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소포걸군농악(珍岛素浦乞军农乐)

진도소포걸군농악

한자명

珍岛素浦乞军农乐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송기태(宋奇泰)

정의

전라남도 진도 지산면 소포리에서 전승되는 농악.

개관

소포걸군농악은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걸궁패농악으로 가장하여 적진을 탐색하고 작전을 펼친 것에서 유래를 찾는다. 이와 관련하여 농악을 군사 작전처럼 표현한 문서가 전한다. 이는 전 진도문화원장 차근현車根炫이 과거 농악대 집사를 맡아 오던 주찬계朱贊桂, 1896~1980에게 받은 제목 미상의 농악 관련 문서다. 이 문서 본문의 ‘전우진도군모면모리대법당중수차(全右珍島郡某面某里大法堂重修次)’라는 문구로 보아, 1896년 이전에 기록된 걸립패의 문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에 농악을 군사 작전처럼 설명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진도소포걸군농악에서 구전되는 계보를 살펴봐도, 100여 년간 기능이 끊이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다. 1900년대 초·중반까지는 인근 섬과 마을을 다니며 걸궁 활동을 했고, 1964년 소포걸군농악단을 설립하여 남도문화제, 영등축제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88년 제17회 남도문화제와 1995년 제23회 남도문화제에 진도 대표 민속팀으로 참가해 장려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다. 소포리 마을 주민들이 보존회를 결성하여 보존·전승하고 있다.

내용

  1. 농악치배 및 악기
    소포리에서는 농악을 군고라고 하고, 걸립하면서 치는 농악을 걸군이라고 한다. 전승과정에서 군사적 요소와 걸립의 기능이 결합되어 ‘걸군농악’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치배들을 군중이라고 부르고, 집사, 조리중, 포수, 무동, 창부, 농기, 영기, 꽹과리, 징, 북, 장구, 농기(상모), 소고 등으로 구성된다. 행렬이 이동할 때는 ‘조리중-포수-무동-기수-집사-창부-꽹과리-징-장구-북-농기(상모)-소고’의 순이다. 각각의 치배들은 농악 연희자로서 독자적인 역할이 맡고 있지만, 군사적인 기능도 부여받고 있다.
    1) 조리중: 얼굴을 여성으로 가장한 광대를 쓰고 도복을 입었으며, 한삼을 흰색으로 길게 달고 머리에는 짚으로 엮은 모자 끝에 흰색 끈을 단다. 맨 앞에 서서 집집을 방문한다. 군사적으로는 한삼으로 적의 동향을 아군에게 신호를 하는 역할을 한다.
    2) 포수: 총을 들고 광대를 썼으며, 머리에 ‘통정대부’라는 벼슬 이름을 써 붙인 노루가죽 모자를 썼다. 도복을 입고 망태를 등에 짊어지고 긴 담뱃대를 가졌다. 총성으로 아군의 위치를 상보에 신호하고, 적을 위협하여 아군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3) 무동: 7세 남아로 도령복을 입고 배자 모자를 쓴다. 사람의 어깨에 서서 춤을 춘다. 군사적으로는 사람의 어깨 위에 서서 아군과 연락을 주고받는 역할이라고 한다.
    4) 기수: 흰색 바지저고리 옷차림을 하고 머리에 고깔을 쓴다. 영기는 치배들의 맨 앞에 서고, 언제나 곧게 세워 들고 다닌다. 군사적으로는 작전 시 선두에서 아군의 진로를 명하며 이끌어 주는 역할이다.
    5) 집사: 걸군농악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인물로 치배들을 통솔한다. 흰옷에 오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관을 쓰고 한삼을 달며, 손에는 지휘봉을 든다. 군사적으로는 작전 시 선두에서 아군의 진로를 명하며 이끌어 준다.
    6) 창부: 장삼을 입고 얼굴에 흰 종이 가면을 쓰고 머리에는 모자를 쓴다. 적을 가장假裝한 자로서 도복을 입고, 머리에는 붉은 모자에 ‘창부’라는 검정색 글씨로 쓴 모자를 쓴다.
    7) 꽹과리: 흰색 바지저고리 옷차림에 삼색띠를 두르고 돌무채 병거지 상모(전립)를 쓴다. 군중을 통솔하는 첫 신호를 치며, 군중의 동향을 이루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8) 징: 흰색 바지저고리 옷차림에 머리에 고깔을 쓴다. 징은 주야를 막론하고 가장 멀리 들리는 소리로, 상부에 소리로 아군의 동향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한다.
    9) 장구: 흰색 바지저고리 옷차림에 머리에 고깔을 쓴다. 장구는 소리가 연하여 군중의 흥을 북돋아 주며 북의 역할도 한다.
    10) 북: 흰색 바지저고리 옷차림에 머리에는 고깔을 쓴다. 북은 아군의 사기를 북돋아 적의 진지로 진격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이다.
    11) 농기(상모): 흰색 바지저고리에 청색쾌자를 입고 삼색띠를 두르며 전립을 쓴다. 굿판에서 상모를 돌리며 치배들을 따라다닌다. 전립에 돌무채를 달고 돌무채 끝에는 흰 닭털 한주먹을 달아 어두운 밤에 신호표로도 사용한다.
    12) 소고: 흰색 바지저고리에 고깔을 쓴다. 작은 북을 치면서 춤을 춘다. 적군이 나타나면 농기와 함께 행동을 한다. 적군을 포위하는 역할을 한다.

