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잔수농악(求礼潺水农乐)

구례잔수농악

한자명

求礼潺水农乐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이경엽(李京燁)

정의

전라남도 구례 구례읍 신월리 신촌마을(옛 이름 잔수)에서 전승되는 농악.

개관

섬진강변에 자리한 신촌마을은 인근에 기차역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조선시대에 역원이 있던 곳이다. 예부터 각성바지가 모여 살았고, 마을 내 여러 성씨들이 통혼을 통해 친인척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주민들끼리 정서적 유대감이 강한 마을이다. 강변에 자리한 농촌이면서도 농토가 넓지 않아 경제적으로 부유한 편이 아니었다. 이런 조건이 농악 전승의 특별한 배경이 되었다. 정월에 농악대를 꾸려 걸궁을 나가면 하루에 3일 품삯 정도 되는 사례비를 받을 수 있어서, 걸궁대원으로 선발되기 위해 농한기에 농악 연습을 열심히 하며 기량을 연마했다고 한다.
잔수농악 전승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대내외 활동의 유기적인 연계성이다. 예전에는 정월이 되면 마을 당산굿마당밟이를 하고 나서 다른 지역으로 걸궁을 치러 다녔다. 그리고 구례 약수제를 비롯한 지역축제나 농악대회에 나가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런 과정이 축적되면서 잔수농악은 짜임새를 갖추게 되었다. 역대 연희자 중에서 서학현은 당대 최고 상쇠로 꼽혔으며, 김영환은 ‘보푸리짓(상모놀이)’을 잘하고 설장구 교육에도 능했다. 김재일은 구례 일대 최고 벅구잽이로 이름을 날렸다. 상쇠 계보는 서학현-이성옥을 거쳐 현상쇠인 김대진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설장구는 허용-박삼룡-이현호로 이어지고 있다. 벅구 계보는 김재일-허우천-김재수로 이어지고 있다.

내용

  1. 치배 구성
    앞치배와 뒤치배로 구분된다. 앞치배는 기수나발, 쇠, 징, 장구, 북, 소고 등이고, 뒤치배는 대포수를 포함한 잡색이다. 농악대가 이동할 때 서는 순서는 ‘기수, 나발, 대포수, 쇠, 장구, 큰북, 소고, 잡색’ 순이다. 쇠잽이는 상쇠와 종쇠 셋째쇠, 넷째쇠, 다섯째쇠 등의 순서로 선다. 상쇠를 제외한 나머지 쇠잽이를 통칭해 종쇠라고도 한다. 상쇠는 꽹과리를 치면서 맨 앞에서 농악대를 지휘하며 치배들을 이끈다. 머리에는 흰색 종이꽃을 달고 그 위에 부포가 달린 전립을 쓴다. 상의는 남색 가선을 두른 흰색 바지저고리를 착용한다. 어깨와 허리 부분에는 홍색, 남색, 황색의 삼색 띠를 두른다. 징수는 징수, 부징수 두 명이다. 복식은 남색 가선을 두른 흰색 바지저고리를 착용한다. 어깨와 허리 부분에는 홍색, 남색, 황색의 삼색 띠를 두른다. 장구잽이는 설장구, 부장구, 장구 순서로 부른다. 복식은 징수와 동일하다. 머리에는 고깔을 쓴다. 북수는 두 명이고 징수와 동일한 복장이다. 소고를 예전에는 벅구라고 불렀다. 머리에는고깔을 쓴다. 뒤치배 중에서 대포수(1명)는 농악대를 인솔하는 앞잽이 역할을 한다. 머리에 포수관을 쓴다. 조리중(1명)은 머리에 짚으로 만든 원뿔형의 초립을 쓴다. 갓 위에는 줄을 달고, 줄 끝부분에는 꼬막껍질을 달아서 돌린다. 할머니(1명)는 흰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허리 부분에 황색 허리띠를 맨다. 얼굴에는 바가지로 만든 가면을 쓴다. 각시(1~2명)는 남자가 여장을 한다. 얼굴에 각시 가면을 쓴다. 곰(1명)은 곰 가죽 옷을 입는다. 머리에는 탈을 써서 곰의 형상을 나타낸다. 굿판에서는 중이 중국말을 흉내 내면서 곰을 놀리고, 곰은 이에 맞춰 재주를 넘는다. 이것을 “곰재주 한다.”라고 한다. 곱사(1~2명)는 등에 바가지를 넣어서 만든 형태와 가인假人을 만들어 들고 다니는 형태가 있다. 중(1명)은 중복을 입고 머리에는 삿갓을 쓰고 손에는 목탁을 든다.

