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해도(魚蟹圖)

한자명

魚蟹圖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이원복(李源福)

정의

민물이나 바다 모두를 포함에 이 안에 서식하는 어류 내지 수족水族 전체를 지칭하며, 그중 물고기와 게를 그린 그림.

개관

한·중·일 세 나라 각국의 사전에서 어개魚介·어하魚蝦·인개鱗介 등도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중국 송휘종徽宗의 회화 수장 목록인 『선화화보宣和畵譜』 20권 중 제9권은 ‘용어수족龍魚水族’으로 어해도 범주의 회화들이다. 이 안에 명기된 유어도游魚圖·희어도戲魚圖·군어도群魚圖·어해도魚蟹圖·어하도·해도·희조군어도戱藻群魚圖·군어백희릉도群魚白戱菱圖·모란유어도牡丹游魚圖·낙화유어도洛花游魚圖 등 작품명을 통해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사냥과 채집에 의존한 선사시대부터 중요 식량원에 드는 물고기는 동서양 구분 없이 선사시대 미술부터 살펴볼 수 있다. 조형예술의 한 소재로 물고기가 등장하게 된 것은 기원전으로 소급된다. 중국에서 감상용 그림으로서 일찍부터 그려졌음은 현존하는 작품뿐만 아니라 문헌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하나의 독립된 화과畵科로 성장과 발전은 다른 소재에 비해 크게 두드러지지 않은 듯 싶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는 비슷한 양상이다.
우리나라 고대 회화의 보고寶庫인 안악1호분, 덕흥리 고분, 강서대묘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한 <날개가 달린 물고기[飛魚]>는 중국 전국시대 저술인 『산해경山海經』에 산지와 효험으로 치질을 낫게 하거나, 천둥을 두려워하지 않게 한다는 등 기사가 보이며, <백제대향로>에도 등장한다. 1971년 7월 발굴된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 출토 유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왕비 두침에 그린 어룡魚龍, 동탁은잔銅托銀盞 내부 문양에 등장한다.
고려시대 동경과 고려청자,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그리고 목기 및 칠기와 자수刺繡 등 공예 전반의 표면장식 문양에서 두루 살필 수 있다. 전래 작품이 드문 조선 중기 이전은 이 분야 또한 유존 작품이 몹시 적다. 물론 문헌자료 등에 의해 어느 정도 보완은 가능하겠으나 그 양상은 크게 주시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현존작을 중심으로 살필 때 우리나라의 어해도는 대체로 18세기 이후로 큰 발전이 이루어진 것으로 사료된다.

