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화(人物畵)

한자명

人物畵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이원복(李源福)

정의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일련의 그림.

개관

우리 인류의 조형미술에서 인물의 등장은 이미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와 암각화 등의 그림과, 작은 규모의 조각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스페인의 알타미라와 프랑스의 라스코 등 후기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선 들소·멧돼지·말 등 각종 야생동물이 주류이다. 흔한 예는 아니나 라스코 동굴벽화에는 사람도 등장한다. 신석기시대에 이르면 사람의 등장이 빈번해지니 시칠리아섬 내 아다우라 동굴의 기원전 1만 년경 유적의 암각화에서 선각線刻의 군무群舞를 살필 수 있다.
1960년대 중반 중국 운남성 창원현滄源縣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바위유적엔 군무, 수렵狩獵, 전쟁, 제례의식祭禮儀式 등 무리를 이룬 인물들이 채색[岩彩畵]으로 그려져 있다. 신석기시대 토기의 장식문양에서도 인물이 등장한다. 앙소문화권仰邵文化圈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섬서성 서안 반파촌半坡村에서 출토된 어린이용 옹관의 덮개인 <인면어문채도분人面魚文彩陶盆>의 내부에는 마주보는 두 얼굴과 물고기가 등장한다.
또한 전국시대 청동기의 문양의 내용은 수렵과 활쏘기, 전쟁과 연회장면들이 주된 주제이다. 진·한대 궁전과 관아의 기단과 묘실 벽면을 장식한 화상전畫像磚에는 농경·수렵·염전鹽田·양조釀造·놀이 등이, 석관의 장식 및 묘실과 사당의 건축부재인 화상석畫像石에는 유교의 효자·열녀·자객과 도교의 신선 등이 등장하며 전한前漢부터 축조한 고분벽화에는 무수한 인물들이 그려져 있어 인물화의 변천과정을 엿볼 수 있다.
비록 감상이 아닌 장례의식에 사용한 명정酩酊에 그린 것으로 주인공의 승천을 기원하는 내용을 비단에 그린, 호남성 장사長沙의 기원전 3세기경 전국시대 초묘楚墓에서 출토된 <용봉사녀도>와 <인물어룡도>를 들 수 있다. 이 그림에는 측면으로 등장한 인물이 용과 봉황, 용과 물고기 등과 함께 그려졌는데 동진東晋 고개지顧愷之의 인물 묘사와 유사점도 보인다. 이들과 인근 지역인 기원전 2세기 초 서한西漢 묘에서 출토된 관 덮개인 마왕퇴馬王堆 1호 묘 <정번백화旌幡帛畫>가 널리 알려져 있다.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색채의 비약적인 발전과 훈염薰染 등이 석굴예술의 회화에 영향을 끼쳤다. 육조시대 인물화에 변화가 이루어지고 중국 남조 양 무제武帝, 502~549 때 활동한 장승요張僧繇를 거쳐 염립본閻立本의 <제왕도권帝王圖卷>과 주방周昉의 <쌍육도> 등에 이르러 당唐 인물화가 원숙한 경지에 이르며, 송宋에 이르러선 민족적 색채를 띠는 인물화로 바뀐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인물화는 크게 초상화肖像畫,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畫,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畫, 풍속인물화風俗人物畫, 사녀화仕女畫로 나뉜다. 족적이 선명한 역사상 실존인물을 주제로 한 고사인물화, 불교와 도교에 연원을 둔 도석인물화, 삶의 흥과 멋, 낙천성 등 어질고 착한 성품과 건강한 민족성을 드러낸 풍속화, 아름다운 여인을 주제로 한 사녀화가 해당되며, 민간신앙의 대상인 무속화巫俗畫, 민화民畫의 범주도 포함된다. 고사인물화는 신선들도 실존인물들에서 신격화神格化된 점을 감안하면 도석인물화를 아우른다 하겠다.
중국은 한漢부터 초상화가 크게 발달해 청까지 역대 왕조의 황제 초상이 현존한다. 우리나라 인물화에 있어 첫 번째 위치를 점하는 초상화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시원을 찾을 수 있으며 조선 말 근대 및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된다. 고구려 고분벽화 중 몇 점의 주인공 부부상, 후대 옮겨 그린 일본에 있는 원효元曉, 617~696와 의상義湘, 625~702 초상 외엔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전무한 실정이다. 중세인 고려시대 초상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로 몇 점 안 된다. 조선시대는 제왕의 초상인 어진御眞, 조선 시대 동안 28회 실시된 공신도상功臣圖像, 기로도상耆老圖像, 일반사대부상, 승려, 여인초상으로 나뉘는데, 먼저 그 역사가 오랠 뿐더러 현존하는 수량의 측면에서도 주목된다.
고사인물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로는 진시황을 피해 산 속에 은거한 네 노인이 바둑 두는 장면으로 묘사된 기원전 3세기 인물들인 상산사호商山四皓·3세기 말 노장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속세를 피해 청담과 술로 자유분방한 삶을 산 죽림칠현竹林七賢·4세기 동진 때 인물로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 321~379의 난정 모임을 담은 난정수계蘭亭修稧·당唐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향산에 은거하며 부근에 아홉 명의 노인들과 주연과 시회詩會를 가졌다는 고사인 향산구노香山九老·송宋 영종英宗의 사위 왕선王詵이 1087년 북송의 수도 개봉開封에 있던 정원에서 원통대사圓通大師·소식蘇軾, 1036~1101·소철蘇轍, 1039~1112·이공린李公麟,1040~1106·미불米芾, 1051~1107 등 당대의 이름난 문사와 승려와 도사 등 16명과 함께 열었던 모임인 서원아집西園雅集 등이다. 이 주제의 그림들이 중국에선 주로 횡권橫卷, 조선 왕조에선 대폭의 족자나 일련의 병풍으로 즐겨 그려졌다.
도석인물화는 도교의 신선과 도사, 불교의 고승과 나한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당말唐末 송초宋初부터 백묘법白描法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송은 성리학의 발전으로 불교의 세력이 약해지고 도교는 크게 발전해 북송도관에 대형벽화들이 그려졌고 남송에서는 소형으로 수묵 위주로 그려졌다. 원元에선 라마교의 유행과 더불어 도석인물화가 종교에서 문학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명明에선 도석인물화는 역사풍속화와 전신화傳神畫인 초상화로 분리되며 사찰의 벽화만이, 청에 이르면 실용적인 기념예술품으로 간직하려는 바람에서 사진처럼 드릴 수 있게 되어 초상화가 사진화寫眞畫라 지칭되었다.
사녀화는 한漢부터 궁녀나 미인도를 그리기 시작했으니 진晋의 고개지顧愷之 등 육조를 지나 주방周昉, 618~707 등 과장된 정밀 표현으로 당唐에서 크게 발전했다. 송의 사녀도는 오대 남당에서 비롯했다.

