체적인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안동 지역에서 생산한 익냉이는 새수가 낮았지만, 생냉이 즉 안동포는 20세기 후반에도 다수의 부녀자가 7~9새 정도로 직조하였다. 2016년에 사망한 경북 무형문화재 안동포짜기 기능보유자 김점호와 박봉금은 2000년대에도 보름새 삼베를 짰다. 최근에 와서는 안동 지역에서도 솜씨 좋은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고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주로 7새 삼베를 짜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삼베를 생산하는 곳은 전남 곡성·보성, 전북 무주, 경북 안동·봉화·청도, 경남 거창· 남해, 충남 당진·예산·홍성, 강원 정선 등지이다. 곡성의 돌실나이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안동포짜기, 청도삼베짜기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거창삼베길쌈 등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 안동에서는 과거에 생산했던 익냉이는 짜지 않고, 오로지 생냉이만 직조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 익냉이로 생산한다. 안동에서 생냉이는 익냉이보다 훨씬 더 곱고 매끈하고 빳빳한 고급 직물이다.
삼베는 주로 하절기의 일상복과 외출복, 홑이불을 만드는 데 쓰였고, 계절에 관계없이 상포喪布, 염포殮布 등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명주가 대량 생산되어 가격이 하락하자 수제 삼베의 가격이 상승하여 20세기 중반부터 삼베 수의가 부상하였고, 안동포처럼 고운 삼베로 만든 수의는 고급 수의로 자리 잡았다. 전통적으로 명주 수의를 최고로 쳤는데, 삼베 수의가 부상한 것은 삼베가 항균 작용을 할 뿐만 아니라 무덤 속에서 명주보다 깨끗하게 썩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삼베 수의는 일제강점기에 식민지정책 실현의 수단으로 등장하였다는 설이 있다.

특징 및 의의

삼베는 전통적으로 모든 직물 가운데서 일반적이면서 서민적인 직물이었다. 명주는 비단으로서 고급 직물이었고, 모시는 날씨가 추워지면 부서질 정도로 질기지 못하였으며, 무명은 목화를 재배한 이후에 등장한 직물이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삼베는 실용적 차원에서 여름철 옷이나 홑이불처럼 무더운 여름철을 나기 위한 직물로 사용되었다. 삼베는 의미적 차원에서 상례용으로 널리 쓰였는데, 그것은 예서에 염포·상포·상복을 삼베로 짓는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서민적인 직물인 삼베로 상례를 치러야만 모든 사람들이 상례를 치를 수 있기 때문이고, 새수가 낮은 삼베로 상복을 만든 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은 불효 탓이고, 불효자는 곧 죄인이라는 전제에서 죄인 형상을 취하기 위해서이다. 삼베는 20세기 후반부터 급속히 사라진 직물이다. 일부 지역에서만 삼베를 생산하는데, 산업사회에서 귀한 직물, 고급 직물로 부상하였다. 전통적인 무명은 광목으로 대체되었고, 명주는 기계직으로 대체되면서, 공장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삼베는 상대적으로 수제품의 전통을 이어왔으므로, 다른 직물에 비해서 가치가 상승하였다.

참고문헌

무주삼베의 생산과정과 전승양상(고부자, 비교민속학32, 비교민속학회, 2006), 보성삼베 연구(고부자, 복식문화연구12-1, 복식문화학회, 2004), 삼베짜기 전승현황 및 지역별 특성(심연옥·금다운, 한복문화19-3, 한복문화학회, 2016), 안동포 전통의 형성과 변화(배영동, 안동삼베연구, 안동대학교박물관, 2002), 안동포의 근대화와 우월적 가치 확립(배영동, 동아시아의 근대와 민속학의 창출, 민속원, 2008), 국가무형문화재4-공예기술1(문화재연구회, 대원사, 1999), 현행 삼베수의 등장배경 및 확산과정연구(최연우, 한복문화20-2, 한복문화학회, 2017).

삼베

삼베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배영동(裵永東)

정의

대마의 껍질을 벗겨 가늘게 찢어 실로 만들어서 짠 직물.

