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리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이관호(李官浩)

정의

삼[麻]이나 모시 또는 노끈 등으로 엮어 만든 질이 좋은 짚신.

내용

미투리를 삼신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마혜麻鞋, 망혜芒鞋, 승혜繩鞋라고 표기한다. 지역에 따라서 무커리, 미커리, 미쿠리, 메토리, 메투리 등으로 불린다. 미투리 중에서도 섬세한 제품은 사대부들이 나들이할 때 신기도 했다. 미투리는 짚신보다 고급품이었으나, 가죽이나 천으로 만든 신이 등장하면서 점차 일반 서민층들의 고급 신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미투리는 백리 길을 가면 구멍이 나고, 짚신은 십리 길만 가도 구멍이 난다. 미투리 값은 짚신 값에 비해 열 배나 비싸기 때문에 비천卑賤한 백성들은 모두 매일같이 짚신 갈아 신기에 여념이 없다. 가죽신 값은 또 미투리의 열 곱이 된다.”라는 구절을 통해서 가죽신이 가장 고급 신이었고, 짚신보다 미투리가 고급 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투리의 주재료는 삼이었으나 점차 닥나무 껍질, 청올치(칡넝쿨), 종이, 무명실 등과 같은 사치스러운 재료를 사용하여 삼기도 했다. 미투리는 절치· 탑골치·무리바닥·지총미투리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는 대개 미투리를 삼을 때 사용한 재료나, 만든 고장에 따라서 구분되었다.
미투리 관련 유물 중, 경상북도 안동 정상동에 위치한 이응태李㒣台(1556~1586)의 묘에서 출토된 미투리가 오늘날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투리는 삼으로 만들기 때문에 황토색을 띠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응태 묘에서 출토된 미투리는 검은 실처럼 보이는 것이 엉켜져 있다. DNA를 검사한 결과, 이 미투리는 삼과 머리카락을 엮어 삼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징 및 의의

미투리는 삼이나 모시, 노끈, 칡넝쿨, 종이, 무명실 등과 같은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엮은 신으로 양반층이나 서민들의 고급 신으로 사용되었다. 미투리는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섬세하게 엮었기 때문에 짚신보다 튼튼하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미투리 출토유물 중 이응태의 묘에서 출토된 미투리와 여러 유물은 조선 중기 양반 가문의 복식과 장례 풍습을 연구하는 데 긴요한 자료로써 그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北學議, 선비의 아내-조선 여성들의 내밀한 결혼 생활기(류정월, 역사의 아침, 2014), 안동 정상동 일선 문씨와 이응태 묘 발굴조사 보고서(안동시·안동대학교박물관, 2000), 영남대로-부산에서 서울까지 옛길을 걷다(신정일, 휴머니스트, 2007),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미투리

미투리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이관호(李官浩)

정의

삼[麻]이나 모시 또는 노끈 등으로 엮어 만든 질이 좋은 짚신.

내용

미투리를 삼신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마혜麻鞋, 망혜芒鞋, 승혜繩鞋라고 표기한다. 지역에 따라서 무커리, 미커리, 미쿠리, 메토리, 메투리 등으로 불린다. 미투리 중에서도 섬세한 제품은 사대부들이 나들이할 때 신기도 했다. 미투리는 짚신보다 고급품이었으나, 가죽이나 천으로 만든 신이 등장하면서 점차 일반 서민층들의 고급 신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미투리는 백리 길을 가면 구멍이 나고, 짚신은 십리 길만 가도 구멍이 난다. 미투리 값은 짚신 값에 비해 열 배나 비싸기 때문에 비천卑賤한 백성들은 모두 매일같이 짚신 갈아 신기에 여념이 없다. 가죽신 값은 또 미투리의 열 곱이 된다.”라는 구절을 통해서 가죽신이 가장 고급 신이었고, 짚신보다 미투리가 고급 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투리의 주재료는 삼이었으나 점차 닥나무 껍질, 청올치(칡넝쿨), 종이, 무명실 등과 같은 사치스러운 재료를 사용하여 삼기도 했다. 미투리는 절치· 탑골치·무리바닥·지총미투리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는 대개 미투리를 삼을 때 사용한 재료나, 만든 고장에 따라서 구분되었다.
미투리 관련 유물 중, 경상북도 안동 정상동에 위치한 이응태李㒣台(1556~1586)의 묘에서 출토된 미투리가 오늘날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투리는 삼으로 만들기 때문에 황토색을 띠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응태 묘에서 출토된 미투리는 검은 실처럼 보이는 것이 엉켜져 있다. DNA를 검사한 결과, 이 미투리는 삼과 머리카락을 엮어 삼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징 및 의의

미투리는 삼이나 모시, 노끈, 칡넝쿨, 종이, 무명실 등과 같은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엮은 신으로 양반층이나 서민들의 고급 신으로 사용되었다. 미투리는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섬세하게 엮었기 때문에 짚신보다 튼튼하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미투리 출토유물 중 이응태의 묘에서 출토된 미투리와 여러 유물은 조선 중기 양반 가문의 복식과 장례 풍습을 연구하는 데 긴요한 자료로써 그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北學議, 선비의 아내-조선 여성들의 내밀한 결혼 생활기(류정월, 역사의 아침, 2014), 안동 정상동 일선 문씨와 이응태 묘 발굴조사 보고서(안동시·안동대학교박물관, 2000), 영남대로-부산에서 서울까지 옛길을 걷다(신정일, 휴머니스트, 2007),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