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개

노리개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오선희(吳宣希)

정의

고리의 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착용하던 여인들의 장신구.

내용

노리개는 목걸이나 귀걸이를 대신하여 조선시대 가장 다양하게 발달한 여인의 장신구로, 궁중을 비롯한 상류층에서 일반 평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패용되었다. 통상적으로 허리띠에 여러 가지 장식을 달아 착용하던 신라의 요패腰佩가 노리개의 기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여성들이 허리에 채색 끈의 금방울과 비단으로 만든 향낭香囊을 차던 풍습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허리 장식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고리 길이가 짧아지면서 노리개의 형태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한양가漢陽歌>에는 “대삼작과 소삼작과 옥나비 금벌이며 산호가지 밀화불수 옥장도 대모장도 빛 좋은 삼색 실로 꼰 술 푼 술 갖은 매듭” 등으로 꾸민 노리개의 다채로운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노리개는 크게 장식물인 주체主體와, 주체를 연결하고 옷에 걸기 위한 띠돈[帶錢], 끈목[多繪], 매듭[每緝], 장식술[流蘇]로 구성되어 있다. 주체는 노리개의 주가 되는 부분으로, 그 재료와 장식의 형태 및 구성에 따라 노리개의 명칭이 달라진다. 금·은·동의 금속류, 백옥·진옥· 비취옥·자마노·홍옥·공작석 등의 옥석류玉石類, 밀화· 금패·산호·진주·대모 등의 보패류寶貝類가 사용되었으며, 비단에 색사色絲나 금은사金銀絲 등으로 수를 놓아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진귀한 재료들로 만든 노리개는 신분 및 경제적 격차에 따라 서민 부녀가 착용하기는 어려웠다. 값비싼 귀금속이나 보석 대신 서민은 색색의 헝겊 조각을 이어 바늘집, 괴불 등의 자수 장식을 노리개로 만들어 차고 다녔다.
노리개 주체의 형태는 동·식물, 생활 주변 용품, 길상어문, 종교적 상징 등의 다양한 것에서 차용되었다. 노리개의 용도가 장신구인 만큼 모두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단순히 심미적인 것을 뛰어 넘어 길상吉祥과 기복祈福의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 용맹함의 상징으로 악귀를 쫓는 호랑이 발톱, 액을 담아 쫓는 투호投壺, 사악함을 쫓고 경사를 부르는 방울, 삼재三災를 쫓는 괴불 등이 액을 막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박쥐와 매미는 오복五福과 오덕五德의 상징이었다. 여인들의 염원을 담은 것으로 석류·포도·연꽃·표주박·붕어 등이 다산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가지·고추·도끼· 동자童子에는 아들에 대한 강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거북이나 천도는 장수의 상징이었으며, 囍·壽·福·富貴· 多男 등의 문자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아기노리개는 이러한 길상과 기복의 집약체로, 아이들의 건강과 수명장수를 기원하며 작은 장식에 길이가 짧은 술을 달아 차게 하였다.
매듭은 주체가 더 아름답게 돋보이도록 하는 장식으로, 노리개에는 주로 도래매듭, 생쪽매듭, 나비매듭, 국화매듭, 장고매듭, 병아리매듭 등이 사용되었다. 노리개의 끝부분에 달리는 장식 술은 유소라고 하며, 만들어진 방법에 따라 봉술, 딸기술, 낙지발술이 있다. 끈목은 다회로, 매듭과 술, 주체를 연결하여 노리개를 하나로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들을 걸개장식인 띠돈에 하나로 연결하여 옷에 부착하는 것이다. 매듭과 술, 끈목은 주체의 재료나 형태, 크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색과 종류의 구성을 달리하였다. 삼작노리개의 경우 각각의 종류는 통일하더라도 색은 서로 다르게 하였으며, 홍·남·황의 삼원색을 기본으로 분홍·연두·보라·자주·옥색 등도 사용하였다. 궁중에서는 오색 푼사로 광다회廣多繪(넓고 크게 짠 끈목)를 짜서 매달기도 했다.
