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차산농악(清道车山农乐)

한자명

清道车山农乐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남성진(南聖辰)

정의

경상북도 청도 풍각면 차산리에서 전승되는 농악.

개관

청도차산농악은 경북 청도 풍각면의 여러 마을 사이에 벌어진 천왕기天王旗 싸움에서 발전한 농악 놀이 중 하나이다. 차산리車山里는 속칭 신라 고촌이라 불릴 만큼 역사가 깊은 마을로 130여 가구가 농사에만 의존해 온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차산리의 이름은 마을 앞 들판을 구릉과 산등성이가 둥글게 둘러싼 모습이 흡사 수레바퀴 같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차산리는 상차上車, 중차中車, 하차下車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며 남서 방향으로 하천이 흐른다. 앞에 수리산이 있으므로 차산리라 하였다.
경북과 경남의 도계에 접하고 있는 차산리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정초가 되면 풍각면과 고개 너머 창녕의 여러 마을 두레들이 모여 화려한 천왕기 싸움을 펼쳐 왔다. 많을 때는 15~16개 마을이 장터에서 화려한 천왕기 싸움을 벌였다. 천왕기는 경북 청도 풍각면 일대의 모든 마을이 소유하고 있는 깃발이다. 차산리의 천왕기는 고종이 즉위한 189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깃대와 기, 오색 수건, 헝겊 그리고 꿩털로 이루어져 있다. 깃대는 길이 약 11m, 둘레 약 20㎝의 청죽靑竹이며, 윗부분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대는 총 38마디이며, 각 마디는 30~40㎝로 되어있다. 천왕기의 밑뿌리는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에 절대 잘라서는 안 된다고 한다. 기는 가로 210㎝, 세로 140㎝의 물이 빠지지 않는 천으로 만들었다. 오색 수건은 여덟 개이며, 헝겊은 기에 옷을 입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차산리의 깃발은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등 원색으로만든 여섯 개의 헝겊으로 이루어져 있다. 꿩털은 암수의 구별 없이 깃털을 뽑아서 기의 끝에 단다. 청도차산농악의 상쇠 김오동에 따르면, 오색 수건을 새로이 마련할 경우, 아들 갖기를 원하는 집에서 수건을 만들어 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천왕기는 본래 당제를 올리기 전 ‘신내림’을 받을 때 이용되던 것인데, 마을 별로 두레싸움을 벌이면서 놀이의 형태로 변화되었다. 이것이 천왕기 싸움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추측된다. 천왕기 싸움은 매년 정월 11일, 풍각 장날에 맞춰 여러 가지 색으로 화려하게 단장한 길이 6~8m에 가까운 천왕기를 앞세우고 마을 별로 농기와 농악대가 어울려 고갯마루와 장터에서 서로 위세를 자랑하며 즐기던 놀이이다. 치장된 천왕기를 가지고 행하는 천왕기 싸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차산리 깃발이 고종 때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아서 유래는 그보다 앞설 것으로 추정된다. 천왕기 싸움은 청도 풍각을 중심으로 한 마을 간의 세 다툼의 장으로 모든 마을 사람들이 거의 참여하였다. 여기에 참석하지 않으면 골을 매거나 하여 상당히 신경을 곤두세워서 마을의 힘을 과시하였다.
천왕기 싸움은 주로 해가 진 저녁때부터 행해진다.천왕기를 앞세운 농악단이 농악을 울리고 그 뒤에 마을의 유지들이 뒤따르면서 풍각장으로 내려간다. 풍각장터에 도달하면 각 마을 사람들이 천왕기를 중심으로 길 복판에 진을 치고 있다. 이때 그들에게 천왕기를 굽히고 조름쇠를 치면서 인사를 하지 않으면 바로 서로의 기를 맞대고 싸움이 일어난다. 천왕기 싸움이 벌어질 때면 많을 경우 15~16개 마을이 참여하는데, 힘이 약한 마을은 참가하지 않을 때도 있다. 천왕기 싸움에서 만약 지면 마을의 유지를 비롯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원망을 사게 될 뿐만 아니라 천왕기를 비롯한 농악기를 없앤다. 그럼 다음 해에 새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마을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한다. 차산농악은 바로 이천왕기(서낭기) 싸움과 지신밟기 등을 기초로 발전한 농악이라 할 수 있다. 경상도 남부 지역의 모의 농사굿의 대표적인 형태로 경상도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알려진 농악 놀이이다.
청도차산농악은 상쇠 김오동金五同을 통해 가락과 판굿이 전수되었다. 김오동은 청도 풍각면 차산리에서 태어났다. 당시 마을 상쇠인 큰형 김시동의 영향을 받아 성장기에 농악이나 농요·지신밟기·무굿을 자연스레 접하고 성장하였다. 광복 이후 마을 선·후배나 동기들과 모여 농악 기물을 사서 농악 연습으로 신명풀이를 하고, 소시장에 가서는 주막에서 가무악이 어우러진 풍악을 울렸다. 1950년대 중반부터는 농악단을 꾸리고 농악 대회에 나가기 시작하여 창녕 3·1 문화제, 밀양 아랑제, 대구 전국 농악 대회, 진주 개천제 등 수많은 대회에 나가 수상하였다. 또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하여 수상한 뒤, 그 전통성을 인정받아 1980년 12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김오동의 노력에 힘입어 1991년 청도 차산농악전수관이 착공되어 몇 차례의 증축 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놀이는 대부분 마을의 가장 넓은 장소에서 행해졌지만 차산농악전수관을 건립한 다음부터는 전수관에서 행해지고 있다. 청도차산농악의 보존과 전승에 기여하던 김오동은 1990년대 후반부터 지병인 당뇨병으로 활동을 못하다가 2002년 80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 50여 명의 회원들이 차산농악보존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2월 청도천에서 개최되는 정월대보름 행사를 시작으로 청도 소싸움 축제 식전 행사와 매년 9월 차산농악 정기발표회를 개최하고 청도의 각종 축제에 초청되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여름과 겨울을 맞아 대학생 연수를 정기적으로 실시하여 청도차산농악을 전수하고 있다.

