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례복(冠禮服)

관례복

한자명

冠禮服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김시덕(金時德)

정의

남자아이의 관례 때 입는 옷.

역사

관례冠禮는 『예기禮記』 「관의冠義」에 “관이 예의 시작이다.”라고 한 기록이 있고, 백제 등에서 『예기』를 읽었다고 하였으므로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관례를 행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965년(광종 16) 2월에 광종이 아들 왕주王伷에게 관을 씌운 것이며, 이어 예종睿宗, 의종懿宗 때에 왕태자의 관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2세기경부터는 사대부의 자제들이 관례를 하였다는 기록이 묘지명 등에 나타난다. 그러나 관례가 일반화된 것은 1290년(충렬왕 16) 성리학과 함께 주자朱子(1130~1200)의 『가례家禮』가 소개되어 성리학적 일생의례가 알려지면서부터이다. 조선시대가 되면 성리학의 이념에 따라 『가례』를 의례의 기본으로 하는 유교식 의례를 규범으로 삼으면서 관례는 일생의례 중에서 매우 중요한 의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미성년자에게 상투를 틀어 관을 씌우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관례는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면서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 후 혼란기를 거쳐 현대가 되면 성인식成人式을 함으로써 전통사회의 관례는 단지 전통문화를 계승하자는 행사 정도로 남게 되었고, 관례복 역시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내용

관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전통 성인식은 관을 씌우는 의례가 핵심이었다. 즉, 땋은머리를 올려 상투를 틀고 복건이나 두건, 갓 등 관을 씌우는 의례가 관례이고, 관을 쓰는 것이 어른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남자아이가 성인이 되었음을 알리는 관례는 통상 15~20세 사이에 올린다. 관례는 세 단계에 걸쳐 옷과 관을 바꾸어 써서 어린 아이의 세계에서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어른의 책임을 지우는 의례이다.
관례복은 관례의 진행 절차에 따라 다른 옷으로 갈아입기에 여러 종류의 옷이 등장한다. 모든 예서禮書를 검토할 수 없으므로 『가례』의 내용에 충실하였고, 가장 일반화된 『사례편람四禮便覽』의 관례복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시가례始加禮에서는 관례를 올릴 당사자(장관자將冠者)가 쌍상투에 사계삼[四揆衫](어린 아이의 일상복으로 ‘사규삼’이라고도 함)을 입고 채리彩履(무늬 있는 신)를 신고 나오면 상투를 틀고 치관緇冠(검은색의 유생용 치포관)에 비녀를 끼우고 그 위에 복건을 씌운다. 관례 당사자가 방으로 들어가 사계삼을 벗고 심의深衣를 입고 대대大帶를 하고 리履(코 끝에 색실로 장식한 신)를 신는다. 재가례再加禮에서는 모자(혹은 초립, 갓을 쓰기도 함)를 쓰고 조삼皂衫을 입고, 혁대革帶를 두르고 혜鞋(가죽신)을 신는다. 삼가례三加禮에서는 복두幞頭를 쓰고 난삼襴衫을 입고, 세조대細絛帶를 두르고 화靴(목이 높은 신발)를 신는다. 그러나 예서나 시대, 지역, 신분에 따라 관례복은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의례에서 규정한 삼가례복을 모두 갖추기에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어 예서의 규정대로 관례를 치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 말기가 되면 삼가례에 사용되는 옷과 관을 한꺼번에 거듭 쓰거나 한 번만으로 마치는 단가單加로 가름하는 일이 많아졌다.

특징 및 의의

관례에서 갈아입는 옷의 의미는 축사와 연관되어 있다. 시가례에서는 “처음으로 관을 씌우니 어린 마음을 버리고 성숙한 덕에 따라 오래 살고 큰 복을 받으라.”라고 축사를 한다. 이때 심의를 입는 것은 어린이의 옷을 벗고 선비의 의관을 차려입어 어른으로서 기본을 지키도록 했던 것이다. 재가례에서는 “거듭 관을 씌우니 위엄 있는 모습을 신중히 하고 덕을 잘 삼가 오래 살아 큰 복을 받으라.”라고 축사한다. 이때 입는 조삼은 흑단령과 같은 것인데, 공적인 자리에서 예의를 갖추는 것을 의미하였다. 삼가례에서는 “관을 세 번 모두 씌워 덕을 이루게 하였다. 길이 오래 살아 하늘의 복을 받아라.”라고 축사를 한다. 이때 복두난삼을 입는 것은 예복禮服의 의미를 가진다. 이처럼 세 번에 걸쳐 관을 바꾸어 쓰고, 옷을 갈아입는 이유는 어른으로서 근본을 잊지 않아야 군君을 섬길 수 있고, 군을 섬긴 후에야 신神을 섬길 수 있으니 이른바 세 단계로 점점 그 뜻을 높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經國大典, 國朝五禮儀, 沙溪全書, 四禮便覽, 朝鮮王朝實錄, 한국복식문화사전(김영숙, 미술문화, 1998), 한국 전통성년례에 관한 연구(김은희, 원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5).

