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한복(改良韓服)

개량한복

한자명

改良韓服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정혜경(鄭惠敬)

정의

개화기 이후 서구 합리주의와 기능주의를 접하면서 전통 한복의 비합리적인 부분을 개량하기 위해 제작된 한복의 통칭.

내용

개량한복改良韓服이란 통상적으로 개화기 이후 이루어진 한복 개량화 작업으로 제작된 한복을 일컫는다. 당시에는 개량복, 신생활복 등으로 불렸으며, 개량한복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그보다 훨씬 후의 일로 보인다. 광복 후인 1960년대에 근대화의 기치를 내세우고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면서 전통이란 낙후된 것이며 개량되고 개혁되어야 될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그에 따라 다시 한복 개량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개량한복의 변화를 개화기, 광복 이후, 1960~1970년대 산업화 시대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개화기의 개량한복은 전통한복에 기능성, 간소화, 경제성 및 활동성 등을 추구한 일상복이라 할 수 있다. 통상적인 남자 개량한복은 소매가 좁은 흑색 두루마기와 간편한 마고자, 서양 조끼의 양식을 도입한 한복 조끼, 고름 대신 단추가 달리고 주머니가 달린 한복, 두루마기 형태에 단령이 달린 국민 예복 등이 있었다. 여성 개량한복은 긴 적삼, 상하동색의 한복, 어깨허리가 달린 긴치마, 어깨허리가 달린 통치마와 긴 고리, 서양 주름스커트의 영향을 받아 치맛단까지 굵은 주름을 잡은 검정 통치마, 고름을 없애거나 단추를 단 저고리, 남자의 두루마기와 마고자를 모방한 것 등이 있었다. 광복 이후 남성복양복으로 대체되는 경향이 강해져 개량한복은 주로 여성복을 대상으로 시도되었다. 1949년 신생활장려추진위원회에서 여성복으로 동정과 깃이 없는 적삼과 통치마를 제정하여 간이복이라 칭하였다. 1954년에는 국민생활 간소화운동이 전개되어 여성복은 통치마에 옷고름이 폐지되는 안이 제시되었다. 1958년에는 농어촌 부녀의 개량바지와 저고리가 제안되었다. 개화기 이후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복 개량화에서 추구된 지향점은 주로 활동성, 간소화, 경제성, 획일화, 아름다움, 위생, 예의, 절약, 검소함을 추구한다. 1960년대에는 그 외에도 실용화, 다양화, 예복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추가되었다.
본격적으로 산업화에 들어선 1960년대 역시 개량한복은 여성복에 한정되어 1960년대 초에는 신생활 디자인쇼에서 개량 두루마기와 아리랑 드레스가 등장하였다. 1961년에 제안된 신생활복은 어깨허리가 달린 통치마에 볼레로식 저고리와, 서양복 구성이 더해진 저고리가 등장하였다. 이 개량한복은 기존의 한복 형태를 부분적으로 변형시키면서 서양복 구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다양한 스타일이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한복 고유의 특성을 상실하고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도 여전하자, 1965년 이후에는 오히려 전통적인 복고풍 한복으로 예복화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다. 1970년대 전반에 개량한복은 외출복으로서 양장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는 기능성과 간편함을 추구한 생활양식의 변화와 활동적인 여성상의 강조 및 경기 침체로 인한 실용적인 의복이 추구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후에는 산업화 과정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한복은 예복의 기능이 강화되어 장식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실제적인 생활복인 개량한복의 기능은 약화되었다. 그런데 1984년에 또다시 한복의 생활화라는 이름으로 이리자의 ‘개량한복연구 발표회’ 등 다양한 개량한복 디자인이 나왔지만, 이 시기에는 민족의 고유성과 주체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개량한복으로서 생활한복이라 불리게 되었다.

특징 및 의의

개량한복은 비합리적인 내용을 합리적인 것으로 개선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전통한복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인 시각에서 출발하였다. 그에 따라 한복의 개량이 시작된 개화기에는 서구의 기능주의와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근대화의 영향으로 기능성, 활동성, 경제성 등을 개량한복을 통해 표현하였다. 이처럼 개량한복은 1970년대 전반까지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1980년대 생활한복의 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복 개량운동의 대표적인 결과, 여성 개량한복은 어깨허리 통치마에 고름이 없으며 길이가 긴 고리로 전통적 특성을 유지한 것과, 남성 두루마기마고자의 도입으로 인간의 평등을 구현한 것을 들 수 있다. 남성 개량한복의 대표적인 형태는 소매와 고름 등 디테일이 간소화된 전통한복과, 서양복 조끼를 나름대로 개혁 변용한 한복조끼 및 서양복 주머니를 전통복에 혼용한 형태 등 서구적 혼용 현상이 강하게 나타났다.

참고문헌

경제발전과 복식의 서구화와의 관계연구-한국 여성복을 중심으로(전양진, 한국의류학회지23-8, 한국의류학회, 1999), 생활한복에 대한 의식구조와 선호도에 따른 디자인 연구(고정민·채금석, 한국의류학회지23-5, 한국의류학회, 1999), 생활한복의 형성배경과 그 내용적 특성에 대한 고찰(정혜경, 복식51-2, 한국복식학회, 2001), 한복 개량 운동에 관한 고찰(홍나영, 복식15, 한국복식학회, 1990).