내용

우리 옛 그림 중 이 분야의 소재를 살피면 붕어·잉어·미꾸라지·쏘가리[鱖魚]·송사리 등 민물고기나 물고기 외에 새우·게·가재·조개류·문어·오징어·홍어·전복·자라·거북·소라 등이 함께 그려지기도 했다. 어해도는 19세기 이후 민화民畵 범주에서 그려진 것이 다수 전래되고 있으며 이 분야 그림의 주류인 양 오해될 소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민화 이전 일찍이 도자기 문양을 비롯해 회화사에 선명한 족적을 남긴 화가들에 의해 이미 조선 초부터 어해도가 그려졌음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분청사기에는 합의 내부나 뚜껑, 편병扁甁 몸통의 원형 공간, 제법 볼륨 있는 항아리, 병 등에서 여러 기형의 물고기 무늬가 등장한다. 선으로 나타낸 경우 대체로 측면에 한 마리만이 아닌 두세 마리 물고기를 겹치거나 교차시켜 나타냈다. 보물 787호 <분청사기 철화 물고기무늬 항아리>와 <분청사기 철화 물고기무늬 병>에는 파도를 배경으로 물풀을 입에 물거나 수초를 곁들이는 것, 연지蓮池를 함께 나타내기도 했다. 철화문의 경우 도자 표면에 직접 물고기를 그렸기에 회화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특히 강한 필선의 뛰어난 기량이 돋보인다. 시대를 뛰어 넘는 일종의 추상미까지 간취되며, 참신한 현대감각으로 크게 주목을 끄는 수작들도 있다. 16세기 말을 거친 뒤 분청사기는 쇠퇴·소멸해 논외의 대상이 된다.
조선시대 초기인 15세기 청화백자는 현존하는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보물 788호인 <백자 청화 물고기무늬 항아리>는 기면에 빈틈없이 가득 문양을 채우고 있으며, 일견 명明 청화와 친연성이 강하다. 몸통 중심의 전후로 큰 능형화창菱形花窓이 있고, 그 안에 각기 큰 잉어와 잔 물고기들과 수초를 그려 중국의 <조어도藻魚圖> 계열과 통한다. 개인소장의 <백자 청화 잉어와 물풀무늬 접시>는 전문화가의 솜씨가 분명하며 한폭의 그림으로 손색이 없다. 19세기 정형화된 <백자 청화 잉어무늬 접시>와는 구별된다 하겠다.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쏘가리 그림 2점이 알려져 있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황쏘가리[紫鯉]>는 갈대가 꺾여 물속에 잠겼고 새우가 상단에 곁들여져 있다. 이 그림은 조선성리학을 완성한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별지에 쓴 제시가 있다. 어해도는 이미 조선시대 전기부터 한 가지만이 아닌 새우와 같은 여타의 것을 곁들였음이 확인되는 셈이다. 사임당의 막내아들 이우李瑀, 1542~1609가 남긴 <게>는 소재며 표현기법 등이 <황쏘가리>와 같은 화가의 그림인 양 친연성이 크다.
조선 중기 화단의 윤형尹泂, 1551~1613은 <잉어와 쏘가리[鯉鱖圖]> 등 소품 몇 점이 전해져 본격적으로 부각된 문인화가이다. 신사임당과 마찬가지로 대폭이 아닌 소품들이 주류이며, 물고기뿐만 아니라 게와 새우 등을 함께 나타낸 점, 동일한 물고기를 쌍으로 그릴 때 서로 다른 순간 동작을 잘 포착한 점, 수초를 곁들인 점들을 열거할 수 있다. 아울러 대각선 구도로 물고기를 포치시킨 점 등이 특징으로 제시될 수 있겠다. 또한 모두 담채를 사용한 점과, 사실적이며 섬세한 표현 등이 크게 눈에 뜨인다. 이들 몇을 제외하곤 조선 후기 화단(1700~1850년경)에 이르러서야 어엿한 대작을 만나게 된다.
<잉어가 뛰어 해를 맞이하다[魚躍迎日]>를 비롯해 민화에서도 붉은 태양과 더불어 수면에 반쯤 측면을 드러낸 채 뛰어 오르는 잉어가 많이 그려졌는데 정선의 그림에선 측면이 아닌 배를 드러낸 약동적인 모습이여서 간송미술관 소장 김인관金仁寬의 <잉어>와 공통점도 보인다. 그러나 이광사李匡師·이영익李令翊부자가 합작한 <잉어>와는 다른 필치로, 후자의 경우 비록 세밀한 표현이긴 하지만 전통적인 조어도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잉어는 길상적 의미로 빈번하게 그려졌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게와 새우 등도 독립된 소재로 그려졌다. 아울러 게는 독립된 소재로 발달해 심사정에 이어 최북崔北, 1712~1786은 이를 지두화指頭畫로 그렸으며, 김홍도金弘道는 <게가 갈대꽃을 탐하다[蟹貪蘆花]> 등 여러 점을 남기고 있으며, 말기엔 서화가 지창한池昌翰, 1851~1921처럼 이 한 소재로 대작 병풍을 그려 이름을 남기기도 한다.
