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박윤미(朴允美)

정의

모시풀의 줄기에서 얻은 실로 제직한 직물.

내용

모시풀은 쐐기풀목 쐐기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겨울철에도 땅 속에 남아 있는 줄기 끝부분이 얼어 죽지 않아야 하므로 주로 습기가 많고 따뜻한 지방에서 서식한다. 모시는 다른 인피섬유靭皮纖維에 비해 비교적 길고 강인하며 광택이 있고 내구성이 풍부하다. 특히 물에 강하고 가벼워서 의복뿐만 아니라 각종 생활용품에 애용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무덥고 습한 여름 날씨에 몸에 붙지 않는 까슬까슬한 촉감 때문에 여름 의복 소재로 즐겨 사용하여 왔다.
우리나라에서 모시를 언제부터 짰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다만 여러 고대 고분에서 모시 직물편이 발견되어 한반도에서는 늦어도 기원 전후에 모시를 직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문헌에는 삼베와의 구분 없이 ‘麻’ 혹은 ‘布’가 마직물의 총칭으로 사용되었다. 통일신라시대 860년(헌안왕 4)의 기록에 “한 사람은 집에 재물이 넉넉하여 사치스러운 옷을 입을 수 있는데도 항상 삼베[麻]와 모시[紵]로 스스로 즐거워했다.”라고 쓰여 있어 이를 구분하여 사용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계림유사鷄林類事』에는 ‘저포苧布’를 ‘모시배毛施背’라고 명시하고 있고, 『목은집牧隱集』에는 “만 필의 모시毛施를 해마다 요구한다고 하며, 청저靑苧는 사紗보다 더 서늘하고 부잣집 얼음덩이 대자리와 맞먹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동사강목東史綱目』 공민왕의 기록에서도 “저苧를 모시毛施라고 한다.”라고 적혀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시’또는 ‘모시베’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불리던 이름이며 하절기용 옷감으로도 사용되었다.
고대 고분에서 출토된 모시는 센티미터() 당 7~ 40올까지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신라에서 30승 저삼단紵衫段을 생산하여 당나라에 보냈다고 하는데, 30승 저삼단은 곱게 짠 극세포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송나라의 사신인 서긍이 고려의 개경에 한 달간 머물면서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 모시의 희고 깨끗함이 마치 옥과 같다고 하였으며, 왕을 비롯하여 신분에 차이 없이 백저포白紵袍를 착용한다고 하였다. 『동사강목』에 의하면 고려의 화문백저포花紋白苧布가 중국에서 진품珍品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무늬 있는 모시인 문저포紋苧布는 원나라에서 공물로 요구받기도 하여 당시 고려의 문저포가 중국에까지 알려진 특산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각 문헌에 십이승백저포十二升白苧布·별승백저포別升白苧布·극상세저포極上細苧布·극세저포極細苧布·세저포黃細紵布·생저生苧·백중저白中苧·장저長苧 등의 다양한 모시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모시는 기후가 온화한 지역에서 서식하므로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 평택과 충청남도 천안 지방을 경계로 주로 남쪽 지방에서 재배되었다. 현재 모시를 제직하고 있는 지역은 충남 한산·서천과 경상남도 남해 등 몇 곳이 되지만 한산 일대에서 가장 많은 양을 생산하고 있다. 이 지역의 ‘한산모시’는 품질과 제직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가는 모시실로 짠 세모시가 유명하다. 한산모시가 품질이 우수한 까닭은 연평균 기온이 12.6℃로 여름 평균 기온이 높고 해풍으로 인해 습하며 토양이 비옥하여 모시재배에 적절하므로 다른 지역에 비해 모시가 잘 자라기 때문이다. 1910년 발행된 『조선산업지朝鮮産業誌』에는 “한산, 서천, 홍산, 비인, 임천, 정산, 남포 7군은 모시의 제직이 주된 곳이므로 저포칠소苧布七所라고 칭한다.”라고 하여 한산 지역에서 생산된 모시의 우수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한산모시는 우리나라의 중요 전통직물로 인정받아 1967년 ‘한산모시짜기’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고, 1974년에는 ‘한산세모시짜기’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2011년에는 유네스코 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에 전통직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모시의 제작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수많은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재배와 수확, 태모시 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굿 만들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짜기, 모시표백 순서로 이루어진다. 먼저 수확한 모시를 속대로부터 껍질을 분리한다. 겉껍질을 벗기면 연두빛의 속껍질이 드러나는데 이것이 모시의 재료이며 ‘태모시’라고 한다. 태모시는 물에 적셨다가 앞니로 가늘게 째서 침으로 훑어내는 ‘째기’를 한다. 초보자는 입술이 갈라지고 혀에서 피가 나기도 한다. 이 모시째기는 가장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과정으로 모시를 얼마나 가늘고 일정한 굵기로 째느냐에 따라 모시의 품질이 결정되며 이후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므로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름새용의 모시실을 만드는 기능자의 수가 현재 점차 줄어 들고 있다.
가늘게 짼 모시실은 옷감으로 짜기 위해서 길게 이어 줘야 하는데 이 과정은 ‘삼기’라고 한다. 모시삼기를 할 때는 잇는 실이 항상 머리 쪽이 되도록 하고 침을 발라 습기를 주면서 삼는다. 어느 정도 실이 이어지면 굵은 실로 묶어 모시굿을 만든다. 모시 한 필을 짜는 데 필요한 양은 모시의 새수[升數]에 따라 달라진다. 7~8새의 모시 한 필을 짜는 데에는 날실용으로 10굿, 씨실용으로는 8굿 정도가 필요하다. 다음은 직조하고자 하는 모시의 길이에 맞춰 날실을 정경하는 ‘날기’를 한다. 조슬대를 세워 놓고 열 개의 구멍에 모시실을 통과시켜 한 묶음으로 하여 새의 수와 길이에 맞춰 날기를 한다. 날기가 끝나면 개새대, 참새대, 바디, 뒷대, 사침대, 걸막대 순서로 가지런히 두고 실을 끼운다. 그리고 마당에 볏불을 지피고 콩풀을 매기면서 모시매기를 한다. 매기에 풀을 사용하는 이유는 실의 이음새를 매끄럽게 하고 실의 강도와 탄력성을 높여 주기 위해서다. 매기가 끝나면 베틀 위에 앉히고 잉아에 모시실을 걸면서 잉아대를 만든다. 전통 베틀에서 잉아에 실거는 과정은 베 짜는 모든 사람이 했던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숙련이 된 사람들만 했다. 한 올이라도 빠지거나 잘못 걸면 베를 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틀에 모시실 앉히기가 끝나면 꾸리에 모시실을 감아 실꾸리를 만들어 북집에 끼워 넣고 모시를 짜기 시작한다. 모시짜기를 할 때는 실내의 습도가 중요하므로 대개 봄부터 초가을까지 짠다. 예전에는 움집이나 토굴 등 습기가 많은 곳에서 직조를 하였으나 근래에는 가습기를 사용하여 습도를 유지하고 있다. 베짜기가 끝난 모시는 잿물에 20~30분 정도 담갔다 꺼낸 후 증기를 이용하여 찜솥에서 쪄서 풀기를 제거하고 표백을 한다. 그리고 깨끗이 헹궈 말리고 다듬기를 하여 완성한다. 햇볕에 바라기를 할 때 반쯤 표백한 것을 ‘반저’라고 하고 완전히 하얗게 표백한 것을 ‘백저’라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모시 한 필을 생산하는 데에는 약 두 달 정도 걸린다.
모시옷은 세탁 후에 풀을 먹여 손질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개항 이후 외국에서 수입되는 값싸고 손질하기 쉬운 옷감을 선호하게 됨에 따라 모시는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으나 모시만이 갖고 있는 투명감과 촉감은 어떤 직물로도 대체되기 어렵다.

