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금종숙(琴鍾淑)

정의

바늘에 실을 꿰어 옷을 짓거나 꿰매는 일.

개관

우리나라의 침선은 자연의 상태에서 짐승의 가죽이나 털과 뼈 등으로 만든 바늘을 이용해서 옷을 만들어 입는 데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바느질 관련 유물은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골침 및 가락바퀴이며, 청동기시대 유물로는 함경북도 나진 초도 유적에서 출토된 뼈바늘이 있다.
삼국시대의 유물로는 뼈로 만든 골침과 634년(선덕여왕 3)에 세운 분황사 석탑에서 나온 금속제 바늘과 침통 및 가위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귀금속의 품귀 등으로 인하여 금·은제 바늘이나 바늘통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나, 선각線刻이나 주금鑄金등으로 문양을 세공하는 다양한 기법이 등장한다.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으로 볼 때 장복서掌服署에서 어의御衣(임금이 입는 옷 등)를 공급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 기법상의 다양성을 보인 금속제 바느질도구가 그대로 이어졌는데, 죽침竹針, 골침骨針과 함께 철침鐵針이 많이 쓰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살펴보면 경공장 공조工曹에 침선장이 10명, 상의원에는 40명, 제용감에도 20명이 소속되어 궁중복식 제작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민간에서는 유교 정책으로 말미암아 내외법이 심하여 여인의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거의 집 안에서 보내야 했던 여인이 가정에서 옷을 만드는 일을 하였다. 예절을 숭상하던 우리 조상 의복을 정갈하게 갖추어 입는 것에서 예禮가 시작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바느질을 여인들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여겨 여자아이의 나이가 대여섯만 되면 바느질을 가르쳤다.
개화기인 1890년대 후반에는 재봉틀이 보급되면서 우리나라 전통적인 손바느질법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의복생활도 양장화, 기성복화되어 예전처럼 침선을 여자의 큰 부덕으로 여기던 사상이 변하게 되었다.