내용

인류가 종이나 비단을 발명하기 훨씬 이전 뼈와 바위에 인물의 흔적을 남겼으니 선사시대 미술부터 사람은 조형미술의 소재 가운데 하나로 그림의 탄생 시기까지 소급된다. 그간 새로운 유적의 발굴과 유물의 발견, 고고학·미술사·인류학·민속학의 연구 성과에 힘 입어 우리나라도 인류의 보편적인 양상에서 예외가 아님이 확인된다. 충청북도 청원 구석기시대 두루봉동굴에서 몇 개의 홈으로 얼굴을 표현한 골제얼굴이, 신석기시대 것으론 강원도 양양 오산리 유적에서 흙으로 빚은 토제얼굴이, 또한 신석기시대 대표적인 유적인 부산동삼동 패총貝塚에선 조개에 세 구멍을 낸 조개얼굴이 출토되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선 뭍과 물에 사는 동물이 주류이나 삼각형 형태의 얼굴, 춤추는 동작, 벗은 채로 합장 자세를 취한 인물 등을 살필 수 있다. 1974년 울산 신암 생활유적에서 ‘신암의 비너스’로 지칭됨직한, 그리고 함경북도 청진 농포동 조개무지에서 양손을 어깨로 포개 가슴을 가린 여인상이 출토되었다. 둘 다 머리 부분이 유실된 상태로 전해졌다. 각기 3.6㎝, 5.6㎝ 이내이나 후자를 복원하면 8㎝ 정도의 크기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단독상單獨像인 조각을 대변한다 하겠다.
그러나 본격적인 인물 그림은 우리나라 고대 회화의 보고인 통구와 북한 소재 고구려 고분벽화부터다. 현재 1백기를 웃도는, 4세기부터 7세기 초에 이르는 이들 벽화에는 묘주인 주인공 부부초상과 사냥과 행렬, 씨름과 같은 놀이와 부엌우물가 등 생업 장면들로 생활정경이 잘 나타나 있다. 아울러 삼국시대 중국에 파견된 사신이나, 조선통신사 일원을 각기 중국과 일본 화가들이 그린 예도 알려져 있다.
감상화는 아니나 화려하고 섬세한 고려시대 회화를 대변하는 고려불화는 이금으로 그린 변상도變相圖를 포함하는데, 등장인물로는 부처와 수월관음으로 대변되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나한, 승려 등이 있어서 정형화된 도상이나 인물화 범주에 든다 하겠다. 이 외 1312년 선각先覺비구가 그린 일본 타인지[大恩寺]의 <관경서품변상도觀經序品變相圖>, 이보다 후에 그린 사이후구지[西福寺] 소장 <관경변상서분觀經變相序分>이나, 1350년 회전悔前이 그린 신노인[親王院] 소장 <미륵하생변상도彌勒下生變相圖> 등에서 고려 당시 복색의 제왕을 위시해 왕실의 비빈과 귀족 등 상류층의 모습도 살필 수 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등 한자문화권 전통회화는 오늘날 그림의 주제와 소재에 의해 산수화, 화조화, 인물화 등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동아시아 회화 중 가장 빛나는 분야인 산수화는 서구의 풍경화와 유사하나 단순히 풍광을 그린 실경산수 외에, 이상화된 경관이 정형산수定型山水나 관념산수觀念山水로 불리며 두 분야로 나뉜다. 산수화에 앞서 가장 먼저 발전한 인물화는 우리나라도 같은 양상을 취한다.