창곡唱曲에 뛰어나 ‘강호가江湖歌’가 전하는 김성기金聖器는 낚시를 즐겼으니 그의 호인 조은釣隱, 어은漁隱 등이 이의 증거이다. 마치 묵란墨蘭을 치듯 그린 물풀이며 붕어의 표현이 간일하면서도 세련미가 보여 윤형과 연결됨직한 그림이다.
화원 김인관의 유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산수어해화훼초충도권山水魚蟹花卉草虫圖卷>은 어해 외에 정선의 영향이 짙은 산수도가 여러 점 포함된 긴 두루마리이다. 일련의 그림 내 제발에는 우리나라에서 어해도를 그린 화가가 오직 김인관 한 사람뿐임을 언급하고 있다. 강세황姜世晃의 평이 적힌 <물풀과 물고기[藻魚]>한 점은 수채화처럼 물색을 푸르게 칠한 점이 돋보인다. 이 그림은 화첩에 속했던 것을 뒤에 족자로 꾸몄으니 이를 중앙에 접혔던 자국으로 알 수 있다. 평의 내용은 “옛날에는 이것으로서 한 세대 이름을 얻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昔以此名一代 今人反不以爲貴].”라고 적혀 있다. 어해도는 18세기 접어들어 많이 그려졌고 화풍에서도 큰 변화를 보인다.
장한종의 어해도는 앞선 시대와는 우선 크기부터 차이가 나며 무엇보다 조개와 소라 및 게 등이 포함된 다양한 어종과 사실적인 묘사가 나타나게 된다. 장한종의 그림은 8폭으로 된 큰 병풍과 화첩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이 여럿 전래된다. 단원풍檀園風이 짙은 바위 및 수지법樹枝法은 화가의 기량을 잘 나타내고 있다.
물고기 그림은 <어해도> 8첩 병풍과 화첩 등 분야에 이 분야에 있어 본격적인 작품을 남긴 장한종張漢宗, 1768~1815과 조정규趙廷奎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대작이 등장해 장승업張承業, 1843~1897과 조석진趙錫晋, 1853~1920 등 조선 말기로 이어진다. 20세기 초까지 지속된다. 그중에는 병풍뿐 아니라 화첩으로도 빈번하게 그린 현존 명품들도 여럿 전한다.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흑산도로 유배가 타계 1년 전인 1815년 『자산어보玆山魚譜』를 간행한 것은 어해도가 활발하게 그려진 배경으로 시사점이 크다. 이 논저에는 155종에 이르는 수산물의 명칭 분포, 형태, 이용 등을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민화에서도 어해가 즐겨 그려진 것도 19세기 이후인데 이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정선鄭敾, 1676~1759의 <뛰는 잉어[躍鯉]>와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이 1767년 그린 <어약영일魚躍迎日>이 있다. 또한 장한종이 그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8폭의 <어해화첩>으로, 표지에 ‘어해화첩전魚蟹畵帖全’이라 큰 글자로 화면에 꽉 차게 쓴 묵서가 있다. 쏘가리 및 붕어와 미꾸라지 등 민물고기가 중심이 된 두폭은 각기 도화桃花와 버드나무를 곁들이고 있으며, 그외 6폭은 문어·자라·조개류, 소라·꽃게·조개와 홍합 등 비슷한 성격의 것들을 함께 그렸으며 산수화적 배경의 물가 표현 및 수초나 갈대 등이 곁들여진 독특한 구성을 보인다. 이 화첩에서 보이는 각종 어족은 그가 그린 8폭 <어해병풍>과도 꼭 닮아 화본畵本의 성격마저 읽게 된다. 이는 이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장한종의 진면목을 알려 준다. 장한종이 이 분야에 전념한 사실은 유재건劉在建이 지은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아들 장준량張駿良, 1802~1870과 함께 언급되어 있다. 장한종은 실제 여러 어족들을 사다가 집에서 이를 직접 보면서 그렸음이 기술되어 있다. 그의 그림을 대할 때 이 점이 선명해진다. 그보다 앞선 시대에서 실물을 보고 그린 화가도 없지 않았겠으나 사생寫生이란 표현은 장한종에 이르러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하겠다. 장한종의 아들 장준량은 가전 화풍을 전하는 화첩과 병풍들이 알려져 있다.
이어 조정규가 어해로 명성을 크게 얻었으니, 장한종·장준량 부자와 조정규 등이 조선 말기의 가장 대표적인 어해화가들이다. 조정규의 경우 이 분야 그림을 적지 않게 남기고 있는데 대부분 화훼 및 수지를 곁들여 수륙 양쪽을 한 화면에 나타냈고, 어족들의 묘사는 그 크기나 세부 표현이 해학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크게 과장된 점이 두드러진다. 조정규의 화풍은 10폭으로 된 대작 <어해도> 병풍을 남긴 손자인 조석진에 계승된다.