내용

바느질도구는 크게 재봉도구와 정리도구로 나눌 수 있다. 재봉도구는 옷감을 마름질해서 꿰매어 일정한 형태를 완성시키는데 소용되는 일체의 용구로, 규중칠우閨中七友라고 하여 바늘·실·자·가위·인두·다리미·골무 등이 있다. 재봉도구 등이 부녀자들의 애중품이었음을 알 수 있는 글이 있는데, 일곱 가지 도구를 의인화하여 소설로 풍자한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와 27년 동안 사용한 바늘에 대한 제문祭文인 순조 대 유씨兪氏부인이 쓴 「조침문弔針文」이 있다.
정리도구는 자질구레한 재봉도구를 넣어 둘 수 있는 반짇고리를 비롯하여 바늘과 실을 정리할 수 있는 바늘집, 바늘쌈, 바늘꽂이 및 실첩과 각종 실패 등을 말한다. 재료는 나무·종이·버들·대·싸리 등이 있으며, 장식은 주칠하거나 자개를 박기도 하고 십장생·사군자· 꽃·문자 등 여러 가지 문양을 넣기도 하였다.
의복을 만드는 옷감은 계절별로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봄과 가을에는 얇은 견직물을 사용하여 겹옷을 만들었다. 여름에는 모시삼베 등을 사용하여 홑옷을 만들었으며, 겨울에는 면직물이나 밀도 높은 견직물을 사용하여 솜을 옷감 안팎 사이에 두어 보온 효과를 높여 솜옷이나 누비옷을 만들었다.
옷을 짓는 공정은 크게 ‘마름질’과 ‘바느질’로 나뉜다. 우리 옷은 옷감을 평면으로 마름하여 인체의 곡선을 강조하기보다는 옷감을 직선으로 마름하고 다시 이것을 인체에 맞추어 곡선으로 바느질하는 것이 전통복식 재단법이다. 평면적인 옷감을 직선으로 재단하여 다시 입체적인 인체에 맞도록 남은 부분을 주름잡거나 끈으로 고정하여 미적 감각을 살린다.
여성 실학자인 빙허각憑虛閣 이씨가 지은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옷 마르기 좋은 날과 꺼리는 날을 기록하였다. 옷 마르기 좋은 날은 갑자·을축·병인·정묘·을사· 계유·갑술·을해·병진·기축·정축·기묘·경진·갑오·을미·병신·경자·신축·계묘·갑진·무신·기유·계축·갑인· 을묘·신유 등의 날이다. 그리고 각角·항亢·저氐·방房·두斗·우牛·허虛·벽壁·규奎·누婁·익翼·진軫 등의 날이다. 옷 마르기 꺼리는 날은 1·2·4·5·7·8·10·11월의 사일巳日과 3·6·9·12월의 축일丑日로 보았다.
재봉법을 전문적으로 다룬 최초의 신서는 1925년 숙명여자 고등보통학교 교원이었던 김숙당金淑堂이 지은 『조선재봉전서朝鮮裁縫全書』이다. 『조선재봉전서』에서는 기초재봉방법과 솔기재봉방법 등을 15항목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감침질하는 법: 감침질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꺾은 두 솔을 똑같이 잡고 두 올을 걸러 한 올씩 떠서 바늘을 반듯이 꾀어 잡아당기는 법인데, 실이 너무 바르도록 잡아당기지 말 것, 둘째는 적삼 단 같은 데 하는 것인데, 손 앞은 높게 하고 뒤쪽은 얕게 하여 뒤는 한 올씩 뜨고 앞은 깊이 뜨는 법이다. 자주 뜰수록 곱다.