내용

청도차산농악은 주로 정월대보름에 한 해의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동제를 올릴 때 행해졌던 놀이이다. 동제 과정에서 잡신을 물리치고 신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특히 천왕기를 모시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정확한 시작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차산리를 비롯한 풍각면 일대 대부분의 마을에서 행해졌던 대표적 정월대보름 놀이 중 하나였다. 농악단의 편성은 천왕기(서낭기), 나팔잽이, 고동잽이, 상쇠, 중쇠, 설징, 종징 2명, 설북, 종북 1~4명, 끝북, 설장구, 종장구 1~4명, 끝장구, 설법고, 종법고 1~4명, 끝법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잡색으로는 색시, 양반, 포수 등이 있다.
차산농악대의 복색을 보면 천왕기잽이, 나팔잽이, 고동잽이는 바지저고리에 수건을 쓴다. 상쇠를 비롯하여 종쇠, 끝쇠는 바지저고리에 쾌자를 입고 허리와 양 어깨에 능주(색띠), 즉 채복을 걸친다. 허리에는 붉은 띠, 왼쪽 어깨에는 남색 띠, 오른쪽 어깨에는 노란 띠를두른다. 그리고 머리에는 전립을 쓴다. 징잽이와 북잽이, 장구잽이는 채복에 고깔을 쓴다. 법고잽이는 채복에 상모꼬리가 달린 전립을 쓴다. 색시는 붉은 치마에 초록 저고리를 입으며 고깔을 쓰고 손수건을 든다. 발에는 여자 고무신을 신는다. 양반은 흰 도복에 관을 쓰고 띠를 두르며 짚신을 신는다. 손에는 담뱃대와 부채를 든다. 포수는 검정색 바지와 긴 저고리를 입고 허리띠를 두르고 검은 수건을 동인다. 조총을 들고 살메망태를 멘다. 망태 속에는 도시락과 숟가락이 들어있고, 겉에는 너구리·토끼·꿩 등의 가죽을 매달아 놓는다. 차산농악의 종류에는 지신밟기와 판굿이 있다. 그 내용과 형태를 보면 아래와 같다.

  1. 지신밟기
    청도차산농악의 지신밟기는 연중행사로서 일반적으로 정월대보름에 하며, 마을 어른들과 상쇠가 모여 협의를 하고 일자와 장소를 정한다. 지신밟기를 행하기 며칠 전에 농악기, 집기를 점검하고 손질한다. 지신밟기는 일반적으로 일행을 청하는 집을 밟아 주는데, 보통 여력이 있거나 신앙심이 두텁고 발복하기를 원하거나 당해 재앙이 끼지 않기를 빌고자 하는 집에서 행해진다.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정하게 술상을 차려 놓고 제상에는 포, 과일, 물, 쌀, 산작, 술, 돈, 촛대 2개, 잔, 향, 주전자 등을 차려 놓는다. 술상은 그 집의 인심을 알 수가 있기 때문에 거하게 장만한다. 농악대는 쇠, 장구, 북, 징, 나발, 상모, 양반, 포수, 색시, 기타 수행원으로 구성된다. 포수는 망나니꾼이기도 해서 심술도 부리고 장난도 친다. 이때 깃발은 농기와 천왕기 두 개로 구성된다. 행렬은 천왕기-농기-양반-나발-고동-상쇠-부쇠-징-북-장구-상모(소고)의 순으로 선다. 지신밟기의 절차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당굿: 농악대원은 당에 올라가 당산굿을 치면서 농악을 하겠다는 것을 고한다.
    2) 문굿: 농악대원은 대문 앞에서 “주인 양반 문 여소, 나그네 손님 들어간다.” 하고 소리친다.
    3) 마당굿: 주인이 승낙이 내리면 집으로 들어가 마당을 한 바퀴 돌면서 농악을 한바탕 친다. 이때 몇몇 잽이들은 마루에 올라가 성주풀이로 들어간다.
    4) 성주굿(성주풀이): 상쇠의 선소리로 성주풀이 사설을 읊는다.
    5) 조왕굿: 부엌(정지)으로 들어가 상쇠의 선소리로 사설을 읊는다.
    6) 장독굿(장독풀이): 장독대에 가사 상쇠의 선소리로 사설을 읊는다.
    7) 용왕굿(우물굿): 샘에 가서 상쇠의 선소리로 사설을 읊는다.
    8) 곡간굿(두지, 뒤지 지신), 9) 정낭굿(변소), 10) 소마굿, 11) 방아굿, 12) 붓틀굿(대문굿)의 순서로 상쇠의 선소리에 맞춰 사설을 읊는다.