특징 및 의의

우리 어해도의 특징을 개략적으로 살피면 다음 같이 정리된다.
첫째, 가장 이른 것으로 고구려 고분벽화, 신라 토우에 이어 고려청자 및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등 도자 및 금속공예의 장식문양 등 조형미술에서 일찍부터 소재로 등장한다.
둘째, 이를 그린 화가는 대체로 18세기 전반까지는 문인들이었으나 그 이후 화원들에 의해 일정한 틀이 형성된다. 특히 조선 후기 이 분야로 이름을 남긴 화가들의 등장은 이 분야의 큰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어 민화 쪽에서도 즐겨 그려진다.
셋째, 19세기의 병풍에 있어 전체가 연결된 한 장면으로 그려지기보다는 폭마다 독립된 내용이 일반적이다. 이에 서울 역사박물관 소장 이한철의 유작은 드문 예라하겠다.
넷째, 어해도가 조선회화사에서 조선 후기를 거쳐 말기에 이르러 크게 부각된 듯 보인다. 물론 동아시아 그림 전체에서 차지하는 어해도의 비중 역시 큰 편은 아니며, 화본畵本에서도 찾기 힘들어 외부의 영향 유무와 무관하게 발전할 소지를 지닌다.
다섯째, 비록 19세기경엔 우리 것으로 지칭될 만한 사실적인 기법의 대작들이 출현되나, 이 시기의 문인화가들은 대부분 이 분야 그림에 관심이 적었고 작품 또한 찾기 힘들다. 따라서 18세기 중국의 고기패高其佩, 1672~1734나 이선李鱓, 1686~1762 등의 유작과 비교되는 활달한 필치를 지닌 문기文氣 짙은 그림은 찾아보기 힘들다.
끝으로 물고기 그림 중에서 문인적인 취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당唐 시인 장지화張志和의 시구詩句를 화폭에 옮긴, 복숭아 꽃잎이 떨어진 수면에 쏘가리를 그린 것과 장자莊子의 호복한상濠濮閒想 고사에 연원을 둔 군리도群鯉圖도 살필 수 있다.

참고문헌

조선시대 어해도의 형성과 그 특징(이원복, 계간미술44, 중앙일보사, 1987), 조선시대 후반기의 어해도의 상징(조에스더, 민화 어제와 오늘의 좌표, 한국민화학회, 2016).

어해도

어해도
한자명

魚蟹圖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이원복(李源福)

정의

민물이나 바다 모두를 포함에 이 안에 서식하는 어류 내지 수족水族 전체를 지칭하며, 그중 물고기와 게를 그린 그림.

개관

한·중·일 세 나라 각국의 사전에서 어개魚介·어하魚蝦·인개鱗介 등도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중국 송휘종徽宗의 회화 수장 목록인 『선화화보宣和畵譜』 20권 중 제9권은 ‘용어수족龍魚水族’으로 어해도 범주의 회화들이다. 이 안에 명기된 유어도游魚圖·희어도戲魚圖·군어도群魚圖·어해도魚蟹圖·어하도·해도·희조군어도戱藻群魚圖·군어백희릉도群魚白戱菱圖·모란유어도牡丹游魚圖·낙화유어도洛花游魚圖 등 작품명을 통해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사냥과 채집에 의존한 선사시대부터 중요 식량원에 드는 물고기는 동서양 구분 없이 선사시대 미술부터 살펴볼 수 있다. 조형예술의 한 소재로 물고기가 등장하게 된 것은 기원전으로 소급된다. 중국에서 감상용 그림으로서 일찍부터 그려졌음은 현존하는 작품뿐만 아니라 문헌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하나의 독립된 화과畵科로 성장과 발전은 다른 소재에 비해 크게 두드러지지 않은 듯 싶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는 비슷한 양상이다.
우리나라 고대 회화의 보고寶庫인 안악1호분, 덕흥리 고분, 강서대묘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한 <날개가 달린 물고기[飛魚]>는 중국 전국시대 저술인 『산해경山海經』에 산지와 효험으로 치질을 낫게 하거나, 천둥을 두려워하지 않게 한다는 등 기사가 보이며, <백제대향로>에도 등장한다. 1971년 7월 발굴된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 출토 유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왕비 두침에 그린 어룡魚龍, 동탁은잔銅托銀盞 내부 문양에 등장한다.
고려시대 동경과 고려청자,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그리고 목기 및 칠기와 자수刺繡 등 공예 전반의 표면장식 문양에서 두루 살필 수 있다. 전래 작품이 드문 조선 중기 이전은 이 분야 또한 유존 작품이 몹시 적다. 물론 문헌자료 등에 의해 어느 정도 보완은 가능하겠으나 그 양상은 크게 주시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현존작을 중심으로 살필 때 우리나라의 어해도는 대체로 18세기 이후로 큰 발전이 이루어진 것으로 사료된다.

