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화(文字畵)

문자화

한자명

文字畵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진준현(陳準鉉)

정의

다양한 문자를 주된 소재로 삼아 그린 그림.

내용

문자화의 소재가 되는 글자는 유교적 사회규범이나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소원이나 희망 사항, 혹은 피하고 싶은 재앙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려는 욕구 등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문자화는 그 특성상 표현 내용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무한한 내적 자유를 추구하는 감상화와는 달리, 사회나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문자만 선택적으로 채택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화의 종류는 상당히 많다. 그래서 문자화의 분류는 여러 학자들이 자신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론적인 분류보다는 실제 현존하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분해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존하는 문자화 중 가장 양이 많은 것이 주로 8폭 병풍으로 된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이다. 효제문자도 외에 수복壽福, 강녕康寧, 부귀富貴, 다남多男 등 기복적인 것이 많다. 또 용龍, 호虎, 구龜 등 수호와 벽사를 상징하거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처럼 불교적인 것도 있다. 이들 다양한 문자화들은 문자만으로 구성된 순수 문자화가 있는가 하면 산수화나 화조영모화 등 다른 부류의 회화와 결합된 것도 있다. 이들을 현존 작품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1.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 문자화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효제문자도는 별도의 항목으로 기술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그 개요만 설명한다. 효제문자도는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義·염廉·치恥의 여덟 자로 이루어진다. 이 여덟 자는 유가儒家 철학의 중요 덕목을 요약한 것으로 옛날부터 중시되었으나 송나라 주희朱熹, 1130~1200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소학小學』에서 여덟자 한 묶음으로 거론되었다.
    주희에 의해 집대성된 성리학을 기반으로 건국된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소학』을 중시하여 일반 학자는 물론 국왕까지 수신을 위한 서적으로, 또 세자의 교육에 필수 교재로 중요하게 여겼다. 효제문자도는 주희가 직접 쓴 여덟 자의 필적이 조선에 유입되고, 성리학적 사회윤리가 사회 전반에 정착된 조선 후기에 본격적으로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는 명나라가 멸망하고 중국이 오랑캐라고 생각하던 청나라에 의해 지배받게 되자 공자-맹자-주희로 계승되는 유학의 정통을 계승한 조선이 중화中華가 되었다고 보는 민족자존의 사상도 한몫을 하였다. 즉, 유가철학의 사회윤리가 집대성된 효제문자 여덟 자를 중화문화를 계승한 조선사회 전체가따라야 할 규범으로 삼고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처음 그려진 시기는 조선성리학이 정착된 숙종 대에서 영조 대에 걸친 시기로 추정되며, 처음에는 왕실에서 세자 교육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시기 추정은 효제문자도에 나오는 다양한 소재와 표현양식이 정조 대인 1797년에 간행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보다 선행된 내용을 보여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효제문자도는 첫 단계에서는 도화서 화원풍의 정교하고 화려한 양식을 보여 준다. 즉, 여덟 글자의 획을 아주두껍게 표현하여 공간을 만든 후 그 윤곽선 내부에 다양한 고사故事를 화려한 채색으로 그려 넣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자획 내부에만 그려 넣는 제한에서 탈피하여, 여덟 글자 각자마다 관련된 고사에 나오는 잉어, 용, 거북이, 거문고, 새 등 다양한 사물로서 글자 획을 대체한 아주 창의적이고 기발한 도상들이 나타났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도상이 해체되며 매너리즘화, 추상화가 진행되어 당초의 상징성이 잊히는 등 서민 대중을 위한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 효제문자도는 특정 소재를 아주 창의적으로 양식화시키고, 그것이 점차 변화, 발전하는 양상을 잘 보여 주어 금강산도와 함께 조선시대 민화의 특징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예이다.