  2. 굿의 종류와 내용
    소포걸군농악은 정월 당산제 기간에 당산굿과 매굿(마당밟이), 샘굿 등을 행하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걸궁을 하였다. 정월의 농악은 당제사로 시작하여 샘굿, 들당산굿, 가정굿(뜰밟이), 바탕굿(판굿), 날당산굿으로 끝난다.
    소포걸군농악의 가락은 일채, 이채, 삼채, 사채, 오채, 육채, 영산다드래기, 살풀이가락, 질굿가락, 가진일채, 가진삼채, 진싸는가락, 헐싸굿가락 등이 있다. 소포농악의 가락은 대체로 속도가 느리다. 상모가 있어도 채상모가 아니기 때문에 빠른 속도를 요구하지 않는다.
    1) 당제사: 제관과 군중이 당나무 앞에 정렬하여 제사를 지낸다. 집사는 “당할머니, 오늘부터 소포걸군농악을 치게 되오니 끝나는 날까지 당할머니께서 많이 도와주시기를 축원합니다.”라고 축문을 읊는다. 군중들은 일채부터 삼채까지를 치면서 당에서 내려온다.
    2) 문재비굿(문잽이굿): 문재비굿은 걸궁패가 마을로 들어갈 때 마을에서 영기로 문을 세우고 걸궁패의 실력을 점검하는 농악이다. 걸궁패가 마을 앞에서 당산굿을 치고, 마을에서 수수께끼로 내는 문제들을 풀어낸다.그리고 격식을 갖추어 문서나 말로 문장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걸궁패가 다른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농악(군고)을 절차에 맞춰 잘 쳐야 하고, 지혜로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며, 격식을 갖춰서 입장해야 한다.
    3) 샘굿: 마을의 공동 우물에서 물이 마르지 않기를 기원하며 치는 농악이다. 당제사를 마친 뒤 질굿을 치며 우물로 이동한다. 우물에 도착하면 문전굿을 치고, 가진일채와 삼채를 친 다음 맺는다. 상쇠와 군중이 “엇다 그 샘물잘난다. 울떨 울떡 잡수쇼.”라고 외친 뒤 삼채를 친다.
    4) 가정굿(뜰밟이): 집집마다 마당밟이를 하며 치는 농악이다. 먼저 마을 이장 댁부터 시작하여 각 가정을 돌며 농악을 친다. 군중이 집 사립 앞에 도착하면 사립(새립)굿을 치고, 집 안으로 입장한다. 집 안에서는 먼저 마당을 돌며 마당굿을 치고, 성주굿, 조왕굿, 외양간굿 등을 치며 가정의 평안과 복을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집 안을 한 바퀴 돌고 나온다.
    5) 바탕굿(판굿): 진도 소포리에서는 일반적인 판굿의 형태를 바탕굿이라고 하여 연행한다. 바탕굿은 들당산에서 시작하여 마당놀이, 바탕놀이(인원점검), 농기놀이, 날당산굿의 순서로 진행된다. 굿의 내용은 군사놀이의 형태를 띤다. 들당산굿은 전쟁에서 왜적을 발견하여 포위 참수하는 과정, 청령을 내어 승전고를 울리는 헐사굿 과정으로 설정된다. 바탕놀음은 아군의 인원 점검을 하고 잔류병이나 적군을 수색하는 과정, 치배들의 개인놀음은 아군의 신체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설정된다. 마지막으로 날당산은 후퇴 작전으로 설명된다.
    ①당맞이굿(들당산): 칠채가락을 치며 원진을 만들어밖을 향해 인사한다. 인사가 끝나면 당맞이굿으로 들어간다. 일채를 치기 시작하면 조리중이 한삼으로 적이 있다고 신호를 하면서 창부를 쫓아간다. 군중이 창부를 쫓아 진을 싸고 채굿을 친다. 창부의 목을 베는 의미로 창부 모자를 영기에 달고 우측으로 세 번 돌린다. 전쟁에서 승리한 의미로 집사가 대포수를 불러 방포하고 승전고를 울린다.
    ②마당놀이: 집사의 청령이 끝나면 인원 점검을 위한 마당놀이가 진행된다. 원진을 만들어서 군중이 제자리에 앉으면 상쇠가 군중 사이를 지나가면서 다섯 명씩 일으켜 세운다. 그러면 군중들이 상쇠를 따라 차례대로 이동하면서 원진을 만든다.
    ③바탕놀이: 잔류병이나 적군을 수색하는 바탕놀이를 시작한다. 상쇠가 군중을 종대로 세우고, 농기를 데리고 무대 가운데로 입장하여 전진후퇴 등을 하는 진풀이를 한다.
    ④농기놀이: 아군의 신체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농기놀이를 한다. 농기놀이는 나비놀음이라고도 한다. 상쇠는 각각의 악기들을 정면으로 데리고 나와서 굿거리장단부터 자진장단까지 치며 놀이를 시키고, 놀이가 끝나면 군중 속으로 원위치 시킨다. 먼저 농기(상모)들이 나와서 개인놀이를 펼치고, 북놀음, 장구놀음, 소고놀음을 차례대로 행한다. 각각의 놀이들 중에서 농기(상모)들의 놀이가 가장 잘 짜여 있다.
    ⑤날당산: 소포걸군농악의 후퇴 작전에 해당한다. 상쇠가 군중을 종대형으로 정렬시킨 뒤 인원을 1/2~1/3로 나누어 뒤쪽으로 빼낸다. 군중 전체가 뒤로 빠지면 자리를 옮겨 다시 굿을 시작한다.
    ⑥끝인사: 악기별로 원을 만들어 가락을 연주하다가 전체가 하나의 원진을 만들고 가락을 맺는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철수한다.