내용

우리 옛 그림 중 이 분야의 소재를 살피면 붕어·잉어·미꾸라지·쏘가리[鱖魚]·송사리 등 민물고기나 물고기 외에 새우·게·가재·조개류·문어·오징어·홍어·전복·자라·거북·소라 등이 함께 그려지기도 했다. 어해도는 19세기 이후 민화民畵 범주에서 그려진 것이 다수 전래되고 있으며 이 분야 그림의 주류인 양 오해될 소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민화 이전 일찍이 도자기 문양을 비롯해 회화사에 선명한 족적을 남긴 화가들에 의해 이미 조선 초부터 어해도가 그려졌음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분청사기에는 합의 내부나 뚜껑, 편병扁甁 몸통의 원형 공간, 제법 볼륨 있는 항아리, 병 등에서 여러 기형의 물고기 무늬가 등장한다. 선으로 나타낸 경우 대체로 측면에 한 마리만이 아닌 두세 마리 물고기를 겹치거나 교차시켜 나타냈다. 보물 787호 <분청사기 철화 물고기무늬 항아리>와 <분청사기 철화 물고기무늬 병>에는 파도를 배경으로 물풀을 입에 물거나 수초를 곁들이는 것, 연지蓮池를 함께 나타내기도 했다. 철화문의 경우 도자 표면에 직접 물고기를 그렸기에 회화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특히 강한 필선의 뛰어난 기량이 돋보인다. 시대를 뛰어 넘는 일종의 추상미까지 간취되며, 참신한 현대감각으로 크게 주목을 끄는 수작들도 있다. 16세기 말을 거친 뒤 분청사기는 쇠퇴·소멸해 논외의 대상이 된다.
조선시대 초기인 15세기 청화백자는 현존하는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보물 788호인 <백자 청화 물고기무늬 항아리>는 기면에 빈틈없이 가득 문양을 채우고 있으며, 일견 명明 청화와 친연성이 강하다. 몸통 중심의 전후로 큰 능형화창菱形花窓이 있고, 그 안에 각기 큰 잉어와 잔 물고기들과 수초를 그려 중국의 <조어도藻魚圖> 계열과 통한다. 개인소장의 <백자 청화 잉어와 물풀무늬 접시>는 전문화가의 솜씨가 분명하며 한폭의 그림으로 손색이 없다. 19세기 정형화된 <백자 청화 잉어무늬 접시>와는 구별된다 하겠다.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쏘가리 그림 2점이 알려져 있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황쏘가리[紫鯉]>는 갈대가 꺾여 물속에 잠겼고 새우가 상단에 곁들여져 있다. 이 그림은 조선성리학을 완성한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별지에 쓴 제시가 있다. 어해도는 이미 조선시대 전기부터 한 가지만이 아닌 새우와 같은 여타의 것을 곁들였음이 확인되는 셈이다. 사임당의 막내아들 이우李瑀, 1542~1609가 남긴 <게>는 소재며 표현기법 등이 <황쏘가리>와 같은 화가의 그림인 양 친연성이 크다.
조선 중기 화단의 윤형尹泂, 1551~1613은 <잉어와 쏘가리[鯉鱖圖]> 등 소품 몇 점이 전해져 본격적으로 부각된 문인화가이다. 신사임당과 마찬가지로 대폭이 아닌 소품들이 주류이며, 물고기뿐만 아니라 게와 새우 등을 함께 나타낸 점, 동일한 물고기를 쌍으로 그릴 때 서로 다른 순간 동작을 잘 포착한 점, 수초를 곁들인 점들을 열거할 수 있다. 아울러 대각선 구도로 물고기를 포치시킨 점 등이 특징으로 제시될 수 있겠다. 또한 모두 담채를 사용한 점과, 사실적이며 섬세한 표현 등이 크게 눈에 뜨인다. 이들 몇을 제외하곤 조선 후기 화단(1700~1850년경)에 이르러서야 어엿한 대작을 만나게 된다.
<잉어가 뛰어 해를 맞이하다[魚躍迎日]>를 비롯해 민화에서도 붉은 태양과 더불어 수면에 반쯤 측면을 드러낸 채 뛰어 오르는 잉어가 많이 그려졌는데 정선의 그림에선 측면이 아닌 배를 드러낸 약동적인 모습이여서 간송미술관 소장 김인관金仁寬의 <잉어>와 공통점도 보인다. 그러나 이광사李匡師·이영익李令翊부자가 합작한 <잉어>와는 다른 필치로, 후자의 경우 비록 세밀한 표현이긴 하지만 전통적인 조어도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잉어는 길상적 의미로 빈번하게 그려졌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게와 새우 등도 독립된 소재로 그려졌다. 아울러 게는 독립된 소재로 발달해 심사정에 이어 최북崔北, 1712~1786은 이를 지두화指頭畫로 그렸으며, 김홍도金弘道는 <게가 갈대꽃을 탐하다[蟹貪蘆花]> 등 여러 점을 남기고 있으며, 말기엔 서화가 지창한池昌翰, 1851~1921처럼 이 한 소재로 대작 병풍을 그려 이름을 남기기도 한다.
