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장생도(十長生圖)

한자명

十長生圖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박본수(朴本洙)

정의

오래도록 지속되거나 생명이 유지된다고 믿어지는 열 가지 정도의 사물을 소재로 하여 장수의 뜻을 담아 그린 그림.

역사

십장생도十長生圖는 도교와 신선사상神仙思想을 배경으로 하여 불로장생不老長生에 대한 꿈과 희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길상吉祥 장식화裝飾畵이다. 십장생 도상圖像은 회화 이외에도 자수·목칠·가구·도자·금속공예의 도안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주변 사물의 의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주제이다.
십장생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말 이색李穡, 1328~1396이 지은 『세화십장생歲畵十長生』이다. 이색은 해, 구름, 물, 돌, 소나무, 대나무, 영지, 거북, 학, 사슴 등 10가지 십장생의 구성물 각각에 대해 읊었는데, 그서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리 집에는 세화 십장생이 있는데 10월인데도 아직 새 그림 같다. 병중에 원하는 것은 오래 사는 것보다 더 할 것이 없으므로, 죽 내리 서술하여 예찬하는 바이다[吾家有歲畵十長生 今玆十月尙如新 病中所願無過長生 故歷敍以贊云].”
다음으로 오래된 기록은 조선 전기 성현成俔, 1439~1504이 1502년 임금의 하사품으로 받은 세화 십장생에 대하여 쓴 『수사세화십장생受賜歲畵十長生』이다. 이 시에서 성현은 해, 달, 산, 내, 대나무, 소나무, 거북, 학, 사슴,영지 등 10가지 십장생의 구성물을 노래하였다. “해와 달은 항상 임하여 비추고, 산과 내는 변하거나 움직이지 않네. 대나무와 소나무는 눈이 와도 끄떡없고, 거북이와 학은 백세를 누리네. 흰 사슴은 모습이 실로 깨끗하고, 붉은 영지는 잎사귀 또한 기이하네. 장생에 깊은 뜻 있으니, 신이 또 사사로이 은혜를 입었네[日月常臨照, 山川不變移. 松竹凌雪霰, 龜鶴享期頤. 白鹿形何潔, 丹芝葉更奇. 長生深有意, 臣亦荷恩私].”
이색과 성현의 시에 언급된 해, 달, 구름, 산, 물(내), 돌, 소나무, 대나무, 영지, 거북, 학, 사슴 등 모두 12가지의 자연물과 동·식물은 항상성恒常性·불변성不變性을 띠거나 예로부터 장수한다고 믿어져 온 사물들이다. 이밖에도 현존하는 십장생 관련 유물과 작품 중에는 위의 12가지 장생물 외에 복숭아[天桃]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으므로 모두 13가지가 십장생도의 소재로 사용되었다고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조사·연구된 바로는 중국의 문헌 기록에 ‘십장생’이라는 단어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십장생은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고유한 상징체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최근 중국 학자도 십장생은 조선족 특유의 길상 표현임을 밝혔으며, 1810년 완성된 일본의 『명수화보名數畵譜』에 그려진 <십장생>은 그 출처가 『상서기문象胥奇聞』임을 언급하였다. 『상서기문』은 조선의 사정에 정통했던 대마도 통사通事 오다 이쿠고로小田幾五郞, 1754~1831가 1794년에 쓴 책이다. 18세기 후반 일본인의 눈으로 본 조선의 문화와 사회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바로 이 책의 잡문雜聞 항목에 ‘십장생이란 해, 달, 산, 물, 학, 거북, 소나무, 대나무, 사슴, 영지’라고 설명되어 있는 것을 보면 십장생은 당시 일본인에게 생소한 이름이었으며 일본 문화에서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2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민속을 연구한 일본의 학자인 아키바 다카시秋葉隆, 1888~1954가 “이 민속은 조선사회에 존재하는 경로민속敬老民俗으로 볼 수 있으며, 중국에는 ‘십장생’이라는 말이 없으며, 십장생에 관한 그림도 없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지만 중국 전통미술에 나타나는 길상의 화제와 도안 중에도 장수와 관련된 표현들이 많이 있고, 우리나라의 십장생 구성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몇 개의 장생물을 조합하여 장수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중국의 장수 길상 표현 중에도 우리나라 십장생과 연관성이 있는 구성이 있음을 볼 때, 십장생도의 도상적 연원이 중국 길상 표현과 관념적 공유에서 기인했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십장생의 소재 각각이 지닌 상징성은 대체로 중국에서 기원한 것이지만, 이를 십장생이라는 제목으로 조합하여 회화의 주제로 사용하게 된 것은 이색의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일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내용