  2.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백수백복도는 ‘수壽’ 자와 ‘복福’자를 전서篆書 형식의 여러 가지 서체로 화면에 행과 열을 맞추어 가득 쓴 것으로 주로 병풍으로 그려진다. 글씨는 진한 채색으로 그려지나, 수묵으로만 표현된 것,또 종정문鐘鼎文이나 인문印文 형식으로 표현된 것, 자수로 새겨진 것 등 다양하다. 수와 복을 무수하게 반복하여 써서 장식함으로써 오래 살고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이다.
    백수백복도는 아마도 중국에서 먼저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데, 『광해군일기』 2년(1610) 4월 16일 조에 보면, 남평南平 현감 조유한趙維韓이 백수도百壽圖 한 폭을 진상하였는데, 그 백수도를 1593년 계사년 강관講官으로 서연書筵에 참여하여 세자의 학가鶴駕를 모시고 전주全州에 갔을 때 천조장관天朝將官, 명나라 장교으로부터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백수도는 ‘수壽’ 자를 크게 쓰고, 그 획 속에 수백자의 작은 ‘수’ 자를 여러 서체로 쓴 것이었다 하는데, 우리나라의 백수백복도와 소재는 같으나 표현 형식은 다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광해군에게 진상된 백수도는 현재 경기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만호도萬虎圖>와 같은 형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호도>도 무수한 ‘호’ 자가 모여서 커다란 한 글자의 ‘호’ 자를 이루는 형식이다.
    백수백복도는 지금도 상당히 많은 수의 작품들이대개 병풍 형태로 전해지는데, 다른 민화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궁중이나 사대부 계층이 사용하던 것이 민화로 저변화한 것이다. 이런 점을 잘 보여 주는 것으로 구한말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 1877~1955이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로 그린 것으로 보이는 백수백복도 병풍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전해진다. 도화서 화원 이형록李亨祿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백수도병풍>이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근대의 서예가 안종원安鍾元이 1911년 그린 <백수전도 자수 10폭 병풍>이 자수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특히 안종원의 작품은 백수백복도의 성격을 잘 보여 주는 기록이 적혀 있다. 즉, 제10폭에 “한나라 와당, 주나라 솥, 은나라 종, 하나라 삼족기(등에 그려진 것들이) 모두 백수전도이다. 만수무강의 소원, 백 가지 복을 크게 받고자 하는 축원이다[漢瓦周鐺殷鍾夏鼎共百壽全圖 萬壽無疆之願 百福丕嘏之祝 歲辛亥元旦上澣石丁放夫試腕于龍洲客館].”라고 새겨져 있다. 그리고 매 폭에는 옛날 청동기나 고기물 등의 모양, 거기에 새겨진 전서, 그 전서의 해석문 등이 새겨져 있다. 이 병풍에는 수壽 자 이외에도 복福 자나 다른 글자도 많이 새겨져 있어 백수백복도의 의미와 기원을 잘 보여 준다.
    안종원이 그린 작품은 단순히 글자뿐 아니라 그 글자가 새겨진 청동기 등 기물의 모양까지 그려 넣고 원문과 해석문까지 넣은 점에서 백수백복도 중 가장 자세한 도상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백수백복도는 글자 자체만 행렬에 맞추어 배열한 것이다. 사물의 형태가 묘사된 경우도 글자와 동일한 비중으로행렬에 맞춘다. 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조선 후기 나전문갑에는 회화와 동일한 형식으로 백수백복 자가 옆면에 새겨져 있는 예도 있다.
    한편 백수백복도 중 서예적으로 접근한 특이한 예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수묵으로만 특이한 서체로 병풍 매 폭에 두 줄 정도로만 크게 썼다. 이런 백수백복도의 대표적 작가는 추사 김정희의 종손이라 전하는 김문제金文濟, 1846~1931이다. 김문제가 그린 다수의 <백수백복도 병풍> 중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에는 “종정과 전서, 예서를 방하여서 새로 문정을 열어서 썼다[書仿鍾鼎篆隸別開門庭者而爲].”라는 제가 있다.
    김문제는 자신의 백수백복도가 서예사상 하나의 새로운 분야임을 자임하고 있다. 김문제와 비슷한 백수백복도를 그린 작가로 허소許炤, 1882~1942가 있다. 이들의 백수백복도는 주로 먹으로만 그려져 화려한 채색의 장식적 민화 백수백복도와는 다른 계열이라 할 수 있다.