2. 홈질하는 법: 홈질은 바느질 두 겹을 왼손에 꼭 잡고 두 번째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 바늘을 잡고 가운데 손가락은 호는 감 뒤로 감 뒤로 내밀어서 바늘허리를 받쳐, 골무 낀 손으로 내밀어 가면서 세 땀을 떠서 혼 것은 뒤로 밀면서 바늘을 앞으로 밀어 다시 세 땀을 뜬다. 이와 같이 계속하면 올이 바르게 호아진다.
3. 박음질하는 법: 박음질에는 온땀침과 반땀침이 있다. 온땀침은 뒤땀을 뜨되 바늘 뺀 밑의 곳도 뜨고 또 뜨는 것인데, 겉자락이 졸아들지 않도록 안팎 두 겹을 꼭 쥐고 바늘을 충분히 내밀어 올바르게 박는 것이다. 반땀침이라는 것은 땀 반씩 떠서 박는 것이다.
4. 상침 뜨는 법: 상침은 세 땀을 곱게 박고 세 땀 박은 사이만 곱걸려서 또 세 번씩 박는 것이다. 세 땀을 박지 않고 두 번씩만 박는 법도 있으니 이것은 두땀상침이라 한다.
5. 휘감치는 법: 무엇이든지 올이 풀려 나오지 말라고 설핏 설핏하게 감치는 것을 말한다.
6. 사뜨는 법: 바늘을 뒤로 꽂아 안으로 빼고 또 뒤로 삼사三四 푼 띄어 앞으로 빼서 뒤로 그 실 다음을 뜨고 또 아래실의 다음으로 뜨면 용마름이 지면서 곱게 떠진다.
7. 시침 놓는 법: 시침은 옷을 지은 후에 안이 나오지 말라고 하는 것인데 또한 모양으로 보이는 고로 깊이와 땀이 곱고 고르게 할지니 시침은 대개 바늘 길이만큼씩 뜨면 알맞다. 시침을 또 마름질할 때에 각각 나지 말라고 시치는 경우가 있다.
8. 공그르는 법(슴치 놓는 법): 공그르는 것은 두 번 꺾어서 접어 감치는 것과 반대로 접은 안은 뒤로 두고 원체는 앞으로 들고 바늘을 뉘여 들고 겹쳐 쥔 대로 디밀어 사오四五 푼씩 뜨면서 원체는 한 올씩 뜨는 것이다.
9. 미는 법: 미는 법은 바느질감을 왼편 무릎에 대고 바느질감 바른쪽 끝에 바늘을 꽂아 바느질감을 꽉 붙여 놓고 왼손가락으로 밀어가면서 감치는 것인데 잘못하면 깊어지고 늘어지니 조심하여 가늘고 올이 맞도록 해야 한다.
10. 솔기하는 법: 솔기를 꺾어 하는 것은 꺾은 금을 호지 말고 금에서 한 올만 밖으로 호아서 풀을 조금 칠하고 먼저 꺾은 금대로 꺾어 인두를 치면 솔기가 곱게 된다.
11. 가름솔하는 법: 가름솔은 꺾지 말고 잠깐 금을 내여 올을 쫒아 호아서 갈라 인두를 치고 그 위에다가 풀을 조금 발라서 또 한 번 치고 거죽으로 또 인두를 치면 곱게 된다.
12. 곱솔하는 법: 곱솔은 한 번 꺾어서 호고 그 뒤를 베어 버리고 또 접어서 하는 것을 곱솔이라 한다.
13. 쌈솔하는 법: 쌈솔 하는 법은 세 가지가 있다.
1) 두 겹으로 혼 다음 또 꺾어서 한 번 호아 얕게 베고 꺾어 박는 것이다.
2) 한편은 거죽으로 꺾고 한편은 안으로 꺾는다. 거죽으로 꺾은 데에 안으로 꺾은 것을 대고 얕게 호되 거죽으로 꺾은 것이 뒤로 가고 홀때는 뒤쪽이 두 올을 내밀어서 혼 뒤에 인도를 치고 그 후에 거죽도 베어 버리고 안으로 꺾은 것도 베어 버리고 안쪽으로 접어서 박되 손으로 바깥으로 밀면서 가늘게 박는 것이다. 재봉틀에 대고도 빠지지 않게 박을 수가 있다.
3) 두 겹을 다 거죽 쪽으로 꺾어 놓고 호아서 베어 버리고 안으로 꺾어 얕게 박는 것이다.
14. 뒤웅솔하는 법(통솔): 뒤웅솔하는 법은 거죽으로 박아 꺾고서 얕게 베고 안으로 뒤집어 베어 낸 시접이 솔기 속으로 들어가게 박아 꺾는다.
15. 솔 나는 법: 무명이나 옥양목 옷솔은 한 번 꺾어 박고 박은 밑은 밑을 베고 갈라서 그 위를 가늘게 재봉틀에 박든지 감치든지 하는 것을 솔 난다고 한다.

