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明紬)

한자명

明紬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이은진(李銀眞)

정의

누에고치에서 풀어낸 견사絹紗를 사용하여 평직으로 직조한 무늬가 없는 견직물.

내용

명주明紬는 현재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한국 전통직물 중의 하나이다. 이 명칭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최초의 문헌은 조선 후기 학자 이만영이 편찬한 『재물보才物譜』로 알려져 있다. 『재물보』에는 명주가 곧 ‘명쥬’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재물보』의 간행 연대를 1798년(정조 22)경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본문 중에 나와 있는 관직명 등을 근거로 미루어 짐작한 것이고, 본本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명주라는 명칭이 생겨난 연도를 정확하게 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편 『재물보』보다 앞선 1527년(중종 22)에 최세진이 간행한 한자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에 ‘주’는 곧 ‘명디듀’라는 기록이 있지만, 현재 연구된 바로는 『훈몽자회』와 『재물보』 사이의 다른 문헌에서 ‘明紬’ 또는 ‘명주’라는 명칭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훈몽자회』의 ‘명디’라는 단어가 명주를 의미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조선 말기 궁중의 「긔」에도 명주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데 ‘明紬’가 두 건, ‘명듀’가 한 건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 명주가 기록되어 있는 1893년 『홍우순가계사의친왕길례시망처자삼간택영사건기洪祐純家癸巳義親王吉禮時望處子三揀擇時領賜件記』는 관련 인물과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으로 신뢰성이 높다. 또 조선 후기에 출간된 일본인들의 한국어 학술서인 『교린수지交隣須知』의 1881년(고종 18) 본에도 ‘明紬(명쥬)’가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직전의 기록인 충문공忠文公 김병국(1825~1904)의 상례 절차를 기록한 『충문공신종록忠文公愼終錄』에는 ‘명주’와 ‘면주’ 두 명칭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용도 면에서도 명주는 두루마기, 고리, 바지 등 주요 의복의 소재였던 것에 반해, 면주는 의복이 아닌 건, 말, 욕건, 목건 등 부속품의 소재였다. 반면 1915년에 발행된 『조선휘보朝鮮彙報』에는 요시나가吉永彦太郎가 8년 동안 수집한 직물의 명칭과 특징을 정리하여 기록한 <조선향염직물명칭류휘朝鮮向染織物名稱類彙>라는 글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는 면주가 ‘주를 련練한 것’으로 ‘명주’, ‘백명주’, ‘숙주熟紬’와 같다고 하였다. 또, 1920년에 간행된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에서도 면주가 ‘명주’와 같다고 하였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문헌들은 명주를 면주와 동일한 것으로 기록하였고, 이를 통하여 볼 때 명주와 면주는 원래 서로 다른 직물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의미가 변화되어 두 명칭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일반적인 명주는 세리신sericin을 제거해 정련함으로써 유연성과 광택이 좋은 견직물을 말한다. 견직물은 이렇게 불순물이 제거된 후에야 우아한 광택과 풍부한 촉감을 갖는 성질을 가지게 되고, ‘scrooping’이라고 하는 은은한 비단 소리를 낸다. 이렇게 정련을 거친 명주는 부드럽고 따뜻하여 겨울과 봄, 가을 한복감에 적당하다. 반면에 경사, 위사에 생사를 사용한 생견 직물인 생명주도 있는데, 생명주는 촉감이 까칠까칠하고 시원하여 여름철 한복감으로 적당하다.
전통적인 명주는 가내수공업으로 직접 실을 뽑고 베틀에 걸어 직조한다. 그러나 의생활 문화가 서구화됨에 따라 한복을 일상에서 입지 않게 되고, 합성섬유가 나타나는 등 시대의 변화 속에 전통의 수직手織 작업은 쇠퇴하였다. 특히 모시삼베처럼 실을 만들거나 직물을 짜는 공정이 까다로워서 수작업이 아니면 제작이 어려운 옷감과 달리, 명주는 개량식 직기로 대량 제직이 가능하여 전통적인 명주짜기가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이후 기계로 대량 생산된 것과 구별해서 수공手工으로 직조한 명주는 ‘손명주’라고 구분하였다. 손명주는 기계로 제직한 것에 비하여 자연스러운 물성을 지닌다. 1988년 국가 주도로 전통의 명주짜기를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해 경상북도 성주 두리실의 ‘명주짜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하였으며, 14대째 명주와 베를 짜온 두리실마을의 조옥이曺玉伊를 명주짜기 기능보유자로 지정하였다. 조옥이가 별세(2007)한 후에 전승자가 없어 명맥을 잇기 어려워지자, 문화재청은 2017년 4월 ‘두산손명주연구회’를 보유단체로 인정하고 명주짜기 전통의 명맥을 잇기로 결정하였다. 현재 국내에서 명주를 전통에 가까운 방식으로 제직하는 곳으로는 경주 두산마을과 성주 두리실마을이 있다.
명주를 제직하기 위해서는 먼저 누에가 지어 놓은 고치를 끓는 물에 넣어 여러 겹으로 끌어내면서 실을 얻는다.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풀어 타래실을 만드는 것을 ‘실써기’라고 하는데, 고치 열 개에서 실을 뽑으면 섬유 올이 열 올이 되며, 보통 품질의 명주를 짤 수 있다. 고치가 스무 개면 올이 가는 명주가 되고 서른 개면 올이 거미줄 같이 매우 가늘게 된다. 실써기로 만들어진 실을 풀을 먹여 말리고 틀에 감는다. 그다음 실을 걸고 베틀 아래를 발로 앞으로 밀고 뒤로 당기면서 명주를 짜기 시작한다. 명주의 한 새升는 20올이다. 열다섯(보름) 새는 300올로 굵은 편이고 400올로 짜는 스무 새는 가장 고운 상등품이다. 열다섯 새와 스무 새 사이이면 보통으로 친다. 명주에 먹이는 풀은 해조류를 끓여서 사용하였는데, 오늘날에는 녹말가루를 풀어서 쑤어 사용한다. 예전에는 손바닥 형태의 넓적한 선인장을 가시와 껍질을 벗기고 갈아 찧어서 끈끈한 즙을 낸 후 잣을 함께 갈아 넣어 풀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아주 귀하게 여겨 집안의 큰 어른의 옷에만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忠文公愼終錄, 19~20세기 초 견직물에 관한 연구(이은진,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4), 명주, 모시, 춘포의 제직 재현 연구(김보연,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전통옷감(민길자, 대원사, 1997), 한국복식문화사전(김영숙, 미술문화, 1998),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 한국직물오천년(심연옥, 고대직물연구소출판부, 2002), 朝鮮向染織物名稱類彙(吉永彦太朗, 朝鮮彙報1, 朝鮮總督府, 1915).