  2. 연행내용
    잔수농악은 음력 정월과 사월 곡우, 추석에 주로 연행되었으며, 특히 정월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매년 섣달그믐에 당산제를 지내고 정월 초에 당산 제만굿과 마당밟이를 한다. 이것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당산 제만굿’은 당산 앞에서 치는 굿이다. 줄여서 제만굿이라고도 한다. 당산 제만굿은 당산에서만 치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고 좀 더 폭넓게 사용된다. 당산 앞에서 칠 때와 마당밟이에서 마당굿을 칠 때도 제만굿을 치고, 집을 새로 지어서 성주굿을 할 때도 제만굿을 친다. 그리고 다른 마을에 걸궁을 갈 때도 출발할 때 제만굿을 치고 나가고, 다른 마을 당산에 도착해서도 제만굿을 친다. 이를 보아 제만굿은 제의적 성격을 지닌 농악을 통칭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당산 제만굿은 ‘홑제만굿’과 ‘가진제만굿’으로 구분된다. 홑제만굿과 가진제만굿의 구분은 당산 제만굿의 핵심 가락인 오채굿, 육채굿, 칠채굿의 사용과 관련된다. 홑제만굿을 칠 경우에는 세 개의 가락 중 한 개 또는 두 개만 치고, 가진제만굿을 칠 경우에는 세 개의 굿거리를 순서대로 모두 친다. 홑으로 치는 경우는 시간이 부족하거나 짧게 치고자 할 경우에 연행하는 것이고, 갖춰서 치는 것은 엄격하게 격식을 차려야 할 경우에 한다. 신촌마을의 당산은 총 다섯 곳에 있다. 마을 중앙과 동서남북에 당산이 다섯 개 있다. 당산 제만굿을 치는 순서는 ‘북-서-남-동- 중앙’ 순이다. 모든 당산에서 가진제만굿을 치면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에 주로 홑제만굿을 치고, 원당산인 중앙 당산에서 가진제만굿을 친다.
    마당밟이는 뜰볿이라고도 한다. 마당밟이는 액막이 기능, 마을 기금 확보, 예능 전수의 기능을 갖고 있다. 마당밟이는 정월 초사흗날 당산 제만굿을 마친 뒤 보통 4~5일 동안 진행된다. 요즘에는 하루에 끝마치지만 과거에는 1월 4일에서 10일 사이에 이루어졌다. 마을의 모든 가정집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저녁 늦게까지 마당밟이를 했다. 현재 활동하는 연희자들은 대부분 젊을 때부터 선배 연희자들과 함께 마당밟이를 준비하고 공연하는 과정 속에서 예능을 전수받았다. 치배가 되지 못한 어린애들은 마당밟이를 구경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어른들의 악기를 손에 쥐고 연습을 했다. 또한 당산 제만굿과 함께 마당밟이를 준비하기 위해 음력 12월에는 단체로 연습을 했다.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걸궁을 나가기도 했다.
    마당밟이의 기본적인 구성은 ‘문굿-마당굿-정재굿’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짧게 쳐야 하는 경우에도 기본적인 구성은 유지한다. 여기에 각각의 상황에 따라 장꼬방굿, 샘굿, 마구간굿, 노적굿 등이 추가된다. 그리고 마당밟이에서도 제만굿을 치는데 이때 사정에 따라 가진제만굿을 치거나 홑제만굿을 친다. 마당밟이에서 치는 제만굿은 마당굿의 부속 절차에 해당하며 오채굿, 육채굿, 칠채굿을 순서대로 치면 가진제만굿이 되고, 일부만 치면 홑제만굿이 된다. 요즘에는 간소화되어서 대부분 홑제만굿을 치고, 상황에 따라서 삼채굿으로 대체한다. 마당밟이에서 농악대 군중들을 인솔하는 것은 ‘도청’이다. ‘도청’이란 역할은 마당밟이 할 집을 섭외하고 군중들을 집으로 인솔하는 배역이다. 도청은 보통 마을 이장이 맡는다. 도청이 군중들을 인솔하면 상쇠는 전체 치배들을 이끌고 연행을 주관한다. 이때 뒤치배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조리중은 조리와 갈퀴를 들고 다니면서 집의 액을 긁어 담는 역할을 하고, 대포수는 군중들의 연행이 원만히 진행되도록 굿판을 이끌어 간다.
    판굿은 마당밟이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된다. 별도로 독립된 것이라기보다는 마당밟이에 판굿의 요소가 결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판굿은 보통 마을 전체의 마당밟이가 끝나는 날 마당 너른 집을 선정해서 연행한다. 판굿을 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구경을 하고, 저녁에 시작해서 밤새도록 치기 때문에 마당이 넓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에서 한다. 판굿은 1채굿부터 12채굿까지 전 과정을 연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어울림굿, 문굿, 마당굿, 정지굿, 액막이굿, 장꼬방굿, 샘굿, 허허굿, 노래굿, 도둑잽이굿, 파제굿’의 순서로 진행된다. 마당밟이가 확대된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잔수농악의 전체 구성을 보면 ‘당산제-당산 제만굿-마당밟이-판굿’으로 연결돼 있다. 그리고 가락 구성을 보면 세 가지 연행이 유사성을 갖고 있다. 당산 제만굿 가락은 마당밟이의 정재굿과 유사하며, 판굿은 마당밟이의 확대형에 해당한다. 잔수농악의 판굿은 십이채로 구성되어 있지만 남원, 임실, 곡성과 같이 징의 점수로 채를 구분하는 형태와 다르다. 잔수농악의 판굿은 마당밟이와 당산 제만굿 가락들을 모아 놓은 형태이다.즉 하나의 뿌리에서 세 연행 형태의 가락들이 파생되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마당밟이와 판굿이 인과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마당밟이와 판굿은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으며, 마당밟이가 확장되어 판굿을 이루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판굿을 보면, 먼저 문굿으로 시작해서 마당밟이를 하면서 액을 긁어 담고, 액막이굿과 성주풀이를 통해 집과 사람, 동물의 액을 막는다. 그리고 액을 긁어 담은 조리중을 도둑잽이굿 과정에서 쏴 죽여 액을 소멸시키며 끝에 파제굿을 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마당밟이에서 조리중이 액을 긁어 담는 것과, 판굿의 도둑잽이굿에서 액을 담고 있는 조리중을 포수가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이다.
