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류관(冕旒冠)

한자명

冕旒冠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김경실(金京實)

정의

황제·황태자·왕·왕세자·왕세손이 책봉 등의 대례 시에 착용하는 관모.

내용

면류관은 다른 관들과 달리 관이 몸체와 그 위의 평천판平天板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평천관平天冠’이라는 이칭이 있다. 평천판은 앞이 둥그렇고 뒤가 네모진 전원후방前圓後方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이는 고대인들의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의 개념,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원리를 상징한다. 길이 1척 6촌, 너비 8촌의 오동판梧桐板을 다듬고 옻칠을 하여 만드는데, 겉은 검은 증繒 혹은 단緞으로 덮고 안은 대홍광적大紅廣的으로 만든다.
이 평천판 아래 몸체를 관무冠武라고 한다. 관무는 앞이 낮고 뒤가 높은 전단후고前短後高 원통의 형태로서, 그 위에 얹은 평천판은 전면후앙前俛後仰의 형체를 이루게 된다. 고대 중국에서부터 발달된 제관이면서 후한 대에 이르러 착용되었으며, 이렇게 앞이 뒤보다 면俛하여 숙여지므로 면류관을 ‘면冕’이라고 하였다. 기록이 남아 있는 모든 원전에서 무의 높이는 앞이 8촌 5분이고 뒤가 9촌이나 순종과 영친왕 사진자료의 높이는 이보다 짧다. 무의 틀은 대죽大竹으로 잘게 쪼개어 바구니를 짜듯이 하여 틀을 잡고 옻칠을 한 뒤 검은색 라羅로 세 겹을 배접하여 만들었다. 관무의 상· 중·하단에는 도금한 은을 선으로 만들어 물려 관무를 견고히 하였다.
평천판과 관무 사이, 앞뒤 중심되는 부분에는 좌에서 우로 막대형의 옥량을 끼워 평천관과 옥량, 옥량과 관무가 맞물려 고정되게 하였다. 이 옥량을 옥형玉衡이라고도 하였으며, 평천판의 중심에 고정된 이 옥형은 관 전체의 균형을 잡고, 관무를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옥형에는 검은 끈, 현담玄紞이 걸리어 귓전까지 내려오는데 양 끝에 벽옥碧玉의 옥전玉瑱, 즉 충이充耳를 좌우 두 개씩 달았다. 이렇게 면류관 양옆 귓가에 늘어뜨린 충이는 주광충이黈纊充耳라 하여 주황색의 솜으로 둥그렇게 만들어 귀를 막는다는 의미의 상징물이었는데, 후에 옥전으로 대신하게 된 것이다.
면판의 앞, 뒤로는 옥주를 꿴 류旒를 드리우는데,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류의 수와 류에 꿴 옥의 수 및 그 색에 차등을 두었다. 황제는 매 류마다 황黃·적赤·청靑·백白·흑黑·홍紅·녹綠 일곱 색의 열두 개 옥을 꿰어서 열두 가닥의 류를 드리웠고, 왕은 매 류 마다 주朱·백·창蒼· 황·흑 오색으로 아홉 개의 옥을 꿰어 9류를 드리웠다. 왕세자는 매 류마다 주·백·창의 3색으로 8옥을 꿴 8류를, 왕세손은 매 류마다 주·백·창의 3색으로 7옥을 꿴 7류를 드리웠다. 이 류는 평천판의 전방이 기울어져 있으므로 눈을 가리게 되는데, 『전한서前漢書』에 의하면 면 앞에 류를 늘이는 것은 눈 밝음을 가리기 위함이라 하였다.
금잠은 착용자의 우측에 잠두가 위치하고 좌측으로 그 끝이 나오는 방식이다. 면류관을 착용하기 위해서는 자조紫組와 주조朱組를 사용한다. 조선시대 원전 기록에 의하면 면류관은 조組의 사용에 의해 한결 예의 형식을 따르는 것과 기능에 따르는 두 가지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로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와 『종묘의궤宗廟儀軌』, 『선조국장도감의궤宣祖國葬都監儀軌』,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춘관통고길례제복도설春官通考吉禮祭服圖說』, 『예복禮服』,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의 기록과 같이 관冠에 엮어 턱 밑에서 묶어 술로 드리우는 자조와 금잠에 거는 주조, 두 종류의 조를 사용한 경우로 굉紘인 주조를 장식함으로써 더욱 고아古雅한 원래 관의 착용법을 표방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금잠이 장식화된 경우 조가 관을 고정하는 기능을 함으로써 익종 어진에서와 같이 턱 밑에서 바짝 묶는 자조, 즉 영纓이 주된 역할을 하게 되므로 금잠에 거는 주조는 생략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형식은 『세종실록오례世宗實錄五禮』, 『춘관통고春官通考』,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정조대왕국장도감의궤正祖大王國葬都監儀軌』 등의 기록과 익종 어진에서도 볼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면류관을 쓰고 곤복袞服을 입으면 면복의 일습이 된다. 면복은 황제, 황태자, 왕세자, 왕세손이 용례에 따라 법복, 제복, 대례복으로 착용한다.
면류관은 가례 때 육례六禮 중 납채納采, 고기告期, 친영親迎, 동뢰同牢에 법복法服의 관으로서 착용하였고, 종묘와 사직에 제사지낼 때 제복의 관으로서 착용하였으며, 정조·동지·조회에 대례복의 관으로서 착용하였다.

