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월포농악(高兴月浦农乐)

고흥월포농악

한자명

高兴月浦农乐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이경엽(李京燁)

정의

전라남도 고흥 금산면 신평리 월포마을에서 전승되는 농악.

개관

월포농악의 유래는 매귀埋鬼와 관련 있는 것으로 전한다. 월포농악전수관 앞에 세워진 ‘매귀와 문굿 유래’라는 비석에는 정월에 당산제를 모시고 풍년을 빌며 액을 막고자 치는 굿에서 농악이 유래했음을 밝히고 있다. 공동체의 안녕을 축원하기 위해 당산제를 모시고 풍물을 쳐온 내력이 곧 농악의 역사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월포농악 핵심 공연 종목 중 하나인 문굿은 특별한 유래가 전한다. 문굿이란 영기를 세워 놓고 앞에 늘어서서 상징적인 행위들을 반복하면서 다채로운 가락을 연주하는 농악이다. 전승자들은 문굿이 군법의 엄격함과 통한다고 설명한다. 문굿의 근원에는 수군 군영軍營에서 사용하던 군악軍樂이 있다고 말한다. 문굿의 군악 기원설은 지역적 특성과 연관이 있다. 남해안 지역에서는 농악을 군고軍鼓라고 부르는데, 임진왜란과 이후에 활약했던 수군의 영향을 보여 주는 근거로 거론된다.
월포농악도 조선 수군의 거점지인 고흥의 지역적 전통에 토대를 두고 설명된다. 전라도 동부 해안을 방비하던 전라좌수영에는 본영(여수)과 관할 5관(순천, 낙안, 보성, 광양, 흥양), 5포(방답, 사도, 발포, 녹도, 여도)가 있었다. 이 중 1관(흥양-현 고흥군), 4포(사도진-현 고흥군 점암면 금사리, 여도진-현 고흥군 점암면 여호리, 발포진-현 고흥군 도화면 내발리, 녹도진-현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가 고흥 관내에 속했다. 이런 이유로 고흥은 다른 지역보다 군악의 전통이 더 강했으며, 문굿이라는 특징적인 농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문굿은 고흥에서 이름난 예인들을 통해 전승되었다고 전한다. 문굿이 전해지기 전까지 월포 사람들은 일반 농악은 잘 했으나 문굿은 칠 줄 몰랐다고 한다. 마을 노인들이 군법으로 전하는 문굿을 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농악대로 행세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문굿 전수를 강조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이웃마을에 살던 김응선과 박홍규에게서 문굿이 전수되었다고 한다. 문굿의 전수 과정을 보여 주는 자료로 ‘야유농악夜遊農樂’이란 세 장짜리 문서가 전하고 있다. 문서 명칭으로 볼 때, ‘밤에 놀면서 치는 농악’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 문서에는 굿을 치는 절차와 가락들이 설명되어 있다.
월포농악의 전승 계보는 마을 자체 내의 상쇠(최치선-진야무)와 인근 마을 상쇠(김응선-박홍규)의 예능을 결합한 형태로 되어 있다. 이를 종합한 최병태崔炳泰, 상쇠의 뒤를 이어 정이동 상쇠가 활동했고, 현재는 진삼화 상쇠가 농악대를 이끌고 있다. 장구를 잘 치던 이로는 설장고 최영채와 부장고 장옥선, 최명하가 있다. 이들은 상모를 돌리면서 장구를 쳤는데 당대 최고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역대 연희자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는 최병태 상쇠다. 최병태는 열두 살 때 상쇠 뒤를 따라 다니며 기능을 익히는 ‘농부’ 역을 거쳐 상쇠가 되었다. 농부란 상쇠 흉내를 내면서 춤사위, 상모놀이, 진풀이, 농악의 전체 진행 등을 익히는 역할이다. 예전 쇠잽이들은 이 과정을 거쳐 끝쇠-부쇠-상쇠가 되곤 했다. 최병태 상쇠 역시 농부 역을 3년 정도 한 뒤 끝쇠가 되었고, 그 후 전임 상쇠 진야무의 뒤를 이어 상쇠로 활동했다. 최병태 상쇠는 월포농악의 명성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월포농악이 1990년대 초에 각종 행사와 경연대회에 나가 이름을 얻을 때 활동했던 상쇠가 바로 최병태다. 1994년에 월포농악이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을 때, 최병태 상쇠는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내용