지신밟기는 집 안에 있는 가신을 밟아 위로하고 덕담을 하기 때문에 집 안을 두루 돌게 된다. 한 바퀴 돌고 나면 마당에 차린 술상 앞에 모여 술과 음식을 먹고 농악을 한바탕 치고 다음 집으로 향하게 된다.
2. 판굿
청도차사농악의 판굿의 편성은 약 50여 명으로 구성되는데, 각 25명으로 구성된 두 농악대가 먼저 태평소, 나팔, 천왕기, 농기를 세우고 삼열 종대로 나간다. 그리고 자진모리장단으로 바뀌면서 상쇠의 지휘에 따라 관중에게 인사를 한다. 이때 천왕기와 농기 그리고 태평소와 나팔 등이 일렬로 전면에 서고 나머지는 상쇠의 지휘를 받게 된다. 쇠가락으로는 질굿·자진모리·조름쇠·천왕굿가락·무정작궁·덧뵈기·호호딱딱·부정굿가락·굿거리(살풀이) 등이 있다. 판굿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굿거리굿(춤굿): 천왕기와 농기를 세우고 삼열 횡대로 서고 상쇠가 조름쇠를 치고 마치면 지휘에 따라 관중에게 인사한다. 이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줄로 행진하면서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느릿한 덧배기춤을 춘다. 이때 상쇠를 비롯한 4명의 쇠꾼들은 원의 중심으로 들어가 무정작궁 가락을 치며 정井자로 서서 잽이들을 지휘한다.
2) 부정굿(차츰걸음): 굿거리굿에서 쫓아내지 못한 잡귀를 마저 쫓아내기 위한 놀이로, 세마치장단으로 이루어진다. 상쇠가 쇠를 끊으면 일렬 원진이 이열 동심원이 되게끔 진을 만든다. 이는 혼자서는 잡신이 도망가지도 않고 쫓을 수도 없으니, 둘씩 가면서 잡신을 쫓고 사고 없이 평안하게 해 달라는 뜻으로 행하는 것이다.
3) 연풍기굿(호호딱딱): 호호딱딱 가락을 치며 이열 원진이 다시 일렬 원진으로 되면서 훨훨 뛰며 돌아간다. 이 굿거리는 잡귀를 몰아냈으므로 기분이 좋다는 뜻이라 한다.
4) 자진모리굿(막조우기): 자진모리를 치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계속 원진을 도는데, 이때 덧배기장단을 당겨 붙여 흥을 돋운다. 앞에서 행한 연풍기굿의 두 개 원을 하나의 원으로 만들기 위하여 쇠를 당겨 부친다. 이 굿거리는 부정굿에서 잡신을 쫓아내고, 연풍기굿에서 기분이 좋은 상태를 계속 고조시켜 농악의 흥을 돋우기 위한 것이다.
5) 물레굿(미영잦기): 무명 농사를 지어 베를 짜고 물레를 젓는 행위를 상징하며,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이다. 물레굿은 실을 푸는 형용으로, 본목(면)을 짜서 옷을 해 입어야 농사도 짓고 활동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상쇠가 쇠를 꺾으면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마주보면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하고(2석), 다시 일렬 원진하다가 상쇠가 쇠를 꺾으면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계속 회전하며(3석) 또 다시 일렬 원진한다. 그리고 네 번째 쇠를 끊으면 네 사람이 한 조가 되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4석).
6) 진굿(2석, 3석, 4석): 무명으로 옷을 해 입은 뒤 일하러 갈 때 열을 지어 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옛날의 두레굿 형태가 남은 자취로 보인다. 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상쇠가 쇠를 꺾으면 시계 방향으로 이열 원진하고(2석), 다시 상쇠가 쇠를 꺾으면 삼열 원진하며(3석), 또다시 상쇠가 쇠를 꺾으면 네 개의 원을 만들어 사열 원진하고(4석), 그 다음은 역으로 상쇠가 쇠를 꺾어 신호를 하면 사열 원진이 삼열, 이열로 원진하고 결국 일열원진으로 된다. 이때 진굿과 물레굿이 비슷한 것으로 보이나, 진굿은 원을 따라 돌고 물레굿은 각 단위별로 조를 이루어 도는 것이 다르다.
7) 농사굿: 상쇠의 지휘를 받아 법고잽이들이 상모를 돌리면서 농사짓는 형용을 하는 굿이다. 농사굿은 원형에서 상쇠를 따라 도열하며 시작된다. 이 굿은 풍농을 기원하는 놀이라 할 수 있다. 법고잽이들은 상모를 돌리면서 ①씨뿌리기, ②모찌기, ③모내기, ④김매기, ⑤벼베기, ⑥타작, ⑦벼 끌어모으기, ⑧ 풍로 부치기, ⑨ 가마니 쌓기와 같은 순서로 농사짓는 농경모의를 한다. 모내기굿 과정에서는 아래의 차산 농요가 삽입된다.