특징 및 의의

모시는 고대부터 전세계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직물이나 일부 제직 공정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세모시, 특히 보름새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모시실을 가늘게 째는 과정은 매우 섬세한 기술을 요하는 과정이다. 이는 모시의 품질이 좋아야 가능하므로 한산모시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모시를 방에서 찌는 것은 우리나라의 풍습으로 모시의 양이 적으면 시루에 찌고 많으면 증방蒸房에서 작업을 하는데, 우리나라의 저포법苧布法은 중국에는 없다고 하였다. 모시를 잿물에 담가 방구들, 즉 증방에 놓고 표백하는 방법은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만 수행되던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시는 일반적으로 7새에서 15새까지 제직되는데, 보통 10새 이상을 세모시라고 한다. 새가 높아질수록 가는 모시실로 제직하므로 세모시는 잠자리날개와 같은 투명감을 주는 섬세한 옷감이다. 모시의 가벼운 질감과 은은한 광택, 그리고 까슬까슬한 촉감은 모시만이 갖추고 있는 독특한 특징이다.

참고문헌

鷄林類事, 高麗圖經, 東史綱目, 牧隱集, 三國史記, 한·중·일 전통 모시 직조의 비교 고찰(박윤미, 한복문화8-1, 한복문화학회, 2015).