  3. 각종 부귀와 길상 문자도: 여기에는 ‘수복壽福’, ‘강녕康寧’, ‘부귀富貴’, ‘다남多男’ 등 부귀와 길상 문자나 이들이 다른 분야 그림과 결합된 문자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수壽’, ‘부富’ 따위 글자를 쓴 문자도, 자손번성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 백자도百子圖와 결합된 문자도, 장수를 기원하는 신선도神仙圖와 결합된 문자도, 모란도牧丹圖나 연화도蓮花圖 등과 결합된 문자도 등이 있다.
    이 중 한 예를 보면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신선문자도>는 고위관리 모습을 한 신선이 시동들과 함께 가는데, 시동들이 복숭아 열매가 달리고 줄기가 ‘수壽’ 자 형태를 이루고 있는 나무를 들고 가고 있다. 그림의 소재가 상징하는 것과 중앙에 ‘수’ 자가 위치하여 그림 전체의 의미를 명확히 보여 준다.
    이런 길상 문자도들은 회화에서뿐 아니라 의복, 가구, 베개, 각종 공예나 장신구, 건축물의 장식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음을 여러 가지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또 효제문자도에서도 문자 내부의 장식문양으로서 부귀와 길상 문자가 들어가기도 한다. 요컨대 백수백복도와 그 의미는 상통하나, 백수백복도는 수복 두글자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데 비해 여기서는 다양한 문자를 사용한 그림들이 모두 포함된다.

  4. 비백서飛白書와 혁필서革筆書: ‘비백’이란 원래 서예에서 굵은 필획을 그을 때 빠른 운필을 함에 따라 그 획의 일부가 먹으로 채워지지 않은 채 불규칙한 형태의 흰부분을 드러내게 하는 필법을 말한다. 그리고 ‘혁필’이란 가죽 조각에 수묵이나 다양한 채색을 묻혀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은 획 속에 다양한 색의 선이 나타나게 되는 그림을 말한다. 따라서 비백과 혁필은 원래는 다르나 그려진 필획 속에 운필에 따른 평행선 문양이 나타나는 점에서 같다. 비백이나 혁필로도 효제문자도를 그릴 수 있다.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는 비백서에 대해 “버드나무 가지를 깎아 그 끝을 갈라 쪼개서 먹을 찍어 효제충신예의염치 등의 글자를 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혁필화>는 수묵으로만 ‘수산복해壽山福海’를 썼는데, 나비, 물고기, 새 등으로 글자 획을 재미있게 장식하였다.
    옛날 전통시장에서 혁필화를 써 주던 장인들은 다양한 채색을 써서 더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여러가지 교훈적, 장식적 글자를 써 주었다. 이러한 시장의 혁필화는 사라져 가다가 근래 일부 다시 나타나고 있다.