농악대의 구성은 연행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구성 인원은 고정되지 않는다. 기수(덕석기, 농기, 영기), 쇠 4명, 농부 2명, 징 3명, 장구 3명, 북 5명, 벅구 10명 이상, 소고 10명 이상, 잡색(대포수, 양반 등) 역할 등이 있다. 쇠잽이(상쇠, 부쇠, 끝쇠)의 복색은 구분되지 않고 동일하다.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저고리 위에는 팔꿈치 윗부분에 황색, 청색 띠가 둘러져 있는 빨간색 쾌자를 입는다. 허리에는 황색 띠를 두른다. 머리에는 전립을 쓴다. 농부의 복색은 쇠잽이의 복색과 동일하다. 농부는 악기를 다루지 않는 대신 등 쪽에 늘어져 있는 띠를 양손에 하나씩 잡고 춤을 추면서 상쇠의 일거수 일투족을 흉내 내며 다닌다. 징, 장구, 북, 벅구, 소고잽이의 복색은 동일하다.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청색 조끼를 착용한다. 쇠잽이와 달리 삼색띠(왼쪽 어깨에 홍색, 오른쪽 어깨에 황색, 허리에 청색띠)를 두르고 머리에 고깔을 쓴다. 벅구는 일반 북보다 작고 소고보다는 조금 큰 악기이다. 북은 최근 들어 치기 시작한 것이고, 과거에는 벅구를 주로 쳤다. 요즘 소고는 여자들이 치는데, 원래 농악대에 여자가 끼지 않았으나 최근 사람이 부족해 여자들이 치게 되었다. 포수는 머리에 ‘대장군’이라쓰인 대포수관을 쓰고, 어깨에는 꿩과 짚신이 매달린 망태를 짊어지고 손에는 목총을 든다. 양반은 흰색 도포를 입고 관을 쓰고, 손에는 부채를 든다.
월포농악은 당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음력 정월 3~4일에 당제를 중심에 두고 여러 가지 농악 공연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정월 10일 무렵에 날을 받아 제굿과 헌식을 하면 정월의 농악 연행이 끝나게 된다. 이것으로 볼 때, 월포농악은 정월 세시풍속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제의적·예술적 연행이라고 할 수 있다. 월포농악의 주요 굿판은 당산굿, 제굿, 마당밟이(뜰볿이), 판굿, 문굿이 있다. 이 굿판은 마을의 공동제의인 당제와 헌식 기간에 집중적으로 배치된다. 정월 초사흗날에는 당산굿(당맞이굿), 선창굿, 간척지 제굿, 마당밟이, 문굿, 당제와 제굿이 연행된다. 그리고 정월 열흘을 기준으로 날을 받아 제굿과 헌식이 이루어진다. 이 중에서 판굿은 전승이 거의 중단된 상태이고, 마당밟이는 특별한 요청이 있을 경우에 연행한다.
1. 당산굿은 ‘당산신을 맞이하기 위해 치는 굿’이며 ‘당맞이’라고 불린다. 당제를 지내는 정월 초사흗날 가장 먼저 치는 굿이 당산굿이다. 당산굿은 두 곳에서 연행된다. 첫 번째는 마을 입구 당터(사장나무 앞)에서 산중턱에 있는 당을 향해 치고, 두 번째는 마을 선착장으로 이동해서 바다를 바라보고 친다. 선착장에서 바다를 보고 치는 굿은 바다의 용왕신에게 어업 활동과 관련해 “해상 사업 잘 되게 해주십쇼.”라고 비는 굿이다. 당산굿은 내용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본래 정해진 절차를 빠짐없이 연행하는 ‘당산굿’이고, 다른 하나는 벅구놀이를 제외하고 치는 ‘흘림당산굿’이다. 선착장에서는 ‘흘림당산굿’을 친다.
2. 제굿은 제관이 당에 올라가 제사를 지낼 때, 이에 맞춰 마을에서 당을 바라보면서 치는 굿이다. 제관들이 제물을 진설한 뒤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면 신호에 맞춰 농악대가 굿을 친다. 이렇게 해서 당에서 제관들이 지내는 당제와 마을에서 농악대가 치는 제굿이 같은 시간에 시작해서 같은 시간에 마치게 된다. 30년 전에 조성한 간척지에서도 제굿을 친다. 간척지 제굿은 절차를 축소해서 간단하게 친다.
3. 문굿은 월포농악에서 가장 특별한 굿이다. 문굿은 군법으로서 엄격한 절차를 보여 주는 것이며 상쇠나 치배(군총)의 예능이 집약되어 있는 굿판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문굿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하지 않고 본격적인 굿판이 벌어질 때 연행된다. 농악대회에 나갈 때에는 문굿을 중심으로 공연이 이루어지곤 한다.
4. 마당밟이는 간척지굿을 마치고 밤에 제굿을 치기 전까지 가정집을 돌아다니면서 한다. 그리고 당제를 지낸 다음날부터 며칠간 마을의 모든 가정을 돌면서 마당밟이를 한다. 근래에는 마당밟이를 요청하는 집에 한해서 진행하기 때문에 마당밟이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
5. 판굿은 주로 밤에 연행한다. 군총들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판굿을 칠 집을 선정한다. 보통 새로 성주를 올린 집이나 마당이 넓고 넉넉한 집에서 한다. 판굿을 치게 되면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주위를 돌면서 굿을 친다. 요즘에는 판굿 공연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징 및 의의