명주

명주
한자명

明紬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이은진(李銀眞)

정의

누에고치에서 풀어낸 견사絹紗를 사용하여 평직으로 직조한 무늬가 없는 견직물.

내용

명주明紬는 현재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한국 전통직물 중의 하나이다. 이 명칭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최초의 문헌은 조선 후기 학자 이만영이 편찬한 『재물보才物譜』로 알려져 있다. 『재물보』에는 명주가 곧 ‘명쥬’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재물보』의 간행 연대를 1798년(정조 22)경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본문 중에 나와 있는 관직명 등을 근거로 미루어 짐작한 것이고, 본本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명주라는 명칭이 생겨난 연도를 정확하게 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편 『재물보』보다 앞선 1527년(중종 22)에 최세진이 간행한 한자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에 ‘주’는 곧 ‘명디듀’라는 기록이 있지만, 현재 연구된 바로는 『훈몽자회』와 『재물보』 사이의 다른 문헌에서 ‘明紬’ 또는 ‘명주’라는 명칭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훈몽자회』의 ‘명디’라는 단어가 명주를 의미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조선 말기 궁중의 「긔」에도 명주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데 ‘明紬’가 두 건, ‘명듀’가 한 건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 명주가 기록되어 있는 1893년 『홍우순가계사의친왕길례시망처자삼간택영사건기洪祐純家癸巳義親王吉禮時望處子三揀擇時領賜件記』는 관련 인물과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으로 신뢰성이 높다. 또 조선 후기에 출간된 일본인들의 한국어 학술서인 『교린수지交隣須知』의 1881년(고종 18) 본에도 ‘明紬(명쥬)’가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직전의 기록인 충문공忠文公 김병국(1825~1904)의 상례 절차를 기록한 『충문공신종록忠文公愼終錄』에는 ‘명주’와 ‘면주’ 두 명칭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용도 면에서도 명주는 두루마기, 저고리, 바지 등 주요 의복의 소재였던 것에 반해, 면주는 의복이 아닌 건, 말, 욕건, 목건 등 부속품의 소재였다. 반면 1915년에 발행된 『조선휘보朝鮮彙報』에는 요시나가吉永彦太郎가 8년 동안 수집한 직물의 명칭과 특징을 정리하여 기록한 <조선향염직물명칭류휘朝鮮向染織物名稱類彙>라는 글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는 면주가 ‘주를 련練한 것’으로 ‘명주’, ‘백명주’, ‘숙주熟紬’와 같다고 하였다. 또, 1920년에 간행된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에서도 면주가 ‘명주’와 같다고 하였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문헌들은 명주를 면주와 동일한 것으로 기록하였고, 이를 통하여 볼 때 명주와 면주는 원래 서로 다른 직물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의미가 변화되어 두 명칭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일반적인 명주는 세리신sericin을 제거해 정련함으로써 유연성과 광택이 좋은 견직물을 말한다. 견직물은 이렇게 불순물이 제거된 후에야 우아한 광택과 풍부한 촉감을 갖는 성질을 가지게 되고, ‘scrooping’이라고 하는 은은한 비단 소리를 낸다. 이렇게 정련을 거친 명주는 부드럽고 따뜻하여 겨울과 봄, 가을 한복감에 적당하다. 반면에 경사, 위사에 생사를 사용한 생견 직물인 생명주도 있는데, 생명주는 촉감이 까칠까칠하고 시원하여 여름철 한복감으로 적당하다.