특징 및 의의

인물화의 서두를 장식하는 초상화부터 살피면 탄생과 변천에서 동아시아의 보편성과 국제성을 반영하며 문화 전반에 그러하듯 나름의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감지된다.
첫째, 먼저 그 역사가 오랠 뿐더러 현존하는 수량의 측면에서도 조선시대 초상화는 크게 주목된다. 우리 초상은 고구려 고분벽화가 전하듯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그려졌다. 다만 임금과 여성 초상은 전해진 예가 매우 드물다.
둘째, 화풍의 측면에서 우리 초상은 이상화의 정형화로 과장과 장식적인 중국이나 일본의 초상과는 구별된다. 이는 적은 예이나 <영조어진> 등 푸근한 인간미가 깃든 어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어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적인 성격이 약한 문인화가의 자화상自畵像을 비롯한 일반사대부상 등 현존하는 조선시대 초상화들은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화풍상 확실하게 구별되며, 그림의 됨됨이인 예술성에서도 단연 두드러진다.
핍진한 묘사와 높은 예술성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하겠다. 묘사의 사실성과 함께 그림 됨됨이인 예술성 양 측면에서 긍정적이며, 보이지 않는 마음과 정신 등 내면까지 표출한 점에서 우리 옛 그림의 위상을 대변한다.
현존하는 도석인물화는 대부분이 임진왜란 이후것들이다. 고려시대는 도관道觀이 적지 않았고, 그 내부에는 각종 도교의 인물들이 그려졌음은 문헌이 전한다. 특히 임진왜란 때 명明 군사의 파병과 더불어 중국에서도 호국신護國神이고 재물의 신인 후한 말 촉蜀의 명장인 관우 신앙이 전개되면서 숙종 때부터 제사를 정례화해 전국의 동묘東廟에 관우를 배향한 사실이 주목된다.
조선 중기 일본 조선통신사 일행으로 다녀온 김명국金明國 등 화가들이 이 주제를 남긴 점도 주목된다. 일본 현지에서 그들의 요청에 의해 <달마達磨> 등 선종화禪宗畫 계열 인물을 남겼다. 이어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이 달마와 <하마선인蝦蟆仙人>을 남겼다. 재물과 복을 불러오는 존재인 두꺼비[蝦蟆]와 함께 등장해 하마선인으로 지칭되는 유해劉海는 중국 후량 때 인물이다. 유해에게는 세 발 달린 두꺼비가 있었으니 이 두꺼비는 세상 어디든지 데려다 주는 신통력이 있으나 종종 우물 속으로 도망치곤 해 금전金錢이 달린 끈으로 끌어올리곤 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신선神仙으로 화명을 얻은 김홍도를 비롯해 인물화가 크게 유행한다. 국제성과 보편성을 반영하듯 대상이 된 유교의 성현이나 불교의 불보살 및 나한의 경우 주인공들이 한국인이 아닌 인도와 중국 등 나라 밖이다. 중국에서 정형화된 도상을 받아들여 동아시아 삼국의 국제성과 공통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충분한 이해를 거쳐, 문화의 제 양상이 그러하듯 진원지와 달리 토착화로 자기화된 경향을 드러냄을 간과할 수 없다. 불상조각의 경우 도상에 있어서 탄생지와 달리 민족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자기화를 보이듯, 조선시대 중기 김명국의 인도인 모습의 달마와 후기 김홍도의 우리 얼굴로 다시 탄생된 달마는 이를 극명히 보여 준다. 소를 타고 함곡관을 넘는 노자老子, 돌을 양으로 만든 질석성양叱石成羊 고사의 주인공인 젊은 신선 황조평黃初平과 늘 작대기에 자루를 메고 다니면서 무엇이든 동냥한 포대화상布袋和尙,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성南極星인 수성노인 등도 즐겨 그렸다.
