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정미숙(鄭美淑)

정의

방한과 장식을 겸한 어린아이용 쓰개.

내용

조선 후기 상류층 가정에서 돌쟁이부터 4~5세까지의 남녀 아이가 착용하는 모자이다. 재료와 구성 방법에 따라 봄가을용과 겨울용으로 구분된다. 봄가을용은 고사·생고사·갑사 등 얇은 견직물로 3~4 너비의 긴 가닥 네 개를 만들어 가로세로로 성글게 교차하여 만든다. 가닥의 색은 미색 또는 녹색·홍색·청색·검정 등 가닥마다 색을 달리하여 사용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굴레에 대해 손정규의 『조선재봉朝鮮裁縫』(1948)에 부위별로 명칭을 적은 그림이 실려 있다. 그림에는 각각의 가닥을 ‘다리’라고 하였는데, 맨 앞쪽에 얼굴선을 따라 놓인 가닥을 앞다리, 앞다리 중심에서 목다리 중심까지 이어지는 뒷다리, 뒤 목선에 놓이는 목다리, 앞다리와 목다리의 중간을 가로질러 이어진 것을 누운다리라 하였다. 앞다리 중심과 뒷다리가 이어지는 정수리 부분은 복판이라 하여 꽃 모양의 장식판이 있다. 굴레의 장식으로는 모란·연꽃·영지·산·파도·호랑이·박쥐·나비 등의 무늬와 수壽·복福·희囍·수복강녕壽福康寧·복해수산福海壽山·만수무강萬壽無疆·부귀富貴·다남자多男子 등의 문자를 자수와 금박을 이용하여 표현하였는데, 모두 아이의 부귀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길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겨울용은 두꺼운 단緞직물을 사용하는데, 여러 개의 다리를 서로 약간씩 겹치도록 배열하여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게 제작한다. 구성을 보면 9~11개의 다리를 목다리에 연결하고, 그 끝 부분은 머리 모양을 따라 복판으로 모아 정수리의 장식 부분에 고정한다. 다리의 겉감 색은 모두 검정이며, 안감은 색색의 비단을 사용하여 안쪽을 더 화려하게 배색하는 경우가 많다. 겉쪽에는 뒷다리·목다리·앞다리·끈 등에 자수를 놓아 장식하였고, 복판에는 검정색의 꽃잎 모양 판 중앙에 국화 꼭지를 달고 가장자리는 홍색 술을 둘러 고정하였다. 끈은 두세 쌍을 다는데, 짧은 끈 한 쌍은 턱밑에 묶어 고정하고, 긴 끈 두 쌍은 그대로 늘어뜨리거나 그중 수가 놓인 장식 끈은 뒷다리 사이에 서로 교차하여 늘어뜨리기도 한다. 또한 목다리 중앙에 댕기를 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주로 봄가을용에 더 많이 보인다.

특징 및 의의

굴레는 남녀 유아기에 돌을 맞이한 아이가 많이 쓴다고 하여 속칭 ‘돌모’라고도 하는데,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색 비단과 다양한 장식을 하여 아이의 쓰개로는 가장 화려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쓰는 세 가닥 굴레는 서울 지방에서 통용되었다고 하여 ‘서울 굴레’, 겨울용인 아홉 가닥 굴레는 개성 지방에서 통용되었다고 하여 ‘개성 굴레’로 칭하기도 한다. 서울 굴레의 경우 방한보다는 멋과 장식을 위해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조풍연, 서문당, 1996), 옛 어린이 옷(조효숙, 경기여고 경운박물관, 2005), 우리 옷과 장신구(이경자·장숙환·홍나영, 열화당, 2003), 조선시대의 관모(온양민속박물관, 1988), 조선재봉(손정규, 삼중당, 1948), 한국 전통 어린이 복식(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단국대학교출판부, 2000).

굴레

굴레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정미숙(鄭美淑)

정의

방한과 장식을 겸한 어린아이용 쓰개.

내용

조선 후기 상류층 가정에서 돌쟁이부터 4~5세까지의 남녀 아이가 착용하는 모자이다. 재료와 구성 방법에 따라 봄가을용과 겨울용으로 구분된다. 봄가을용은 숙고사·생고사·갑사 등 얇은 견직물로 3~4 너비의 긴 가닥 네 개를 만들어 가로세로로 성글게 교차하여 만든다. 가닥의 색은 미색 또는 녹색·홍색·청색·검정 등 가닥마다 색을 달리하여 사용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굴레에 대해 손정규의 『조선재봉朝鮮裁縫』(1948)에 부위별로 명칭을 적은 그림이 실려 있다. 그림에는 각각의 가닥을 ‘다리’라고 하였는데, 맨 앞쪽에 얼굴선을 따라 놓인 가닥을 앞다리, 앞다리 중심에서 목다리 중심까지 이어지는 뒷다리, 뒤 목선에 놓이는 목다리, 앞다리와 목다리의 중간을 가로질러 이어진 것을 누운다리라 하였다. 앞다리 중심과 뒷다리가 이어지는 정수리 부분은 복판이라 하여 꽃 모양의 장식판이 있다. 굴레의 장식으로는 모란·연꽃·영지·산·파도·호랑이·박쥐·나비 등의 무늬와 수壽·복福·희囍·수복강녕壽福康寧·복해수산福海壽山·만수무강萬壽無疆·부귀富貴·다남자多男子 등의 문자를 자수와 금박을 이용하여 표현하였는데, 모두 아이의 부귀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길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겨울용은 두꺼운 단緞직물을 사용하는데, 여러 개의 다리를 서로 약간씩 겹치도록 배열하여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게 제작한다. 구성을 보면 9~11개의 다리를 목다리에 연결하고, 그 끝 부분은 머리 모양을 따라 복판으로 모아 정수리의 장식 부분에 고정한다. 다리의 겉감 색은 모두 검정이며, 안감은 색색의 비단을 사용하여 안쪽을 더 화려하게 배색하는 경우가 많다. 겉쪽에는 뒷다리·목다리·앞다리·끈 등에 자수를 놓아 장식하였고, 복판에는 검정색의 꽃잎 모양 판 중앙에 국화 꼭지를 달고 가장자리는 홍색 술을 둘러 고정하였다. 끈은 두세 쌍을 다는데, 짧은 끈 한 쌍은 턱밑에 묶어 고정하고, 긴 끈 두 쌍은 그대로 늘어뜨리거나 그중 수가 놓인 장식 끈은 뒷다리 사이에 서로 교차하여 늘어뜨리기도 한다. 또한 목다리 중앙에 댕기를 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주로 봄가을용에 더 많이 보인다.

특징 및 의의

굴레는 남녀 유아기에 돌을 맞이한 아이가 많이 쓴다고 하여 속칭 ‘돌모’라고도 하는데,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색 비단과 다양한 장식을 하여 아이의 쓰개로는 가장 화려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쓰는 세 가닥 굴레는 서울 지방에서 통용되었다고 하여 ‘서울 굴레’, 겨울용인 아홉 가닥 굴레는 개성 지방에서 통용되었다고 하여 ‘개성 굴레’로 칭하기도 한다. 서울 굴레의 경우 방한보다는 멋과 장식을 위해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조풍연, 서문당, 1996), 옛 어린이 옷(조효숙, 경기여고 경운박물관, 2005), 우리 옷과 장신구(이경자·장숙환·홍나영, 열화당, 2003), 조선시대의 관모(온양민속박물관, 1988), 조선재봉(손정규, 삼중당, 1948), 한국 전통 어린이 복식(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단국대학교출판부,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