    조리중의 역할은 두 굿을 매개하는 기능을 한다. 마당밟이에서 액을 긁어서 담은 조리중을 도둑잽이에서 총으로 쏴 죽여 액을 소멸시킨다는 설정은 두 굿의 밀접한 연관성을 압축적으로 설명해 준다. 당산굿, 마당밟이, 판굿이 하나의 제의적 연행으로 세트화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마당밟이를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판굿을 치며, 판굿의 마지막 과정에서 도둑잽이굿과 파제굿을 연행하는데, 액을 소멸시키는 도둑잽이굿과 제의적 상황을 종결하는 파제굿이 판굿의 마지막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판굿이 본래 정초의 걸립이나 마당밟이, 장원례 등의 끝에 ‘파접례’로서 진행되었음을 보여 준다. 판굿이 예술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공간임과 동시에 굿놀이의 시·공간을 끝맺는 기능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을 단위의 판굿에서 파방굿이나 파장굿, 파제굿 등의 명칭이 사용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실제 파방굿·파장굿·파제굿 등의 명칭은 판굿의 이칭이기도 하고, 판굿의 막바지에 해당하는 굿거리의 명칭이기도 하다. 판굿의 제의성은 판굿을 마친 뒤 고깔 등의 도구를 불태우고, 그 위를 뛰어넘는 행위에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행위는 가면극에서 마지막에 탈을 소각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며, 농악이 액막이 기능을 지닌 연행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으로 볼 때, 판굿은 각각 성격이 다른 당산굿과 마당밟이를 연결시키고 종합하는 굿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당산 제만굿, 마당밟이, 판굿이 엄밀히 분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 면모라고 할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첫째, 잔수농악은 좌도농악 일반의 보편성을 띠고 있으면서 독자적인 개성을 유지하고 있다. 산악 지형이 발달한 지역답게 힘찬 쇠가락과 활달한 진풀이가 돋보이고, 가락 구성이나 빠르게 몰아가는 연주 방식 등에서 좌도농악의 판제를 그대로 보여 준다. 판굿과 가락 구성에서 주변 지역과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인근의 남원농악 및 필봉농악의 판굿과 비교했을 때 영산굿, 허허굿, 노래굿, 도둑잽이굿 등은 명칭과 형태가 유사하다. 특히 영산굿의 경우 호남좌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굿거리로서 잔수농악에서도 연행되고 있다.
남원농악과 필봉농악은 판굿을 ‘전굿-후굿’ 또는 ‘앞굿-뒷굿’으로 구분하고 있고, 주로 앞부분에서 채굿과 호허굿, 영산 등을 연행하고 뒷부분에서 노래굿, 도둑잽이굿 등을 연행한다. 잔수농악의 판굿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판굿이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되지 않았을 뿐 앞부분에서 채굿과 영산, 허허굿을 연행하고, 뒷부분에서 노래굿과 도둑잽이굿을 연행한다. 물론 차이점도 많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판굿 전체를 십이채굿으로 이해하는 것과 마당밟이와 판굿이 미분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십이채굿 또는 십이차굿의 개념은 남해안 지역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대표적으로 진주 삼천포 십이차굿과 완도 지역의 십이차굿을 들 수 있는데, 잔수농악의 경우도 이들과 비슷한 개념으로 묶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잔수농악의 판굿은 전체적인 절차나 구성에서 호남좌도농악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서 남해안 지역의 십이채굿 개념이 포함돼 있는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잔수(신촌)마을의 지리적 위치와 일정한 관련이 있다. 신촌마을은 조선시대에 섬진강 유역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던 역驛이 설치되어 있었고, 서남쪽으로는 생활권인 순천과 연결돼 있고 동북쪽으로는 곡성과 남원 쪽으로 연결돼 있다. 실제 예전에 걸궁을 다닐 때 순천, 여수 등지로 다니면서 굿을 치기도 했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가 북부와 남부의 특징을 공유하는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치배 구성의 특징을 보면, 인근 지역과 기본 구성은 비슷하지만 동물잡색인 ‘곰’ 배역이 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곰은 판 안에서 재주넘기를 하는데, 예전에는 곰을 놀리는 사람들이 중국말 흉내를 냈다고 한다. 잡색으로서의 곰과 곰재주는 흔치 않은 사례이다. 전남 여수 백초농악의 사례에서 호랑이와 곰, 소 등이 보일 뿐, 이외의 지역에서는 보고된 바가 없다. 다만 최근 보고된 자료에 의하면, 경남 남해에서 활동한 사당패에 곰 역할의 잡색이 있었고, 이들이 광양을 거쳐 북쪽으로 이동하며 활동했다는 설명이 있다. 여천의 동물 잡색들은 성행위를 모방하는 형태의 춤을 추고, 남해와 광양의 곰은 ‘곰재주’라고 해서 주로 재주넘기를 한다. 이것으로 볼 때 남해와 광양에서 보고된 곰과 잔수농악의 곰이 명칭과 놀이형태에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잔수농악의 도둑잽이는 인근 지역과 다른 부분이 많다. 호남 지역의 도둑잽이는 ‘군사놀음형’과 ‘투전-군사놀음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군사놀음형의 경우, 상쇠를 중심으로 뭉친 아군패(앞치배와 기수들)와 대포수를 중심으로 뭉친 적군패(잡색)가 대결한다. 적군패가 성안/진중陣中으로 침입해 들어와 상쇠의 꽹과리나발을 몰래 훔쳐서 자기 몸에 감추면, 상쇠가 대포수와 지혜로 대결하여 결국 꽹과리/나발을 찾아내고, 대포수를 처단하여 아군이 승리한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투전-군사놀음형은 갈등의 원인이 꽹과리나 나발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투전놀음을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대포수가 처단되는 것은 비슷하다.