십장생도는 보통 화려한 청록산수화풍靑綠山水畵風의 병풍으로 제작되었다. 청록산수는 우리나라에 산수화가 정착되면서 안주하고 싶은 은거지 또는 이상화된 낙원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십장생도는 인간 세속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장생불사의 장소로서 심산유곡深山幽谷을 배경으로 신선세계의 이상향을 나타낸 것이다. 8첩이나 10첩 병풍을 화면으로 삼아 험준하면서도 환상적인 산자락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아래쪽으로는 소나무, 대나무, 천도복숭아가 줄지어 펼쳐지며 그 사이로는 냇물과 사슴, 거북, 영지가 곳곳에 배치된다. 화면 위로는 해와 달이 떠 있고 학이 무리지어 날고 있다. 그야말로 불로장생의 공간이자 신선세계의 풍경 같다.
십장생도가 표상하는 ‘낙원樂園’ 곧 ‘선계仙界’의 이미지는 구체적으로 삼신산三神山과 관련이 있다. 삼신산은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라고 부르는 도교의 낙원이다. 『사기史記』의 「봉선서封禪書」 에 따르면 “이 삼신산이라는 곳은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발해渤海 한가운데에 있는데, 속세에서 그리 멀지는 않다. … 여러 신선들과 불사약이 모두 거기에 있고, 모든 사물과 짐승들이 다희며, 황금과 은으로 궁궐을 지었다고 한다. 이르기 전에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구름과 같은데, 막상 도착해보면 삼신산은 도리어 물 아래에 있다[此三神山者, 其傳在渤海中, 去人不遠, … 諸僊人及不死藥皆在焉, 其物禽獸皆白, 而黃金銀爲宮闕.未至, 望至如雲, 及到三神山反居水下…].”고 전한다.
비교적 그 제작 시기를 올려 잡을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십장생도>를 보면, 원래는 10첩의 병풍화로 2첩이 결실된 것으로 보이는데, 화면 좌반부의 물결이 하늘에 닿을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바다 가운데에 위치한 공간이자, 물보다도 아래에 있다’는 삼신산의 신화적 설정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십장생도>는 출렁이는 물결의 표현이 강조되었고, 학의 종류가 백학으로만 이루어진 점, 백록의 존재 등 문헌의 기록과 같이 삼신산의 원형적인 모습을 그린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국립고궁박물관이나 삼성미술관 리움, 그리고 국내 대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몇몇 <십장생도>를 보면, 앞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십장생도>에서 화면의 좌반부를 크게 차지했던 수파묘水波描가 사라지거나 수면의 면적이 현저히 줄어든다. 바다의 출렁이는 물결 대신 계류와 내가 나타나는 것은 ‘해도海島’로 묘사되었던 삼신산의 개념이 점차 ‘심산유곡’으로 변화해 가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물줄기의 상류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멀리 원경의 산까지 이어질 듯 원근감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공간감의 표현은 조선 후기에 유입된 서양화풍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십장생도는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계속 세화로 그려졌을 뿐만 아니라 궁중의 장식화로 선호된 주제였다. 