창곡唱曲에 뛰어나 ‘강호가江湖歌’가 전하는 김성기金聖器는 낚시를 즐겼으니 그의 호인 조은釣隱, 어은漁隱 등이 이의 증거이다. 마치 묵란墨蘭을 치듯 그린 물풀이며 붕어의 표현이 간일하면서도 세련미가 보여 윤형과 연결됨직한 그림이다.
화원 김인관의 유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산수어해화훼초충도권山水魚蟹花卉草虫圖卷>은 어해 외에 정선의 영향이 짙은 산수도가 여러 점 포함된 긴 두루마리이다. 일련의 그림 내 제발에는 우리나라에서 어해도를 그린 화가가 오직 김인관 한 사람뿐임을 언급하고 있다. 강세황姜世晃의 평이 적힌 <물풀과 물고기[藻魚]>한 점은 수채화처럼 물색을 푸르게 칠한 점이 돋보인다. 이 그림은 화첩에 속했던 것을 뒤에 족자로 꾸몄으니 이를 중앙에 접혔던 자국으로 알 수 있다. 평의 내용은 “옛날에는 이것으로서 한 세대 이름을 얻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昔以此名一代 今人反不以爲貴].”라고 적혀 있다. 어해도는 18세기 접어들어 많이 그려졌고 화풍에서도 큰 변화를 보인다.
장한종의 어해도는 앞선 시대와는 우선 크기부터 차이가 나며 무엇보다 조개와 소라 및 게 등이 포함된 다양한 어종과 사실적인 묘사가 나타나게 된다. 장한종의 그림은 8폭으로 된 큰 병풍과 화첩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이 여럿 전래된다. 단원풍檀園風이 짙은 바위 및 수지법樹枝法은 화가의 기량을 잘 나타내고 있다.
물고기 그림은 <어해도> 8첩 병풍과 화첩 등 분야에 이 분야에 있어 본격적인 작품을 남긴 장한종張漢宗, 1768~1815과 조정규趙廷奎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대작이 등장해 장승업張承業, 1843~1897과 조석진趙錫晋, 1853~1920 등 조선 말기로 이어진다. 20세기 초까지 지속된다. 그중에는 병풍뿐 아니라 화첩으로도 빈번하게 그린 현존 명품들도 여럿 전한다.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흑산도로 유배가 타계 1년 전인 1815년 『자산어보玆山魚譜』를 간행한 것은 어해도가 활발하게 그려진 배경으로 시사점이 크다. 이 논저에는 155종에 이르는 수산물의 명칭 분포, 형태, 이용 등을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민화에서도 어해가 즐겨 그려진 것도 19세기 이후인데 이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정선鄭敾, 1676~1759의 <뛰는 잉어[躍鯉]>와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이 1767년 그린 <어약영일魚躍迎日>이 있다. 또한 장한종이 그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8폭의 <어해화첩>으로, 표지에 ‘어해화첩전魚蟹畵帖全’이라 큰 글자로 화면에 꽉 차게 쓴 묵서가 있다. 쏘가리 및 붕어와 미꾸라지 등 민물고기가 중심이 된 두폭은 각기 도화桃花와 버드나무를 곁들이고 있으며, 그외 6폭은 문어·자라·조개류, 소라·꽃게·조개와 홍합 등 비슷한 성격의 것들을 함께 그렸으며 산수화적 배경의 물가 표현 및 수초나 갈대 등이 곁들여진 독특한 구성을 보인다. 이 화첩에서 보이는 각종 어족은 그가 그린 8폭 <어해병풍>과도 꼭 닮아 화본畵本의 성격마저 읽게 된다. 이는 이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장한종의 진면목을 알려 준다. 장한종이 이 분야에 전념한 사실은 유재건劉在建이 지은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아들 장준량張駿良, 1802~1870과 함께 언급되어 있다. 장한종은 실제 여러 어족들을 사다가 집에서 이를 직접 보면서 그렸음이 기술되어 있다. 그의 그림을 대할 때 이 점이 선명해진다. 그보다 앞선 시대에서 실물을 보고 그린 화가도 없지 않았겠으나 사생寫生이란 표현은 장한종에 이르러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하겠다. 장한종의 아들 장준량은 가전 화풍을 전하는 화첩과 병풍들이 알려져 있다.
이어 조정규가 어해로 명성을 크게 얻었으니, 장한종·장준량 부자와 조정규 등이 조선 말기의 가장 대표적인 어해화가들이다. 조정규의 경우 이 분야 그림을 적지 않게 남기고 있는데 대부분 화훼 및 수지를 곁들여 수륙 양쪽을 한 화면에 나타냈고, 어족들의 묘사는 그 크기나 세부 표현이 해학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크게 과장된 점이 두드러진다. 조정규의 화풍은 10폭으로 된 대작 <어해도> 병풍을 남긴 손자인 조석진에 계승된다.