바다야 같은 이 모구자리/ 장기판마치나마 하고나/ 장기알 바네사 두 달 만에/ 둘이 없어서 몬 도으겠네
–모내기 굿 노래

모야 모야 노랑 모야/ 니 언제 커가 열매 열래/ 이달 커고 훗달 커고/ 칠팔월에 열매 열지
–모 찌면서 하는 노래

서 마지기 이 논에서/ 모를 심어서 장가갈레라/ 우리야 부모님 산소 덕에/ 솔을 심어서 장가가로다/ 이 산 저 산 양 산 중에/ 울고 가는 두견새야/ 거지야 봉산 어데 두고/ 야산 중에서 슬피 우노
–모심으면서 하는 노래

해가 졌네 해가 졌네/ 앞산방에 해가 졌네/ 방긋 방실 웃는 날에/ 못 가 보고서 해가 졌네/ 오늘 해가 다 졌는데/ 산골마다 연기 난다/ 우리야 부모님은 어데 가고/ 연기 낼 줄 모르던가
–저녁에 부르는 노래

농작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형용은 다가오는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김매기 굿이 끝나면 장구놀이, 북놀이, 12발 상모놀이 등이 행하여진다.
8) 장구놀이: 장구잽이들이 원의 중심으로 들어가 이열횡대로 서서 마주보고 장구를 치다가 자리바꾸기와 원으로 들어갔다 물러서는 등의 행진무를 한다.
9) 북춤: 북잽이들이 빠른 자진모리로 흥겹게 춤을 추다가 북을 오른발에 받치고 제자리에서 왼쪽으로 회전한다.
10) 조름굿(판굿): 차산농악의 절정 부분으로서, 벼 가마를 모두 모아 두고 농사의 풍작을 기뻐하며 벌이는 굿이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원진을 돌면서 신나게 쇠를 몰아간다.
11) 오방굿(뚤뚤 말기): 1년 농사를 다 모아 두고 천왕을 배불리 먹이고 섬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천왕기와 농기, 태평소, 나무 나발 등을 원 중심에 두고 조름쇠를 치며 나선으로 똘똘말이를 하고 푸는 진법을 동서남북과 중앙 등 5방으로 행한다.

특징 및 의의

청도차산농악은 풍각면을 중심으로 한 마을 단위의 위세 다툼의 장이라 할 수 있는 천왕기 싸움을 기반으로 발전된 농악이다. 청도차산농악은 농악놀이에 춤과 민요가 삽입되어 있는데, 경상도 악무의 특징인 빠르고 흥겨운 굿거리장단에 덧뵈기춤이 일품으로 나타난다. 가락은 12가지의 변화를 가지는 놀이에 36종류의 장단(12가락 36마치)이 있으며, 판굿의 각거리는 쇠의 장단에 따라 여러 진법이 연차적으로 전개된다. 또한 농사굿을 노래와 함께 펼치고 있다는 점도한 가지 특징이다. 청도차산농악은 꿋꿋하고 향토적인 예스러움과 질박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장단을 외가락으로 빨리 몰아가는 경우가 많아 소박하고 씩씩한 느낌을 주며, 경북농악의 대표성을 지니고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농악(정병호, 열화당, 1986), 청도 예술 창간호(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청도지부, 2006), 청도의 지정 문화재(청도군, 2012), 청도차산농악(김택규, 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 경상북도, 1980), 청도차산 농악에 관한연구(권선오,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9), 한국의 농악-영남(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수서원, 1997).