개량한복

개량한복
한자명

改良韓服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정혜경(鄭惠敬)

정의

개화기 이후 서구 합리주의와 기능주의를 접하면서 전통 한복의 비합리적인 부분을 개량하기 위해 제작된 한복의 통칭.

내용

개량한복改良韓服이란 통상적으로 개화기 이후 이루어진 한복 개량화 작업으로 제작된 한복을 일컫는다. 당시에는 개량복, 신생활복 등으로 불렸으며, 개량한복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그보다 훨씬 후의 일로 보인다. 광복 후인 1960년대에 근대화의 기치를 내세우고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면서 전통이란 낙후된 것이며 개량되고 개혁되어야 될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그에 따라 다시 한복 개량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개량한복의 변화를 개화기, 광복 이후, 1960~1970년대 산업화 시대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개화기의 개량한복은 전통한복에 기능성, 간소화, 경제성 및 활동성 등을 추구한 일상복이라 할 수 있다. 통상적인 남자 개량한복은 소매가 좁은 흑색 두루마기와 간편한 마고자, 서양 조끼의 양식을 도입한 한복 조끼, 고름 대신 단추가 달리고 주머니가 달린 한복, 두루마기 형태에 단령이 달린 국민 예복 등이 있었다. 여성 개량한복은 긴 적삼, 상하동색의 한복, 어깨허리가 달린 긴치마, 어깨허리가 달린 통치마와 긴 저고리, 서양 주름스커트의 영향을 받아 치맛단까지 굵은 주름을 잡은 검정 통치마, 고름을 없애거나 단추를 단 저고리, 남자의 두루마기와 마고자를 모방한 것 등이 있었다. 광복 이후 남성복은 양복으로 대체되는 경향이 강해져 개량한복은 주로 여성복을 대상으로 시도되었다. 1949년 신생활장려추진위원회에서 여성복으로 동정과 깃이 없는 적삼과 통치마를 제정하여 간이복이라 칭하였다. 1954년에는 국민생활 간소화운동이 전개되어 여성복은 통치마에 옷고름이 폐지되는 안이 제시되었다. 1958년에는 농어촌 부녀의 개량바지와 저고리가 제안되었다. 개화기 이후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복 개량화에서 추구된 지향점은 주로 활동성, 간소화, 경제성, 획일화, 아름다움, 위생, 예의, 절약, 검소함을 추구한다. 1960년대에는 그 외에도 실용화, 다양화, 예복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추가되었다.
본격적으로 산업화에 들어선 1960년대 역시 개량한복은 여성복에 한정되어 1960년대 초에는 신생활 디자인쇼에서 개량 두루마기와 아리랑 드레스가 등장하였다. 1961년에 제안된 신생활복은 어깨허리가 달린 통치마에 볼레로식 저고리와, 서양복 구성이 더해진 저고리가 등장하였다. 이 개량한복은 기존의 한복 형태를 부분적으로 변형시키면서 서양복 구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다양한 스타일이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한복 고유의 특성을 상실하고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도 여전하자, 1965년 이후에는 오히려 전통적인 복고풍 한복으로 예복화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다. 1970년대 전반에 개량한복은 외출복으로서 양장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는 기능성과 간편함을 추구한 생활양식의 변화와 활동적인 여성상의 강조 및 경기 침체로 인한 실용적인 의복이 추구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후에는 산업화 과정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한복은 예복의 기능이 강화되어 장식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실제적인 생활복인 개량한복의 기능은 약화되었다. 그런데 1984년에 또다시 한복의 생활화라는 이름으로 이리자의 ‘개량한복연구 발표회’ 등 다양한 개량한복 디자인이 나왔지만, 이 시기에는 민족의 고유성과 주체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개량한복으로서 생활한복이라 불리게 되었다.

특징 및 의의

개량한복은 비합리적인 내용을 합리적인 것으로 개선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전통한복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인 시각에서 출발하였다. 그에 따라 한복의 개량이 시작된 개화기에는 서구의 기능주의와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근대화의 영향으로 기능성, 활동성, 경제성 등을 개량한복을 통해 표현하였다. 이처럼 개량한복은 1970년대 전반까지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1980년대 생활한복의 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복 개량운동의 대표적인 결과, 여성 개량한복은 어깨허리 통치마에 고름이 없으며 길이가 긴 저고리로 전통적 특성을 유지한 것과, 남성 두루마기와 마고자의 도입으로 인간의 평등을 구현한 것을 들 수 있다. 남성 개량한복의 대표적인 형태는 소매와 고름 등 디테일이 간소화된 전통한복과, 서양복 조끼를 나름대로 개혁 변용한 한복조끼 및 서양복 주머니를 전통복에 혼용한 형태 등 서구적 혼용 현상이 강하게 나타났다.

참고문헌

경제발전과 복식의 서구화와의 관계연구-한국 여성복을 중심으로(전양진, 한국의류학회지23-8, 한국의류학회, 1999), 생활한복에 대한 의식구조와 선호도에 따른 디자인 연구(고정민·채금석, 한국의류학회지23-5, 한국의류학회, 1999), 생활한복의 형성배경과 그 내용적 특성에 대한 고찰(정혜경, 복식51-2, 한국복식학회, 2001), 한복 개량 운동에 관한 고찰(홍나영, 복식15, 한국복식학회,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