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기치마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안애영(安愛英)

정의

예복을 입을 때 겉치마가 자연스럽게 넓게 퍼지도록 하기 위하여 3~5층의 치마를 한 허리에 달아 만든 속치마.

내용

무족상, 무족군, 무지기는 무족치마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바지 일색인 속옷과 달리 가랑이를 나누지 않은 치마 모양의 속옷을 의미한다. 『청장관전서靑壯館全書』 사소절士小節에는 “먼저 짧고 작은 흰 치마를 입고 그 위에 치마를 입는데, 무족無足에 오합五合 또는 칠합七合의 호칭이 있다.”라고 하였다. 또한, 『거가잡복고居家雜服攷』에도 부녀들의 치마 안에 겹겹으로 짧은 치마 5~6개, 많으면 10개를 겹겹이 붙이고 한 허리에 달아 입는데 무족군이라 하며, 뻣뻣하게 풀을 먹여 부풀게 하여 마치 종을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하였다. 1819년(순조 19)부터 궁중복식을 담당한 궁녀들이 기록한 「궁중발기宮中撥記」에는 많은 양의 무족이와 무족상, 무족치마, 웃무족이가 있다. 특히 계사년(1893) 길례 의복 가운데에는 연봉 모양의 무족이도 있다.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에는 19세기 말 무지기치마가 있다. 3층으로 구성된 이 유물은 각 층의 밑단 부분을 분홍색으로 곱게 물을 들였다. 박성실 등은 이 유물을 조선 후기 상류층 부녀자들이 겉치마를 부풀리기 위하여 속에 받쳐 입는 속치마라고 하며, 무지기·무족군·무족상으로 설명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과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에도 각 층의 밑단부분을 노란색·분홍색· 옥색으로 물들인 3층으로 된 무지기치마가 있다. 이와 같이 무지기치마는 각 층의 밑단 부분에 홍색을 물들여 마치 연꽃과 같다고 하여 ‘연봉치마’ 또는 ‘연봉무지기’라고도 하며, 무지기라는 명칭에서 무지개 색깔을 연상하여 여러 가지 색을 염색하여 입기도 하였다.

특징 및 의의

무지기는 예복을 갖추어 입을 때 하후상박下厚上薄의 실루엣에서 치마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받쳐 입는 3~5층의 속치마이다. 고려 때 부인들이 입었다고 하는 선군旋裙(길이가 각각 다른 여러 개의 치마를 한 허리에 달아 입어 치마폭이 넓게 퍼지도록 한 속옷)과 동일한 제도의 치마로 각 층마다 주름을 잡아 풍성하게 하여 오늘날의 페티코트petticoat와 같은 기능을 한다.
그 구성은 3, 5, 7층 치마로 각 층마다 치마 길이를 다르게 하여 3, 5, 7합으로 겹쳐 한 허리에 달았다. 각 층의 치마는 모시 12폭을 이어 만들었으며, 치마 밑단 끝부분만 은은하게 염색하여 허리에 주름을 잡았다. 전래 유물들은 허리부터 단 끝까지 1~1.5로 잔잔한 플리츠를 잡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정정완은 어린애나 어린 색시는 삼색무지기(옥색·분홍색·노랑색), 나이 많은 사람은 층에 관계없이 옥색·녹색, 젊은 사람은 분홍무지기를 입었으며, 무지기 길이는 치마길이보다 30 짧게 하고, 20씩 차이를 두고 3단 치마를 한 허리에 껴달아 입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발기」 기록에 무족이와 무족상, 무족치마의 소재는 저포가 대부분이지만 1847년 정미가례에는 저포와 함께 면포도 있으며, 정미년(1907) 「의대발기衣襨件記」에는 백색의 삼팔주 겹무족이, 정사년(1917) 「의대발기」에는 삼팔 핫 무족치마의 기록도 있다.

참고문헌

古文書集成, 옛 속옷과 침선(경기여고 경운박물관, 2006), 조선시대 여인의 멋과 차림새(박성실·조효숙·이은주, 단국대학교출판부, 2005), 침선장(국립문화재연구소, 1998),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5).