청도차산농악

청도차산농악
한자명

清道车山农乐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남성진(南聖辰)

정의

경상북도 청도 풍각면 차산리에서 전승되는 농악.

개관

청도차산농악은 경북 청도 풍각면의 여러 마을 사이에 벌어진 천왕기天王旗 싸움에서 발전한 농악 놀이 중 하나이다. 차산리車山里는 속칭 신라 고촌이라 불릴 만큼 역사가 깊은 마을로 130여 가구가 농사에만 의존해 온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차산리의 이름은 마을 앞 들판을 구릉과 산등성이가 둥글게 둘러싼 모습이 흡사 수레바퀴 같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차산리는 상차上車, 중차中車, 하차下車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며 남서 방향으로 하천이 흐른다. 앞에 수리산이 있으므로 차산리라 하였다.
경북과 경남의 도계에 접하고 있는 차산리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정초가 되면 풍각면과 고개 너머 창녕의 여러 마을 두레들이 모여 화려한 천왕기 싸움을 펼쳐 왔다. 많을 때는 15~16개 마을이 장터에서 화려한 천왕기 싸움을 벌였다. 천왕기는 경북 청도 풍각면 일대의 모든 마을이 소유하고 있는 깃발이다. 차산리의 천왕기는 고종이 즉위한 189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깃대와 기, 오색 수건, 헝겊 그리고 꿩털로 이루어져 있다. 깃대는 길이 약 11m, 둘레 약 20㎝의 청죽靑竹이며, 윗부분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대는 총 38마디이며, 각 마디는 30~40㎝로 되어있다. 천왕기의 밑뿌리는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에 절대 잘라서는 안 된다고 한다. 기는 가로 210㎝, 세로 140㎝의 물이 빠지지 않는 천으로 만들었다. 오색 수건은 여덟 개이며, 헝겊은 기에 옷을 입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차산리의 깃발은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등 원색으로만든 여섯 개의 헝겊으로 이루어져 있다. 꿩털은 암수의 구별 없이 깃털을 뽑아서 기의 끝에 단다. 청도차산농악의 상쇠 김오동에 따르면, 오색 수건을 새로이 마련할 경우, 아들 갖기를 원하는 집에서 수건을 만들어 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천왕기는 본래 당제를 올리기 전 ‘신내림’을 받을 때 이용되던 것인데, 마을 별로 두레싸움을 벌이면서 놀이의 형태로 변화되었다. 이것이 천왕기 싸움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추측된다. 천왕기 싸움은 매년 정월 11일, 풍각 장날에 맞춰 여러 가지 색으로 화려하게 단장한 길이 6~8m에 가까운 천왕기를 앞세우고 마을 별로 농기와 농악대가 어울려 고갯마루와 장터에서 서로 위세를 자랑하며 즐기던 놀이이다. 치장된 천왕기를 가지고 행하는 천왕기 싸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차산리 깃발이 고종 때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아서 유래는 그보다 앞설 것으로 추정된다. 천왕기 싸움은 청도 풍각을 중심으로 한 마을 간의 세 다툼의 장으로 모든 마을 사람들이 거의 참여하였다. 여기에 참석하지 않으면 골을 매거나 하여 상당히 신경을 곤두세워서 마을의 힘을 과시하였다.
천왕기 싸움은 주로 해가 진 저녁때부터 행해진다.천왕기를 앞세운 농악단이 농악을 울리고 그 뒤에 마을의 유지들이 뒤따르면서 풍각장으로 내려간다. 풍각장터에 도달하면 각 마을 사람들이 천왕기를 중심으로 길 복판에 진을 치고 있다. 이때 그들에게 천왕기를 굽히고 조름쇠를 치면서 인사를 하지 않으면 바로 서로의 기를 맞대고 싸움이 일어난다. 천왕기 싸움이 벌어질 때면 많을 경우 15~16개 마을이 참여하는데, 힘이 약한 마을은 참가하지 않을 때도 있다. 천왕기 싸움에서 만약 지면 마을의 유지를 비롯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원망을 사게 될 뿐만 아니라 천왕기를 비롯한 농악기를 없앤다. 그럼 다음 해에 새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마을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한다. 차산농악은 바로 이천왕기(서낭기) 싸움과 지신밟기 등을 기초로 발전한 농악이라 할 수 있다. 경상도 남부 지역의 모의 농사굿의 대표적인 형태로 경상도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알려진 농악 놀이이다.
청도차산농악은 상쇠 김오동金五同을 통해 가락과 판굿이 전수되었다. 김오동은 청도 풍각면 차산리에서 태어났다. 당시 마을 상쇠인 큰형 김시동의 영향을 받아 성장기에 농악이나 농요·지신밟기·무굿을 자연스레 접하고 성장하였다. 광복 이후 마을 선·후배나 동기들과 모여 농악 기물을 사서 농악 연습으로 신명풀이를 하고, 소시장에 가서는 주막에서 가무악이 어우러진 풍악을 울렸다. 1950년대 중반부터는 농악단을 꾸리고 농악 대회에 나가기 시작하여 창녕 3·1 문화제, 밀양 아랑제, 대구 전국 농악 대회, 진주 개천제 등 수많은 대회에 나가 수상하였다. 또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하여 수상한 뒤, 그 전통성을 인정받아 1980년 12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김오동의 노력에 힘입어 1991년 청도 차산농악전수관이 착공되어 몇 차례의 증축 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놀이는 대부분 마을의 가장 넓은 장소에서 행해졌지만 차산농악전수관을 건립한 다음부터는 전수관에서 행해지고 있다. 청도차산농악의 보존과 전승에 기여하던 김오동은 1990년대 후반부터 지병인 당뇨병으로 활동을 못하다가 2002년 80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 50여 명의 회원들이 차산농악보존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2월 청도천에서 개최되는 정월대보름 행사를 시작으로 청도 소싸움 축제 식전 행사와 매년 9월 차산농악 정기발표회를 개최하고 청도의 각종 축제에 초청되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여름과 겨울을 맞아 대학생 연수를 정기적으로 실시하여 청도차산농악을 전수하고 있다.

