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례언해(家禮諺解)

가례언해

한자명

家禮諺解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고영진(高英津)

정의

신식申湜(1551~1623)이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언해諺解한 책.

내용

고려 말 신흥사대부들에 의해 성리학과 함께 도입된 『주자가례』는 학문적인 주목을 받기보다 불교나 민간신앙적인 생활관습에 대응하기 위한 유교의례의 시행이라는 측면에서 더 강조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성리학적 소양을 지닌 관료에 의해서 행해졌으며, 조선시대에는 국가적으로 그 시행이 장려되었다. 학문적 관심이 본격화한 것은 16세기 중반부터였으며, 그에 따라 『주자가례』에 대한 주석과 언해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관련 예서禮書들이 다양하게 편찬되었다. 『주자가례』에 대한 언해 작업은 선조宣祖 초반부터 국가 차원에서 추진되었으나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림 개인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6세기 중반 이황李滉(1501∼1570)이 『주자가례』에 대해 주석과 언해를 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의 작업은 제자인 이덕홍李德興과 김륭金隆(1549∼1594)에게 영향을 미쳤다. 『가례언해家禮諺解』는 신식이 이러한 흐름을 이어받아 16세기 말에 저술한 것으로 현존하는 최초의 본격적인 가례언해서家禮諺解書라고 할 수 있다. 1632년(인조 10) 둘째 아들인 신득연申得淵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원주에서 간행하였다.

10권 4책으로 구성되었으며 제일 앞부분의 범례凡例와 가례도언해家禮圖諺解에 이어 제1권은 가례서家禮序와 통례通禮의 사당祠堂, 심의제도深衣制度, 제2권은 통례의 사마씨거가잡의司馬氏居家雜儀, 제3권은 관례, 제4권은 혼례, 제5권은 상례의 초종初終∼대렴大斂, 제6권은 상례의 성복成服, 제7권은 상례의 조석곡전朝夕哭奠∼치장治葬, 제8권은 상례의 천구遷柩∼반곡反哭, 제9권은 상례의 우제虞祭∼조부모망답인계장祖父母亡答人啓狀, 제10권은 제례에 대한 언해를 수록하였다. 『주자가례』의 큰 글자로 된 항목과 본문은 원문 그대로 한자로 쓰고, 그 밑에 한글 음音과 토吐를 달고 언해하였으며, 작은 글자로 된 설명 부분과 주註들은 원문을 쓰지 않고 언해한 것만 수록하였다. 아울러 연호, 선유先儒, 역대 인물, 서적 편명, 물건의 명칭이나 주에서 따로 해석이 필요한 용어들은 각 장의 윗부분에 표제標題하였다. 『가례언해』의 저술은 두 가지 큰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주자가례』에 대한 이해가 높은 수준에 달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어려운 한문을 우리말로 번역함으로써 『주자가례』가 여성과 서민계층까지 더욱 광범위하게 퍼져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16세기의 다양한 국문 어휘를 수록하고 있어 국어사적 가치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가례언해

가례언해
한자명

家禮諺解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고영진(高英津)

정의

신식申湜(1551~1623)이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언해諺解한 책.

내용

고려 말 신흥사대부들에 의해 성리학과 함께 도입된 『주자가례』는 학문적인 주목을 받기보다 불교나 민간신앙적인 생활관습에 대응하기 위한 유교의례의 시행이라는 측면에서 더 강조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성리학적 소양을 지닌 관료에 의해서 행해졌으며, 조선시대에는 국가적으로 그 시행이 장려되었다. 학문적 관심이 본격화한 것은 16세기 중반부터였으며, 그에 따라 『주자가례』에 대한 주석과 언해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관련 예서禮書들이 다양하게 편찬되었다. 『주자가례』에 대한 언해 작업은 선조宣祖 초반부터 국가 차원에서 추진되었으나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림 개인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6세기 중반 이황李滉(1501∼1570)이 『주자가례』에 대해 주석과 언해를 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의 작업은 제자인 이덕홍李德興과 김륭金隆(1549∼1594)에게 영향을 미쳤다. 『가례언해家禮諺解』는 신식이 이러한 흐름을 이어받아 16세기 말에 저술한 것으로 현존하는 최초의 본격적인 가례언해서家禮諺解書라고 할 수 있다. 1632년(인조 10) 둘째 아들인 신득연申得淵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원주에서 간행하였다.

10권 4책으로 구성되었으며 제일 앞부분의 범례凡例와 가례도언해家禮圖諺解에 이어 제1권은 가례서家禮序와 통례通禮의 사당祠堂, 심의제도深衣制度, 제2권은 통례의 사마씨거가잡의司馬氏居家雜儀, 제3권은 관례, 제4권은 혼례, 제5권은 상례의 초종初終∼대렴大斂, 제6권은 상례의 성복成服, 제7권은 상례의 조석곡전朝夕哭奠∼치장治葬, 제8권은 상례의 천구遷柩∼반곡反哭, 제9권은 상례의 우제虞祭∼조부모망답인계장祖父母亡答人啓狀, 제10권은 제례에 대한 언해를 수록하였다. 『주자가례』의 큰 글자로 된 항목과 본문은 원문 그대로 한자로 쓰고, 그 밑에 한글 음音과 토吐를 달고 언해하였으며, 작은 글자로 된 설명 부분과 주註들은 원문을 쓰지 않고 언해한 것만 수록하였다. 아울러 연호, 선유先儒, 역대 인물, 서적 편명, 물건의 명칭이나 주에서 따로 해석이 필요한 용어들은 각 장의 윗부분에 표제標題하였다. 『가례언해』의 저술은 두 가지 큰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주자가례』에 대한 이해가 높은 수준에 달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어려운 한문을 우리말로 번역함으로써 『주자가례』가 여성과 서민계층까지 더욱 광범위하게 퍼져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16세기의 다양한 국문 어휘를 수록하고 있어 국어사적 가치도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