특징 및 의의

진도소포걸군농악은 다른 지역의 농악과 비교했을 때 다음과 같은 특징과 의의가 있다. 첫째, 군사놀이의 성격이 강하여 농악도 군고·걸군이라고 부르고 판굿(바탕굿) 전체 과정이 군사적인 의미를 띠고있다. 둘째, 농악의 격식과 절차를 설명하는 문서가 남아있다. 셋째, 걸궁패가 마을로 입장할 때 예능·지혜·격식을 따지는 절차가 있다. 넷째, 개인놀이 중에서 상모를 돌리는 농기들의 놀이와 양손으로 북을 치는 북놀이가 특징적이다. 다섯째, 학식과 지혜를 갖춘 집사가 농악대를 통솔한다.

참고문헌

진도의 농악북놀이(국립남도국악원, 진도군·국립남도국악원,2009), 풍물굿 예능의 소통과 원형 창출-진도 소포리 풍물굿을 대상으로(송기태, 남도민속연구23, 남도민속학회, 2011).

진도소포걸군농악

진도소포걸군농악
한자명

珍岛素浦乞军农乐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송기태(宋奇泰)

정의

전라남도 진도 지산면 소포리에서 전승되는 농악.

개관

소포걸군농악은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걸궁패농악으로 가장하여 적진을 탐색하고 작전을 펼친 것에서 유래를 찾는다. 이와 관련하여 농악을 군사 작전처럼 표현한 문서가 전한다. 이는 전 진도문화원장 차근현車根炫이 과거 농악대 집사를 맡아 오던 주찬계朱贊桂, 1896~1980에게 받은 제목 미상의 농악 관련 문서다. 이 문서 본문의 ‘전우진도군모면모리대법당중수차(全右珍島郡某面某里大法堂重修次)’라는 문구로 보아, 1896년 이전에 기록된 걸립패의 문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에 농악을 군사 작전처럼 설명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진도소포걸군농악에서 구전되는 계보를 살펴봐도, 100여 년간 기능이 끊이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다. 1900년대 초·중반까지는 인근 섬과 마을을 다니며 걸궁 활동을 했고, 1964년 소포걸군농악단을 설립하여 남도문화제, 영등축제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88년 제17회 남도문화제와 1995년 제23회 남도문화제에 진도 대표 민속팀으로 참가해 장려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다. 소포리 마을 주민들이 보존회를 결성하여 보존·전승하고 있다.

내용

농악의 치배 및 악기
소포리에서는 농악을 군고라고 하고, 걸립하면서 치는 농악을 걸군이라고 한다. 전승과정에서 군사적 요소와 걸립의 기능이 결합되어 ‘걸군농악’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치배들을 군중이라고 부르고, 집사, 조리중, 포수, 무동, 창부, 농기, 영기, 꽹과리, 징, 북, 장구, 농기(상모), 소고 등으로 구성된다. 행렬이 이동할 때는 ‘조리중-포수-무동-기수-집사-창부-꽹과리-징-장구-북-농기(상모)-소고’의 순이다. 각각의 치배들은 농악 연희자로서 독자적인 역할이 맡고 있지만, 군사적인 기능도 부여받고 있다.