특징 및 의의

혼기에 들면 혼수 준비로 수繡를 놓고 혼수품은 스스로 만들었는데, 사대부가에서는 신랑의 도포를 신부가 직접 만들어 오도록 하였다. 시집살이가 시작되면 옷을 만들도록 하여 며느리의 솜씨를 알아보았다.
바느질은 단순히 옷을 만들거나 수선하는 일만이 아니라 노인을 공경하는 며느리의 덕[婦德]의 한 덕목이었으며, 새댁의 버선 예물을 짓고 섣달그믐에는 어른의 새 옷을 지어 주었다. 동짓날에는 시부모에게 양기를 받으면 유익하다고 하여 시어른의 버선을 지어 그 양기를 밟게 하는 풍속이 있었다.
옛 어른들은 혼수와 수의壽衣를 마련할 때는 좋은 날을 받아서 하든가, 금기하는 일이 있었다. 혼수품은 팔자 사나운 과부나 아들을 못 낳는 여자는 만들지 않았다. 수의는 저승에서 입는 최상의 옷이므로 금기하는 일도 많았다. 수의를 만들 때는 뒷바느질을 하지 않았는데 뒷바느질을 하면 ‘영혼이 이승에 미련을 두게 되어 저승으로 가서 안착을 못 한다.’라고 하였다. 수의는 실 끝에 매듭을 짓지 않아야 하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매듭을 지으면 ‘이승에서 맺힌 원한을 풀지 못하고 저승에 가는 격’이라 후손들이 피해를 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네에 초상이 났을 때는 ‘초상이 난다’고 하여 바느질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금기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말하며, 내면에는 의리와 예의, 염치, 도덕성이 깔려 있는 반면에 여성 천시나 유사연상적類似聯想的 주술성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바느질에 관련된 금기는 “옷 입은 채 꿰매거나 단추를 달지 않는다(옷 복福이 없어진다).”, “색시나 신랑 옷은 홑옷과 솜옷은 입히지만 겹옷은 입히지 않는다(앞길이 막힌다).”, “과부는 색시 옷을 만들지 않는다(과부 팔자가 된다).”, “천화일天火日(토끼, 말, 쥐, 닭날)에 옷 마르지 않는다(옷에 불이 난다).”, “남에게 실을 꿰어 줄 때 매듭지어 주지 않는다(매듭이 풀릴 때까지 정이 떨어진다).”, “남자 두루마기(또는 남자요) 뜯어서 여자의 속옷 해 입지 않는다(남자가 재수 없고 약해진다).”, “아래 옷 고쳐서 웃옷 만들지 않는다(등창이 난다).”, “첫 닭날에는 바느질이나 길쌈을 하지 않는다(손이 닭발처럼 된다).” 등이 있다.
바느질에 관한 속담은 “여덟 새[八升] [무명](/topic/무명)에 석새[三升] 바느질”, “석새 무명에 여덟 새 바느질”, “버선볼 댈 줄 알면 어머니 없어도 산다.”, “외바늘 귀 타지기 쉽다.”, “식전에 가위 만지면 해롭다.”, “꿈에 실과 바늘 얻으면 만사가 길하다.”, “바늘에 실 길게 꿰면 멀리 시집간다.”, “아기 백일 옷 백 줄 누비면 장수한다.”, “정월초하룻날 바느질하면 생손 앓는다.”, “칠월칠석날 밤 바늘에 실 꿰면 바느질 솜씨 는다.” 등이 있다.

참고문헌

閨閤叢書, 조선재봉서(김숙당, 활문사, 1925), 침선장(국립문화재연구소, 199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1995), 한국복식 2천년(국립민속박물관, 1995),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

바느질

바느질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금종숙(琴鍾淑)

정의

바늘에 실을 꿰어 옷을 짓거나 꿰매는 일.

개관

우리나라의 침선은 자연의 상태에서 짐승의 가죽이나 털과 뼈 등으로 만든 바늘을 이용해서 옷을 만들어 입는 데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바느질 관련 유물은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골침 및 가락바퀴이며, 청동기시대 유물로는 함경북도 나진 초도 유적에서 출토된 뼈바늘이 있다.
삼국시대의 유물로는 뼈로 만든 골침과 634년(선덕여왕 3)에 세운 분황사 석탑에서 나온 금속제 바늘과 침통 및 가위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귀금속의 품귀 등으로 인하여 금·은제 바늘이나 바늘통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나, 선각線刻이나 주금鑄金등으로 문양을 세공하는 다양한 기법이 등장한다.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으로 볼 때 장복서掌服署에서 어의御衣(임금이 입는 옷 등)를 공급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 기법상의 다양성을 보인 금속제 바느질도구가 그대로 이어졌는데, 죽침竹針, 골침骨針과 함께 철침鐵針이 많이 쓰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살펴보면 경공장 공조工曹에 침선장이 10명, 상의원에는 40명, 제용감에도 20명이 소속되어 궁중복식 제작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민간에서는 유교 정책으로 말미암아 내외법이 심하여 여인의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거의 집 안에서 보내야 했던 여인이 가정에서 옷을 만드는 일을 하였다. 예절을 숭상하던 우리 조상 의복을 정갈하게 갖추어 입는 것에서 예禮가 시작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바느질을 여인들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여겨 여자아이의 나이가 대여섯만 되면 바느질을 가르쳤다.
개화기인 1890년대 후반에는 재봉틀이 보급되면서 우리나라 전통적인 손바느질법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의복생활도 양장화, 기성복화되어 예전처럼 침선을 여자의 큰 부덕으로 여기던 사상이 변하게 되었다.