서왕모가 주 목왕 등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자 불보살과 군선들이 바다 건너 찾아오는 <요지연도瑤池宴圖>는 <선경도仙境圖>로 지칭되기도 한다.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와 더불어 조선 후기 궁중에서 왕세자 탄생과 혼인 및 대왕대비의 생신 등 경사가 있을 때 궁중가례宮中嘉禮로 화원들에 의해 그려졌고, 여염집에서도 생일 축하 및 축수祝壽로써 여러 폭으로 된 병풍으로 제작되었다.
이민족 절도사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일으킨 안사의 난安史之亂, 755~763은 당 조정을 휘청하게 했다. 이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분양왕에 봉해진 곽자의郭子儀, 697~781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이 <곽분양행락도>이다. 그는 네 황제를 섬겼다. 높은 벼슬에 여덟 아들, 여덟 사위를 두었으며 85세의 장수를 누려 부귀다남富貴多男의 대명사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화려한 저택에서 가무를 즐기면서 노는 자녀들을 지켜보는 노부부의 정경이 공필과 진채로 화려하게 표현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부귀영화와 오복향락의 표본으로 주로 조선 후기 화단에서 19세기까지 김득신 등이 점차 그렸으며 민간 소용 민화의 한 소재로도 즐겨 애호되었다. 중국에 연원을 둔 고사인물화나 도석인물화 또한 중국과 구별되는 일정한 정형定型을 이룩했다. 19세기에 이르면 부富를 축적한 중인층이 사회에 부각되면서 궁중만이 아닌 그들의 수요로 그려져 민화 영역으로 전이 되어 매매의 대상으로 시장에서 판매했다. 고사인물도와 도석인물화에서 전체를 여러 폭으로 한 김홍도의 <군선도>를 비롯해 한 폭에 몇 명씩 등장시킨 병풍 등은 중국에서 찾기 힘든 조선에서의 정형화를 이룩했다.
어질고 낙천적인 각계각층 조선인의 실제 삶의 이모저모를 담은 조선 후기 화단의 풍속화는 활기찬 시대 분위기를 전하는 기록적 성격 외에 사농공상 종사자 전체를 담은 김홍도, <거문고 줄 고르는 여인>처럼 기녀의 삶을 다루거나 도심의 남녀 애정을 주제로 한 신윤복, 김득신 등에 의해 고유색 짙은 우리 미감美感의 발로로 전개되었다. 아울러 사녀도 또한 중국풍의 미인 외에 신윤복의 <미인도>가 말해주 듯 조선 복색에 중국과 구별되니, 치장이나 꾸밈이 적고 앳된 함초롬하며 맑고 화사한 미감으로 그려졌다. 이 밖에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남성의 가장 바람직한 일생을 담은 평생도平生圖와 구운몽九雲夢,춘향전春香傳과 심청전 등 우리 소설을 주제로 한 일련의 그림은 민화로 이어졌으며 무신도巫神圖 범주의 다양한 신상들도 그려졌다.
민화의 범주에선 일본 민예관 소장 <산신도>가 보여주듯 희화된 인물이, 무신도 범주에선 단군檀君, 최영장군, 임경업 장군, 삼불제석, 서낭신, 성수成守, 신령, 창부씨, 작두대신 등 다양한 형태로 인물이 그려졌다. 일반 초상과 달리 팔선녀, 대신마누라, 산마도령, 도삼부인, 도당할머니 등 무속화에선 여성이 적지 않게 그려졌다.

참고문헌

동양화론(김종태, 일지사, 1978), 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후기 초상화(이태호, 마로니에북스, 2016), 역사와 사상이 담긴 조선시대 인물화(안휘준·민길홍, 학고재, 2009), 우리나라의 옛 초상, 반듯한 삶의 당당함과 의연함(이원복, 역사 속에 살다, 전북도립미술관, 2013), 인물로 보는 한국미술(호암미술관, 1999), 초상화의 비밀(국립중앙박물관, 2011), 한국의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1979), 한국의 초상화, 형과 영의 예술(조선미, 돌베개, 2009), 회화사로 살펴보는 한국의 무신도(윤열수, 한국의 무신도, 1994).