월포농악은 현장과의 연계성이 강하다. 이 는 정초 세시풍속의 일환으로 농악이 전승되고 있다는 점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지내는 당제를 전후해서 당산굿-선창굿-간척지굿-제굿-마당밟이-문굿을 연행하고 있다. 요즘 들어 마당밟이는 요청이 있을 때만 하고, 문굿은 축제나 대회에서 주로 치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마을 현장에서 연행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약화되기는 했지만 연행 현장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월포농악의 현장성은 최근 농악의 일반적인 전승 현황에 비춰볼 때 특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 된 농악대의 경우, 무대 공연 중심의 활동이 많다. 월포농악은 공동체의 안녕과 풍년을 빌기 위한 목적으로 초자연적인 존재와 소통하는 시공간에서 연행되고 있다. 일반 오락이 아닌 제의적 연행이므로 거리낌 없는 사람들이 참여해서 정성을 다해 농악을 친다. 그리고 공동체의 축원과 신명을 마음껏 발산하는 축제를 펼쳐간다. 이와 같이 월포농악은 현장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살아 있는 민속으로 전승되고 있다. 이 점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주민들은 30여 년 전에 간척지를 만들어 농지로 만들었는데, 그 뒤로 간척지굿을 새로 추가해서 연행하고 있다. 농경지 확보는 월포 사람들에게 각별한 일로 간주된다.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주민들이 단합해서 간척을 하고 벼농사를 짓게 된 것을 특별하게 여기고 있다. 이런 공동체의 경험을 문화적으로 수용한 것이 바로 간척지굿이다. 그래서 정월에 농악을 칠 때, 바닷가에서 선창굿을 치고 난 다음 간척지굿을 치고 있다. 기존의 생업 공간인 바다와 새로 추가된 농경지를 아우르는 농악 연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성을 토대로 한 창조적인 전승이라고 할 수 있다.
월포농악의 가락 명칭은 체계적이고 음악적으로 다채롭다. 연주되는 징의 점수에 따른 명칭으로 채굿이 있다. 채굿에는 외채(일채)부터 이채, 삼채, 사채, 오채, 육채, 칠채, 팔채에 이르는 다양한 장단이 있으며, 특히 삼채는 느린삼채, 중삼채, 자진삼채, 된삼채, 정문삼채 등으로 세분되는 특성도 보인다. 또한 연행 형태에 따른 명칭과 가락이 있다. 쇠싸움, 갈림쇠, 예절굿(인사굿), 노래굿, 진풀이(새끼풀이), 태극진, 미지기, 삼방울진 등이다. 연행 장소에 따른 명칭으로는 문굿, 샘굿, 마당굿, 성주굿, 정지굿, 철룡굿, 질굿(옛질굿, 헐미사질굿), 주행굿(절갱굿) 등이 있다. 음악적 표현과 관련된 명칭으로는 앵모리, 업몰이, 허허굿, 매지는 가락, 양산도가락, 영산다드래기, 창영산, 접창영산 등이 있다. 구음을 이용한 명칭으로는 너나리굿(느린삼채), 니로로, 음마깽깽, 딱징(쇠끝음), 도리동산굿, 중도리동산 등이 있다. 강강술래 부수놀이와 유사한 놀이(멍석풀기, 고사리꺽자, 청어엮자 등)가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또한 북놀이(벅구놀음) 과정에서 진행되는 ‘등치기, 발치기, 수박치기, 땅치기’ 역시 강강술래와 관련이 있다. 