그런데 잔수농악의 도둑잽이는 이런 두 유형과 달리 아군과 적군의 관계 또는 군사적 의미 등이 나타나지 않으며, 다른 지역과 달리 대포수가 처단되는 것이 아니라 대포수가 조리중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과정이 등장한다. 이런 설정은 조리중의 역할과 관련 있다. 조리중은 마당밟이 과정에서 모든 집의 액을 긁어 담는 역할을 한다. 실제 조리와 갈퀴를 들고 액을 긁어서 배낭에 넣는 시늉을 한다. 따라서 조리중이 액을 긁어모았기 때문에 조리중을 쏘아 죽여 액을 소멸시킨다는 설정을 보여 준다. 이것은 다른 지역에서 추상화되어 있는 도둑잽이굿의 주술적 성격을 원초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도둑잽이굿이 판굿의 막바지에 연행되는 점과 판굿이 마당밟이의 확장된 형태라는 점에서 의미가 분명해진다. 잔수농악의 판굿은 집에 들어간다는 의미의 문굿에서 시작해서 마당밟이를 통해 액을 긁어 담고, 액막이굿과 성주풀이를 통해 집과 사람, 동물의 액을 막는다. 그리고 액을 긁어 담은 조리중을 도둑잽이굿 과정에서 쏴 죽여 액을 소멸시킨다. 이러한 과정의 끝에 파제굿을 치고 문굿을 쳐서 집을 나가면 판굿이 마무리 된다. 제의적 연행의 마지막 끝에 직접적으로 액을 소멸시키는 것을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도둑잽이굿의 원초적 성격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잔수농악은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개성이 있다. 두둥갱이, 지지깽이, 돌이뱅뱅 등 다른 지역에 없는 가락들이 있고 가락 구성도 독특한 점이 있다. 두둥갱이, 지지깽이 등은 장구와 꽹과리 구음에서 비롯된 가락 이름이다. 그리고 돌이뱅뱅은 진을 짜는 모습과 연관된 이름이다. 다른 데서 보기 힘든 이와 같은 가락들은 작명에서 보듯이 매우 토속적이다. 돌이뱅뱅과 돌이 뱅뱅뱅은 2소박 3박 구조인 점이 독특하며, 구음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연주법과 진법도 주목된다. 다른 지역에서는 달팽이진이라 부르는 진법을 이 마을에서는 덕석몰이라고 부르고 있다.
잔수농악이 마을 단위 농악이지만 연희자들의 기량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것은 전승 과정에서 확인되듯이 대외적인 걸궁 활동과 관련 있다. 인근 지역까지 명성을 날리던 연희자들과 그들에게 교육을 받은 치배들이 대내외 활동을 활발하게 해 온 것이 남다른 역량의 근간이 되었다. 특히 현 치배들이 경험했던 일정 기간 기량을 주기적으로 연마해 온 교육 시스템은 뛰어난 연주 능력의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잔수농악에서 볼 수 있는 예술적 표현은 전문 치배들의 그것과 다른 점이 있다. 유명 농악대의 경우, 화려한 개인놀이와 다양한 판굿 구성 등을 통해 수준 높은 예술성을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대부분의 농악대에서는 상쇠나 설장구의 기예가 가장 주목받는다. 그리고 판굿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각종 개인놀이와 연희 구성을 특별하게 평가한다.
그런데 잔수농악은 상쇠나 설장구의 개인 능력이 뛰어나지만 개인놀이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잔수농악은 제주齊奏 형태의 변주를 화려하게 연행하는 점이 특징이다. 여러 악기의 제주를 통해 개성적인 가락들을 화려하게 연행하는 것이 잔수농악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라고 할 수 있다. 잔수농악의 예술성은 독특한 연주 방식과 관련 있다. 잔수농악에서 사용되는 허튼형 가락들과 메기고받는 방식의 연주는 상쇠의 뛰어난 기량을 요구한다. 두둥갱이와 외마치, 지지깽이 등이 모두 즉흥성을 지닌 허튼형의 가락이다. 또한 이채와 지지깽이의 메기고받는 형식 역시 상쇠의 기량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상쇠만이 아닌 모든 치배들의 역량과 관련이 있다. 특히 두둥갱이 가락에서 볼 수 있는 3소박에서 2소박으로의 변화는 상쇠가 주도하지만 장구를 비롯한 나머지 악기들이 모두 함께 연주한다.
이와 같은 제주齊奏와 그 변주의 아름다움은 잔수농악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외마치의 속도를 몰아가서 종지하는 것도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특징이다. 시작할 때에는 3소박 4박 구조이지만 종지할 때에는 속도에 의해 2소박 4박으로 박자구조가 변화되고 더욱 빨라진 후에는 2소박 2박처럼 들리는 현상을 보인다. 속도의 가감에 따라 장단구조가 변화하는 것은 민요무악 등 한국 음악 전반에서 드러나는 특성이지만 농악과 같이 많은 연주 인원이 참여하는 음악에서 발견된 사례가 없다. 이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모든 치배들의 일치된 호흡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가락과 연주 방식은 매우 개성적인 표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잔수농악 특유의 연행 방식은 마을 단위 예능 활동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미학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치배들의 일치된 호흡과 제주는 ‘기량을 갖춘 마을농악’이 구축해 온 특별한 예술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당산굿-마당밟이-판굿 연행과 가락 구성의 내적 연계성, 판굿의 미분화성 등과 더불어 잔수농악이 지닌 남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구례잔수농악(이경엽 외, 민속원, 2008), 구례잔수농악(나경수외·국립문화재연구소, 민속원, 2011), 구례잔수농악의 전승양상과 연행의특징(이경엽 외, 풍물굿연구3, 한국풍물굿학회, 2014).