내용

청도차산농악은 주로 정월대보름에 한 해의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동제를 올릴 때 행해졌던 놀이이다. 동제 과정에서 잡신을 물리치고 신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특히 천왕기를 모시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정확한 시작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차산리를 비롯한 풍각면 일대 대부분의 마을에서 행해졌던 대표적 정월대보름 놀이 중 하나였다. 농악단의 편성은 천왕기(서낭기), 나팔잽이, 고동잽이, 상쇠, 중쇠, 설징, 종징 2명, 설북, 종북 1~4명, 끝북, 설장구, 종장구 1~4명, 끝장구, 설법고, 종법고 1~4명, 끝법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잡색으로는 색시, 양반, 포수 등이 있다.
차산농악대의 복색을 보면 천왕기잽이, 나팔잽이, 고동잽이는 바지저고리에 수건을 쓴다. 상쇠를 비롯하여 종쇠, 끝쇠는 바지저고리에 쾌자를 입고 허리와 양 어깨에 능주(색띠), 즉 채복을 걸친다. 허리에는 붉은 띠, 왼쪽 어깨에는 남색 띠, 오른쪽 어깨에는 노란 띠를두른다. 그리고 머리에는 전립을 쓴다. 징잽이와 북잽이, 장구잽이는 채복에 고깔을 쓴다. 법고잽이는 채복에 상모꼬리가 달린 전립을 쓴다. 색시는 붉은 치마에 초록 저고리를 입으며 고깔을 쓰고 손수건을 든다. 발에는 여자 고무신을 신는다. 양반은 흰 도복에 관을 쓰고 띠를 두르며 짚신을 신는다. 손에는 담뱃대와 부채를 든다. 포수는 검정색 바지와 긴 저고리를 입고 허리띠를 두르고 검은 수건을 동인다. 조총을 들고 살메망태를 멘다. 망태 속에는 도시락과 숟가락이 들어있고, 겉에는 너구리·토끼·꿩 등의 가죽을 매달아 놓는다. 차산농악의 종류에는 지신밟기와 판굿이 있다. 그 내용과 형태를 보면 아래와 같다.

지신밟기
청도차산농악의 지신밟기는 연중행사로서 일반적으로 정월대보름에 하며, 마을 어른들과 상쇠가 모여 협의를 하고 일자와 장소를 정한다. 지신밟기를 행하기 며칠 전에 농악기, 집기를 점검하고 손질한다. 지신밟기는 일반적으로 일행을 청하는 집을 밟아 주는데, 보통 여력이 있거나 신앙심이 두텁고 발복하기를 원하거나 당해 재앙이 끼지 않기를 빌고자 하는 집에서 행해진다.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정하게 술상을 차려 놓고 제상에는 포, 과일, 물, 쌀, 산작, 술, 돈, 촛대 2개, 잔, 향, 주전자 등을 차려 놓는다. 술상은 그 집의 인심을 알 수가 있기 때문에 거하게 장만한다. 농악대는 쇠, 장구, 북, 징, 나발, 상모, 양반, 포수, 색시, 기타 수행원으로 구성된다. 포수는 망나니꾼이기도 해서 심술도 부리고 장난도 친다. 이때 깃발은 농기와 천왕기 두 개로 구성된다. 행렬은 천왕기-농기-양반-나발-고동-상쇠-부쇠-징-북-장구-상모(소고)의 순으로 선다. 지신밟기의 절차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당굿: 농악대원은 당에 올라가 당산굿을 치면서 농악을 하겠다는 것을 고한다.
2) 문굿: 농악대원은 대문 앞에서 “주인 양반 문 여소, 나그네 손님 들어간다.” 하고 소리친다.
3) 마당굿: 주인이 승낙이 내리면 집으로 들어가 마당을 한 바퀴 돌면서 농악을 한바탕 친다. 이때 몇몇 잽이들은 마루에 올라가 성주풀이로 들어간다.
4) 성주굿(성주풀이): 상쇠의 선소리로 성주풀이 사설을 읊는다.
5) 조왕굿: 부엌(정지)으로 들어가 상쇠의 선소리로 사설을 읊는다.
6) 장독굿(장독풀이): 장독대에 가사 상쇠의 선소리로 사설을 읊는다.
7) 용왕굿(우물굿): 샘에 가서 상쇠의 선소리로 사설을 읊는다.
8) 곡간굿(두지, 뒤지 지신), 9) 정낭굿(변소), 10) 소마굿, 11) 방아굿, 12) 붓틀굿(대문굿)의 순서로 상쇠의 선소리에 맞춰 사설을 읊는다.