  5. 용龍·호虎·구龜 등 수호와 벽사 상징 문자: 용이나 호랑이, 거북이 따위는 용호도나 오방신장五方神將, 사신도四神圖 따위의 그림으로도 그려지지만 글자 자체로서도 동일한 효과를 지닌다고 믿어져 많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또 정초 세화歲畵로 대문에 그려 붙이는 용호 그림 대신 글씨로도 써서 붙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런 세화 문배門排 따위는 대개 일회용 소모품이었기 때문에 실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충청남도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에서 대문에 쓴 ‘용호龍虎’ 글씨를 볼 수 있다.
    경기대학교 박물관 소장 <만호도萬虎圖>는 수많은 작은 ‘호虎’ 자로 하나의 큰 글자를 구성한 것이다. 또 경복궁 근정전에서 나온 ‘수水’ 자도 수많은 ‘수’ 자가 하나의 큰 ‘수’ 자를 이루어 앞서 만호도와 같은 형식이다. 또 경기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송호도松虎圖>에는 그림 상단에 ‘호虎’ 자가 함께 쓰여 있고, 비백서 중에서는 ‘풍호風虎’라고 쓴 것도 있다. 이들 모두는 글자가 가진 주술적 힘을 빌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간혹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등의 불교 문자도도 있는데, 종교적 배경은 다르나 의도는 같다고 할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문자화는 문자가 가지는 의미 전달 수단으로서의 중요성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문자화는 당시 사용되던 한자漢字의 특징인 상형성, 상징성에서 더욱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한자는 중국에서 유래되었으나, 이를 소재로 한 문자화는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조선시대의 특징을 반영한 점에서 문화란 외부와의 교류 속에서 더욱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당시 한글만 전용했다면 이런 다양한 문자화는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문자화는 당시 시대의 사회규범과 윤리, 그리고 사람들의 솔직한 희망이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효제문자도에는 조선사회의 윤리규범과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으며, 기타 문자화들에도 오래 살고 복 많이 받고, 온갖 재앙으로부터 안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생각이 기발하고 재미있게 형상화되어 있다. 문자화는 그 시대의 사회, 민속, 미술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참고문헌

문자도(유홍준·이태호, 대원사, 1993), 민화문자도의 내용과 형식(이태호·유홍준, 민화문자도, 동산방, 1988), 수복-장수를 바라는 마음(국립민속박물관, 2007), 우리 민화의 아름다움과 특징 및 그 의의-선문대학교 박물관 소장품과 관련하여(진준현, 선문대학교박물관 명품도록3-민화,2003), 한국 고대의 문자와 기호유물(국립청주박물관, 2000).

문자화

문자화
한자명

文字畵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화

집필자 진준현(陳準鉉)

정의

다양한 문자를 주된 소재로 삼아 그린 그림.

