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도(神仙圖)

한자명

神仙圖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윤열수(尹列秀)

정의

도교에서 말하는, 늙어도 죽지 않고 오래 살며 마음대로 변화를 일으키는 신통한 능력을 지닌 신선들의 모습과 그 설화를 그린 그림.

개관

신선도는 유교·불교·도교의 영향을 모두 받았으나 특히 도교의 신선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며 더욱 발달하였다. 도교는 불사약 복용이나 심신수련, 온갖 신에 대한 기도 등을 통해 불로장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부와 명예 같은 현세적 이익을 추구하는 중국의 토착 종교이다. 도교가 제대로 교리와 조직을 갖춘 것은 4세기 북위시대이며, 이후 신선설과 민간신앙을 핵심으로 음양, 오행, 주역 등의 설과 의학, 도가 철학 등을 보태고, 불교와 유교의 사상까지 받아들여 발전하였다.
신선은 도교에서 늙어도 죽지 않고 오래 살면서 신통한 능력을 지닌 인물로, 초월적인 신이 아니라 역사 속 실존 인물이 수련을 통해서 장생불사라는 신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이다. 이런 신선들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은 단순히 시각적인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림 속에 신선 또는 신선의 힘이 담겨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특히 환갑 같은 잔치 때 장수를 기원하는 선물용으로 많이 그려졌다.
중국에서 신선도는 남북조시대에 처음 등장하였다. 당대唐代까지는 인물화로 분류되다가 북송 때부터 도석화의 한 종류로 취급되었다. 남송대에 이르러 감필풍減筆風의 선종禪宗인물화의 화법이 더해지면서 발전하였다. 이어서 원대의 화가 안휘顔輝 때에 화법상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명대明代에는 오위吳偉·장로張路 등 절파계浙派系 화가들과 구영仇英과 같은 화가들이 많이 그렸다.
우리나라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신선들이 가끔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독립된 화제로 등장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이며, 조선시대 중기인 17세기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신선도 제작이 성행하였다. 조선시대 중기에는 김명국金明國을 비롯하여, 절파풍을 구사하였던 화가들이 신선도를 주로 그렸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 후기로 이어져 심사정沈師正과 윤덕희尹德熙 등 선비 화가들과 김홍도金弘道 등 직업 화가들을 통해 크게 발전되었다. 특히, 신선도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던 김홍도의 화풍은 김득신金得臣·이수민李壽民·이재관李在寬·장승업張承業에게 이어져 조선시대 말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글씨와 그림 감상을 유독 좋아했던 숙종은 역대 임금의 시문집인 『열성어제列聖御製』에 160편 가량의 서화와 관련된 시문을 남겼다. 이를 소재별로 분류하면 중국고사도 다음으로 신선도가 많다. 숙종이 제화시를 남긴 신선도는 <열선도>, <팔선도>, <요지연도>, <여동빈도> 등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 이렇듯 신선도 감상을 즐겼던 숙종의 취미는 아들 영조를 거쳐 영조의 손자 정조에게까지 계승되었고, 18세기 왕실에서 신선도가 활발하게 생산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김홍도 역시 화원화가로 이름을 떨쳤던 시기에 어명을 받아 신선도를 그렸다. 어느 날 정조가 하얗게 칠한 큰 벽에 바다를 지나 서왕모의 잔치에 가는 신선들의 모습을 그리라고 명하였고, 김홍도는 진한 먹물 몇 되를 내시에게 준비시켜 모자를 벗고 옷깃을 잡아맨 채 비바람이 몰아치듯 붓을 휘둘렀다. 얼마 뒤, 집을 무너뜨릴 듯 일렁이는 파도와, 외로이 걸어가는 신선들이 구름을 넘는 광경을 완성했다. 조희룡趙熙龍, 1797~1859의 『호산외사壺山外史』에 기록된 이 일화는 김홍도에 대한 정조의 신임과 탁월한 그림 솜씨를 알려 준다.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신선은 목숨이 정해진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영생의 신선을 닮고 싶은 염원은 조선 왕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궁중에서도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인물을 통해 액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조선왕실에서는 신선도가 많이 제작되었다. 도화서 화원들은 신년을 송축하는 세화歲畵에 진채로 선인을 그려 넣어 왕실이나 재상에게 진상했다. 길상화의 기능을 수행한 신선도는 궁중의 중요한 행사를 위한 기념화로도 제작되었다. 왕실의 생일, 혼인 등 경사스러운 행사 장소를 장식할 상서로운 신선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신출귀몰한 신선의 형상은 그저 감상하기에도 즐거운 대상이었다.