무지기치마

무지기치마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안애영(安愛英)

정의

예복을 입을 때 겉치마가 자연스럽게 넓게 퍼지도록 하기 위하여 3~5층의 치마를 한 허리에 달아 만든 속치마.

내용

무족상, 무족군, 무지기는 무족치마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바지 일색인 속옷과 달리 가랑이를 나누지 않은 치마 모양의 속옷을 의미한다. 『청장관전서靑壯館全書』 사소절士小節에는 “먼저 짧고 작은 흰 치마를 입고 그 위에 치마를 입는데, 무족無足에 오합五合 또는 칠합七合의 호칭이 있다.”라고 하였다. 또한, 『거가잡복고居家雜服攷』에도 부녀들의 치마 안에 겹겹으로 짧은 치마 5~6개, 많으면 10개를 겹겹이 붙이고 한 허리에 달아 입는데 무족군이라 하며, 뻣뻣하게 풀을 먹여 부풀게 하여 마치 종을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하였다. 1819년(순조 19)부터 궁중복식을 담당한 궁녀들이 기록한 「궁중발기宮中撥記」에는 많은 양의 무족이와 무족상, 무족치마, 웃무족이가 있다. 특히 계사년(1893) 길례 의복 가운데에는 연봉 모양의 무족이도 있다.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에는 19세기 말 무지기치마가 있다. 3층으로 구성된 이 유물은 각 층의 밑단 부분을 분홍색으로 곱게 물을 들였다. 박성실 등은 이 유물을 조선 후기 상류층 부녀자들이 겉치마를 부풀리기 위하여 속에 받쳐 입는 속치마라고 하며, 무지기·무족군·무족상으로 설명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과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에도 각 층의 밑단부분을 노란색·분홍색· 옥색으로 물들인 3층으로 된 무지기치마가 있다. 이와 같이 무지기치마는 각 층의 밑단 부분에 홍색을 물들여 마치 연꽃과 같다고 하여 ‘연봉치마’ 또는 ‘연봉무지기’라고도 하며, 무지기라는 명칭에서 무지개 색깔을 연상하여 여러 가지 색을 염색하여 입기도 하였다.

특징 및 의의

무지기는 예복을 갖추어 입을 때 하후상박下厚上薄의 실루엣에서 치마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받쳐 입는 3~5층의 속치마이다. 고려 때 부인들이 입었다고 하는 선군旋裙(길이가 각각 다른 여러 개의 치마를 한 허리에 달아 입어 치마폭이 넓게 퍼지도록 한 속옷)과 동일한 제도의 치마로 각 층마다 주름을 잡아 풍성하게 하여 오늘날의 페티코트petticoat와 같은 기능을 한다.
그 구성은 3, 5, 7층 치마로 각 층마다 치마 길이를 다르게 하여 3, 5, 7합으로 겹쳐 한 허리에 달았다. 각 층의 치마는 모시 12폭을 이어 만들었으며, 치마 밑단 끝부분만 은은하게 염색하여 허리에 주름을 잡았다. 전래 유물들은 허리부터 단 끝까지 1~1.5로 잔잔한 플리츠를 잡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정정완은 어린애나 어린 색시는 삼색무지기(옥색·분홍색·노랑색), 나이 많은 사람은 층에 관계없이 옥색·녹색, 젊은 사람은 분홍무지기를 입었으며, 무지기 길이는 치마길이보다 30 짧게 하고, 20씩 차이를 두고 3단 치마를 한 허리에 껴달아 입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발기」 기록에 무족이와 무족상, 무족치마의 소재는 저포가 대부분이지만 1847년 정미가례에는 저포와 함께 면포도 있으며, 정미년(1907) 「의대발기衣襨件記」에는 백색의 삼팔주 겹무족이, 정사년(1917) 「의대발기」에는 삼팔 핫 무족치마의 기록도 있다.

참고문헌

古文書集成, 옛 속옷과 침선(경기여고 경운박물관, 2006), 조선시대 여인의 멋과 차림새(박성실·조효숙·이은주, 단국대학교출판부, 2005), 침선장(국립문화재연구소, 1998),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