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转碟)

한자명

转碟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김헌선(金憲宣)

정의

농악 가락에 맞춰서 특정한 막대기 위에 특정한 연장이나 손으로 쳇바퀴·대야·대접·접시 등을 돌리는 놀이.

내용

버나놀이는 문헌적 기록은 불분명하지만 일부 특정 그림 작품에 그림으로 남아 있다. 이를 주목하면 역사적 내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일본 양명문고陽明文庫에 소장된 <은영연도恩榮宴圖>(1580), 아극돈阿克敦,1685~1756의 <봉사도奉使圖>(1725),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18세기 후반), <감로탱甘露幀>(18세기) 등의 작품이다.
이 그림들은 모두 특정한 놀이를 저마다의 목적에 따라 군중 시선으로 그린 것이다. 버나와 함께 그린 것들은 땅재주, 줄타기, 접시돌리기, 방울받기 등으로 놀이의 묶음이 단순하지 않으며, 일정한 흐름과 맥락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작품 이전의 기록까지 보완적으로 이해한다면 버나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연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버나놀이의 현재 전승 양상은 20세기에 존재하는 사당패와 같은 유랑 예인 집단의 놀이에서 찾아진다. 남사당패의 고연희자들은 버나놀이는 원래 남사당패에 없었던 것으로 증언한다. 놀이패인 남사당패의 행사마다 각기 다른 양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령 남사당패 뜬쇠로 활약하였던 인물 가운데 1968년 6월 2일에 조사된 최성구崔聖九·정일파鄭一波의 증언에 따르면, “우리가 어려서만(1920년대 초)해도 대야 들고 도는 일은 없었는데 곡마단曲馬團이 들어온 뒤 거기서 보고 시작했다. 예전에도 무용·새미를 놀고 난 뒤 돈을 걷는 경우가 있었으나 구경꾼이 주면 받았지 억지로 조르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이 사실은 버나가 고유한 남사당의 놀이가 아니라 다른 데서 들어와서 남사당이 모방하고 변조한 놀이라는 점을 밝혀주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에도 놀이패가 놀리는 버나의 실상은 남사당패의 고연희자들이 한 놀이에 기반을 두고 다시 논할 수밖에 없다. 버나놀이는 농악과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으며, 놀이의 실상이 남사당패놀이의 하나로 온전하게 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버나놀이는 전통적인 연희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가무악희의 총체적 구현 원리에 입각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연희자인 버나놀이꾼과 이를 재담으로 보좌하면서 함께 진행하는 매호씨 또는 어릿광대들로 연출된다. 이들이 하는 연행에 필수적인 음악 가락을 제공하는 이들은 풍물놀이꾼이다. 버나놀이는 세 가지 놀이패가 연계되어 일정하게 버나를 돌리면서 연행하는 특징을 지니게 된다.
버나놀이의 세부적 면모는 버나를 두고 벌이는 일체의 놀이 방식인 버나에 입각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버나에 사용되는 소도구, 버나를 놀리면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놀이에 행해지는 재담과 춤사위, 사위를 놀리면서 벌어지는 사위, 연행에 사용되는 반주 음악, 놀이에 대한 해명성의 재담 등이 필수적 구성 요소이다. 이들이 종합적으로 일정하게 놀이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버나의 소도구는 상정하기 나름이다. 앵두나무로 된 막대기, 종지 또는 중발, 접시, 놋대야, 연자새(얼레), 쳇바퀴, 짧은담뱃대, 긴담뱃대, 식칼 등이 버나의 소도구이다. 이런 소도구들이 중시되는 이유는 쳇바퀴 형태의 버나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상적인 연장이라고 하는 점이다.
버나의 연행은 재담, 춤, 사위, 노래, 장단 등의 호응에 따라 이루어지는 특성을 지니게 된다. 서두 대목을 들어 보면 이러한 것들의 연합과 호응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버나잡이 나네 난실 네나네에요/ 거드럭거려서 염불이로다/ 매호씨 인제 가면은 언제 오나/ 명년 춘삼월 돌아온다
버나잡이 복그릇에 복은 담으시면 만사 대통합니다/ 자 아무리 넣으셔도 이놈의 아가리가 염치가 없이 딱딱벌립니다 (이상은 대야 돌리기)
* 돌릴 사위(대접)
버나잡이 매호씨!/ 내가 이것을 가지고 나왔을 때 늬가 알다시피 재주를 부리러 나온 것은 아니것고/ 살강 밑을 뒤져도 서발 막대기 거칠께 있던가/ 내 요놈의 대접을 한번 돌려볼 작정인데 잘 돌리면 밥이 나올 것이구 못돌리면 탕국 먹는 판이렷다
* 때릴 사위
* 던질 사위
* 낙화 사위