모시

모시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박윤미(朴允美)

정의

모시풀의 줄기에서 얻은 실로 제직한 직물.

내용

모시풀은 쐐기풀목 쐐기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겨울철에도 땅 속에 남아 있는 줄기 끝부분이 얼어 죽지 않아야 하므로 주로 습기가 많고 따뜻한 지방에서 서식한다. 모시는 다른 인피섬유靭皮纖維에 비해 비교적 길고 강인하며 광택이 있고 내구성이 풍부하다. 특히 물에 강하고 가벼워서 의복뿐만 아니라 각종 생활용품에 애용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무덥고 습한 여름 날씨에 몸에 붙지 않는 까슬까슬한 촉감 때문에 여름 의복 소재로 즐겨 사용하여 왔다.
우리나라에서 모시를 언제부터 짰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다만 여러 고대 고분에서 모시 직물편이 발견되어 한반도에서는 늦어도 기원 전후에 모시를 직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문헌에는 삼베와의 구분 없이 ‘麻’ 혹은 ‘布’가 마직물의 총칭으로 사용되었다. 통일신라시대 860년(헌안왕 4)의 기록에 “한 사람은 집에 재물이 넉넉하여 사치스러운 옷을 입을 수 있는데도 항상 삼베[麻]와 모시[紵]로 스스로 즐거워했다.”라고 쓰여 있어 이를 구분하여 사용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계림유사鷄林類事』에는 ‘저포苧布’를 ‘모시배毛施背’라고 명시하고 있고, 『목은집牧隱集』에는 “만 필의 모시毛施를 해마다 요구한다고 하며, 청저靑苧는 사紗보다 더 서늘하고 부잣집 얼음덩이 대자리와 맞먹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동사강목東史綱目』 공민왕의 기록에서도 “저苧를 모시毛施라고 한다.”라고 적혀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시’또는 ‘모시베’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불리던 이름이며 하절기용 옷감으로도 사용되었다.
고대 고분에서 출토된 모시는 센티미터() 당 7~ 40올까지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신라에서 30승 저삼단紵衫段을 생산하여 당나라에 보냈다고 하는데, 30승 저삼단은 곱게 짠 극세포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송나라의 사신인 서긍이 고려의 개경에 한 달간 머물면서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 모시의 희고 깨끗함이 마치 옥과 같다고 하였으며, 왕을 비롯하여 신분에 차이 없이 백저포白紵袍를 착용한다고 하였다. 『동사강목』에 의하면 고려의 화문백저포花紋白苧布가 중국에서 진품珍品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무늬 있는 모시인 문저포紋苧布는 원나라에서 공물로 요구받기도 하여 당시 고려의 문저포가 중국에까지 알려진 특산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각 문헌에 십이승백저포十二升白苧布·별승백저포別升白苧布·극상세저포極上細苧布·극세저포極細苧布·세저포黃細紵布·생저生苧·백중저白中苧·장저長苧 등의 다양한 모시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모시는 기후가 온화한 지역에서 서식하므로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 평택과 충청남도 천안 지방을 경계로 주로 남쪽 지방에서 재배되었다. 현재 모시를 제직하고 있는 지역은 충남 한산·서천과 경상남도 남해 등 몇 곳이 되지만 한산 일대에서 가장 많은 양을 생산하고 있다. 이 지역의 ‘한산모시’는 품질과 제직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가는 모시실로 짠 세모시가 유명하다. 한산모시가 품질이 우수한 까닭은 연평균 기온이 12.6℃로 여름 평균 기온이 높고 해풍으로 인해 습하며 토양이 비옥하여 모시재배에 적절하므로 다른 지역에 비해 모시가 잘 자라기 때문이다. 1910년 발행된 『조선산업지朝鮮産業誌』에는 “한산, 서천, 홍산, 비인, 임천, 정산, 남포 7군은 모시의 제직이 주된 곳이므로 저포칠소苧布七所라고 칭한다.”라고 하여 한산 지역에서 생산된 모시의 우수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한산모시는 우리나라의 중요 전통직물로 인정받아 1967년 ‘한산모시짜기’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고, 1974년에는 ‘한산세모시짜기’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2011년에는 유네스코 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에 전통직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모시의 제작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수많은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재배와 수확, 태모시 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굿 만들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짜기, 모시표백 순서로 이루어진다. 