특징 및 의의

우리 어해도의 특징을 개략적으로 살피면 다음 같이 정리된다.
첫째, 가장 이른 것으로 고구려 고분벽화, 신라 토우에 이어 고려청자 및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등 도자 및 금속공예의 장식문양 등 조형미술에서 일찍부터 소재로 등장한다.
둘째, 이를 그린 화가는 대체로 18세기 전반까지는 문인들이었으나 그 이후 화원들에 의해 일정한 틀이 형성된다. 특히 조선 후기 이 분야로 이름을 남긴 화가들의 등장은 이 분야의 큰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어 민화 쪽에서도 즐겨 그려진다.
셋째, 19세기의 병풍에 있어 전체가 연결된 한 장면으로 그려지기보다는 폭마다 독립된 내용이 일반적이다. 이에 서울 역사박물관 소장 이한철의 유작은 드문 예라하겠다.
넷째, 어해도가 조선회화사에서 조선 후기를 거쳐 말기에 이르러 크게 부각된 듯 보인다. 물론 동아시아 그림 전체에서 차지하는 어해도의 비중 역시 큰 편은 아니며, 화본畵本에서도 찾기 힘들어 외부의 영향 유무와 무관하게 발전할 소지를 지닌다.
다섯째, 비록 19세기경엔 우리 것으로 지칭될 만한 사실적인 기법의 대작들이 출현되나, 이 시기의 문인화가들은 대부분 이 분야 그림에 관심이 적었고 작품 또한 찾기 힘들다. 따라서 18세기 중국의 고기패高其佩, 1672~1734나 이선李鱓, 1686~1762 등의 유작과 비교되는 활달한 필치를 지닌 문기文氣 짙은 그림은 찾아보기 힘들다.
끝으로 물고기 그림 중에서 문인적인 취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당唐 시인 장지화張志和의 시구詩句를 화폭에 옮긴, 복숭아 꽃잎이 떨어진 수면에 쏘가리를 그린 것과 장자莊子의 호복한상濠濮閒想 고사에 연원을 둔 군리도群鯉圖도 살필 수 있다.

참고문헌

조선시대 어해도의 형성과 그 특징(이원복, 계간미술44, 중앙일보사, 1987), 조선시대 후반기의 어해도의 상징(조에스더, 민화 어제와 오늘의 좌표, 한국민화학회,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