개관

삼베는 무명[綿布], 모시[苧布], 명주明紬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직물이다. 삼베는 대마大麻를 재배하여 껍질을 벗겨 가늘게 째서 실로 만들어 여러 공정을 거친 후에 베틀에서 짠 직물이다. 따라서 동물성 직물인 명주와 달리 삼베는 무명, 모시와 마찬가지로 식물성 직물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삼베는 가장 오래된 직물이고 전국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직조되고 활용된 직물이다.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이 1490년에 펴낸 『조선부朝鮮賦』에서 ‘포이직마布而織麻’, 곧 조선의 포(직물)는 마로 만든다고 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용도상으로 보면 삼베는 모시와 마찬가지로 통기성이 좋아서 기본적으로 여름철 옷을 만드는 직물이었고, 또한 상례에도 광범하게 사용되었다. 이후 공장제 직물이 보급되면서 생산량이 급감하였다. 1976년에 대마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전국적으로 대마를 재배하여 삼베를 생산하는 곳이 제한되었다. 오늘날 삼베는 극히 부분적으로 하절기 외출복 재료로 쓰이고, 대부분 수의를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내용

삼베를 직조하기 위해서는 대마 농사에서부터 베틀로 짜기까지 긴 공정을 거친다. 대마 농사를 지은 후 전체 공정을 총칭하여 ‘삼베길쌈’이라고 부른다. 먼저 봄에 대마씨를 빽빽하게 파종하여 대마가 곧고 가늘며 키가 크게 자라도록 한다. 초여름에 대마를 베어서 단으로 묶어 ‘삼굿’(삼구덩이라는 뜻, 광복 이후 초대형 철제 솥을 이용)에 눕혀서 증기로 익힌(이런 과정을 ‘삼굿한다’고 함) 다음 껍질을 벗긴다. 증기로 익히는 것은 대마의 껍질이 잘 벗겨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 껍질을 가늘게 째면 실처럼 되는데, 여기서부터 삼실을 잇는 삼삼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두 종류의 삼베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삼삼기를 한 후에 잿물에 익혀서(숙성시켜서) 생산하는 익냉이삼베[熟布]이고, 다른 하나는 잿물에 익히지 않고 생산하는 생냉이삼베[生布]이다. 여기서 ‘냉이’는 ‘낳이’에서 온 말인데, ‘낳이’는 낳은 것, 생산한 것이라는 뜻이다. 익냉이의 경우 삼삼기를 할 때 대마의 껍질 가운데 섬유질이 없는 겉껍질을 벗기지 않는다. 삼삼기가 끝난 후에 물레로 돌려서 삼실을 꼰 다음, 삼실을 잿물로 익혀서 물에 씻으면 겉껍질이 제거된다. 반면 생냉이는 대마의 겉껍질을 처음부터 벗긴 다음 속껍질만 갖고 삼삼기를 하고, 날실[經絲]을 삼을 때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비벼서 꼰다. 하지만, 생냉이를 직조하기 위한 씨실[緯絲]을 삼을 때는 비벼서 꼬지 않는다. 익냉이는 전국적으로 일반적인 삼베이며, 생냉이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안동포가 대표적이다.
조선시대에 전국에서 명성이 있었던 삼베는 함경도의 육진 지역에 해당하는 종성, 온성, 경원, 길주, 명천 등지에서 생산하던 세칭 북포北布였다. 서유구徐有榘(1764~1845)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보면 함경도 삼베가 워낙 고와서 한 필이 대나무 통에 들어간다고 하여 통포筒布라고 하였다. 이는 삼베 한 필이 주발 속에 들어간다고 하는 바리포[鉢內布]와 마찬가지로 고운 삼베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북포 이외에도 영남의 삼베를 영포嶺布, 강원도 삼베를 강포江布라 하였으니, 이런 지역에서 양질의 삼베가 다량으로 생산되었다는 뜻이다. 19세기 말에 저술된 것으로 알려지는 가사집 『한양가漢陽歌』에는 서울 육의전六矣廛의 베전[布廛]에 함흥咸興 오승五升 심의포襑衣布, 육진장포六鎭長布, 안동포安東布, 해남포海南布, 영춘포永春布, 길주吉州 명천明川 가는 베 등이 진열되었음을 노래한다.
삼베의 고운 정도는 새수[升數]로 표현되는데, 한 새는 날실 80올로 이루어진다. 새수에 관계없이 같은 너비의 바디(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약 35~38)
에 날실을 꿰어서 직조하는데, 새수가 높을수록 바디의 구멍이 촘촘하여 실이 가늘고 곱다. 그럼에도 사람이 삼실을 가늘게 삼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삼베 보름새(15새, 날실 1,200올)를 최고로 쳤다. 지역에 따라 고운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전통적으로 일상용 삼베옷은 6~7새 정도, 외출용 삼베옷은 7~8새 정도의 삼베로 지었다. 그런데 오늘날 전국 각지에서 짜는 삼베는 대개 상례용이므로 4~5새에 불과하며, 안동포의 경우에는 주로 7새이다. 20세기에 전국적으로 고운 삼베의 표본은 안동포였다. 1912년에 안동에는 안동마포개량조합이 결성되어 개량안동포 직조법을 교육하기 위해 전라북도까지 가서 강습회를 열었던 사실이 신문에 실렸다. 이런 기사로 보아 안동포의 개량이 있었다고 판단되나 구체적인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안동 지역에서 생산한 익냉이는 새수가 낮았지만, 생냉이 즉 안동포는 20세기 후반에도 다수의 부녀자가 7~9새 정도로 직조하였다. 2016년에 사망한 경북 무형문화재 안동포짜기 기능보유자 김점호와 박봉금은 2000년대에도 보름새 삼베를 짰다. 최근에 와서는 안동 지역에서도 솜씨 좋은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고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주로 7새 삼베를 짜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삼베를 생산하는 곳은 전남 곡성·보성, 전북 무주, 경북 안동·봉화·청도, 경남 거창· 남해, 충남 당진·예산·홍성, 강원 정선 등지이다. 곡성의 돌실나이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안동포짜기, 청도삼베짜기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거창삼베길쌈 등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 안동에서는 과거에 생산했던 익냉이는 짜지 않고, 오로지 생냉이만 직조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 익냉이로 생산한다. 안동에서 생냉이는 익냉이보다 훨씬 더 곱고 매끈하고 빳빳한 고급 직물이다.
삼베는 주로 하절기의 일상복과 외출복, 홑이불을 만드는 데 쓰였고, 계절에 관계없이 상포喪布, 염포殮布 등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명주가 대량 생산되어 가격이 하락하자 수제 삼베의 가격이 상승하여 20세기 중반부터 삼베 수의가 부상하였고, 안동포처럼 고운 삼베로 만든 수의는 고급 수의로 자리 잡았다. 전통적으로 명주 수의를 최고로 쳤는데, 삼베 수의가 부상한 것은 삼베가 항균 작용을 할 뿐만 아니라 무덤 속에서 명주보다 깨끗하게 썩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삼베 수의는 일제강점기에 식민지정책 실현의 수단으로 등장하였다는 설이 있다.