구례잔수농악

구례잔수농악
한자명

求礼潺水农乐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이경엽(李京燁)

정의

전라남도 구례 구례읍 신월리 신촌마을(옛 이름 잔수)에서 전승되는 농악.

개관

섬진강변에 자리한 신촌마을은 인근에 기차역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조선시대에 역원이 있던 곳이다. 예부터 각성바지가 모여 살았고, 마을 내 여러 성씨들이 통혼을 통해 친인척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주민들끼리 정서적 유대감이 강한 마을이다. 강변에 자리한 농촌이면서도 농토가 넓지 않아 경제적으로 부유한 편이 아니었다. 이런 조건이 농악 전승의 특별한 배경이 되었다. 정월에 농악대를 꾸려 걸궁을 나가면 하루에 3일 품삯 정도 되는 사례비를 받을 수 있어서, 걸궁대원으로 선발되기 위해 농한기에 농악 연습을 열심히 하며 기량을 연마했다고 한다.
잔수농악 전승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대내외 활동의 유기적인 연계성이다. 예전에는 정월이 되면 마을 당산굿과 마당밟이를 하고 나서 다른 지역으로 걸궁을 치러 다녔다. 그리고 구례 약수제를 비롯한 지역축제나 농악대회에 나가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런 과정이 축적되면서 잔수농악은 짜임새를 갖추게 되었다. 역대 연희자 중에서 서학현은 당대 최고 상쇠로 꼽혔으며, 김영환은 ‘보푸리짓(상모놀이)’을 잘하고 설장구 교육에도 능했다. 김재일은 구례 일대 최고 벅구잽이로 이름을 날렸다. 상쇠 계보는 서학현-이성옥을 거쳐 현상쇠인 김대진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설장구는 허용-박삼룡-이현호로 이어지고 있다. 벅구 계보는 김재일-허우천-김재수로 이어지고 있다.

내용

치배 구성
앞치배와 뒤치배로 구분된다. 앞치배는 기수와 나발, 쇠, 징, 장구, 북, 소고 등이고, 뒤치배는 대포수를 포함한 잡색이다. 농악대가 이동할 때 서는 순서는 ‘기수, 나발, 대포수, 쇠, 장구, 큰북, 소고, 잡색’ 순이다. 쇠잽이는 상쇠와 종쇠 셋째쇠, 넷째쇠, 다섯째쇠 등의 순서로 선다. 상쇠를 제외한 나머지 쇠잽이를 통칭해 종쇠라고도 한다. 상쇠는 꽹과리를 치면서 맨 앞에서 농악대를 지휘하며 치배들을 이끈다. 머리에는 흰색 종이꽃을 달고 그 위에 부포가 달린 전립을 쓴다. 상의는 남색 가선을 두른 흰색 바지저고리를 착용한다. 어깨와 허리 부분에는 홍색, 남색, 황색의 삼색 띠를 두른다. 징수는 징수, 부징수 두 명이다. 복식은 남색 가선을 두른 흰색 바지저고리를 착용한다. 어깨와 허리 부분에는 홍색, 남색, 황색의 삼색 띠를 두른다. 장구잽이는 설장구, 부장구, 장구 순서로 부른다. 복식은 징수와 동일하다. 머리에는 고깔을 쓴다. 북수는 두 명이고 징수와 동일한 복장이다. 소고를 예전에는 벅구라고 불렀다. 머리에는고깔을 쓴다. 뒤치배 중에서 대포수(1명)는 농악대를 인솔하는 앞잽이 역할을 한다. 머리에 포수관을 쓴다. 조리중(1명)은 머리에 짚으로 만든 원뿔형의 초립을 쓴다. 갓 위에는 줄을 달고, 줄 끝부분에는 꼬막껍질을 달아서 돌린다. 할머니(1명)는 흰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허리 부분에 황색 허리띠를 맨다. 얼굴에는 바가지로 만든 가면을 쓴다. 각시(1~2명)는 남자가 여장을 한다. 얼굴에 각시 가면을 쓴다. 곰(1명)은 곰 가죽 옷을 입는다. 머리에는 탈을 써서 곰의 형상을 나타낸다. 굿판에서는 중이 중국말을 흉내 내면서 곰을 놀리고, 곰은 이에 맞춰 재주를 넘는다. 이것을 “곰재주 한다.”라고 한다. 곱사(1~2명)는 등에 바가지를 넣어서 만든 형태와 가인假人을 만들어 들고 다니는 형태가 있다. 중(1명)은 중복을 입고 머리에는 삿갓을 쓰고 손에는 목탁을 든다.