내용

문자화의 소재가 되는 글자는 유교적 사회규범이나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소원이나 희망 사항, 혹은 피하고 싶은 재앙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려는 욕구 등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문자화는 그 특성상 표현 내용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무한한 내적 자유를 추구하는 감상화와는 달리, 사회나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문자만 선택적으로 채택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화의 종류는 상당히 많다. 그래서 문자화의 분류는 여러 학자들이 자신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론적인 분류보다는 실제 현존하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분해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존하는 문자화 중 가장 양이 많은 것이 주로 8폭 병풍으로 된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이다. 효제문자도 외에 수복壽福, 강녕康寧, 부귀富貴, 다남多男 등 기복적인 것이 많다. 또 용龍, 호虎, 구龜 등 수호와 벽사를 상징하거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처럼 불교적인 것도 있다. 이들 다양한 문자화들은 문자만으로 구성된 순수 문자화가 있는가 하면 산수화나 화조영모화 등 다른 부류의 회화와 결합된 것도 있다. 이들을 현존 작품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 문자화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효제문자도는 별도의 항목으로 기술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그 개요만 설명한다. 효제문자도는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義·염廉·치恥의 여덟 자로 이루어진다. 이 여덟 자는 유가儒家 철학의 중요 덕목을 요약한 것으로 옛날부터 중시되었으나 송나라 주희朱熹, 1130~1200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소학小學』에서 여덟자 한 묶음으로 거론되었다.
주희에 의해 집대성된 성리학을 기반으로 건국된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소학』을 중시하여 일반 학자는 물론 국왕까지 수신을 위한 서적으로, 또 세자의 교육에 필수 교재로 중요하게 여겼다. 효제문자도는 주희가 직접 쓴 여덟 자의 필적이 조선에 유입되고, 성리학적 사회윤리가 사회 전반에 정착된 조선 후기에 본격적으로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는 명나라가 멸망하고 중국이 오랑캐라고 생각하던 청나라에 의해 지배받게 되자 공자-맹자-주희로 계승되는 유학의 정통을 계승한 조선이 중화中華가 되었다고 보는 민족자존의 사상도 한몫을 하였다. 즉, 유가철학의 사회윤리가 집대성된 효제문자 여덟 자를 중화문화를 계승한 조선사회 전체가따라야 할 규범으로 삼고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처음 그려진 시기는 조선성리학이 정착된 숙종 대에서 영조 대에 걸친 시기로 추정되며, 처음에는 왕실에서 세자 교육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시기 추정은 효제문자도에 나오는 다양한 소재와 표현양식이 정조 대인 1797년에 간행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보다 선행된 내용을 보여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효제문자도는 첫 단계에서는 도화서 화원풍의 정교하고 화려한 양식을 보여 준다. 즉, 여덟 글자의 획을 아주두껍게 표현하여 공간을 만든 후 그 윤곽선 내부에 다양한 고사故事를 화려한 채색으로 그려 넣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자획 내부에만 그려 넣는 제한에서 탈피하여, 여덟 글자 각자마다 관련된 고사에 나오는 잉어, 용, 거북이, 거문고, 새 등 다양한 사물로서 글자 획을 대체한 아주 창의적이고 기발한 도상들이 나타났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도상이 해체되며 매너리즘화, 추상화가 진행되어 당초의 상징성이 잊히는 등 서민 대중을 위한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 효제문자도는 특정 소재를 아주 창의적으로 양식화시키고, 그것이 점차 변화, 발전하는 양상을 잘 보여 주어 금강산도와 함께 조선시대 민화의 특징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예이다.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백수백복도는 ‘수壽’ 자와 ‘복福’자를 전서篆書 형식의 여러 가지 서체로 화면에 행과 열을 맞추어 가득 쓴 것으로 주로 병풍으로 그려진다. 글씨는 진한 채색으로 그려지나, 수묵으로만 표현된 것,또 종정문鐘鼎文이나 인문印文 형식으로 표현된 것, 자수로 새겨진 것 등 다양하다. 수와 복을 무수하게 반복하여 써서 장식함으로써 오래 살고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이다.
백수백복도는 아마도 중국에서 먼저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데, 『광해군일기』 2년(1610) 4월 16일 조에 보면, 남평南平 현감 조유한趙維韓이 백수도百壽圖 한 폭을 진상하였는데, 그 백수도를 1593년 계사년 강관講官으로 서연書筵에 참여하여 세자의 학가鶴駕를 모시고 전주全州에 갔을 때 천조장관天朝將官, 명나라 장교으로부터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백수도는 ‘수壽’ 자를 크게 쓰고, 그 획 속에 수백자의 작은 ‘수’ 자를 여러 서체로 쓴 것이었다 하는데, 우리나라의 백수백복도와 소재는 같으나 표현 형식은 다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광해군에게 진상된 백수도는 현재 경기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만호도萬虎圖>와 같은 형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호도>도 무수한 ‘호’ 자가 모여서 커다란 한 글자의 ‘호’ 자를 이루는 형식이다.
백수백복도는 지금도 상당히 많은 수의 작품들이대개 병풍 형태로 전해지는데, 다른 민화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궁중이나 사대부 계층이 사용하던 것이 민화로 저변화한 것이다. 이런 점을 잘 보여 주는 것으로 구한말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 1877~1955이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로 그린 것으로 보이는 백수백복도 병풍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전해진다. 도화서 화원 이형록李亨祿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백수도병풍>이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근대의 서예가 안종원安鍾元이 1911년 그린 <백수전도 자수 10폭 병풍>이 자수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특히 안종원의 작품은 백수백복도의 성격을 잘 보여 주는 기록이 적혀 있다. 즉, 제10폭에 “한나라 와당, 주나라 솥, 은나라 종, 하나라 삼족기(등에 그려진 것들이) 모두 백수전도이다. 만수무강의 소원, 백 가지 복을 크게 받고자 하는 축원이다[漢瓦周鐺殷鍾夏鼎共百壽全圖 萬壽無疆之願 百福丕嘏之祝 歲辛亥元旦上澣石丁放夫試腕于龍洲客館].”라고 새겨져 있다. 그리고 매 폭에는 옛날 청동기나 고기물 등의 모양, 거기에 새겨진 전서, 그 전서의 해석문 등이 새겨져 있다. 이 병풍에는 수壽 자 이외에도 복福 자나 다른 글자도 많이 새겨져 있어 백수백복도의 의미와 기원을 잘 보여 준다.
안종원이 그린 작품은 단순히 글자뿐 아니라 그 글자가 새겨진 청동기 등 기물의 모양까지 그려 넣고 원문과 해석문까지 넣은 점에서 백수백복도 중 가장 자세한 도상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백수백복도는 글자 자체만 행렬에 맞추어 배열한 것이다. 사물의 형태가 묘사된 경우도 글자와 동일한 비중으로행렬에 맞춘다. 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조선 후기 나전문갑에는 회화와 동일한 형식으로 백수백복 자가 옆면에 새겨져 있는 예도 있다.
한편 백수백복도 중 서예적으로 접근한 특이한 예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수묵으로만 특이한 서체로 병풍 매 폭에 두 줄 정도로만 크게 썼다. 이런 백수백복도의 대표적 작가는 추사 김정희의 종손이라 전하는 김문제金文濟, 1846~1931이다. 김문제가 그린 다수의 <백수백복도 병풍> 중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에는 “종정과 전서, 예서를 방하여서 새로 문정을 열어서 썼다[書仿鍾鼎篆隸別開門庭者而爲].”라는 제가 있다.
김문제는 자신의 백수백복도가 서예사상 하나의 새로운 분야임을 자임하고 있다. 김문제와 비슷한 백수백복도를 그린 작가로 허소許炤, 1882~1942가 있다. 이들의 백수백복도는 주로 먹으로만 그려져 화려한 채색의 장식적 민화 백수백복도와는 다른 계열이라 할 수 있다.