지신밟기는 집 안에 있는 가신을 밟아 위로하고 덕담을 하기 때문에 집 안을 두루 돌게 된다. 한 바퀴 돌고 나면 마당에 차린 술상 앞에 모여 술과 음식을 먹고 농악을 한바탕 치고 다음 집으로 향하게 된다.
2. 판굿
청도차사농악의 판굿의 편성은 약 50여 명으로 구성되는데, 각 25명으로 구성된 두 농악대가 먼저 태평소, 나팔, 천왕기, 농기를 세우고 삼열 종대로 나간다. 그리고 자진모리장단으로 바뀌면서 상쇠의 지휘에 따라 관중에게 인사를 한다. 이때 천왕기와 농기 그리고 태평소와 나팔 등이 일렬로 전면에 서고 나머지는 상쇠의 지휘를 받게 된다. 쇠가락으로는 질굿·자진모리·조름쇠·천왕굿가락·무정작궁·덧뵈기·호호딱딱·부정굿가락·굿거리(살풀이) 등이 있다. 판굿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굿거리굿(춤굿): 천왕기와 농기를 세우고 삼열 횡대로 서고 상쇠가 조름쇠를 치고 마치면 지휘에 따라 관중에게 인사한다. 이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줄로 행진하면서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느릿한 덧배기춤을 춘다. 이때 상쇠를 비롯한 4명의 쇠꾼들은 원의 중심으로 들어가 무정작궁 가락을 치며 정井자로 서서 잽이들을 지휘한다.
2) 부정굿(차츰걸음): 굿거리굿에서 쫓아내지 못한 잡귀를 마저 쫓아내기 위한 놀이로, 세마치장단으로 이루어진다. 상쇠가 쇠를 끊으면 일렬 원진이 이열 동심원이 되게끔 진을 만든다. 이는 혼자서는 잡신이 도망가지도 않고 쫓을 수도 없으니, 둘씩 가면서 잡신을 쫓고 사고 없이 평안하게 해 달라는 뜻으로 행하는 것이다.
3) 연풍기굿(호호딱딱): 호호딱딱 가락을 치며 이열 원진이 다시 일렬 원진으로 되면서 훨훨 뛰며 돌아간다. 이 굿거리는 잡귀를 몰아냈으므로 기분이 좋다는 뜻이라 한다.
4) 자진모리굿(막조우기): 자진모리를 치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계속 원진을 도는데, 이때 덧배기장단을 당겨 붙여 흥을 돋운다. 앞에서 행한 연풍기굿의 두 개 원을 하나의 원으로 만들기 위하여 쇠를 당겨 부친다. 이 굿거리는 부정굿에서 잡신을 쫓아내고, 연풍기굿에서 기분이 좋은 상태를 계속 고조시켜 농악의 흥을 돋우기 위한 것이다.
5) 물레굿(미영잦기): 무명 농사를 지어 베를 짜고 물레를 젓는 행위를 상징하며,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이다. 물레굿은 실을 푸는 형용으로, 본목(면)을 짜서 옷을 해 입어야 농사도 짓고 활동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상쇠가 쇠를 꺾으면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마주보면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하고(2석), 다시 일렬 원진하다가 상쇠가 쇠를 꺾으면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계속 회전하며(3석) 또 다시 일렬 원진한다. 그리고 네 번째 쇠를 끊으면 네 사람이 한 조가 되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4석).
6) 진굿(2석, 3석, 4석): 무명으로 옷을 해 입은 뒤 일하러 갈 때 열을 지어 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옛날의 두레굿 형태가 남은 자취로 보인다. 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상쇠가 쇠를 꺾으면 시계 방향으로 이열 원진하고(2석), 다시 상쇠가 쇠를 꺾으면 삼열 원진하며(3석), 또다시 상쇠가 쇠를 꺾으면 네 개의 원을 만들어 사열 원진하고(4석), 그 다음은 역으로 상쇠가 쇠를 꺾어 신호를 하면 사열 원진이 삼열, 이열로 원진하고 결국 일열원진으로 된다. 이때 진굿과 물레굿이 비슷한 것으로 보이나, 진굿은 원을 따라 돌고 물레굿은 각 단위별로 조를 이루어 도는 것이 다르다.
7) 농사굿: 상쇠의 지휘를 받아 법고잽이들이 상모를 돌리면서 농사짓는 형용을 하는 굿이다. 농사굿은 원형에서 상쇠를 따라 도열하며 시작된다. 이 굿은 풍농을 기원하는 놀이라 할 수 있다. 법고잽이들은 상모를 돌리면서 ①씨뿌리기, ②모찌기, ③모내기, ④김매기, ⑤벼베기, ⑥타작, ⑦벼 끌어모으기, ⑧ 풍로 부치기, ⑨ 가마니 쌓기와 같은 순서로 농사짓는 농경모의를 한다. 모내기굿 과정에서는 아래의 차산 농요가 삽입된다.