왕실의 무병장수無病長壽와 만수무강萬壽無疆을 기원하기에 십장생도는 매우 적절한 상징물이었음에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십장생도는 임금이나 왕세자의 국혼國婚, 대왕대비나 왕비의 회갑연回甲宴 등 궁중의 주요한 행사에 장엄과 치장을 위해 사용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의궤儀軌의 기록과 궁중행사도宮中行事圖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진채로 그려진 장엄한 청록산수화인 십장생도는 비록 이를 그린 화가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조선시대 도화서의 수준 높은 화원이 그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십장생 병풍을 많이 제작하였다. 왕과 왕비의 공간인 내전을 장식한 실내 장식용과 왕실의 혼례나 환갑 같은 행사를 위한 별도의 병풍을 만들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십장생 병풍은 대체로 19세기 이후의 작품이고 시대가 오래된 것이 없다. 실제로 사용하다가 낡으면 새로 제작하여 계속 교체했기 때문에 조선 왕조 말기에 남아 있던 것만이 전한다. 본래 궁중의 십장생 병풍은 민간에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일제강점기에 와서 ‘이왕가유물’로 전락하고 관리가 허술한 틈에 외부로 흘러나오게 되었다.
현재 미국 오리건주립대학교박물관에 있는 <십장생도>는 1924년 서울에 있던 테일러무역상회를 통해 해외로 판매·수출된 경우이다. 이 병풍은 특이하게도 총 10첩 중에서 마지막 두 첩에 14명의 좌목座目을 기록하고 있다. 이 인물들은 1879년(고종16), 여섯 살의 왕세자(나중에 순종이 됨)가 천연두에 걸렸을 때 치료를 맡았던 의약청의 관리임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왕세자의 병이 완치되자 이를 축하하고 동시에 왕세자의 장수를 기원하여 그린 기념화였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궁중에서 선호되었던 십장생도가 민간에 확산되었음을 알게 해 주는 기록이 있다. 1844년(헌종10) 한산거사漢山居士가 지은 풍물가사인 <한양가漢陽歌>에는 당시 민간의 미술품에 대한 수요를 반영하듯 상품으로 유통된 그림의 명칭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백자도·요지연도와 함께 장수와 다복을 상징하는 곽분양행락도·해학반도·십장생도 등이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궁중회화의 대중적 확산이 유통을 통해 저 변화되었음을 알려 주는 단서이다.
궁중의 도처에 놓여 있던 장식화풍의 그림이 민간의 시전市廛에서 유통된 점은 궁중 회화의 전개에서 새로운 변화상을 예고한다. 묘사가 섬세하고 장식성이 뛰어난 궁중화풍의 십장생도는 상류층이나 신흥 부유층이 수요자가 된 반면에, 민간 화가들이 그린 소박한 화풍의 <십장생도>는 서민층에게서 인기를 끌었다.
민화풍 <십장생도>의 특징은 구도와 채색, 장황 등에서 조촐해진다. 보통 연폭 형식으로 그려지는 궁중화풍 <십장생도>와 달리 각 폭 내지 2~3폭에 걸쳐 장생물을 그리거나 아예 단일한 화폭에 십장생의 소재를 축약하여 그리고, 진채가 아닌 수묵담채화로도 그려지며, 궁중 회화가 추구했던 엄격성과 정형성을 벗어난 자유로운 표현, 과장된 형태나 도식화된 표현도 등장한다. 늙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소망은 시대와 계급을 뛰어넘는 것이었으므로 십장생 그림은 무수히 제작되어 상류층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의 수요를 충족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십장생도(박본수, 미술사논단15, 한국미술연구소, 2002), 궁중 장식화의 세계(박정혜, 조선 궁궐의 그림, 돌베개, 2012), 오리건대학교박물관 소장 십장생병풍 연구(박본수, 고궁문화2, 국립고궁박물관, 2009), 조선후기 십장생도 연구(박본수,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조선후기 십장생도 연구-궁중 십장생병풍을 중심으로(박본수, 병풍에 그린 송학이 날아올 때까지-십장생전, 궁중유물전시관, 2004), 韓國十長生硏究-以東方追求長壽的文化爲中心-(金榮振, 中國 中央民族大學 碩士學位論文, 1996).