노리개의 종류는 주체의 개수, 재료, 용도 및 상징적 의미에 따라 구분된다. 주체의 개수에 따라 단작單作과 삼작三作으로 구분하는데, 평상시에는 단작을 차고 경사 시에는 삼작을 찼다. 삼작노리개는 주체의 형태나 재료에 있어서 공통성이 있도록 조합된 것으로, 삼작은 ‘천天·지地·인人’을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대삼작노리개는 반가혼례나 궁중의식에 사용하는 가장 호화롭고 큰 노리개이다. 원삼이나 활옷 등 예복의 대대大帶에 걸어 사용하였으며, ‘옥나비 한 쌍, 산호가지, 밀화 덩어리’의 특징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귀중품으로서 노리개는 후손에게 물려주어 대대로 집안의 가풍을 전하였으며, 특별한 의례에 예물이나 선물로 교환되기도 하였다. 노리개가 진귀한 패물이었던 만큼 실제 착용하는 데에는 신분에 따른 차등이 있었다. 궁중에서도 삼작노리개를 찰 수 있는 사람은 왕비와 왕세자빈, 정일품 내명부, 공주·옹주와 종친 부녀, 높은 품계의 외명부뿐이었다. 「궁중발기」에는 ‘대삼작, 중삼작, 소삼작, 소소삼작’ 등의 다양한 삼작노리개와 단작노리개가 기록되어 있으며, 대례복에는 대삼작, 당의 차림의 소례복에는 중삼작, 일상복에는 소삼작노리개를 찼다고 한다. 가장 급이 높은 것은 큰 진주 세 개를 꿴 삼천주三千珠 노리개로, 불교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상징하며 왕비만이 찰 수 있었다고 한다. 품계가 낮은 나인들은 노리개 패용이 금지되었으나 관례冠禮 때에 한하여 노리개를 찰 수 있었다. 나인들의 관례는 혼례에 준하는 의례로 그날 하루는 품계 높은 내명부 대접을 받아 원삼을 입고 노리개를 찼다.
노리개는 계절이나 용도, 의례에 따라서도 종류를 달리하였다. 『순화궁첩초順和宮帖草』에 따르면, 봄·가을과 여름에는 구슬과 옥노리개를 차고, 겨울에는 옥이나 마노, 밀화로 만든 향노리개를 패용하였다. 기일忌日 전날에는 흰색 홑당의와 남치마에 밀화삼작노리개를 찼으며, 기일에는 장신구를 자제하여 노리개를 차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다른 장신구와 마찬가지로 노리개도 장식성과 함께 실용성을 겸한 경우가 많았다. 『거가잡복고居家雜服考』에는 여자가 노리개를 차는 것은 시부모의 심부름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라고 하면서 분세紛帨(수건), 여礪(칼이나 바늘을 가는 도구), 도刀, 잠관箴管(침통 같은 것) 등의 그림이 실려 있는데, 장도노리개·바늘집노리개·향노리개 등과 매우 비슷한 모양이다. 장도노리개는 자그마한 칼인 장도에 장식을 한 것으로 일상생활에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몸을 보호하기 위한 호신용으로도 이용되었다. 칼집에 달려 있는 젓가락은 외부에서 식사할 때뿐만 아니라 음식물의 독의 유무를 알아보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바늘집노리개는 바늘을 보관하기 위한 것으로, 바늘이 녹슬지 않도록 바늘집 속에 머리카락이나 분가루를 넣고 사용하였으며, 침통針筒노리개에는 침을 넣어 차고 다니다가 응급 시에 사용되었다. 방아다리노리개에도 귀이개·이쑤시개·침 등을 한데 묶어 차고 다녔다. 향노리개는 향료를 금속이나 옥을 투각하여 만든 작은 갑이나 주머니에 담아 노리개로 꾸민 것으로, 사향麝香과 같은 향을 지님으로써 은은한 향이 풍기게 하였으며 응급 시 구급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줄향노리개와 비취발향노리개는 향을 약 가루와 섞어 반죽하여 모양을 만든 것으로 물총새의 깃털을 붙여 장식하기도 하였으며 상궁들이 궁중에서 치마 속에 착용하였다는 설이 있다.