내용

바느질도구는 크게 재봉도구와 정리도구로 나눌 수 있다. 재봉도구는 옷감을 마름질해서 꿰매어 일정한 형태를 완성시키는데 소용되는 일체의 용구로, 규중칠우閨中七友라고 하여 바늘·실·자·가위·인두·다리미·골무 등이 있다. 재봉도구 등이 부녀자들의 애중품이었음을 알 수 있는 글이 있는데, 일곱 가지 도구를 의인화하여 소설로 풍자한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와 27년 동안 사용한 바늘에 대한 제문祭文인 순조 대 유씨兪氏부인이 쓴 「조침문弔針文」이 있다.
정리도구는 자질구레한 재봉도구를 넣어 둘 수 있는 반짇고리를 비롯하여 바늘과 실을 정리할 수 있는 바늘집, 바늘쌈, 바늘꽂이 및 실첩과 각종 실패 등을 말한다. 재료는 나무·종이·버들·대·싸리 등이 있으며, 장식은 주칠하거나 자개를 박기도 하고 십장생·사군자· 꽃·문자 등 여러 가지 문양을 넣기도 하였다.
의복을 만드는 옷감은 계절별로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봄과 가을에는 얇은 견직물을 사용하여 겹옷을 만들었다. 여름에는 모시나 삼베 등을 사용하여 홑옷을 만들었으며, 겨울에는 면직물이나 밀도 높은 견직물을 사용하여 솜을 옷감 안팎 사이에 두어 보온 효과를 높여 솜옷이나 누비옷을 만들었다.
옷을 짓는 공정은 크게 ‘마름질’과 ‘바느질’로 나뉜다. 우리 옷은 옷감을 평면으로 마름하여 인체의 곡선을 강조하기보다는 옷감을 직선으로 마름하고 다시 이것을 인체에 맞추어 곡선으로 바느질하는 것이 전통복식 재단법이다. 평면적인 옷감을 직선으로 재단하여 다시 입체적인 인체에 맞도록 남은 부분을 주름잡거나 끈으로 고정하여 미적 감각을 살린다.
여성 실학자인 빙허각憑虛閣 이씨가 지은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옷 마르기 좋은 날과 꺼리는 날을 기록하였다. 옷 마르기 좋은 날은 갑자·을축·병인·정묘·을사· 계유·갑술·을해·병진·기축·정축·기묘·경진·갑오·을미·병신·경자·신축·계묘·갑진·무신·기유·계축·갑인· 을묘·신유 등의 날이다. 그리고 각角·항亢·저氐·방房·두斗·우牛·허虛·벽壁·규奎·누婁·익翼·진軫 등의 날이다. 옷 마르기 꺼리는 날은 1·2·4·5·7·8·10·11월의 사일巳日과 3·6·9·12월의 축일丑日로 보았다.
재봉법을 전문적으로 다룬 최초의 신서는 1925년 숙명여자 고등보통학교 교원이었던 김숙당金淑堂이 지은 『조선재봉전서朝鮮裁縫全書』이다. 『조선재봉전서』에서는 기초재봉방법과 솔기재봉방법 등을 15항목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감침질하는 법: 감침질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꺾은 두 솔을 똑같이 잡고 두 올을 걸러 한 올씩 떠서 바늘을 반듯이 꾀어 잡아당기는 법인데, 실이 너무 바르도록 잡아당기지 말 것, 둘째는 적삼 단 같은 데 하는 것인데, 손 앞은 높게 하고 뒤쪽은 얕게 하여 뒤는 한 올씩 뜨고 앞은 깊이 뜨는 법이다. 자주 뜰수록 곱다.