내용

불로장생의 신선을 동경하고, 지상 어딘가에 있을 낙원을 소망하며 그려낸 신선도는 대개 배경을 생략하거나 간략하게 그려 인물을 부각한다. 신선으로 보이는 인물이 동물이나 동자와 함께 있는 구도가 일반적이며, 동자 두 명이 서로 짝을 이루어 등장하기도 한다.
신선과 함께 그려지는 동물로는 사슴·해태·사자·용·학·거북·봉황 등이 있다. 도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소도 자주 등장한다. 동물 대부분은 장수와 복록福祿을 의미하는 동물이다. 신선은 이러한 동물의 등에 타거나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신선이 손에 쥐고 있거나 동자들이 받들고 있는 것은 대개 불로초·천도복숭아·불수감·석류 등으로 신선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거나 불로장생한다는 약초들이다. 피리나 생황과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신선도는 환갑이나 잔치 때 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축원의 의미를 담아 선물했던 주제의 그림이다. 그래서 특히 정성들여 제작한 작품들이 많다. 그림뿐만 아니라 자수 작품도 상당수 남아있다. 수를 놓을 때 쓰이는 도안을 모아놓은 책인 『수보繡譜』를보면 군선축수도·군선경수도·천선공수도·팔선축수도·팔선공수도 등 옛날 유행했던 축수도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도교에서 등장하는 신선들은 500여 명이 넘으며, 노자老子·황초평黃初平·하마선인蝦蟆仙人·동방삭東方朔·장지화張志和 등 남성 신선이지만, 간혹 마고선녀麻姑仙女·서왕모西王母 등 온화하면서도 근엄한 미소를 띤 여성 신선도 찾아볼 수 있다.
신선도에서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신선은 종리권鍾離權·여동빈呂洞賓·장과로張果老·한상자韓湘子·이철괴李鐵拐·조국구曹國舅·남채화藍采和·하선고何仙姑까지 여덟 명이다. 민화에서는 이들을 각각 따로 그리기도 하고, 여럿이 함께 술이나 차를 마시거나 바둑을 두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한다. 이들은 신선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상징하는 물건을 지닌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종리권은 팔대선인의 우두머리로 머리 양쪽에 상투를 틀고 배를 드러낸 채 지물은 파초선芭蕉扇을 들고있는 모습, 장과로는 흰 나귀를 거꾸로 타거나 어고간자漁鼓簡子(대나무로 만든 악기)를 든 노인의 모습, 여동빈은 화양건華陽巾(도인들이 쓰는 모자)이라는 모자를 쓰고 모든 번뇌를 끊고 악의 세계를 제어한다는 검을 찬 남성의 모습, 조국구는 관복 차림에 죽은 사람을 살리는 딱따기를 든 모습으로 연극의 수호신으로 불린다. 이철괴는 철괴를 들고 장춘長春이라는 약이 담긴 호리병을 가지고 있는 마법의 신으로 그려진다. 한상자는 피리나 어고간자를 들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 장지화는 물 위에 앉아 있는 술 취한 선비의 모습, 남채화는 누더기를 입고 꽃을 든 청년, 하선고는 연꽃 줄기나 국자를 든 젊은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들 신선은 대개 단독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여덟 명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여덟 명의 신선을 그린 그림을 팔선도八仙圖라고 하며, ‘팔八’이라는 숫자는 문학작품에서 여러 사람을 지칭할 경우 ‘등등’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팔선이란 곧 많은 신선 또는 모든 신선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가난·부귀·귀족·평민·늙음·젊음·남성·여성 등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신선도 중에는 동자들만 등장하는 신선도도 있다. 