단순하지만 의미심장한 놀이의 전개를 엿보이게 한다. 첫 대목에서는 산념불을 하여 노래가 긴밀하게 사용된다. 산념불을 하면서 놋대야를 돌리는 것은 굿의 모방적 재현이다. 서울굿이나 황해도 지역의 굿에서 밥소래를 붙이거나 감흥굿을 할 때 이러한 행위를 한다. 아마도 그것을 원용하면서 이러한 놀이를 행한 것으로 이해된다.
대접으로 하는 여러 가지 버나 사위들의 나열을 하면서 일정하게 의미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보여 주는 단순한 놀이는 놀이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묵언의 언지이다. 이들 놀이패의 절실한 자기 체험에서 나온 위대한 창조적 집합과 결행임을 수시로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놀이의 양상을 정리하면 열다섯 가지 정도의 놀이가 있음이 확인된다. 각 사위가 바뀔 때마다 버나잡이와 매호씨는 재담을 주고받아 놀이의 흥취를 자아내고 있다. 열다섯 가지 사위 이름은 다음과 같다. 1. 던질 사위, 2. 때릴 사위, 3. 다리 사위, 4. 무지개 사위, 5. 자새 버나, 6. 칼 버나, 7. 바늘 버나, 8. 도깨비 대동강 건너가기, 9. 정봉산성, 10. 단발령 넘는 사위, 11. 삼동(채침코침사위), 12. 놋대야 돌리기, 13. 낙화 사위, 14. 꼬바리 사위, 15. 물쭈리 사위 등이다. 각각의 사위에 상징성과 동작에 대한 일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사위의 면모가 정확하게 부응하는 점이 드러난다.
버나놀이의 반주음악으로 덩더궁이와 자진가락이 주로 연주되며, 가락의 완급과 사위의 동작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지니면서 전개된다. 이외에도 소리가 불리는데, <산염불>이나 <매화타령>을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매화타령>은 전하고 있지 않으며, 떠돌이 놀이패들이 부르는 소리가 일부 남도의 토속민요에 남아있으며, 토속민요와 일정하게 관련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주에 사용되는 악기는 꽹과리·징·북·장구·날라리 등을 사용한다.

특징 및 의의

버나는 전승 집단의 놀이패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특정한 연행이나 행사에 동원되면서 다른 놀이와 곁들여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놀이들이 함께 연행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농악대의 현장에서 버나놀이가 일부 농악 단체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농악과 버나놀이는 특히 음악적 유사성이 있으며, 특정하게 사당패 집단과 지역적 친연성이 있는 평택농악, 안성남사당풍물놀이 등에서 버나놀이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버나놀이의 연원과 현황을 이해하는 것은 농악 이해의 한 특성을 이해할 수가 있는 중요한 면모이다.

참고문헌

사당패연구(심우성, 동화출판공사, 1974), 버나(전경욱 편저, 한국전통연희사전, 민속원, 2014), 버나의 역사와 연희양상(이기원,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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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김헌선(金憲宣)

정의

농악 가락에 맞춰서 특정한 막대기 위에 특정한 연장이나 손으로 쳇바퀴·대야·대접·접시 등을 돌리는 놀이.

내용

버나놀이는 문헌적 기록은 불분명하지만 일부 특정 그림 작품에 그림으로 남아 있다. 이를 주목하면 역사적 내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일본 양명문고陽明文庫에 소장된 <은영연도恩榮宴圖>(1580), 아극돈阿克敦,1685~1756의 <봉사도奉使圖>(1725),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18세기 후반), <감로탱甘露幀>(18세기) 등의 작품이다.
이 그림들은 모두 특정한 놀이를 저마다의 목적에 따라 군중 시선으로 그린 것이다. 버나와 함께 그린 것들은 땅재주, 줄타기, 접시돌리기, 방울받기 등으로 놀이의 묶음이 단순하지 않으며, 일정한 흐름과 맥락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작품 이전의 기록까지 보완적으로 이해한다면 버나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연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버나놀이의 현재 전승 양상은 20세기에 존재하는 남사당패와 같은 유랑 예인 집단의 놀이에서 찾아진다. 남사당패의 고연희자들은 버나놀이는 원래 남사당패에 없었던 것으로 증언한다. 놀이패인 남사당패의 행사마다 각기 다른 양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령 남사당패 뜬쇠로 활약하였던 인물 가운데 1968년 6월 2일에 조사된 최성구崔聖九·정일파鄭一波의 증언에 따르면, “우리가 어려서만(1920년대 초)해도 대야 들고 도는 일은 없었는데 곡마단曲馬團이 들어온 뒤 거기서 보고 시작했다. 예전에도 무용·새미를 놀고 난 뒤 돈을 걷는 경우가 있었으나 구경꾼이 주면 받았지 억지로 조르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이 사실은 버나가 고유한 남사당의 놀이가 아니라 다른 데서 들어와서 남사당이 모방하고 변조한 놀이라는 점을 밝혀주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에도 놀이패가 놀리는 버나의 실상은 남사당패의 고연희자들이 한 놀이에 기반을 두고 다시 논할 수밖에 없다. 버나놀이는 농악과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으며, 놀이의 실상이 남사당패놀이의 하나로 온전하게 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버나놀이는 전통적인 연희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가무악희의 총체적 구현 원리에 입각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연희자인 버나놀이꾼과 이를 재담으로 보좌하면서 함께 진행하는 매호씨 또는 어릿광대들로 연출된다. 이들이 하는 연행에 필수적인 음악 가락을 제공하는 이들은 풍물놀이꾼이다. 버나놀이는 세 가지 놀이패가 연계되어 일정하게 버나를 돌리면서 연행하는 특징을 지니게 된다.
버나놀이의 세부적 면모는 버나를 두고 벌이는 일체의 놀이 방식인 버나에 입각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버나에 사용되는 소도구, 버나를 놀리면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놀이에 행해지는 재담과 춤사위, 사위를 놀리면서 벌어지는 사위, 연행에 사용되는 반주 음악, 놀이에 대한 해명성의 재담 등이 필수적 구성 요소이다. 이들이 종합적으로 일정하게 놀이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버나의 소도구는 상정하기 나름이다. 앵두나무로 된 막대기, 종지 또는 중발, 접시, 놋대야, 연자새(얼레), 쳇바퀴, 짧은담뱃대, 긴담뱃대, 식칼 등이 버나의 소도구이다. 이런 소도구들이 중시되는 이유는 쳇바퀴 형태의 버나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상적인 연장이라고 하는 점이다.
버나의 연행은 재담, 춤, 사위, 노래, 장단 등의 호응에 따라 이루어지는 특성을 지니게 된다. 서두 대목을 들어 보면 이러한 것들의 연합과 호응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버나잡이 나네 난실 네나네에요/ 거드럭거려서 염불이로다/ 매호씨 인제 가면은 언제 오나/ 명년 춘삼월 돌아온다
버나잡이 복그릇에 복은 담으시면 만사 대통합니다/ 자 아무리 넣으셔도 이놈의 아가리가 염치가 없이 딱딱벌립니다 (이상은 대야 돌리기)
* 돌릴 사위(대접)
버나잡이 매호씨!/ 내가 이것을 가지고 나왔을 때 늬가 알다시피 재주를 부리러 나온 것은 아니것고/ 살강 밑을 뒤져도 서발 막대기 거칠께 있던가/ 내 요놈의 대접을 한번 돌려볼 작정인데 잘 돌리면 밥이 나올 것이구 못돌리면 탕국 먹는 판이렷다
* 때릴 사위
* 던질 사위
* 낙화 사위