각종 부귀와 길상 문자도: 여기에는 ‘수복壽福’, ‘강녕康寧’, ‘부귀富貴’, ‘다남多男’ 등 부귀와 길상 문자나 이들이 다른 분야 그림과 결합된 문자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수壽’, ‘부富’ 따위 글자를 쓴 문자도, 자손번성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 백자도百子圖와 결합된 문자도, 장수를 기원하는 신선도神仙圖와 결합된 문자도, 모란도牧丹圖나 연화도蓮花圖 등과 결합된 문자도 등이 있다.
이 중 한 예를 보면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신선문자도>는 고위관리 모습을 한 신선이 시동들과 함께 가는데, 시동들이 복숭아 열매가 달리고 줄기가 ‘수壽’ 자 형태를 이루고 있는 나무를 들고 가고 있다. 그림의 소재가 상징하는 것과 중앙에 ‘수’ 자가 위치하여 그림 전체의 의미를 명확히 보여 준다.
이런 길상 문자도들은 회화에서뿐 아니라 의복, 가구, 베개, 각종 공예나 장신구, 건축물의 장식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음을 여러 가지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또 효제문자도에서도 문자 내부의 장식문양으로서 부귀와 길상 문자가 들어가기도 한다. 요컨대 백수백복도와 그 의미는 상통하나, 백수백복도는 수복 두글자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데 비해 여기서는 다양한 문자를 사용한 그림들이 모두 포함된다.