특징 및 의의

삼베는 전통적으로 모든 직물 가운데서 일반적이면서 서민적인 직물이었다. 명주는 비단으로서 고급 직물이었고, 모시는 날씨가 추워지면 부서질 정도로 질기지 못하였으며, 무명은 목화를 재배한 이후에 등장한 직물이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삼베는 실용적 차원에서 여름철 옷이나 홑이불처럼 무더운 여름철을 나기 위한 직물로 사용되었다. 삼베는 의미적 차원에서 상례용으로 널리 쓰였는데, 그것은 예서에 염포·상포·상복을 삼베로 짓는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서민적인 직물인 삼베로 상례를 치러야만 모든 사람들이 상례를 치를 수 있기 때문이고, 새수가 낮은 삼베로 상복을 만든 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은 불효 탓이고, 불효자는 곧 죄인이라는 전제에서 죄인 형상을 취하기 위해서이다. 삼베는 20세기 후반부터 급속히 사라진 직물이다. 일부 지역에서만 삼베를 생산하는데, 산업사회에서 귀한 직물, 고급 직물로 부상하였다. 전통적인 무명은 광목으로 대체되었고, 명주는 기계직으로 대체되면서, 공장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삼베는 상대적으로 수제품의 전통을 이어왔으므로, 다른 직물에 비해서 가치가 상승하였다.

참고문헌

무주삼베의 생산과정과 전승양상(고부자, 비교민속학32, 비교민속학회, 2006), 보성삼베 연구(고부자, 복식문화연구12-1, 복식문화학회, 2004), 삼베짜기 전승현황 및 지역별 특성(심연옥·금다운, 한복문화19-3, 한복문화학회, 2016), 안동포 전통의 형성과 변화(배영동, 안동삼베연구, 안동대학교박물관, 2002), 안동포의 근대화와 우월적 가치 확립(배영동, 동아시아의 근대와 민속학의 창출, 민속원, 2008), 국가무형문화재4-공예기술1(문화재연구회, 대원사, 1999), 현행 삼베수의 등장배경 및 확산과정연구(최연우, 한복문화20-2, 한복문화학회,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