관례복

관례복
한자명

冠禮服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김시덕(金時德)

정의

남자아이의 관례 때 입는 옷.

역사

관례冠禮는 『예기禮記』 「관의冠義」에 “관이 예의 시작이다.”라고 한 기록이 있고, 백제 등에서 『예기』를 읽었다고 하였으므로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관례를 행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965년(광종 16) 2월에 광종이 아들 왕주王伷에게 관을 씌운 것이며, 이어 예종睿宗, 의종懿宗 때에 왕태자의 관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2세기경부터는 사대부의 자제들이 관례를 하였다는 기록이 묘지명 등에 나타난다. 그러나 관례가 일반화된 것은 1290년(충렬왕 16) 성리학과 함께 주자朱子(1130~1200)의 『가례家禮』가 소개되어 성리학적 일생의례가 알려지면서부터이다. 조선시대가 되면 성리학의 이념에 따라 『가례』를 의례의 기본으로 하는 유교식 의례를 규범으로 삼으면서 관례는 일생의례 중에서 매우 중요한 의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미성년자에게 상투를 틀어 관을 씌우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관례는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면서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 후 혼란기를 거쳐 현대가 되면 성인식成人式을 함으로써 전통사회의 관례는 단지 전통문화를 계승하자는 행사 정도로 남게 되었고, 관례복 역시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내용

관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전통 성인식은 관을 씌우는 의례가 핵심이었다. 즉, 땋은머리를 올려 상투를 틀고 복건이나 두건, 갓 등 관을 씌우는 의례가 관례이고, 관을 쓰는 것이 어른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남자아이가 성인이 되었음을 알리는 관례는 통상 15~20세 사이에 올린다. 관례는 세 단계에 걸쳐 옷과 관을 바꾸어 써서 어린 아이의 세계에서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어른의 책임을 지우는 의례이다.
관례복은 관례의 진행 절차에 따라 다른 옷으로 갈아입기에 여러 종류의 옷이 등장한다. 모든 예서禮書를 검토할 수 없으므로 『가례』의 내용에 충실하였고, 가장 일반화된 『사례편람四禮便覽』의 관례복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시가례始加禮에서는 관례를 올릴 당사자(장관자將冠者)가 쌍상투에 사계삼[四揆衫](어린 아이의 일상복으로 ‘사규삼’이라고도 함)을 입고 채리彩履(무늬 있는 신)를 신고 나오면 상투를 틀고 치관緇冠(검은색의 유생용 치포관)에 비녀를 끼우고 그 위에 복건을 씌운다. 관례 당사자가 방으로 들어가 사계삼을 벗고 심의深衣를 입고 대대大帶를 하고 리履(코 끝에 색실로 장식한 신)를 신는다. 재가례再加禮에서는 모자(혹은 초립, 갓을 쓰기도 함)를 쓰고 조삼皂衫을 입고, 혁대革帶를 두르고 혜鞋(가죽신)을 신는다. 삼가례三加禮에서는 복두幞頭를 쓰고 난삼襴衫을 입고, 세조대細絛帶를 두르고 화靴(목이 높은 신발)를 신는다. 그러나 예서나 시대, 지역, 신분에 따라 관례복은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의례에서 규정한 삼가례복을 모두 갖추기에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어 예서의 규정대로 관례를 치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 말기가 되면 삼가례에 사용되는 옷과 관을 한꺼번에 거듭 쓰거나 한 번만으로 마치는 단가單加로 가름하는 일이 많아졌다.

특징 및 의의

관례에서 갈아입는 옷의 의미는 축사와 연관되어 있다. 시가례에서는 “처음으로 관을 씌우니 어린 마음을 버리고 성숙한 덕에 따라 오래 살고 큰 복을 받으라.”라고 축사를 한다. 이때 심의를 입는 것은 어린이의 옷을 벗고 선비의 의관을 차려입어 어른으로서 기본을 지키도록 했던 것이다. 재가례에서는 “거듭 관을 씌우니 위엄 있는 모습을 신중히 하고 덕을 잘 삼가 오래 살아 큰 복을 받으라.”라고 축사한다. 이때 입는 조삼은 흑단령과 같은 것인데, 공적인 자리에서 예의를 갖추는 것을 의미하였다. 삼가례에서는 “관을 세 번 모두 씌워 덕을 이루게 하였다. 길이 오래 살아 하늘의 복을 받아라.”라고 축사를 한다. 이때 복두에 난삼을 입는 것은 예복禮服의 의미를 가진다. 이처럼 세 번에 걸쳐 관을 바꾸어 쓰고, 옷을 갈아입는 이유는 어른으로서 근본을 잊지 않아야 군君을 섬길 수 있고, 군을 섬긴 후에야 신神을 섬길 수 있으니 이른바 세 단계로 점점 그 뜻을 높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經國大典, 國朝五禮儀, 沙溪全書, 四禮便覽, 朝鮮王朝實錄, 한국복식문화사전(김영숙, 미술문화, 1998), 한국 전통성년례에 관한 연구(김은희, 원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