이 그림을 신동도神童圖라고 한다. 여기에서 동자는 순진무구하고 티 없는 순박함 때문에 선善으로 상징되며, 학을 타고 내려오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불로초나 복숭아를 가지고 있는 모습, 차를 달이는 모습 등으로 그려진다. 신동도 중에서도 선동헌수도仙童獻壽圖는 여러 선동仙童들이 수복을 상징하는 사물을 받들어 신선들에게 바치는 모습을 그린 신선도 계통의 민화다. 분재한 나무를 수壽, 복福, 강康, 녕寧, 부귀富貴, 다남多男의 여덟 개의 글자 모양으로 만들어 표현한 예도 있다. 선동들이 불로초나 천도복숭아를 한 아름 들고 가는 모습으로도 그려진다. 이 특이한 그림은 신선도가 가지고 있는 장수의 의미뿐만 아니라 민중들이 원하는 각종 기원을 거리낌 없이 담은 그림이다. 자형분재의 특이한 화법은 민화 신선도에서만 볼 수 있다.
단독으로 그려지는 신선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신선도로 하마선인도蝦磨仙人圖와 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를 들 수 있다. 하마선인도의 ‘하마’란 두꺼비를 뜻하는 한자어이며, ‘하마선인’은 두꺼비를 가진 신선이라는 뜻이다. 『신선전神仙傳』에 따르면 유해劉海는 송나라 초기에 지금의 북경에서 살았던 실존 인물로, 전국 각지를 유랑하다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이 신선은 세 발 달린 두꺼비를 가지고 있었는데, 두꺼비는 신선을 세상 어디든지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꺼비는 가끔 우물 속으로 도망치곤 해 신선은 두꺼비를 돈이 달린 끈으로 끌어올리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하마선인도는 세 발 달린 두꺼비를 데리고 있는 신선의 모습, 또는 동전으로 세 발 달린 두꺼비를 낚아 올리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또한 세 발 두꺼비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희귀하므로 큰 행운, 큰 재물로 기쁨을 가져올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장수와 부귀를 동시에 기원하기 위해 유해가 세 발 달린 금두꺼비와 노는 장면을 그린 그림을 집 안에 걸어두는 풍습이 생겼다.
수성노인도는 수성도壽星圖, 수노인도壽老人圖 또는 남극노인도南極老人圖라고도 한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인 남극성南極星을 인격화하여 표현한 그림이다. 수성노인은 작은 키에 긴 수염과 굽은 허리, 정수리가 불룩 솟아오른 벗겨진 머리가 몸의 길이와 거의 같을 정도로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발목까지 덮는 도의道衣 차림에 사슴을 동반하거나 두루마리, 지팡이 등을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 인간의 수명을 맡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수성노인은 천상에서 구름이나 사슴을 타고 다니는데, 먹으면 천 년을 살 수 있다는 커다란 천도복숭아나 불로초를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산신産神으로도 통하는 수성노인도는 신격화되어 민화나 도교에서 함께 사용되고 있다. 민화에서 수성노인도는 다른 신선들과 함께 그려지지 않고 단독으로 그려지거나 동자와 함께 그려지지만, 불화나 문인화에 그려지는 경우에는 다른 신선들이나 불제자들과 함께 그려지기도 한다. 수성노인도는 지금도 회갑이나 칠순, 팔순의 선물용으로 많이 그려지고 있어 무병장수에 대한 애착을 읽을 수 있는 그림이다.