전통적인 명주는 가내수공업으로 직접 실을 뽑고 베틀에 걸어 직조한다. 그러나 의생활 문화가 서구화됨에 따라 한복을 일상에서 입지 않게 되고, 합성섬유가 나타나는 등 시대의 변화 속에 전통의 수직手織 작업은 쇠퇴하였다. 특히 모시나 삼베처럼 실을 만들거나 직물을 짜는 공정이 까다로워서 수작업이 아니면 제작이 어려운 옷감과 달리, 명주는 개량식 직기로 대량 제직이 가능하여 전통적인 명주짜기가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이후 기계로 대량 생산된 것과 구별해서 수공手工으로 직조한 명주는 ‘손명주’라고 구분하였다. 손명주는 기계로 제직한 것에 비하여 자연스러운 물성을 지닌다. 1988년 국가 주도로 전통의 명주짜기를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해 경상북도 성주 두리실의 ‘명주짜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하였으며, 14대째 명주와 베를 짜온 두리실마을의 조옥이曺玉伊를 명주짜기 기능보유자로 지정하였다. 조옥이가 별세(2007)한 후에 전승자가 없어 명맥을 잇기 어려워지자, 문화재청은 2017년 4월 ‘두산손명주연구회’를 보유단체로 인정하고 명주짜기 전통의 명맥을 잇기로 결정하였다. 현재 국내에서 명주를 전통에 가까운 방식으로 제직하는 곳으로는 경주 두산마을과 성주 두리실마을이 있다.
명주를 제직하기 위해서는 먼저 누에가 지어 놓은 고치를 끓는 물에 넣어 여러 겹으로 끌어내면서 실을 얻는다.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풀어 타래실을 만드는 것을 ‘실써기’라고 하는데, 고치 열 개에서 실을 뽑으면 섬유 올이 열 올이 되며, 보통 품질의 명주를 짤 수 있다. 고치가 스무 개면 올이 가는 명주가 되고 서른 개면 올이 거미줄 같이 매우 가늘게 된다. 실써기로 만들어진 실을 풀을 먹여 말리고 틀에 감는다. 그다음 실을 걸고 베틀 아래를 발로 앞으로 밀고 뒤로 당기면서 명주를 짜기 시작한다. 명주의 한 새升는 20올이다. 열다섯(보름) 새는 300올로 굵은 편이고 400올로 짜는 스무 새는 가장 고운 상등품이다. 열다섯 새와 스무 새 사이이면 보통으로 친다. 명주에 먹이는 풀은 해조류를 끓여서 사용하였는데, 오늘날에는 녹말가루를 풀어서 쑤어 사용한다. 예전에는 손바닥 형태의 넓적한 선인장을 가시와 껍질을 벗기고 갈아 찧어서 끈끈한 즙을 낸 후 잣을 함께 갈아 넣어 풀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아주 귀하게 여겨 집안의 큰 어른의 옷에만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忠文公愼終錄, 19~20세기 초 견직물에 관한 연구(이은진,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4), 명주, 모시, 춘포의 제직 재현 연구(김보연,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전통옷감(민길자, 대원사, 1997), 한국복식문화사전(김영숙, 미술문화, 1998), 한국복식사전(강순제 외, 민속원, 2015), 한국직물오천년(심연옥, 고대직물연구소출판부, 2002), 朝鮮向染織物名稱類彙(吉永彦太朗, 朝鮮彙報1, 朝鮮總督府,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