1) 조리중: 얼굴을 여성으로 가장한 광대를 쓰고 도복을 입었으며, 한삼을 흰색으로 길게 달고 머리에는 짚으로 엮은 모자 끝에 흰색 끈을 단다. 맨 앞에 서서 집집을 방문한다. 군사적으로는 한삼으로 적의 동향을 아군에게 신호를 하는 역할을 한다.
2) 포수: 총을 들고 광대를 썼으며, 머리에 ‘통정대부’라는 벼슬 이름을 써 붙인 노루가죽 모자를 썼다. 도복을 입고 망태를 등에 짊어지고 긴 담뱃대를 가졌다. 총성으로 아군의 위치를 상보에 신호하고, 적을 위협하여 아군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3) 무동: 7세 남아로 도령복을 입고 배자 모자를 쓴다. 사람의 어깨에 서서 춤을 춘다. 군사적으로는 사람의 어깨 위에 서서 아군과 연락을 주고받는 역할이라고 한다.
4) 기수: 흰색 바지저고리 옷차림을 하고 머리에 고깔을 쓴다. 영기는 치배들의 맨 앞에 서고, 언제나 곧게 세워 들고 다닌다. 군사적으로는 작전 시 선두에서 아군의 진로를 명하며 이끌어 주는 역할이다.
5) 집사: 걸군농악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인물로 치배들을 통솔한다. 흰옷에 오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관을 쓰고 한삼을 달며, 손에는 지휘봉을 든다. 군사적으로는 작전 시 선두에서 아군의 진로를 명하며 이끌어 준다.
6) 창부: 장삼을 입고 얼굴에 흰 종이 가면을 쓰고 머리에는 모자를 쓴다. 적을 가장假裝한 자로서 도복을 입고, 머리에는 붉은 모자에 ‘창부’라는 검정색 글씨로 쓴 모자를 쓴다.
7) 꽹과리: 흰색 바지저고리 옷차림에 삼색띠를 두르고 돌무채 병거지 상모(전립)를 쓴다. 군중을 통솔하는 첫 신호를 치며, 군중의 동향을 이루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8) 징: 흰색 바지저고리 옷차림에 머리에 고깔을 쓴다. 징은 주야를 막론하고 가장 멀리 들리는 소리로, 상부에 소리로 아군의 동향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한다.
9) 장구: 흰색 바지저고리 옷차림에 머리에 고깔을 쓴다. 장구는 소리가 연하여 군중의 흥을 북돋아 주며 북의 역할도 한다.
10) 북: 흰색 바지저고리 옷차림에 머리에는 고깔을 쓴다. 북은 아군의 사기를 북돋아 적의 진지로 진격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이다.
11) 농기(상모): 흰색 바지저고리에 청색쾌자를 입고 삼색띠를 두르며 전립을 쓴다. 굿판에서 상모를 돌리며 치배들을 따라다닌다. 전립에 돌무채를 달고 돌무채 끝에는 흰 닭털 한주먹을 달아 어두운 밤에 신호표로도 사용한다.
12) 소고: 흰색 바지저고리에 고깔을 쓴다. 작은 북을 치면서 춤을 춘다. 적군이 나타나면 농기와 함께 행동을 한다. 적군을 포위하는 역할을 한다.