특징 및 의의

신선도는 모든 계층이 가지고 있는, 이상향에 살고 있는 신선들을 통해 인간이 염원하는 불로장생과 부귀에 대한 소망을 신선이라는 신앙적인 존재를 통해 나타낸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17, 18세기 조선왕조 시대 신선도 연구(박은순,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4), 한국의 미-인물화(맹인재 감수, 중앙일보사, 1985), 한국도석인물화에 대한 고찰(문명대, 간송문화18, 한국민족미술연구소, 1980),The Iconography of the Popular Gods of Happiness Emolument and Longevity(Mary, H. F., Artibus Asiae vol.44, 1983), 元代道釋人物畵の諸問題(戶田禎佑, 中國文化叢書7, 1971).

신선도

신선도
한자명

神仙圖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윤열수(尹列秀)

정의

도교에서 말하는, 늙어도 죽지 않고 오래 살며 마음대로 변화를 일으키는 신통한 능력을 지닌 신선들의 모습과 그 설화를 그린 그림.

개관

신선도는 유교·불교·도교의 영향을 모두 받았으나 특히 도교의 신선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며 더욱 발달하였다. 도교는 불사약 복용이나 심신수련, 온갖 신에 대한 기도 등을 통해 불로장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부와 명예 같은 현세적 이익을 추구하는 중국의 토착 종교이다. 도교가 제대로 교리와 조직을 갖춘 것은 4세기 북위시대이며, 이후 신선설과 민간신앙을 핵심으로 음양, 오행, 주역 등의 설과 의학, 도가 철학 등을 보태고, 불교와 유교의 사상까지 받아들여 발전하였다.
신선은 도교에서 늙어도 죽지 않고 오래 살면서 신통한 능력을 지닌 인물로, 초월적인 신이 아니라 역사 속 실존 인물이 수련을 통해서 장생불사라는 신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이다. 이런 신선들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은 단순히 시각적인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림 속에 신선 또는 신선의 힘이 담겨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특히 환갑 같은 잔치 때 장수를 기원하는 선물용으로 많이 그려졌다.
중국에서 신선도는 남북조시대에 처음 등장하였다. 당대唐代까지는 인물화로 분류되다가 북송 때부터 도석화의 한 종류로 취급되었다. 남송대에 이르러 감필풍減筆風의 선종禪宗인물화의 화법이 더해지면서 발전하였다. 이어서 원대의 화가 안휘顔輝 때에 화법상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명대明代에는 오위吳偉·장로張路 등 절파계浙派系 화가들과 구영仇英과 같은 화가들이 많이 그렸다.
우리나라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신선들이 가끔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독립된 화제로 등장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이며, 조선시대 중기인 17세기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신선도 제작이 성행하였다. 조선시대 중기에는 김명국金明國을 비롯하여, 절파풍을 구사하였던 화가들이 신선도를 주로 그렸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 후기로 이어져 심사정沈師正과 윤덕희尹德熙 등 선비 화가들과 김홍도金弘道 등 직업 화가들을 통해 크게 발전되었다. 특히, 신선도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던 김홍도의 화풍은 김득신金得臣·이수민李壽民·이재관李在寬·장승업張承業에게 이어져 조선시대 말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글씨와 그림 감상을 유독 좋아했던 숙종은 역대 임금의 시문집인 『열성어제列聖御製』에 160편 가량의 서화와 관련된 시문을 남겼다. 이를 소재별로 분류하면 중국고사도 다음으로 신선도가 많다. 숙종이 제화시를 남긴 신선도는 <열선도>, <팔선도>, <요지연도>, <여동빈도> 등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 이렇듯 신선도 감상을 즐겼던 숙종의 취미는 아들 영조를 거쳐 영조의 손자 정조에게까지 계승되었고, 18세기 왕실에서 신선도가 활발하게 생산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김홍도 역시 화원화가로 이름을 떨쳤던 시기에 어명을 받아 신선도를 그렸다. 어느 날 정조가 하얗게 칠한 큰 벽에 바다를 지나 서왕모의 잔치에 가는 신선들의 모습을 그리라고 명하였고, 김홍도는 진한 먹물 몇 되를 내시에게 준비시켜 모자를 벗고 옷깃을 잡아맨 채 비바람이 몰아치듯 붓을 휘둘렀다. 얼마 뒤, 집을 무너뜨릴 듯 일렁이는 파도와, 외로이 걸어가는 신선들이 구름을 넘는 광경을 완성했다. 조희룡趙熙龍, 1797~1859의 『호산외사壺山外史』에 기록된 이 일화는 김홍도에 대한 정조의 신임과 탁월한 그림 솜씨를 알려 준다.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신선은 목숨이 정해진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영생의 신선을 닮고 싶은 염원은 조선 왕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궁중에서도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인물을 통해 액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조선왕실에서는 신선도가 많이 제작되었다. 도화서 화원들은 신년을 송축하는 세화歲畵에 진채로 선인을 그려 넣어 왕실이나 재상에게 진상했다. 길상화의 기능을 수행한 신선도는 궁중의 중요한 행사를 위한 기념화로도 제작되었다. 왕실의 생일, 혼인 등 경사스러운 행사 장소를 장식할 상서로운 신선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신출귀몰한 신선의 형상은 그저 감상하기에도 즐거운 대상이었다.