십장생도

십장생도
한자명

十長生圖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박본수(朴本洙)

정의

오래도록 지속되거나 생명이 유지된다고 믿어지는 열 가지 정도의 사물을 소재로 하여 장수의 뜻을 담아 그린 그림.

역사

십장생도十長生圖는 도교와 신선사상神仙思想을 배경으로 하여 불로장생不老長生에 대한 꿈과 희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길상吉祥 장식화裝飾畵이다. 십장생 도상圖像은 회화 이외에도 자수·목칠·가구·도자·금속공예의 도안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주변 사물의 의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주제이다.
십장생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말 이색李穡, 1328~1396이 지은 『세화십장생歲畵十長生』이다. 이색은 해, 구름, 물, 돌, 소나무, 대나무, 영지, 거북, 학, 사슴 등 10가지 십장생의 구성물 각각에 대해 읊었는데, 그서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리 집에는 세화 십장생이 있는데 10월인데도 아직 새 그림 같다. 병중에 원하는 것은 오래 사는 것보다 더 할 것이 없으므로, 죽 내리 서술하여 예찬하는 바이다[吾家有歲畵十長生 今玆十月尙如新 病中所願無過長生 故歷敍以贊云].”
다음으로 오래된 기록은 조선 전기 성현成俔, 1439~1504이 1502년 임금의 하사품으로 받은 세화 십장생에 대하여 쓴 『수사세화십장생受賜歲畵十長生』이다. 이 시에서 성현은 해, 달, 산, 내, 대나무, 소나무, 거북, 학, 사슴,영지 등 10가지 십장생의 구성물을 노래하였다. “해와 달은 항상 임하여 비추고, 산과 내는 변하거나 움직이지 않네. 대나무와 소나무는 눈이 와도 끄떡없고, 거북이와 학은 백세를 누리네. 흰 사슴은 모습이 실로 깨끗하고, 붉은 영지는 잎사귀 또한 기이하네. 장생에 깊은 뜻 있으니, 신이 또 사사로이 은혜를 입었네[日月常臨照, 山川不變移. 松竹凌雪霰, 龜鶴享期頤. 白鹿形何潔, 丹芝葉更奇. 長生深有意, 臣亦荷恩私].”
이색과 성현의 시에 언급된 해, 달, 구름, 산, 물(내), 돌, 소나무, 대나무, 영지, 거북, 학, 사슴 등 모두 12가지의 자연물과 동·식물은 항상성恒常性·불변성不變性을 띠거나 예로부터 장수한다고 믿어져 온 사물들이다. 이밖에도 현존하는 십장생 관련 유물과 작품 중에는 위의 12가지 장생물 외에 복숭아[天桃]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으므로 모두 13가지가 십장생도의 소재로 사용되었다고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조사·연구된 바로는 중국의 문헌 기록에 ‘십장생’이라는 단어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십장생은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고유한 상징체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최근 중국 학자도 십장생은 조선족 특유의 길상 표현임을 밝혔으며, 1810년 완성된 일본의 『명수화보名數畵譜』에 그려진 <십장생>은 그 출처가 『상서기문象胥奇聞』임을 언급하였다. 『상서기문』은 조선의 사정에 정통했던 대마도 통사通事 오다 이쿠고로小田幾五郞, 1754~1831가 1794년에 쓴 책이다. 18세기 후반 일본인의 눈으로 본 조선의 문화와 사회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바로 이 책의 잡문雜聞 항목에 ‘십장생이란 해, 달, 산, 물, 학, 거북, 소나무, 대나무, 사슴, 영지’라고 설명되어 있는 것을 보면 십장생은 당시 일본인에게 생소한 이름이었으며 일본 문화에서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2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민속을 연구한 일본의 학자인 아키바 다카시秋葉隆, 1888~1954가 “이 민속은 조선사회에 존재하는 경로민속敬老民俗으로 볼 수 있으며, 중국에는 ‘십장생’이라는 말이 없으며, 십장생에 관한 그림도 없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지만 중국 전통미술에 나타나는 길상의 화제와 도안 중에도 장수와 관련된 표현들이 많이 있고, 우리나라의 십장생 구성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몇 개의 장생물을 조합하여 장수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중국의 장수 길상 표현 중에도 우리나라 십장생과 연관성이 있는 구성이 있음을 볼 때, 십장생도의 도상적 연원이 중국 길상 표현과 관념적 공유에서 기인했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십장생의 소재 각각이 지닌 상징성은 대체로 중국에서 기원한 것이지만, 이를 십장생이라는 제목으로 조합하여 회화의 주제로 사용하게 된 것은 이색의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일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내용