특징 및 의의

노리개는 다채로운 장식과 율동감으로 정숙과 절제를 강조했던 조선시대 복식에 화려함을 더하던 여인들의 장신구이다. 금·은·옥석·보패류 등의 진귀한 재료가 사용되었으며, 매듭과 술, 주체의 어울림을 통해 조화롭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계절과 의상의 종류, 색채를 고려하여 착용하는 멋을 엿볼 수 있으며 실용성과 장식을 겸비하는 지혜를 품고 있다. 노리개는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여인들의 정성과 염원, 생활상이 반영된 한 시대의 표상이다.

참고문헌

노리개-전통 한국의 멋(이경자,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5), 영친왕 일가 복식(국립고궁박물관, 2010), 우리 옷과 장신구(이경자·장숙환·홍나영, 열화당, 2003), 조선 여인의 노리개(보나장신구박물관, 2006), 조선시대 후기 궁중패물 연구(박혜진,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조선조 궁중 풍속 연구(김용숙, 일지사, 1987).

노리개

노리개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오선희(吳宣希)

정의

저고리의 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착용하던 여인들의 장신구.

내용

노리개는 목걸이나 귀걸이를 대신하여 조선시대 가장 다양하게 발달한 여인의 장신구로, 궁중을 비롯한 상류층에서 일반 평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패용되었다. 통상적으로 허리띠에 여러 가지 장식을 달아 착용하던 신라의 요패腰佩가 노리개의 기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여성들이 허리에 채색 끈의 금방울과 비단으로 만든 향낭香囊을 차던 풍습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허리 장식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면서 노리개의 형태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한양가漢陽歌>에는 “대삼작과 소삼작과 옥나비 금벌이며 산호가지 밀화불수 옥장도 대모장도 빛 좋은 삼색 실로 꼰 술 푼 술 갖은 매듭” 등으로 꾸민 노리개의 다채로운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노리개는 크게 장식물인 주체主體와, 주체를 연결하고 옷에 걸기 위한 띠돈[帶錢], 끈목[多繪], 매듭[每緝], 장식술[流蘇]로 구성되어 있다. 주체는 노리개의 주가 되는 부분으로, 그 재료와 장식의 형태 및 구성에 따라 노리개의 명칭이 달라진다. 금·은·동의 금속류, 백옥·진옥· 비취옥·자마노·홍옥·공작석 등의 옥석류玉石類, 밀화· 금패·산호·진주·대모 등의 보패류寶貝類가 사용되었으며, 비단에 색사色絲나 금은사金銀絲 등으로 수를 놓아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진귀한 재료들로 만든 노리개는 신분 및 경제적 격차에 따라 서민 부녀가 착용하기는 어려웠다. 값비싼 귀금속이나 보석 대신 서민은 색색의 헝겊 조각을 이어 바늘집, 괴불 등의 자수 장식을 노리개로 만들어 차고 다녔다.
노리개 주체의 형태는 동·식물, 생활 주변 용품, 길상어문, 종교적 상징 등의 다양한 것에서 차용되었다. 노리개의 용도가 장신구인 만큼 모두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단순히 심미적인 것을 뛰어 넘어 길상吉祥과 기복祈福의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 용맹함의 상징으로 악귀를 쫓는 호랑이 발톱, 액을 담아 쫓는 투호投壺, 사악함을 쫓고 경사를 부르는 방울, 삼재三災를 쫓는 괴불 등이 액을 막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박쥐와 매미는 오복五福과 오덕五德의 상징이었다. 여인들의 염원을 담은 것으로 석류·포도·연꽃·표주박·붕어 등이 다산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가지·고추·도끼· 동자童子에는 아들에 대한 강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거북이나 천도는 장수의 상징이었으며, 囍·壽·福·富貴· 多男 등의 문자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아기노리개는 이러한 길상과 기복의 집약체로, 아이들의 건강과 수명장수를 기원하며 작은 장식에 길이가 짧은 술을 달아 차게 하였다.
매듭은 주체가 더 아름답게 돋보이도록 하는 장식으로, 노리개에는 주로 도래매듭, 생쪽매듭, 나비매듭, 국화매듭, 장고매듭, 병아리매듭 등이 사용되었다. 노리개의 끝부분에 달리는 장식 술은 유소라고 하며, 만들어진 방법에 따라 봉술, 딸기술, 낙지발술이 있다. 끈목은 다회로, 매듭과 술, 주체를 연결하여 노리개를 하나로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들을 걸개장식인 띠돈에 하나로 연결하여 옷에 부착하는 것이다. 매듭과 술, 끈목은 주체의 재료나 형태, 크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색과 종류의 구성을 달리하였다. 삼작노리개의 경우 각각의 종류는 통일하더라도 색은 서로 다르게 하였으며, 홍·남·황의 삼원색을 기본으로 분홍·연두·보라·자주·옥색 등도 사용하였다. 궁중에서는 오색 푼사로 광다회廣多繪(넓고 크게 짠 끈목)를 짜서 매달기도 했다.