내용

불로장생의 신선을 동경하고, 지상 어딘가에 있을 낙원을 소망하며 그려낸 신선도는 대개 배경을 생략하거나 간략하게 그려 인물을 부각한다. 신선으로 보이는 인물이 동물이나 동자와 함께 있는 구도가 일반적이며, 동자 두 명이 서로 짝을 이루어 등장하기도 한다.
신선과 함께 그려지는 동물로는 사슴·해태·사자·용·학·거북·봉황 등이 있다. 도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소도 자주 등장한다. 동물 대부분은 장수와 복록福祿을 의미하는 동물이다. 신선은 이러한 동물의 등에 타거나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신선이 손에 쥐고 있거나 동자들이 받들고 있는 것은 대개 불로초·천도복숭아·불수감·석류 등으로 신선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거나 불로장생한다는 약초들이다. 피리나 생황과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신선도는 환갑이나 잔치 때 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축원의 의미를 담아 선물했던 주제의 그림이다. 그래서 특히 정성들여 제작한 작품들이 많다. 그림뿐만 아니라 자수 작품도 상당수 남아있다. 수를 놓을 때 쓰이는 도안을 모아놓은 책인 『수보繡譜』를보면 군선축수도·군선경수도·천선공수도·팔선축수도·팔선공수도 등 옛날 유행했던 축수도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도교에서 등장하는 신선들은 500여 명이 넘으며, 노자老子·황초평黃初平·하마선인蝦蟆仙人·동방삭東方朔·장지화張志和 등 남성 신선이지만, 간혹 마고선녀麻姑仙女·서왕모西王母 등 온화하면서도 근엄한 미소를 띤 여성 신선도 찾아볼 수 있다.
신선도에서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신선은 종리권鍾離權·여동빈呂洞賓·장과로張果老·한상자韓湘子·이철괴李鐵拐·조국구曹國舅·남채화藍采和·하선고何仙姑까지 여덟 명이다. 민화에서는 이들을 각각 따로 그리기도 하고, 여럿이 함께 술이나 차를 마시거나 바둑을 두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한다. 이들은 신선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상징하는 물건을 지닌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종리권은 팔대선인의 우두머리로 머리 양쪽에 상투를 틀고 배를 드러낸 채 지물은 파초선芭蕉扇을 들고있는 모습, 장과로는 흰 나귀를 거꾸로 타거나 어고간자漁鼓簡子(대나무로 만든 악기)를 든 노인의 모습, 여동빈은 화양건華陽巾(도인들이 쓰는 모자)이라는 모자를 쓰고 모든 번뇌를 끊고 악의 세계를 제어한다는 검을 찬 남성의 모습, 조국구는 관복 차림에 죽은 사람을 살리는 딱따기를 든 모습으로 연극의 수호신으로 불린다. 이철괴는 철괴를 들고 장춘長春이라는 약이 담긴 호리병을 가지고 있는 마법의 신으로 그려진다. 한상자는 피리나 어고간자를 들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 장지화는 물 위에 앉아 있는 술 취한 선비의 모습, 남채화는 누더기를 입고 꽃을 든 청년, 하선고는 연꽃 줄기나 국자를 든 젊은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들 신선은 대개 단독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여덟 명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여덟 명의 신선을 그린 그림을 팔선도八仙圖라고 하며, ‘팔八’이라는 숫자는 문학작품에서 여러 사람을 지칭할 경우 ‘등등’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팔선이란 곧 많은 신선 또는 모든 신선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가난·부귀·귀족·평민·늙음·젊음·남성·여성 등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신선도 중에는 동자들만 등장하는 신선도도 있다. 이 그림을 신동도神童圖라고 한다. 여기에서 동자는 순진무구하고 티 없는 순박함 때문에 선善으로 상징되며, 학을 타고 내려오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불로초나 복숭아를 가지고 있는 모습, 차를 달이는 모습 등으로 그려진다. 신동도 중에서도 선동헌수도仙童獻壽圖는 여러 선동仙童들이 수복을 상징하는 사물을 받들어 신선들에게 바치는 모습을 그린 신선도 계통의 민화다. 분재한 나무를 수壽, 복福, 강康, 녕寧, 부귀富貴, 다남多男의 여덟 개의 글자 모양으로 만들어 표현한 예도 있다. 선동들이 불로초나 천도복숭아를 한 아름 들고 가는 모습으로도 그려진다. 이 특이한 그림은 신선도가 가지고 있는 장수의 의미뿐만 아니라 민중들이 원하는 각종 기원을 거리낌 없이 담은 그림이다. 자형분재의 특이한 화법은 민화 신선도에서만 볼 수 있다.