굿의 종류와 내용
소포걸군농악은 정월 당산제 기간에 당산굿과 매굿(마당밟이), 샘굿 등을 행하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걸궁을 하였다. 정월의 농악은 당제사로 시작하여 샘굿, 들당산굿, 가정굿(뜰밟이), 바탕굿(판굿), 날당산굿으로 끝난다.
소포걸군농악의 가락은 일채, 이채, 삼채, 사채, 오채, 육채, 영산다드래기, 살풀이가락, 질굿가락, 가진일채, 가진삼채, 진싸는가락, 헐싸굿가락 등이 있다. 소포농악의 가락은 대체로 속도가 느리다. 상모가 있어도 채상모가 아니기 때문에 빠른 속도를 요구하지 않는다.
1) 당제사: 제관과 군중이 당나무 앞에 정렬하여 제사를 지낸다. 집사는 “당할머니, 오늘부터 소포걸군농악을 치게 되오니 끝나는 날까지 당할머니께서 많이 도와주시기를 축원합니다.”라고 축문을 읊는다. 군중들은 일채부터 삼채까지를 치면서 당에서 내려온다.
2) 문재비굿(문잽이굿): 문재비굿은 걸궁패가 마을로 들어갈 때 마을에서 영기로 문을 세우고 걸궁패의 실력을 점검하는 농악이다. 걸궁패가 마을 앞에서 당산굿을 치고, 마을에서 수수께끼로 내는 문제들을 풀어낸다.그리고 격식을 갖추어 문서나 말로 문장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걸궁패가 다른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농악(군고)을 절차에 맞춰 잘 쳐야 하고, 지혜로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며, 격식을 갖춰서 입장해야 한다.
3) 샘굿: 마을의 공동 우물에서 물이 마르지 않기를 기원하며 치는 농악이다. 당제사를 마친 뒤 질굿을 치며 우물로 이동한다. 우물에 도착하면 문전굿을 치고, 가진일채와 삼채를 친 다음 맺는다. 상쇠와 군중이 “엇다 그 샘물잘난다. 울떨 울떡 잡수쇼.”라고 외친 뒤 삼채를 친다.
4) 가정굿(뜰밟이): 집집마다 마당밟이를 하며 치는 농악이다. 먼저 마을 이장 댁부터 시작하여 각 가정을 돌며 농악을 친다. 군중이 집 사립 앞에 도착하면 사립(새립)굿을 치고, 집 안으로 입장한다. 집 안에서는 먼저 마당을 돌며 마당굿을 치고, 성주굿, 조왕굿, 외양간굿 등을 치며 가정의 평안과 복을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집 안을 한 바퀴 돌고 나온다.
5) 바탕굿(판굿): 진도 소포리에서는 일반적인 판굿의 형태를 바탕굿이라고 하여 연행한다. 바탕굿은 들당산에서 시작하여 마당놀이, 바탕놀이(인원점검), 농기놀이, 날당산굿의 순서로 진행된다. 굿의 내용은 군사놀이의 형태를 띤다. 들당산굿은 전쟁에서 왜적을 발견하여 포위 참수하는 과정, 청령을 내어 승전고를 울리는 헐사굿 과정으로 설정된다. 바탕놀음은 아군의 인원 점검을 하고 잔류병이나 적군을 수색하는 과정, 치배들의 개인놀음은 아군의 신체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설정된다. 마지막으로 날당산은 후퇴 작전으로 설명된다.