십장생도는 보통 화려한 청록산수화풍靑綠山水畵風의 병풍으로 제작되었다. 청록산수는 우리나라에 산수화가 정착되면서 안주하고 싶은 은거지 또는 이상화된 낙원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십장생도는 인간 세속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장생불사의 장소로서 심산유곡深山幽谷을 배경으로 신선세계의 이상향을 나타낸 것이다. 8첩이나 10첩 병풍을 화면으로 삼아 험준하면서도 환상적인 산자락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아래쪽으로는 소나무, 대나무, 천도복숭아가 줄지어 펼쳐지며 그 사이로는 냇물과 사슴, 거북, 영지가 곳곳에 배치된다. 화면 위로는 해와 달이 떠 있고 학이 무리지어 날고 있다. 그야말로 불로장생의 공간이자 신선세계의 풍경 같다.
십장생도가 표상하는 ‘낙원樂園’ 곧 ‘선계仙界’의 이미지는 구체적으로 삼신산三神山과 관련이 있다. 삼신산은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라고 부르는 도교의 낙원이다. 『사기史記』의 「봉선서封禪書」 에 따르면 “이 삼신산이라는 곳은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발해渤海 한가운데에 있는데, 속세에서 그리 멀지는 않다. … 여러 신선들과 불사약이 모두 거기에 있고, 모든 사물과 짐승들이 다희며, 황금과 은으로 궁궐을 지었다고 한다. 이르기 전에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구름과 같은데, 막상 도착해보면 삼신산은 도리어 물 아래에 있다[此三神山者, 其傳在渤海中, 去人不遠, … 諸僊人及不死藥皆在焉, 其物禽獸皆白, 而黃金銀爲宮闕.未至, 望至如雲, 及到三神山反居水下…].”고 전한다.
비교적 그 제작 시기를 올려 잡을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십장생도>를 보면, 원래는 10첩의 병풍화로 2첩이 결실된 것으로 보이는데, 화면 좌반부의 물결이 하늘에 닿을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바다 가운데에 위치한 공간이자, 물보다도 아래에 있다’는 삼신산의 신화적 설정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십장생도>는 출렁이는 물결의 표현이 강조되었고, 학의 종류가 백학으로만 이루어진 점, 백록의 존재 등 문헌의 기록과 같이 삼신산의 원형적인 모습을 그린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국립고궁박물관이나 삼성미술관 리움, 그리고 국내 대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몇몇 <십장생도>를 보면, 앞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십장생도>에서 화면의 좌반부를 크게 차지했던 수파묘水波描가 사라지거나 수면의 면적이 현저히 줄어든다. 바다의 출렁이는 물결 대신 계류와 내가 나타나는 것은 ‘해도海島’로 묘사되었던 삼신산의 개념이 점차 ‘심산유곡’으로 변화해 가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물줄기의 상류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멀리 원경의 산까지 이어질 듯 원근감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공간감의 표현은 조선 후기에 유입된 서양화풍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십장생도는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계속 세화로 그려졌을 뿐만 아니라 궁중의 장식화로 선호된 주제였다. 