바다야 같은 이 모구자리/ 장기판마치나마 하고나/ 장기알 바네사 두 달 만에/ 둘이 없어서 몬 도으겠네
–모내기 굿 노래

모야 모야 노랑 모야/ 니 언제 커가 열매 열래/ 이달 커고 훗달 커고/ 칠팔월에 열매 열지
–모 찌면서 하는 노래

서 마지기 이 논에서/ 모를 심어서 장가갈레라/ 우리야 부모님 산소 덕에/ 솔을 심어서 장가가로다/ 이 산 저 산 양 산 중에/ 울고 가는 두견새야/ 거지야 봉산 어데 두고/ 야산 중에서 슬피 우노
–모심으면서 하는 노래

해가 졌네 해가 졌네/ 앞산방에 해가 졌네/ 방긋 방실 웃는 날에/ 못 가 보고서 해가 졌네/ 오늘 해가 다 졌는데/ 산골마다 연기 난다/ 우리야 부모님은 어데 가고/ 연기 낼 줄 모르던가
–저녁에 부르는 노래

농작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형용은 다가오는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김매기 굿이 끝나면 장구놀이, 북놀이, 12발 상모놀이 등이 행하여진다.
8) 장구놀이: 장구잽이들이 원의 중심으로 들어가 이열횡대로 서서 마주보고 장구를 치다가 자리바꾸기와 원으로 들어갔다 물러서는 등의 행진무를 한다.
9) 북춤: 북잽이들이 빠른 자진모리로 흥겹게 춤을 추다가 북을 오른발에 받치고 제자리에서 왼쪽으로 회전한다.
10) 조름굿(판굿): 차산농악의 절정 부분으로서, 벼 가마를 모두 모아 두고 농사의 풍작을 기뻐하며 벌이는 굿이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원진을 돌면서 신나게 쇠를 몰아간다.
11) 오방굿(뚤뚤 말기): 1년 농사를 다 모아 두고 천왕을 배불리 먹이고 섬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천왕기와 농기, 태평소, 나무 나발 등을 원 중심에 두고 조름쇠를 치며 나선으로 똘똘말이를 하고 푸는 진법을 동서남북과 중앙 등 5방으로 행한다.

특징 및 의의

청도차산농악은 풍각면을 중심으로 한 마을 단위의 위세 다툼의 장이라 할 수 있는 천왕기 싸움을 기반으로 발전된 농악이다. 청도차산농악은 농악놀이에 춤과 민요가 삽입되어 있는데, 경상도 악무의 특징인 빠르고 흥겨운 굿거리장단에 덧뵈기춤이 일품으로 나타난다. 가락은 12가지의 변화를 가지는 놀이에 36종류의 장단(12가락 36마치)이 있으며, 판굿의 각거리는 쇠의 장단에 따라 여러 진법이 연차적으로 전개된다. 또한 농사굿을 노래와 함께 펼치고 있다는 점도한 가지 특징이다. 청도차산농악은 꿋꿋하고 향토적인 예스러움과 질박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장단을 외가락으로 빨리 몰아가는 경우가 많아 소박하고 씩씩한 느낌을 주며, 경북농악의 대표성을 지니고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농악(정병호, 열화당, 1986), 청도 예술 창간호(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청도지부, 2006), 청도의 지정 문화재(청도군, 2012), 청도차산농악(김택규, 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 경상북도, 1980), 청도차산 농악에 관한연구(권선오,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9), 한국의 농악-영남(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수서원,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