연행내용
잔수농악은 음력 정월과 사월 곡우, 추석에 주로 연행되었으며, 특히 정월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매년 섣달그믐에 당산제를 지내고 정월 초에 당산 제만굿과 마당밟이를 한다. 이것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당산 제만굿’은 당산 앞에서 치는 굿이다. 줄여서 제만굿이라고도 한다. 당산 제만굿은 당산에서만 치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고 좀 더 폭넓게 사용된다. 당산 앞에서 칠 때와 마당밟이에서 마당굿을 칠 때도 제만굿을 치고, 집을 새로 지어서 성주굿을 할 때도 제만굿을 친다. 그리고 다른 마을에 걸궁을 갈 때도 출발할 때 제만굿을 치고 나가고, 다른 마을 당산에 도착해서도 제만굿을 친다. 이를 보아 제만굿은 제의적 성격을 지닌 농악을 통칭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당산 제만굿은 ‘홑제만굿’과 ‘가진제만굿’으로 구분된다. 홑제만굿과 가진제만굿의 구분은 당산 제만굿의 핵심 가락인 오채굿, 육채굿, 칠채굿의 사용과 관련된다. 홑제만굿을 칠 경우에는 세 개의 가락 중 한 개 또는 두 개만 치고, 가진제만굿을 칠 경우에는 세 개의 굿거리를 순서대로 모두 친다. 홑으로 치는 경우는 시간이 부족하거나 짧게 치고자 할 경우에 연행하는 것이고, 갖춰서 치는 것은 엄격하게 격식을 차려야 할 경우에 한다. 신촌마을의 당산은 총 다섯 곳에 있다. 마을 중앙과 동서남북에 당산이 다섯 개 있다. 당산 제만굿을 치는 순서는 ‘북-서-남-동- 중앙’ 순이다. 모든 당산에서 가진제만굿을 치면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에 주로 홑제만굿을 치고, 원당산인 중앙 당산에서 가진제만굿을 친다.
마당밟이는 뜰볿이라고도 한다. 마당밟이는 액막이 기능, 마을 기금 확보, 예능 전수의 기능을 갖고 있다. 마당밟이는 정월 초사흗날 당산 제만굿을 마친 뒤 보통 4~5일 동안 진행된다. 요즘에는 하루에 끝마치지만 과거에는 1월 4일에서 10일 사이에 이루어졌다. 마을의 모든 가정집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저녁 늦게까지 마당밟이를 했다. 현재 활동하는 연희자들은 대부분 젊을 때부터 선배 연희자들과 함께 마당밟이를 준비하고 공연하는 과정 속에서 예능을 전수받았다. 치배가 되지 못한 어린애들은 마당밟이를 구경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어른들의 악기를 손에 쥐고 연습을 했다. 또한 당산 제만굿과 함께 마당밟이를 준비하기 위해 음력 12월에는 단체로 연습을 했다.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걸궁을 나가기도 했다.
마당밟이의 기본적인 구성은 ‘문굿-마당굿-정재굿’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짧게 쳐야 하는 경우에도 기본적인 구성은 유지한다. 여기에 각각의 상황에 따라 장꼬방굿, 샘굿, 마구간굿, 노적굿 등이 추가된다. 그리고 마당밟이에서도 제만굿을 치는데 이때 사정에 따라 가진제만굿을 치거나 홑제만굿을 친다. 마당밟이에서 치는 제만굿은 마당굿의 부속 절차에 해당하며 오채굿, 육채굿, 칠채굿을 순서대로 치면 가진제만굿이 되고, 일부만 치면 홑제만굿이 된다. 요즘에는 간소화되어서 대부분 홑제만굿을 치고, 상황에 따라서 삼채굿으로 대체한다. 마당밟이에서 농악대 군중들을 인솔하는 것은 ‘도청’이다. ‘도청’이란 역할은 마당밟이 할 집을 섭외하고 군중들을 집으로 인솔하는 배역이다. 도청은 보통 마을 이장이 맡는다. 도청이 군중들을 인솔하면 상쇠는 전체 치배들을 이끌고 연행을 주관한다. 이때 뒤치배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조리중은 조리와 갈퀴를 들고 다니면서 집의 액을 긁어 담는 역할을 하고, 대포수는 군중들의 연행이 원만히 진행되도록 굿판을 이끌어 간다.
판굿은 마당밟이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된다. 별도로 독립된 것이라기보다는 마당밟이에 판굿의 요소가 결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판굿은 보통 마을 전체의 마당밟이가 끝나는 날 마당 너른 집을 선정해서 연행한다. 판굿을 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구경을 하고, 저녁에 시작해서 밤새도록 치기 때문에 마당이 넓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에서 한다. 판굿은 1채굿부터 12채굿까지 전 과정을 연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어울림굿, 문굿, 마당굿, 정지굿, 액막이굿, 장꼬방굿, 샘굿, 허허굿, 노래굿, 도둑잽이굿, 파제굿’의 순서로 진행된다. 마당밟이가 확대된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잔수농악의 전체 구성을 보면 ‘당산제-당산 제만굿-마당밟이-판굿’으로 연결돼 있다. 그리고 가락 구성을 보면 세 가지 연행이 유사성을 갖고 있다. 당산 제만굿 가락은 마당밟이의 정재굿과 유사하며, 판굿은 마당밟이의 확대형에 해당한다. 잔수농악의 판굿은 십이채로 구성되어 있지만 남원, 임실, 곡성과 같이 징의 점수로 채를 구분하는 형태와 다르다. 잔수농악의 판굿은 마당밟이와 당산 제만굿 가락들을 모아 놓은 형태이다.즉 하나의 뿌리에서 세 연행 형태의 가락들이 파생되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마당밟이와 판굿이 인과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마당밟이와 판굿은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으며, 마당밟이가 확장되어 판굿을 이루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판굿을 보면, 먼저 문굿으로 시작해서 마당밟이를 하면서 액을 긁어 담고, 액막이굿과 성주풀이를 통해 집과 사람, 동물의 액을 막는다. 그리고 액을 긁어 담은 조리중을 도둑잽이굿 과정에서 쏴 죽여 액을 소멸시키며 끝에 파제굿을 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마당밟이에서 조리중이 액을 긁어 담는 것과, 판굿의 도둑잽이굿에서 액을 담고 있는 조리중을 포수가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이다.