2. 홈질하는 법: 홈질은 바느질 두 겹을 왼손에 꼭 잡고 두 번째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 바늘을 잡고 가운데 손가락은 호는 감 뒤로 감 뒤로 내밀어서 바늘허리를 받쳐, 골무 낀 손으로 내밀어 가면서 세 땀을 떠서 혼 것은 뒤로 밀면서 바늘을 앞으로 밀어 다시 세 땀을 뜬다. 이와 같이 계속하면 올이 바르게 호아진다.
3. 박음질하는 법: 박음질에는 온땀침과 반땀침이 있다. 온땀침은 뒤땀을 뜨되 바늘 뺀 밑의 곳도 뜨고 또 뜨는 것인데, 겉자락이 졸아들지 않도록 안팎 두 겹을 꼭 쥐고 바늘을 충분히 내밀어 올바르게 박는 것이다. 반땀침이라는 것은 땀 반씩 떠서 박는 것이다.
4. 상침 뜨는 법: 상침은 세 땀을 곱게 박고 세 땀 박은 사이만 곱걸려서 또 세 번씩 박는 것이다. 세 땀을 박지 않고 두 번씩만 박는 법도 있으니 이것은 두땀상침이라 한다.
5. 휘감치는 법: 무엇이든지 올이 풀려 나오지 말라고 설핏 설핏하게 감치는 것을 말한다.
6. 사뜨는 법: 바늘을 뒤로 꽂아 안으로 빼고 또 뒤로 삼사三四 푼 띄어 앞으로 빼서 뒤로 그 실 다음을 뜨고 또 아래실의 다음으로 뜨면 용마름이 지면서 곱게 떠진다.
7. 시침 놓는 법: 시침은 옷을 지은 후에 안이 나오지 말라고 하는 것인데 또한 모양으로 보이는 고로 깊이와 땀이 곱고 고르게 할지니 시침은 대개 바늘 길이만큼씩 뜨면 알맞다. 시침을 또 마름질할 때에 각각 나지 말라고 시치는 경우가 있다.
8. 공그르는 법(슴치 놓는 법): 공그르는 것은 두 번 꺾어서 접어 감치는 것과 반대로 접은 안은 뒤로 두고 원체는 앞으로 들고 바늘을 뉘여 들고 겹쳐 쥔 대로 디밀어 사오四五 푼씩 뜨면서 원체는 한 올씩 뜨는 것이다.
9. 미는 법: 미는 법은 바느질감을 왼편 무릎에 대고 바느질감 바른쪽 끝에 바늘을 꽂아 바느질감을 꽉 붙여 놓고 왼손가락으로 밀어가면서 감치는 것인데 잘못하면 깊어지고 늘어지니 조심하여 가늘고 올이 맞도록 해야 한다.
10. 솔기하는 법: 솔기를 꺾어 하는 것은 꺾은 금을 호지 말고 금에서 한 올만 밖으로 호아서 풀을 조금 칠하고 먼저 꺾은 금대로 꺾어 인두를 치면 솔기가 곱게 된다.
11. 가름솔하는 법: 가름솔은 꺾지 말고 잠깐 금을 내여 올을 쫒아 호아서 갈라 인두를 치고 그 위에다가 풀을 조금 발라서 또 한 번 치고 거죽으로 또 인두를 치면 곱게 된다.
12. 곱솔하는 법: 곱솔은 한 번 꺾어서 호고 그 뒤를 베어 버리고 또 접어서 하는 것을 곱솔이라 한다.
13. 쌈솔하는 법: 쌈솔 하는 법은 세 가지가 있다.
1) 두 겹으로 혼 다음 또 꺾어서 한 번 호아 얕게 베고 꺾어 박는 것이다.
2) 한편은 거죽으로 꺾고 한편은 안으로 꺾는다. 거죽으로 꺾은 데에 안으로 꺾은 것을 대고 얕게 호되 거죽으로 꺾은 것이 뒤로 가고 홀때는 뒤쪽이 두 올을 내밀어서 혼 뒤에 인도를 치고 그 후에 거죽도 베어 버리고 안으로 꺾은 것도 베어 버리고 안쪽으로 접어서 박되 손으로 바깥으로 밀면서 가늘게 박는 것이다. 재봉틀에 대고도 빠지지 않게 박을 수가 있다.
3) 두 겹을 다 거죽 쪽으로 꺾어 놓고 호아서 베어 버리고 안으로 꺾어 얕게 박는 것이다.
14. 뒤웅솔하는 법(통솔): 뒤웅솔하는 법은 거죽으로 박아 꺾고서 얕게 베고 안으로 뒤집어 베어 낸 시접이 솔기 속으로 들어가게 박아 꺾는다.
15. 솔 나는 법: 무명이나 옥양목 옷솔은 한 번 꺾어 박고 박은 밑은 밑을 베고 갈라서 그 위를 가늘게 재봉틀에 박든지 감치든지 하는 것을 솔 난다고 한다.