단독으로 그려지는 신선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신선도로 하마선인도蝦磨仙人圖와 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를 들 수 있다. 하마선인도의 ‘하마’란 두꺼비를 뜻하는 한자어이며, ‘하마선인’은 두꺼비를 가진 신선이라는 뜻이다. 『신선전神仙傳』에 따르면 유해劉海는 송나라 초기에 지금의 북경에서 살았던 실존 인물로, 전국 각지를 유랑하다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이 신선은 세 발 달린 두꺼비를 가지고 있었는데, 두꺼비는 신선을 세상 어디든지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꺼비는 가끔 우물 속으로 도망치곤 해 신선은 두꺼비를 돈이 달린 끈으로 끌어올리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하마선인도는 세 발 달린 두꺼비를 데리고 있는 신선의 모습, 또는 동전으로 세 발 달린 두꺼비를 낚아 올리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또한 세 발 두꺼비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희귀하므로 큰 행운, 큰 재물로 기쁨을 가져올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장수와 부귀를 동시에 기원하기 위해 유해가 세 발 달린 금두꺼비와 노는 장면을 그린 그림을 집 안에 걸어두는 풍습이 생겼다.
수성노인도는 수성도壽星圖, 수노인도壽老人圖 또는 남극노인도南極老人圖라고도 한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인 남극성南極星을 인격화하여 표현한 그림이다. 수성노인은 작은 키에 긴 수염과 굽은 허리, 정수리가 불룩 솟아오른 벗겨진 머리가 몸의 길이와 거의 같을 정도로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발목까지 덮는 도의道衣 차림에 사슴을 동반하거나 두루마리, 지팡이 등을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 인간의 수명을 맡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수성노인은 천상에서 구름이나 사슴을 타고 다니는데, 먹으면 천 년을 살 수 있다는 커다란 천도복숭아나 불로초를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산신産神으로도 통하는 수성노인도는 신격화되어 민화나 도교에서 함께 사용되고 있다. 민화에서 수성노인도는 다른 신선들과 함께 그려지지 않고 단독으로 그려지거나 동자와 함께 그려지지만, 불화나 문인화에 그려지는 경우에는 다른 신선들이나 불제자들과 함께 그려지기도 한다. 수성노인도는 지금도 회갑이나 칠순, 팔순의 선물용으로 많이 그려지고 있어 무병장수에 대한 애착을 읽을 수 있는 그림이다.

특징 및 의의

신선도는 모든 계층이 가지고 있는, 이상향에 살고 있는 신선들을 통해 인간이 염원하는 불로장생과 부귀에 대한 소망을 신선이라는 신앙적인 존재를 통해 나타낸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17, 18세기 조선왕조 시대 신선도 연구(박은순,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4), 한국의 미-인물화(맹인재 감수, 중앙일보사, 1985), 한국도석인물화에 대한 고찰(문명대, 간송문화18, 한국민족미술연구소, 1980),The Iconography of the Popular Gods of Happiness Emolument and Longevity(Mary, H. F., Artibus Asiae vol.44, 1983), 元代道釋人物畵の諸問題(戶田禎佑, 中國文化叢書7,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