조리중의 역할은 두 굿을 매개하는 기능을 한다. 마당밟이에서 액을 긁어서 담은 조리중을 도둑잽이에서 총으로 쏴 죽여 액을 소멸시킨다는 설정은 두 굿의 밀접한 연관성을 압축적으로 설명해 준다. 당산굿, 마당밟이, 판굿이 하나의 제의적 연행으로 세트화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마당밟이를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판굿을 치며, 판굿의 마지막 과정에서 도둑잽이굿과 파제굿을 연행하는데, 액을 소멸시키는 도둑잽이굿과 제의적 상황을 종결하는 파제굿이 판굿의 마지막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판굿이 본래 정초의 걸립이나 마당밟이, 장원례 등의 끝에 ‘파접례’로서 진행되었음을 보여 준다. 판굿이 예술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공간임과 동시에 굿놀이의 시·공간을 끝맺는 기능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을 단위의 판굿에서 파방굿이나 파장굿, 파제굿 등의 명칭이 사용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실제 파방굿·파장굿·파제굿 등의 명칭은 판굿의 이칭이기도 하고, 판굿의 막바지에 해당하는 굿거리의 명칭이기도 하다. 판굿의 제의성은 판굿을 마친 뒤 고깔 등의 도구를 불태우고, 그 위를 뛰어넘는 행위에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행위는 가면극에서 마지막에 탈을 소각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며, 농악이 액막이 기능을 지닌 연행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으로 볼 때, 판굿은 각각 성격이 다른 당산굿과 마당밟이를 연결시키고 종합하는 굿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당산 제만굿, 마당밟이, 판굿이 엄밀히 분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 면모라고 할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첫째, 잔수농악은 좌도농악 일반의 보편성을 띠고 있으면서 독자적인 개성을 유지하고 있다. 산악 지형이 발달한 지역답게 힘찬 쇠가락과 활달한 진풀이가 돋보이고, 가락 구성이나 빠르게 몰아가는 연주 방식 등에서 좌도농악의 판제를 그대로 보여 준다. 판굿과 가락 구성에서 주변 지역과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인근의 남원농악 및 필봉농악의 판굿과 비교했을 때 영산굿, 허허굿, 노래굿, 도둑잽이굿 등은 명칭과 형태가 유사하다. 특히 영산굿의 경우 호남좌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굿거리로서 잔수농악에서도 연행되고 있다.
남원농악과 필봉농악은 판굿을 ‘전굿-후굿’ 또는 ‘앞굿-뒷굿’으로 구분하고 있고, 주로 앞부분에서 채굿과 호허굿, 영산 등을 연행하고 뒷부분에서 노래굿, 도둑잽이굿 등을 연행한다. 잔수농악의 판굿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판굿이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되지 않았을 뿐 앞부분에서 채굿과 영산, 허허굿을 연행하고, 뒷부분에서 노래굿과 도둑잽이굿을 연행한다. 물론 차이점도 많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판굿 전체를 십이채굿으로 이해하는 것과 마당밟이와 판굿이 미분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십이채굿 또는 십이차굿의 개념은 남해안 지역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대표적으로 진주 삼천포 십이차굿과 완도 지역의 십이차굿을 들 수 있는데, 잔수농악의 경우도 이들과 비슷한 개념으로 묶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잔수농악의 판굿은 전체적인 절차나 구성에서 호남좌도농악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서 남해안 지역의 십이채굿 개념이 포함돼 있는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잔수(신촌)마을의 지리적 위치와 일정한 관련이 있다. 신촌마을은 조선시대에 섬진강 유역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던 역驛이 설치되어 있었고, 서남쪽으로는 생활권인 순천과 연결돼 있고 동북쪽으로는 곡성과 남원 쪽으로 연결돼 있다. 실제 예전에 걸궁을 다닐 때 순천, 여수 등지로 다니면서 굿을 치기도 했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가 북부와 남부의 특징을 공유하는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치배 구성의 특징을 보면, 인근 지역과 기본 구성은 비슷하지만 동물형 잡색인 ‘곰’ 배역이 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곰은 판 안에서 재주넘기를 하는데, 예전에는 곰을 놀리는 사람들이 중국말 흉내를 냈다고 한다. 잡색으로서의 곰과 곰재주는 흔치 않은 사례이다. 전남 여수 백초농악의 사례에서 호랑이와 곰, 소 등이 보일 뿐, 이외의 지역에서는 보고된 바가 없다. 다만 최근 보고된 자료에 의하면, 경남 남해에서 활동한 남사당패에 곰 역할의 잡색이 있었고, 이들이 광양을 거쳐 북쪽으로 이동하며 활동했다는 설명이 있다. 여천의 동물 잡색들은 성행위를 모방하는 형태의 춤을 추고, 남해와 광양의 곰은 ‘곰재주’라고 해서 주로 재주넘기를 한다. 이것으로 볼 때 남해와 광양에서 보고된 곰과 잔수농악의 곰이 명칭과 놀이형태에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잔수농악의 도둑잽이는 인근 지역과 다른 부분이 많다. 호남 지역의 도둑잽이는 ‘군사놀음형’과 ‘투전-군사놀음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군사놀음형의 경우, 상쇠를 중심으로 뭉친 아군패(앞치배와 기수들)와 대포수를 중심으로 뭉친 적군패(잡색)가 대결한다. 적군패가 성안/진중陣中으로 침입해 들어와 상쇠의 꽹과리나 나발을 몰래 훔쳐서 자기 몸에 감추면, 상쇠가 대포수와 지혜로 대결하여 결국 꽹과리/나발을 찾아내고, 대포수를 처단하여 아군이 승리한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투전-군사놀음형은 갈등의 원인이 꽹과리나 나발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투전놀음을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대포수가 처단되는 것은 비슷하다.