인물화

인물화
한자명

人物畵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이원복(李源福)

정의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일련의 그림.

개관

우리 인류의 조형미술에서 인물의 등장은 이미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와 암각화 등의 그림과, 작은 규모의 조각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스페인의 알타미라와 프랑스의 라스코 등 후기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선 들소·멧돼지·말 등 각종 야생동물이 주류이다. 흔한 예는 아니나 라스코 동굴벽화에는 사람도 등장한다. 신석기시대에 이르면 사람의 등장이 빈번해지니 시칠리아섬 내 아다우라 동굴의 기원전 1만 년경 유적의 암각화에서 선각線刻의 군무群舞를 살필 수 있다.
1960년대 중반 중국 운남성 창원현滄源縣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바위유적엔 군무, 수렵狩獵, 전쟁, 제례의식祭禮儀式 등 무리를 이룬 인물들이 채색[岩彩畵]으로 그려져 있다. 신석기시대 토기의 장식문양에서도 인물이 등장한다. 앙소문화권仰邵文化圈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섬서성 서안 반파촌半坡村에서 출토된 어린이용 옹관의 덮개인 <인면어문채도분人面魚文彩陶盆>의 내부에는 마주보는 두 얼굴과 물고기가 등장한다.
또한 전국시대 청동기의 문양의 내용은 수렵과 활쏘기, 전쟁과 연회장면들이 주된 주제이다. 진·한대 궁전과 관아의 기단과 묘실 벽면을 장식한 화상전畫像磚에는 농경·수렵·염전鹽田·양조釀造·놀이 등이, 석관의 장식 및 묘실과 사당의 건축부재인 화상석畫像石에는 유교의 효자·열녀·자객과 도교의 신선 등이 등장하며 전한前漢부터 축조한 고분벽화에는 무수한 인물들이 그려져 있어 인물화의 변천과정을 엿볼 수 있다.
비록 감상이 아닌 장례의식에 사용한 명정酩酊에 그린 것으로 주인공의 승천을 기원하는 내용을 비단에 그린, 호남성 장사長沙의 기원전 3세기경 전국시대 초묘楚墓에서 출토된 <용봉사녀도>와 <인물어룡도>를 들 수 있다. 이 그림에는 측면으로 등장한 인물이 용과 봉황, 용과 물고기 등과 함께 그려졌는데 동진東晋 고개지顧愷之의 인물 묘사와 유사점도 보인다. 이들과 인근 지역인 기원전 2세기 초 서한西漢 묘에서 출토된 관 덮개인 마왕퇴馬王堆 1호 묘 <정번백화旌幡帛畫>가 널리 알려져 있다.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색채의 비약적인 발전과 훈염薰染 등이 석굴예술의 회화에 영향을 끼쳤다. 육조시대 인물화에 변화가 이루어지고 중국 남조 양 무제武帝, 502~549 때 활동한 장승요張僧繇를 거쳐 염립본閻立本의 <제왕도권帝王圖卷>과 주방周昉의 <쌍육도> 등에 이르러 당唐 인물화가 원숙한 경지에 이르며, 송宋에 이르러선 민족적 색채를 띠는 인물화로 바뀐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인물화는 크게 초상화肖像畫,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畫,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畫, 풍속인물화風俗人物畫, 사녀화仕女畫로 나뉜다. 족적이 선명한 역사상 실존인물을 주제로 한 고사인물화, 불교와 도교에 연원을 둔 도석인물화, 삶의 흥과 멋, 낙천성 등 어질고 착한 성품과 건강한 민족성을 드러낸 풍속화, 아름다운 여인을 주제로 한 사녀화가 해당되며, 민간신앙의 대상인 무속화巫俗畫, 민화民畫의 범주도 포함된다. 고사인물화는 신선들도 실존인물들에서 신격화神格化된 점을 감안하면 도석인물화를 아우른다 하겠다.
중국은 한漢부터 초상화가 크게 발달해 청까지 역대 왕조의 황제 초상이 현존한다. 우리나라 인물화에 있어 첫 번째 위치를 점하는 초상화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시원을 찾을 수 있으며 조선 말 근대 및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된다. 고구려 고분벽화 중 몇 점의 주인공 부부상, 후대 옮겨 그린 일본에 있는 원효元曉, 617~696와 의상義湘, 625~702 초상 외엔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전무한 실정이다. 중세인 고려시대 초상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로 몇 점 안 된다. 조선시대는 제왕의 초상인 어진御眞, 조선 시대 동안 28회 실시된 공신도상功臣圖像, 기로도상耆老圖像, 일반사대부상, 승려, 여인초상으로 나뉘는데, 먼저 그 역사가 오랠 뿐더러 현존하는 수량의 측면에서도 주목된다.
고사인물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로는 진시황을 피해 산 속에 은거한 네 노인이 바둑 두는 장면으로 묘사된 기원전 3세기 인물들인 상산사호商山四皓·3세기 말 노장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속세를 피해 청담과 술로 자유분방한 삶을 산 죽림칠현竹林七賢·4세기 동진 때 인물로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 321~379의 난정 모임을 담은 난정수계蘭亭修稧·당唐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향산에 은거하며 부근에 아홉 명의 노인들과 주연과 시회詩會를 가졌다는 고사인 향산구노香山九老·송宋 영종英宗의 사위 왕선王詵이 1087년 북송의 수도 개봉開封에 있던 정원에서 원통대사圓通大師·소식蘇軾, 1036~1101·소철蘇轍, 1039~1112·이공린李公麟,1040~1106·미불米芾, 1051~1107 등 당대의 이름난 문사와 승려와 도사 등 16명과 함께 열었던 모임인 서원아집西園雅集 등이다. 이 주제의 그림들이 중국에선 주로 횡권橫卷, 조선 왕조에선 대폭의 족자나 일련의 병풍으로 즐겨 그려졌다.
도석인물화는 도교의 신선과 도사, 불교의 고승과 나한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당말唐末 송초宋初부터 백묘법白描法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송은 성리학의 발전으로 불교의 세력이 약해지고 도교는 크게 발전해 북송도관에 대형벽화들이 그려졌고 남송에서는 소형으로 수묵 위주로 그려졌다. 원元에선 라마교의 유행과 더불어 도석인물화가 종교에서 문학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명明에선 도석인물화는 역사풍속화와 전신화傳神畫인 초상화로 분리되며 사찰의 벽화만이, 청에 이르면 실용적인 기념예술품으로 간직하려는 바람에서 사진처럼 드릴 수 있게 되어 초상화가 사진화寫眞畫라 지칭되었다.
사녀화는 한漢부터 궁녀나 미인도를 그리기 시작했으니 진晋의 고개지顧愷之 등 육조를 지나 주방周昉, 618~707 등 과장된 정밀 표현으로 당唐에서 크게 발전했다. 송의 사녀도는 오대 남당에서 비롯했다.