춤과 관련된 명칭도 있다. 풍류굿(춤굿), 대풍류, 발림삼채(춤굿) 등이 있다. 월포농악에는 혼소박형 장단이 많은 편이다. 혼소박형 장단은 연주가 쉽지 않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가장 먼저 사라지고 단절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므로 혼소박형 장단이 전승되고 있다는 점 자체가 각별하다고 할수 있다. 혼소박형 장단으로는 옛질굿, 영산다드래기, 창영산, 접창영산, 니로로, 호호굿, 진풀이굿, 굿풀이굿 등이 있다. 이 장단들은 2+3+3+2형과 3+3+2형, 그리고 3+2+3+2형 등 다양한 혼소박의 조합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공통적인 가락 구조를 이용하여 서로 연결하여 연주되고 있다.
월포농악에서는 벅구(북)의 역할이 중요시 된다. 수십 명의 치배들이 연주하는 웅장한 북놀이는 월포농악의 특징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풍물굿에서 북이 강조되는 것은 남해안 지역의 일반적인 특징이지만, 연행자들이 줄어들고 여성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북놀이의 형태도 변하고 있다. 벅구는 북보다 작고 소고보다는 조금 큰 악기이다. 북은 최근 들어 사용한 것이고, 과거에는 북보다 이 벅구를 주로 쳤다. 또한 소고는 여자들이 치고 있는데, 원래 농악대에 여자가 끼지 않았으므로 소고 역시 최근 들어 사용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월포농악의 특징은 수십 명의 남성 연희자들이 연주하는 벅구에 있으며, 벅구를 든 치배들의 춤사위야말로 월포농악의 각별함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벅구를 중시하는 것은 ‘벅구놀이’에 대한 인식에서도 나타난다. 당산굿을 하는 데 있어서 벅구놀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당산굿’이라 하고, 벅구놀이를 빼고 하는 것은 ‘흘림당산굿’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당산굿에 벅구놀이가 포함된 것을 완성된 형태로 여기고, 그렇지 않은 것을 변형으로 간주하는 것에서 벅구놀이에 대한 인식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월포농악은 군악과 관련된 농악 전승으로 간주되고 있다. 전승자들 스스로도 강조하고 있으며, 농악 연행에서도 엄정함과 짜임새 있는 예능을 표현하려고 한다. 농악대원들은 문굿 연행과 여러 형태의 진법에서 일사분란하고 집중력 있는 움직임을 보여 준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군대의 사열을 연상케 할 만큼 절도가 있다. 각 치배 개개인의 흥겨운 춤사위와 전체적인 굿패의 움직임이 조화를 이루며, 상쇠의 지휘 아래 만들어 내는 진법들이 독특하다. 농악이 역사적인 전승맥락을 풍부하게 담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고흥월포농악(이경엽·김혜정·송기태, 심미안, 2008).