왕실의 무병장수無病長壽와 만수무강萬壽無疆을 기원하기에 십장생도는 매우 적절한 상징물이었음에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십장생도는 임금이나 왕세자의 국혼國婚, 대왕대비나 왕비의 회갑연回甲宴 등 궁중의 주요한 행사에 장엄과 치장을 위해 사용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의궤儀軌의 기록과 궁중행사도宮中行事圖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진채로 그려진 장엄한 청록산수화인 십장생도는 비록 이를 그린 화가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조선시대 도화서의 수준 높은 화원이 그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십장생 병풍을 많이 제작하였다. 왕과 왕비의 공간인 내전을 장식한 실내 장식용과 왕실의 혼례나 환갑 같은 행사를 위한 별도의 병풍을 만들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십장생 병풍은 대체로 19세기 이후의 작품이고 시대가 오래된 것이 없다. 실제로 사용하다가 낡으면 새로 제작하여 계속 교체했기 때문에 조선 왕조 말기에 남아 있던 것만이 전한다. 본래 궁중의 십장생 병풍은 민간에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일제강점기에 와서 ‘이왕가유물’로 전락하고 관리가 허술한 틈에 외부로 흘러나오게 되었다.
현재 미국 오리건주립대학교박물관에 있는 <십장생도>는 1924년 서울에 있던 테일러무역상회를 통해 해외로 판매·수출된 경우이다. 이 병풍은 특이하게도 총 10첩 중에서 마지막 두 첩에 14명의 좌목座目을 기록하고 있다. 이 인물들은 1879년(고종16), 여섯 살의 왕세자(나중에 순종이 됨)가 천연두에 걸렸을 때 치료를 맡았던 의약청의 관리임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왕세자의 병이 완치되자 이를 축하하고 동시에 왕세자의 장수를 기원하여 그린 기념화였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궁중에서 선호되었던 십장생도가 민간에 확산되었음을 알게 해 주는 기록이 있다. 1844년(헌종10) 한산거사漢山居士가 지은 풍물가사인 <한양가漢陽歌>에는 당시 민간의 미술품에 대한 수요를 반영하듯 상품으로 유통된 그림의 명칭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백자도·요지연도와 함께 장수와 다복을 상징하는 곽분양행락도·해학반도·십장생도 등이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궁중회화의 대중적 확산이 유통을 통해 저 변화되었음을 알려 주는 단서이다.
궁중의 도처에 놓여 있던 장식화풍의 그림이 민간의 시전市廛에서 유통된 점은 궁중 회화의 전개에서 새로운 변화상을 예고한다. 묘사가 섬세하고 장식성이 뛰어난 궁중화풍의 십장생도는 상류층이나 신흥 부유층이 수요자가 된 반면에, 민간 화가들이 그린 소박한 화풍의 <십장생도>는 서민층에게서 인기를 끌었다.
민화풍 <십장생도>의 특징은 구도와 채색, 장황 등에서 조촐해진다. 보통 연폭 형식으로 그려지는 궁중화풍 <십장생도>와 달리 각 폭 내지 2~3폭에 걸쳐 장생물을 그리거나 아예 단일한 화폭에 십장생의 소재를 축약하여 그리고, 진채가 아닌 수묵담채화로도 그려지며, 궁중 회화가 추구했던 엄격성과 정형성을 벗어난 자유로운 표현, 과장된 형태나 도식화된 표현도 등장한다. 늙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소망은 시대와 계급을 뛰어넘는 것이었으므로 십장생 그림은 무수히 제작되어 상류층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의 수요를 충족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십장생도(박본수, 미술사논단15, 한국미술연구소, 2002), 궁중 장식화의 세계(박정혜, 조선 궁궐의 그림, 돌베개, 2012), 오리건대학교박물관 소장 십장생병풍 연구(박본수, 고궁문화2, 국립고궁박물관, 2009), 조선후기 십장생도 연구(박본수,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조선후기 십장생도 연구-궁중 십장생병풍을 중심으로(박본수, 병풍에 그린 송학이 날아올 때까지-십장생전, 궁중유물전시관, 2004), 韓國十長生硏究-以東方追求長壽的文化爲中心-(金榮振, 中國 中央民族大學 碩士學位論文,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