먼저 수확한 모시를 속대로부터 껍질을 분리한다. 겉껍질을 벗기면 연두빛의 속껍질이 드러나는데 이것이 모시의 재료이며 ‘태모시’라고 한다. 태모시는 물에 적셨다가 앞니로 가늘게 째서 침으로 훑어내는 ‘째기’를 한다. 초보자는 입술이 갈라지고 혀에서 피가 나기도 한다. 이 모시째기는 가장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과정으로 모시를 얼마나 가늘고 일정한 굵기로 째느냐에 따라 모시의 품질이 결정되며 이후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므로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름새용의 모시실을 만드는 기능자의 수가 현재 점차 줄어 들고 있다.
가늘게 짼 모시실은 옷감으로 짜기 위해서 길게 이어 줘야 하는데 이 과정은 ‘삼기’라고 한다. 모시삼기를 할 때는 잇는 실이 항상 머리 쪽이 되도록 하고 침을 발라 습기를 주면서 삼는다. 어느 정도 실이 이어지면 굵은 실로 묶어 모시굿을 만든다. 모시 한 필을 짜는 데 필요한 양은 모시의 새수[升數]에 따라 달라진다. 7~8새의 모시 한 필을 짜는 데에는 날실용으로 10굿, 씨실용으로는 8굿 정도가 필요하다. 다음은 직조하고자 하는 모시의 길이에 맞춰 날실을 정경하는 ‘날기’를 한다. 조슬대를 세워 놓고 열 개의 구멍에 모시실을 통과시켜 한 묶음으로 하여 새의 수와 길이에 맞춰 날기를 한다. 날기가 끝나면 개새대, 참새대, 바디, 뒷대, 사침대, 걸막대 순서로 가지런히 두고 실을 끼운다. 그리고 마당에 볏불을 지피고 콩풀을 매기면서 모시매기를 한다. 매기에 풀을 사용하는 이유는 실의 이음새를 매끄럽게 하고 실의 강도와 탄력성을 높여 주기 위해서다. 매기가 끝나면 베틀 위에 앉히고 잉아에 모시실을 걸면서 잉아대를 만든다. 전통 베틀에서 잉아에 실거는 과정은 베 짜는 모든 사람이 했던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숙련이 된 사람들만 했다. 한 올이라도 빠지거나 잘못 걸면 베를 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틀에 모시실 앉히기가 끝나면 꾸리에 모시실을 감아 실꾸리를 만들어 북집에 끼워 넣고 모시를 짜기 시작한다. 모시짜기를 할 때는 실내의 습도가 중요하므로 대개 봄부터 초가을까지 짠다. 예전에는 움집이나 토굴 등 습기가 많은 곳에서 직조를 하였으나 근래에는 가습기를 사용하여 습도를 유지하고 있다. 베짜기가 끝난 모시는 잿물에 20~30분 정도 담갔다 꺼낸 후 증기를 이용하여 찜솥에서 쪄서 풀기를 제거하고 표백을 한다. 그리고 깨끗이 헹궈 말리고 다듬기를 하여 완성한다. 햇볕에 바라기를 할 때 반쯤 표백한 것을 ‘반저’라고 하고 완전히 하얗게 표백한 것을 ‘백저’라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모시 한 필을 생산하는 데에는 약 두 달 정도 걸린다.
모시옷은 세탁 후에 풀을 먹여 손질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개항 이후 외국에서 수입되는 값싸고 손질하기 쉬운 옷감을 선호하게 됨에 따라 모시는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으나 모시만이 갖고 있는 투명감과 촉감은 어떤 직물로도 대체되기 어렵다.

특징 및 의의

모시는 고대부터 전세계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직물이나 일부 제직 공정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세모시, 특히 보름새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모시실을 가늘게 째는 과정은 매우 섬세한 기술을 요하는 과정이다. 이는 모시의 품질이 좋아야 가능하므로 한산모시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모시를 방에서 찌는 것은 우리나라의 풍습으로 모시의 양이 적으면 시루에 찌고 많으면 증방蒸房에서 작업을 하는데, 우리나라의 저포법苧布法은 중국에는 없다고 하였다. 모시를 잿물에 담가 방구들, 즉 증방에 놓고 표백하는 방법은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만 수행되던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시는 일반적으로 7새에서 15새까지 제직되는데, 보통 10새 이상을 세모시라고 한다. 새가 높아질수록 가는 모시실로 제직하므로 세모시는 잠자리날개와 같은 투명감을 주는 섬세한 옷감이다. 모시의 가벼운 질감과 은은한 광택, 그리고 까슬까슬한 촉감은 모시만이 갖추고 있는 독특한 특징이다.

참고문헌

鷄林類事, 高麗圖經, 東史綱目, 牧隱集, 三國史記, 한·중·일 전통 모시 직조의 비교 고찰(박윤미, 한복문화8-1, 한복문화학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