내용

인류가 종이나 비단을 발명하기 훨씬 이전 뼈와 바위에 인물의 흔적을 남겼으니 선사시대 미술부터 사람은 조형미술의 소재 가운데 하나로 그림의 탄생 시기까지 소급된다. 그간 새로운 유적의 발굴과 유물의 발견, 고고학·미술사·인류학·민속학의 연구 성과에 힘 입어 우리나라도 인류의 보편적인 양상에서 예외가 아님이 확인된다. 충청북도 청원 구석기시대 두루봉동굴에서 몇 개의 홈으로 얼굴을 표현한 골제얼굴이, 신석기시대 것으론 강원도 양양 오산리 유적에서 흙으로 빚은 토제얼굴이, 또한 신석기시대 대표적인 유적인 부산동삼동 패총貝塚에선 조개에 세 구멍을 낸 조개얼굴이 출토되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선 뭍과 물에 사는 동물이 주류이나 삼각형 형태의 얼굴, 춤추는 동작, 벗은 채로 합장 자세를 취한 인물 등을 살필 수 있다. 1974년 울산 신암 생활유적에서 ‘신암의 비너스’로 지칭됨직한, 그리고 함경북도 청진 농포동 조개무지에서 양손을 어깨로 포개 가슴을 가린 여인상이 출토되었다. 둘 다 머리 부분이 유실된 상태로 전해졌다. 각기 3.6㎝, 5.6㎝ 이내이나 후자를 복원하면 8㎝ 정도의 크기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단독상單獨像인 조각을 대변한다 하겠다.
그러나 본격적인 인물 그림은 우리나라 고대 회화의 보고인 통구와 북한 소재 고구려 고분벽화부터다. 현재 1백기를 웃도는, 4세기부터 7세기 초에 이르는 이들 벽화에는 묘주인 주인공 부부초상과 사냥과 행렬, 씨름과 같은 놀이와 부엌과 우물가 등 생업 장면들로 생활정경이 잘 나타나 있다. 아울러 삼국시대 중국에 파견된 사신이나, 조선통신사 일원을 각기 중국과 일본 화가들이 그린 예도 알려져 있다.
감상화는 아니나 화려하고 섬세한 고려시대 회화를 대변하는 고려불화는 이금으로 그린 변상도變相圖를 포함하는데, 등장인물로는 부처와 수월관음으로 대변되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나한, 승려 등이 있어서 정형화된 도상이나 인물화 범주에 든다 하겠다. 이 외 1312년 선각先覺비구가 그린 일본 타인지[大恩寺]의 <관경서품변상도觀經序品變相圖>, 이보다 후에 그린 사이후구지[西福寺] 소장 <관경변상서분觀經變相序分>이나, 1350년 회전悔前이 그린 신노인[親王院] 소장 <미륵하생변상도彌勒下生變相圖> 등에서 고려 당시 복색의 제왕을 위시해 왕실의 비빈과 귀족 등 상류층의 모습도 살필 수 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등 한자문화권 전통회화는 오늘날 그림의 주제와 소재에 의해 산수화, 화조화, 인물화 등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동아시아 회화 중 가장 빛나는 분야인 산수화는 서구의 풍경화와 유사하나 단순히 풍광을 그린 실경산수 외에, 이상화된 경관이 정형산수定型山水나 관념산수觀念山水로 불리며 두 분야로 나뉜다. 산수화에 앞서 가장 먼저 발전한 인물화는 우리나라도 같은 양상을 취한다.