참고문헌

景慕宮儀軌, 國朝五禮儀序例, 大韓禮典, 尙房定例, 世宗五禮儀, 禮服, 增補文獻備考, 왕의 면복 복원·복제 제작기술서1(국립고궁박물관, 2011), 조선왕조궁중의궤복식(유송옥, 수학사, 1991), 한국복식사(유송옥, 수학사, 1998).

면류관

면류관
한자명

冕旒冠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김경실(金京實)

정의

황제·황태자·왕·왕세자·왕세손이 책봉 등의 대례 시에 착용하는 관모.

내용

면류관은 다른 관들과 달리 관이 몸체와 그 위의 평천판平天板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평천관平天冠’이라는 이칭이 있다. 평천판은 앞이 둥그렇고 뒤가 네모진 전원후방前圓後方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이는 고대인들의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의 개념,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원리를 상징한다. 길이 1척 6촌, 너비 8촌의 오동판梧桐板을 다듬고 옻칠을 하여 만드는데, 겉은 검은 증繒 혹은 단緞으로 덮고 안은 대홍광적大紅廣的으로 만든다.
이 평천판 아래 몸체를 관무冠武라고 한다. 관무는 앞이 낮고 뒤가 높은 전단후고前短後高 원통의 형태로서, 그 위에 얹은 평천판은 전면후앙前俛後仰의 형체를 이루게 된다. 고대 중국에서부터 발달된 제관이면서 후한 대에 이르러 착용되었으며, 이렇게 앞이 뒤보다 면俛하여 숙여지므로 면류관을 ‘면冕’이라고 하였다. 기록이 남아 있는 모든 원전에서 무의 높이는 앞이 8촌 5분이고 뒤가 9촌이나 순종과 영친왕 사진자료의 높이는 이보다 짧다. 무의 틀은 대죽大竹으로 잘게 쪼개어 바구니를 짜듯이 하여 틀을 잡고 옻칠을 한 뒤 검은색 라羅로 세 겹을 배접하여 만들었다. 관무의 상· 중·하단에는 도금한 은을 선으로 만들어 물려 관무를 견고히 하였다.
평천판과 관무 사이, 앞뒤 중심되는 부분에는 좌에서 우로 막대형의 옥량을 끼워 평천관과 옥량, 옥량과 관무가 맞물려 고정되게 하였다. 이 옥량을 옥형玉衡이라고도 하였으며, 평천판의 중심에 고정된 이 옥형은 관 전체의 균형을 잡고, 관무를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옥형에는 검은 끈, 현담玄紞이 걸리어 귓전까지 내려오는데 양 끝에 벽옥碧玉의 옥전玉瑱, 즉 충이充耳를 좌우 두 개씩 달았다. 이렇게 면류관 양옆 귓가에 늘어뜨린 충이는 주광충이黈纊充耳라 하여 주황색의 솜으로 둥그렇게 만들어 귀를 막는다는 의미의 상징물이었는데, 후에 옥전으로 대신하게 된 것이다.