특징 및 의의

혼기에 들면 혼수 준비로 수繡를 놓고 혼수품은 스스로 만들었는데, 사대부가에서는 신랑의 도포를 신부가 직접 만들어 오도록 하였다. 시집살이가 시작되면 옷을 만들도록 하여 며느리의 솜씨를 알아보았다.
바느질은 단순히 옷을 만들거나 수선하는 일만이 아니라 노인을 공경하는 며느리의 덕[婦德]의 한 덕목이었으며, 새댁의 버선 예물을 짓고 섣달그믐에는 어른의 새 옷을 지어 주었다. 동짓날에는 시부모에게 양기를 받으면 유익하다고 하여 시어른의 버선을 지어 그 양기를 밟게 하는 풍속이 있었다.
옛 어른들은 혼수와 수의壽衣를 마련할 때는 좋은 날을 받아서 하든가, 금기하는 일이 있었다. 혼수품은 팔자 사나운 과부나 아들을 못 낳는 여자는 만들지 않았다. 수의는 저승에서 입는 최상의 옷이므로 금기하는 일도 많았다. 수의를 만들 때는 뒷바느질을 하지 않았는데 뒷바느질을 하면 ‘영혼이 이승에 미련을 두게 되어 저승으로 가서 안착을 못 한다.’라고 하였다. 수의는 실 끝에 매듭을 짓지 않아야 하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매듭을 지으면 ‘이승에서 맺힌 원한을 풀지 못하고 저승에 가는 격’이라 후손들이 피해를 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네에 초상이 났을 때는 ‘초상이 난다’고 하여 바느질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금기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말하며, 내면에는 의리와 예의, 염치, 도덕성이 깔려 있는 반면에 여성 천시나 유사연상적類似聯想的 주술성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바느질에 관련된 금기는 “옷 입은 채 꿰매거나 단추를 달지 않는다(옷 복福이 없어진다).”, “색시나 신랑 옷은 홑옷과 솜옷은 입히지만 겹옷은 입히지 않는다(앞길이 막힌다).”, “과부는 색시 옷을 만들지 않는다(과부 팔자가 된다).”, “천화일天火日(토끼, 말, 쥐, 닭날)에 옷 마르지 않는다(옷에 불이 난다).”, “남에게 실을 꿰어 줄 때 매듭지어 주지 않는다(매듭이 풀릴 때까지 정이 떨어진다).”, “남자 두루마기(또는 남자요) 뜯어서 여자의 속옷 해 입지 않는다(남자가 재수 없고 약해진다).”, “아래 옷 고쳐서 웃옷 만들지 않는다(등창이 난다).”, “첫 닭날에는 바느질이나 길쌈을 하지 않는다(손이 닭발처럼 된다).” 등이 있다.
바느질에 관한 속담은 “여덟 새[八升] [무명](/topic/무명)에 석새[三升] 바느질”, “석새 무명에 여덟 새 바느질”, “버선볼 댈 줄 알면 어머니 없어도 산다.”, “외바늘 귀 타지기 쉽다.”, “식전에 가위 만지면 해롭다.”, “꿈에 실과 바늘 얻으면 만사가 길하다.”, “바늘에 실 길게 꿰면 멀리 시집간다.”, “아기 백일 옷 백 줄 누비면 장수한다.”, “정월초하룻날 바느질하면 생손 앓는다.”, “칠월칠석날 밤 바늘에 실 꿰면 바느질 솜씨 는다.” 등이 있다.

참고문헌

閨閤叢書, 조선재봉서(김숙당, 활문사, 1925), 침선장(국립문화재연구소, 199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1995), 한국복식 2천년(국립민속박물관, 1995),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