그런데 잔수농악의 도둑잽이는 이런 두 유형과 달리 아군과 적군의 관계 또는 군사적 의미 등이 나타나지 않으며, 다른 지역과 달리 대포수가 처단되는 것이 아니라 대포수가 조리중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과정이 등장한다. 이런 설정은 조리중의 역할과 관련 있다. 조리중은 마당밟이 과정에서 모든 집의 액을 긁어 담는 역할을 한다. 실제 조리와 갈퀴를 들고 액을 긁어서 배낭에 넣는 시늉을 한다. 따라서 조리중이 액을 긁어모았기 때문에 조리중을 쏘아 죽여 액을 소멸시킨다는 설정을 보여 준다. 이것은 다른 지역에서 추상화되어 있는 도둑잽이굿의 주술적 성격을 원초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도둑잽이굿이 판굿의 막바지에 연행되는 점과 판굿이 마당밟이의 확장된 형태라는 점에서 의미가 분명해진다. 잔수농악의 판굿은 집에 들어간다는 의미의 문굿에서 시작해서 마당밟이를 통해 액을 긁어 담고, 액막이굿과 성주풀이를 통해 집과 사람, 동물의 액을 막는다. 그리고 액을 긁어 담은 조리중을 도둑잽이굿 과정에서 쏴 죽여 액을 소멸시킨다. 이러한 과정의 끝에 파제굿을 치고 문굿을 쳐서 집을 나가면 판굿이 마무리 된다. 제의적 연행의 마지막 끝에 직접적으로 액을 소멸시키는 것을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도둑잽이굿의 원초적 성격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잔수농악은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개성이 있다. 두둥갱이, 지지깽이, 돌이뱅뱅 등 다른 지역에 없는 가락들이 있고 가락 구성도 독특한 점이 있다. 두둥갱이, 지지깽이 등은 장구와 꽹과리 구음에서 비롯된 가락 이름이다. 그리고 돌이뱅뱅은 진을 짜는 모습과 연관된 이름이다. 다른 데서 보기 힘든 이와 같은 가락들은 작명에서 보듯이 매우 토속적이다. 돌이뱅뱅과 돌이 뱅뱅뱅은 2소박 3박 구조인 점이 독특하며, 구음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연주법과 진법도 주목된다. 다른 지역에서는 달팽이진이라 부르는 진법을 이 마을에서는 덕석몰이라고 부르고 있다.
잔수농악이 마을 단위 농악이지만 연희자들의 기량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것은 전승 과정에서 확인되듯이 대외적인 걸궁 활동과 관련 있다. 인근 지역까지 명성을 날리던 연희자들과 그들에게 교육을 받은 치배들이 대내외 활동을 활발하게 해 온 것이 남다른 역량의 근간이 되었다. 특히 현 치배들이 경험했던 일정 기간 기량을 주기적으로 연마해 온 교육 시스템은 뛰어난 연주 능력의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잔수농악에서 볼 수 있는 예술적 표현은 전문 치배들의 그것과 다른 점이 있다. 유명 농악대의 경우, 화려한 개인놀이와 다양한 판굿 구성 등을 통해 수준 높은 예술성을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대부분의 농악대에서는 상쇠나 설장구의 기예가 가장 주목받는다. 그리고 판굿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각종 개인놀이와 연희 구성을 특별하게 평가한다.
그런데 잔수농악은 상쇠나 설장구의 개인 능력이 뛰어나지만 개인놀이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잔수농악은 제주齊奏 형태의 변주를 화려하게 연행하는 점이 특징이다. 여러 악기의 제주를 통해 개성적인 가락들을 화려하게 연행하는 것이 잔수농악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라고 할 수 있다. 잔수농악의 예술성은 독특한 연주 방식과 관련 있다. 잔수농악에서 사용되는 허튼형 가락들과 메기고받는 방식의 연주는 상쇠의 뛰어난 기량을 요구한다. 두둥갱이와 외마치, 지지깽이 등이 모두 즉흥성을 지닌 허튼형의 가락이다. 또한 이채와 지지깽이의 메기고받는 형식 역시 상쇠의 기량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상쇠만이 아닌 모든 치배들의 역량과 관련이 있다. 특히 두둥갱이 가락에서 볼 수 있는 3소박에서 2소박으로의 변화는 상쇠가 주도하지만 장구를 비롯한 나머지 악기들이 모두 함께 연주한다.
이와 같은 제주齊奏와 그 변주의 아름다움은 잔수농악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외마치의 속도를 몰아가서 종지하는 것도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특징이다. 시작할 때에는 3소박 4박 구조이지만 종지할 때에는 속도에 의해 2소박 4박으로 박자구조가 변화되고 더욱 빨라진 후에는 2소박 2박처럼 들리는 현상을 보인다. 속도의 가감에 따라 장단구조가 변화하는 것은 민요와 무악 등 한국 음악 전반에서 드러나는 특성이지만 농악과 같이 많은 연주 인원이 참여하는 음악에서 발견된 사례가 없다. 이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모든 치배들의 일치된 호흡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가락과 연주 방식은 매우 개성적인 표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잔수농악 특유의 연행 방식은 마을 단위 예능 활동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미학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치배들의 일치된 호흡과 제주는 ‘기량을 갖춘 마을농악’이 구축해 온 특별한 예술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당산굿-마당밟이-판굿 연행과 가락 구성의 내적 연계성, 판굿의 미분화성 등과 더불어 잔수농악이 지닌 남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구례잔수농악(이경엽 외, 민속원, 2008), 구례잔수농악(나경수외·국립문화재연구소, 민속원, 2011), 구례잔수농악의 전승양상과 연행의특징(이경엽 외, 풍물굿연구3, 한국풍물굿학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