특징 및 의의

인물화의 서두를 장식하는 초상화부터 살피면 탄생과 변천에서 동아시아의 보편성과 국제성을 반영하며 문화 전반에 그러하듯 나름의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감지된다.
첫째, 먼저 그 역사가 오랠 뿐더러 현존하는 수량의 측면에서도 조선시대 초상화는 크게 주목된다. 우리 초상은 고구려 고분벽화가 전하듯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그려졌다. 다만 임금과 여성 초상은 전해진 예가 매우 드물다.
둘째, 화풍의 측면에서 우리 초상은 이상화의 정형화로 과장과 장식적인 중국이나 일본의 초상과는 구별된다. 이는 적은 예이나 <영조어진> 등 푸근한 인간미가 깃든 어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어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적인 성격이 약한 문인화가의 자화상自畵像을 비롯한 일반사대부상 등 현존하는 조선시대 초상화들은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화풍상 확실하게 구별되며, 그림의 됨됨이인 예술성에서도 단연 두드러진다.
핍진한 묘사와 높은 예술성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하겠다. 묘사의 사실성과 함께 그림 됨됨이인 예술성 양 측면에서 긍정적이며, 보이지 않는 마음과 정신 등 내면까지 표출한 점에서 우리 옛 그림의 위상을 대변한다.
현존하는 도석인물화는 대부분이 임진왜란 이후것들이다. 고려시대는 도관道觀이 적지 않았고, 그 내부에는 각종 도교의 인물들이 그려졌음은 문헌이 전한다. 특히 임진왜란 때 명明 군사의 파병과 더불어 중국에서도 호국신護國神이고 재물의 신인 후한 말 촉蜀의 명장인 관우 신앙이 전개되면서 숙종 때부터 제사를 정례화해 전국의 동묘東廟에 관우를 배향한 사실이 주목된다.
조선 중기 일본 조선통신사 일행으로 다녀온 김명국金明國 등 화가들이 이 주제를 남긴 점도 주목된다. 일본 현지에서 그들의 요청에 의해 <달마達磨> 등 선종화禪宗畫 계열 인물을 남겼다. 이어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이 달마와 <하마선인蝦蟆仙人>을 남겼다. 재물과 복을 불러오는 존재인 두꺼비[蝦蟆]와 함께 등장해 하마선인으로 지칭되는 유해劉海는 중국 후량 때 인물이다. 유해에게는 세 발 달린 두꺼비가 있었으니 이 두꺼비는 세상 어디든지 데려다 주는 신통력이 있으나 종종 우물 속으로 도망치곤 해 금전金錢이 달린 끈으로 끌어올리곤 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신선神仙으로 화명을 얻은 김홍도를 비롯해 인물화가 크게 유행한다. 국제성과 보편성을 반영하듯 대상이 된 유교의 성현이나 불교의 불보살 및 나한의 경우 주인공들이 한국인이 아닌 인도와 중국 등 나라 밖이다. 중국에서 정형화된 도상을 받아들여 동아시아 삼국의 국제성과 공통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충분한 이해를 거쳐, 문화의 제 양상이 그러하듯 진원지와 달리 토착화로 자기화된 경향을 드러냄을 간과할 수 없다. 불상조각의 경우 도상에 있어서 탄생지와 달리 민족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자기화를 보이듯, 조선시대 중기 김명국의 인도인 모습의 달마와 후기 김홍도의 우리 얼굴로 다시 탄생된 달마는 이를 극명히 보여 준다. 소를 타고 함곡관을 넘는 노자老子, 돌을 양으로 만든 질석성양叱石成羊 고사의 주인공인 젊은 신선 황조평黃初平과 늘 작대기에 자루를 메고 다니면서 무엇이든 동냥한 포대화상布袋和尙,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성南極星인 수성노인 등도 즐겨 그렸다.