단순하지만 의미심장한 놀이의 전개를 엿보이게 한다. 첫 대목에서는 산념불을 하여 노래가 긴밀하게 사용된다. 산념불을 하면서 놋대야를 돌리는 것은 굿의 모방적 재현이다. 서울굿이나 황해도 지역의 굿에서 밥소래를 붙이거나 감흥굿을 할 때 이러한 행위를 한다. 아마도 그것을 원용하면서 이러한 놀이를 행한 것으로 이해된다.
대접으로 하는 여러 가지 버나 사위들의 나열을 하면서 일정하게 의미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보여 주는 단순한 놀이는 놀이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묵언의 언지이다. 이들 놀이패의 절실한 자기 체험에서 나온 위대한 창조적 집합과 결행임을 수시로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놀이의 양상을 정리하면 열다섯 가지 정도의 놀이가 있음이 확인된다. 각 사위가 바뀔 때마다 버나잡이와 매호씨는 재담을 주고받아 놀이의 흥취를 자아내고 있다. 열다섯 가지 사위 이름은 다음과 같다. 1. 던질 사위, 2. 때릴 사위, 3. 다리 사위, 4. 무지개 사위, 5. 자새 버나, 6. 칼 버나, 7. 바늘 버나, 8. 도깨비 대동강 건너가기, 9. 정봉산성, 10. 단발령 넘는 사위, 11. 삼동(채침코침사위), 12. 놋대야 돌리기, 13. 낙화 사위, 14. 꼬바리 사위, 15. 물쭈리 사위 등이다. 각각의 사위에 상징성과 동작에 대한 일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사위의 면모가 정확하게 부응하는 점이 드러난다.
버나놀이의 반주음악으로 덩더궁이와 자진가락이 주로 연주되며, 가락의 완급과 사위의 동작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지니면서 전개된다. 이외에도 소리가 불리는데, <산염불>이나 <매화타령>을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매화타령>은 전하고 있지 않으며, 떠돌이 놀이패들이 부르는 소리가 일부 남도의 토속민요에 남아있으며, 토속민요와 일정하게 관련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주에 사용되는 악기는 꽹과리·징·북·장구·날라리 등을 사용한다.

특징 및 의의

버나는 전승 집단의 놀이패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특정한 연행이나 행사에 동원되면서 다른 놀이와 곁들여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놀이들이 함께 연행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농악대의 현장에서 버나놀이가 일부 농악 단체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농악과 버나놀이는 특히 음악적 유사성이 있으며, 특정하게 남사당패 집단과 지역적 친연성이 있는 평택농악, 안성남사당풍물놀이 등에서 버나놀이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버나놀이의 연원과 현황을 이해하는 것은 농악 이해의 한 특성을 이해할 수가 있는 중요한 면모이다.

참고문헌

남사당패연구(심우성, 동화출판공사, 1974), 버나(전경욱 편저, 한국전통연희사전, 민속원, 2014), 버나의 역사와 연희양상(이기원,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