면판의 앞, 뒤로는 옥주를 꿴 류旒를 드리우는데,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류의 수와 류에 꿴 옥의 수 및 그 색에 차등을 두었다. 황제는 매 류마다 황黃·적赤·청靑·백白·흑黑·홍紅·녹綠 일곱 색의 열두 개 옥을 꿰어서 열두 가닥의 류를 드리웠고, 왕은 매 류 마다 주朱·백·창蒼· 황·흑 오색으로 아홉 개의 옥을 꿰어 9류를 드리웠다. 왕세자는 매 류마다 주·백·창의 3색으로 8옥을 꿴 8류를, 왕세손은 매 류마다 주·백·창의 3색으로 7옥을 꿴 7류를 드리웠다. 이 류는 평천판의 전방이 기울어져 있으므로 눈을 가리게 되는데, 『전한서前漢書』에 의하면 면 앞에 류를 늘이는 것은 눈 밝음을 가리기 위함이라 하였다.
금잠은 착용자의 우측에 잠두가 위치하고 좌측으로 그 끝이 나오는 방식이다. 면류관을 착용하기 위해서는 자조紫組와 주조朱組를 사용한다. 조선시대 원전 기록에 의하면 면류관은 조組의 사용에 의해 한결 예의 형식을 따르는 것과 기능에 따르는 두 가지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로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와 『종묘의궤宗廟儀軌』, 『선조국장도감의궤宣祖國葬都監儀軌』,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춘관통고길례제복도설春官通考吉禮祭服圖說』, 『예복禮服』,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의 기록과 같이 관冠에 엮어 턱 밑에서 묶어 술로 드리우는 자조와 금잠에 거는 주조, 두 종류의 조를 사용한 경우로 굉紘인 주조를 장식함으로써 더욱 고아古雅한 원래 관의 착용법을 표방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금잠이 장식화된 경우 조가 관을 고정하는 기능을 함으로써 익종 어진에서와 같이 턱 밑에서 바짝 묶는 자조, 즉 영纓이 주된 역할을 하게 되므로 금잠에 거는 주조는 생략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형식은 『세종실록오례世宗實錄五禮』, 『춘관통고春官通考』,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정조대왕국장도감의궤正祖大王國葬都監儀軌』 등의 기록과 익종 어진에서도 볼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면류관을 쓰고 곤복袞服을 입으면 면복의 일습이 된다. 면복은 황제, 황태자, 왕세자, 왕세손이 용례에 따라 법복, 제복, 대례복으로 착용한다.
면류관은 가례 때 육례六禮 중 납채納采, 고기告期, 친영親迎, 동뢰同牢에 법복法服의 관으로서 착용하였고, 종묘와 사직에 제사지낼 때 제복의 관으로서 착용하였으며, 정조·동지·조회에 대례복의 관으로서 착용하였다.

참고문헌

景慕宮儀軌, 國朝五禮儀序例, 大韓禮典, 尙房定例, 世宗五禮儀, 禮服, 增補文獻備考, 왕의 면복 복원·복제 제작기술서1(국립고궁박물관, 2011), 조선왕조궁중의궤복식(유송옥, 수학사, 1991), 한국복식사(유송옥, 수학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