①당맞이굿(들당산): 칠채가락을 치며 원진을 만들어밖을 향해 인사한다. 인사가 끝나면 당맞이굿으로 들어간다. 일채를 치기 시작하면 조리중이 한삼으로 적이 있다고 신호를 하면서 창부를 쫓아간다. 군중이 창부를 쫓아 진을 싸고 채굿을 친다. 창부의 목을 베는 의미로 창부 모자를 영기에 달고 우측으로 세 번 돌린다. 전쟁에서 승리한 의미로 집사가 대포수를 불러 방포하고 승전고를 울린다.
②마당놀이: 집사의 청령이 끝나면 인원 점검을 위한 마당놀이가 진행된다. 원진을 만들어서 군중이 제자리에 앉으면 상쇠가 군중 사이를 지나가면서 다섯 명씩 일으켜 세운다. 그러면 군중들이 상쇠를 따라 차례대로 이동하면서 원진을 만든다.
③바탕놀이: 잔류병이나 적군을 수색하는 바탕놀이를 시작한다. 상쇠가 군중을 종대로 세우고, 농기를 데리고 무대 가운데로 입장하여 전진후퇴 등을 하는 진풀이를 한다.
④농기놀이: 아군의 신체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농기놀이를 한다. 농기놀이는 나비놀음이라고도 한다. 상쇠는 각각의 악기들을 정면으로 데리고 나와서 굿거리장단부터 자진장단까지 치며 놀이를 시키고, 놀이가 끝나면 군중 속으로 원위치 시킨다. 먼저 농기(상모)들이 나와서 개인놀이를 펼치고, 북놀음, 장구놀음, 소고놀음을 차례대로 행한다. 각각의 놀이들 중에서 농기(상모)들의 놀이가 가장 잘 짜여 있다.
⑤날당산: 소포걸군농악의 후퇴 작전에 해당한다. 상쇠가 군중을 종대형으로 정렬시킨 뒤 인원을 1/2~1/3로 나누어 뒤쪽으로 빼낸다. 군중 전체가 뒤로 빠지면 자리를 옮겨 다시 굿을 시작한다.
⑥끝인사: 악기별로 원을 만들어 가락을 연주하다가 전체가 하나의 원진을 만들고 가락을 맺는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철수한다.

특징 및 의의

진도소포걸군농악은 다른 지역의 농악과 비교했을 때 다음과 같은 특징과 의의가 있다. 첫째, 군사놀이의 성격이 강하여 농악도 군고·걸군이라고 부르고 판굿(바탕굿) 전체 과정이 군사적인 의미를 띠고있다. 둘째, 농악의 격식과 절차를 설명하는 문서가 남아있다. 셋째, 걸궁패가 마을로 입장할 때 예능·지혜·격식을 따지는 절차가 있다. 넷째, 개인놀이 중에서 상모를 돌리는 농기들의 놀이와 양손으로 북을 치는 북놀이가 특징적이다. 다섯째, 학식과 지혜를 갖춘 집사가 농악대를 통솔한다.

참고문헌

진도의 농악과 북놀이(국립남도국악원, 진도군·국립남도국악원,2009), 풍물굿 예능의 소통과 원형 창출-진도 소포리 풍물굿을 대상으로(송기태, 남도민속연구23, 남도민속학회,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