노리개의 종류는 주체의 개수, 재료, 용도 및 상징적 의미에 따라 구분된다. 주체의 개수에 따라 단작單作과 삼작三作으로 구분하는데, 평상시에는 단작을 차고 경사 시에는 삼작을 찼다. 삼작노리개는 주체의 형태나 재료에 있어서 공통성이 있도록 조합된 것으로, 삼작은 ‘천天·지地·인人’을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대삼작노리개는 반가의 혼례나 궁중의식에 사용하는 가장 호화롭고 큰 노리개이다. 원삼이나 활옷 등 예복의 대대大帶에 걸어 사용하였으며, ‘옥나비 한 쌍, 산호가지, 밀화 덩어리’의 특징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귀중품으로서 노리개는 후손에게 물려주어 대대로 집안의 가풍을 전하였으며, 특별한 의례에 예물이나 선물로 교환되기도 하였다. 노리개가 진귀한 패물이었던 만큼 실제 착용하는 데에는 신분에 따른 차등이 있었다. 궁중에서도 삼작노리개를 찰 수 있는 사람은 왕비와 왕세자빈, 정일품 내명부, 공주·옹주와 종친 부녀, 높은 품계의 외명부뿐이었다. 「궁중발기」에는 ‘대삼작, 중삼작, 소삼작, 소소삼작’ 등의 다양한 삼작노리개와 단작노리개가 기록되어 있으며, 대례복에는 대삼작, 당의 차림의 소례복에는 중삼작, 일상복에는 소삼작노리개를 찼다고 한다. 가장 급이 높은 것은 큰 진주 세 개를 꿴 삼천주三千珠 노리개로, 불교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상징하며 왕비만이 찰 수 있었다고 한다. 품계가 낮은 나인들은 노리개 패용이 금지되었으나 관례冠禮 때에 한하여 노리개를 찰 수 있었다. 나인들의 관례는 혼례에 준하는 의례로 그날 하루는 품계 높은 내명부 대접을 받아 원삼을 입고 노리개를 찼다.
노리개는 계절이나 용도, 의례에 따라서도 종류를 달리하였다. 『순화궁첩초順和宮帖草』에 따르면, 봄·가을과 여름에는 구슬과 옥노리개를 차고, 겨울에는 옥이나 마노, 밀화로 만든 향노리개를 패용하였다. 기일忌日 전날에는 흰색 홑당의와 남치마에 밀화삼작노리개를 찼으며, 기일에는 장신구를 자제하여 노리개를 차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다른 장신구와 마찬가지로 노리개도 장식성과 함께 실용성을 겸한 경우가 많았다. 『거가잡복고居家雜服考』에는 여자가 노리개를 차는 것은 시부모의 심부름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라고 하면서 분세紛帨(수건), 여礪(칼이나 바늘을 가는 도구), 도刀, 잠관箴管(침통 같은 것) 등의 그림이 실려 있는데, 장도노리개·바늘집노리개·향노리개 등과 매우 비슷한 모양이다. 장도노리개는 자그마한 칼인 장도에 장식을 한 것으로 일상생활에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몸을 보호하기 위한 호신용으로도 이용되었다. 칼집에 달려 있는 젓가락은 외부에서 식사할 때뿐만 아니라 음식물의 독의 유무를 알아보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바늘집노리개는 바늘을 보관하기 위한 것으로, 바늘이 녹슬지 않도록 바늘집 속에 머리카락이나 분가루를 넣고 사용하였으며, 침통針筒노리개에는 침을 넣어 차고 다니다가 응급 시에 사용되었다. 방아다리노리개에도 귀이개·이쑤시개·침 등을 한데 묶어 차고 다녔다. 향노리개는 향료를 금속이나 옥을 투각하여 만든 작은 갑이나 주머니에 담아 노리개로 꾸민 것으로, 사향麝香과 같은 향을 지님으로써 은은한 향이 풍기게 하였으며 응급 시 구급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줄향노리개와 비취발향노리개는 향을 약 가루와 섞어 반죽하여 모양을 만든 것으로 물총새의 깃털을 붙여 장식하기도 하였으며 상궁들이 궁중에서 치마 속에 착용하였다는 설이 있다.

특징 및 의의

노리개는 다채로운 장식과 율동감으로 정숙과 절제를 강조했던 조선시대 복식에 화려함을 더하던 여인들의 장신구이다. 금·은·옥석·보패류 등의 진귀한 재료가 사용되었으며, 매듭과 술, 주체의 어울림을 통해 조화롭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계절과 의상의 종류, 색채를 고려하여 착용하는 멋을 엿볼 수 있으며 실용성과 장식을 겸비하는 지혜를 품고 있다. 노리개는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여인들의 정성과 염원, 생활상이 반영된 한 시대의 표상이다.

참고문헌

노리개-전통 한국의 멋(이경자,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5), 영친왕 일가 복식(국립고궁박물관, 2010), 우리 옷과 장신구(이경자·장숙환·홍나영, 열화당, 2003), 조선 여인의 노리개(보나장신구박물관, 2006), 조선시대 후기 궁중패물 연구(박혜진,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조선조 궁중 풍속 연구(김용숙, 일지사,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