비백서飛白書와 혁필서革筆書: ‘비백’이란 원래 서예에서 굵은 필획을 그을 때 빠른 운필을 함에 따라 그 획의 일부가 먹으로 채워지지 않은 채 불규칙한 형태의 흰부분을 드러내게 하는 필법을 말한다. 그리고 ‘혁필’이란 가죽 조각에 수묵이나 다양한 채색을 묻혀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은 획 속에 다양한 색의 선이 나타나게 되는 그림을 말한다. 따라서 비백과 혁필은 원래는 다르나 그려진 필획 속에 운필에 따른 평행선 문양이 나타나는 점에서 같다. 비백이나 혁필로도 효제문자도를 그릴 수 있다.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는 비백서에 대해 “버드나무 가지를 깎아 그 끝을 갈라 쪼개서 먹을 찍어 효제충신예의염치 등의 글자를 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혁필화>는 수묵으로만 ‘수산복해壽山福海’를 썼는데, 나비, 물고기, 새 등으로 글자 획을 재미있게 장식하였다.
옛날 전통시장에서 혁필화를 써 주던 장인들은 다양한 채색을 써서 더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여러가지 교훈적, 장식적 글자를 써 주었다. 이러한 시장의 혁필화는 사라져 가다가 근래 일부 다시 나타나고 있다.

용龍·호虎·구龜 등 수호와 벽사 상징 문자: 용이나 호랑이, 거북이 따위는 용호도나 오방신장五方神將, 사신도四神圖 따위의 그림으로도 그려지지만 글자 자체로서도 동일한 효과를 지닌다고 믿어져 많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또 정초 세화歲畵로 대문에 그려 붙이는 용호 그림 대신 글씨로도 써서 붙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런 세화 문배門排 따위는 대개 일회용 소모품이었기 때문에 실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충청남도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에서 대문에 쓴 ‘용호龍虎’ 글씨를 볼 수 있다.
경기대학교 박물관 소장 <만호도萬虎圖>는 수많은 작은 ‘호虎’ 자로 하나의 큰 글자를 구성한 것이다. 또 경복궁 근정전에서 나온 ‘수水’ 자도 수많은 ‘수’ 자가 하나의 큰 ‘수’ 자를 이루어 앞서 만호도와 같은 형식이다. 또 경기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송호도松虎圖>에는 그림 상단에 ‘호虎’ 자가 함께 쓰여 있고, 비백서 중에서는 ‘풍호風虎’라고 쓴 것도 있다. 이들 모두는 글자가 가진 주술적 힘을 빌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간혹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등의 불교 문자도도 있는데, 종교적 배경은 다르나 의도는 같다고 할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문자화는 문자가 가지는 의미 전달 수단으로서의 중요성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문자화는 당시 사용되던 한자漢字의 특징인 상형성, 상징성에서 더욱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한자는 중국에서 유래되었으나, 이를 소재로 한 문자화는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조선시대의 특징을 반영한 점에서 문화란 외부와의 교류 속에서 더욱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당시 한글만 전용했다면 이런 다양한 문자화는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문자화는 당시 시대의 사회규범과 윤리, 그리고 사람들의 솔직한 희망이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효제문자도에는 조선사회의 윤리규범과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으며, 기타 문자화들에도 오래 살고 복 많이 받고, 온갖 재앙으로부터 안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생각이 기발하고 재미있게 형상화되어 있다. 문자화는 그 시대의 사회, 민속, 미술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참고문헌

문자도(유홍준·이태호, 대원사, 1993), 민화문자도의 내용과 형식(이태호·유홍준, 민화문자도, 동산방, 1988), 수복-장수를 바라는 마음(국립민속박물관, 2007), 우리 민화의 아름다움과 특징 및 그 의의-선문대학교 박물관 소장품과 관련하여(진준현, 선문대학교박물관 명품도록3-민화,2003), 한국 고대의 문자와 기호유물(국립청주박물관,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