서왕모가 주 목왕 등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자 불보살과 군선들이 바다 건너 찾아오는 <요지연도瑤池宴圖>는 <선경도仙境圖>로 지칭되기도 한다.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와 더불어 조선 후기 궁중에서 왕세자 탄생과 혼인 및 대왕대비의 생신 등 경사가 있을 때 궁중가례宮中嘉禮로 화원들에 의해 그려졌고, 여염집에서도 생일 축하 및 축수祝壽로써 여러 폭으로 된 병풍으로 제작되었다.
이민족 절도사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일으킨 안사의 난安史之亂, 755~763은 당 조정을 휘청하게 했다. 이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분양왕에 봉해진 곽자의郭子儀, 697~781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이 <곽분양행락도>이다. 그는 네 황제를 섬겼다. 높은 벼슬에 여덟 아들, 여덟 사위를 두었으며 85세의 장수를 누려 부귀다남富貴多男의 대명사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화려한 저택에서 가무를 즐기면서 노는 자녀들을 지켜보는 노부부의 정경이 공필과 진채로 화려하게 표현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부귀영화와 오복향락의 표본으로 주로 조선 후기 화단에서 19세기까지 김득신 등이 점차 그렸으며 민간 소용 민화의 한 소재로도 즐겨 애호되었다. 중국에 연원을 둔 고사인물화나 도석인물화 또한 중국과 구별되는 일정한 정형定型을 이룩했다. 19세기에 이르면 부富를 축적한 중인층이 사회에 부각되면서 궁중만이 아닌 그들의 수요로 그려져 민화 영역으로 전이 되어 매매의 대상으로 시장에서 판매했다. 고사인물도와 도석인물화에서 전체를 여러 폭으로 한 김홍도의 <군선도>를 비롯해 한 폭에 몇 명씩 등장시킨 병풍 등은 중국에서 찾기 힘든 조선에서의 정형화를 이룩했다.
어질고 낙천적인 각계각층 조선인의 실제 삶의 이모저모를 담은 조선 후기 화단의 풍속화는 활기찬 시대 분위기를 전하는 기록적 성격 외에 사농공상 종사자 전체를 담은 김홍도, <거문고 줄 고르는 여인>처럼 기녀의 삶을 다루거나 도심의 남녀 애정을 주제로 한 신윤복, 김득신 등에 의해 고유색 짙은 우리 미감美感의 발로로 전개되었다. 아울러 사녀도 또한 중국풍의 미인 외에 신윤복의 <미인도>가 말해주 듯 조선 복색에 중국과 구별되니, 치장이나 꾸밈이 적고 앳된 함초롬하며 맑고 화사한 미감으로 그려졌다. 이 밖에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남성의 가장 바람직한 일생을 담은 평생도平生圖와 구운몽九雲夢,춘향전春香傳과 심청전 등 우리 소설을 주제로 한 일련의 그림은 민화로 이어졌으며 무신도巫神圖 범주의 다양한 신상들도 그려졌다.
민화의 범주에선 일본 민예관 소장 <산신도>가 보여주듯 희화된 인물이, 무신도 범주에선 단군檀君, 최영장군, 임경업 장군, 삼불제석, 서낭신, 성수成守, 신령, 창부씨, 작두대신 등 다양한 형태로 인물이 그려졌다. 일반 초상과 달리 팔선녀, 대신마누라, 산마도령, 도삼부인, 도당할머니 등 무속화에선 여성이 적지 않게 그려졌다.

참고문헌

동양화론(김종태, 일지사, 1978), 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후기 초상화(이태호, 마로니에북스, 2016), 역사와 사상이 담긴 조선시대 인물화(안휘준·민길홍, 학고재, 2009), 우리나라의 옛 초상, 반듯한 삶의 당당함과 의연함(이원복, 역사 속에 살다, 전북도립미술관, 2013), 인물로 보는 한국미술(호암미술관, 1999), 초상화의 비밀(국립중앙박물관, 2011), 한국의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1979), 한국의 초상화, 형과 영의 예술(조선미, 돌베개, 2009), 회화사로 살펴보는 한국의 무신도(윤열수, 한국의 무신도,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