고흥월포농악

고흥월포농악
한자명

高兴月浦农乐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이경엽(李京燁)

정의

전라남도 고흥 금산면 신평리 월포마을에서 전승되는 농악.

개관

월포농악의 유래는 매귀埋鬼와 관련 있는 것으로 전한다. 월포농악전수관 앞에 세워진 ‘매귀와 문굿 유래’라는 비석에는 정월에 당산제를 모시고 풍년을 빌며 액을 막고자 치는 굿에서 농악이 유래했음을 밝히고 있다. 공동체의 안녕을 축원하기 위해 당산제를 모시고 풍물을 쳐온 내력이 곧 농악의 역사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월포농악 핵심 공연 종목 중 하나인 문굿은 특별한 유래가 전한다. 문굿이란 영기를 세워 놓고 앞에 늘어서서 상징적인 행위들을 반복하면서 다채로운 가락을 연주하는 농악이다. 전승자들은 문굿이 군법의 엄격함과 통한다고 설명한다. 문굿의 근원에는 수군 군영軍營에서 사용하던 군악軍樂이 있다고 말한다. 문굿의 군악 기원설은 지역적 특성과 연관이 있다. 남해안 지역에서는 농악을 군고軍鼓라고 부르는데, 임진왜란과 이후에 활약했던 수군의 영향을 보여 주는 근거로 거론된다.
월포농악도 조선 수군의 거점지인 고흥의 지역적 전통에 토대를 두고 설명된다. 전라도 동부 해안을 방비하던 전라좌수영에는 본영(여수)과 관할 5관(순천, 낙안, 보성, 광양, 흥양), 5포(방답, 사도, 발포, 녹도, 여도)가 있었다. 이 중 1관(흥양-현 고흥군), 4포(사도진-현 고흥군 점암면 금사리, 여도진-현 고흥군 점암면 여호리, 발포진-현 고흥군 도화면 내발리, 녹도진-현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가 고흥 관내에 속했다. 이런 이유로 고흥은 다른 지역보다 군악의 전통이 더 강했으며, 문굿이라는 특징적인 농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문굿은 고흥에서 이름난 예인들을 통해 전승되었다고 전한다. 문굿이 전해지기 전까지 월포 사람들은 일반 농악은 잘 했으나 문굿은 칠 줄 몰랐다고 한다. 마을 노인들이 군법으로 전하는 문굿을 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농악대로 행세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문굿 전수를 강조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이웃마을에 살던 김응선과 박홍규에게서 문굿이 전수되었다고 한다. 문굿의 전수 과정을 보여 주는 자료로 ‘야유농악夜遊農樂’이란 세 장짜리 문서가 전하고 있다. 문서 명칭으로 볼 때, ‘밤에 놀면서 치는 농악’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 문서에는 굿을 치는 절차와 가락들이 설명되어 있다.
월포농악의 전승 계보는 마을 자체 내의 상쇠(최치선-진야무)와 인근 마을 상쇠(김응선-박홍규)의 예능을 결합한 형태로 되어 있다. 이를 종합한 최병태崔炳泰, 상쇠의 뒤를 이어 정이동 상쇠가 활동했고, 현재는 진삼화 상쇠가 농악대를 이끌고 있다. 장구를 잘 치던 이로는 설장고 최영채와 부장고 장옥선, 최명하가 있다. 이들은 상모를 돌리면서 장구를 쳤는데 당대 최고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역대 연희자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는 최병태 상쇠다. 최병태는 열두 살 때 상쇠 뒤를 따라 다니며 기능을 익히는 ‘농부’ 역을 거쳐 상쇠가 되었다. 농부란 상쇠 흉내를 내면서 춤사위, 상모놀이, 진풀이, 농악의 전체 진행 등을 익히는 역할이다. 예전 쇠잽이들은 이 과정을 거쳐 끝쇠-부쇠-상쇠가 되곤 했다. 최병태 상쇠 역시 농부 역을 3년 정도 한 뒤 끝쇠가 되었고, 그 후 전임 상쇠 진야무의 뒤를 이어 상쇠로 활동했다. 최병태 상쇠는 월포농악의 명성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월포농악이 1990년대 초에 각종 행사와 경연대회에 나가 이름을 얻을 때 활동했던 상쇠가 바로 최병태다. 1994년에 월포농악이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을 때, 최병태 상쇠는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내용

농악대의 구성은 연행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구성 인원은 고정되지 않는다. 기수(덕석기, 농기, 영기), 쇠 4명, 농부 2명, 징 3명, 장구 3명, 북 5명, 벅구 10명 이상, 소고 10명 이상, 잡색(대포수, 양반 등) 역할 등이 있다. 쇠잽이(상쇠, 부쇠, 끝쇠)의 복색은 구분되지 않고 동일하다.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저고리 위에는 팔꿈치 윗부분에 황색, 청색 띠가 둘러져 있는 빨간색 쾌자를 입는다. 허리에는 황색 띠를 두른다. 머리에는 전립을 쓴다. 농부의 복색은 쇠잽이의 복색과 동일하다. 농부는 악기를 다루지 않는 대신 등 쪽에 늘어져 있는 띠를 양손에 하나씩 잡고 춤을 추면서 상쇠의 일거수 일투족을 흉내 내며 다닌다. 징, 장구, 북, 벅구, 소고잽이의 복색은 동일하다.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청색 조끼를 착용한다. 쇠잽이와 달리 삼색띠(왼쪽 어깨에 홍색, 오른쪽 어깨에 황색, 허리에 청색띠)를 두르고 머리에 고깔을 쓴다. 벅구는 일반 북보다 작고 소고보다는 조금 큰 악기이다. 북은 최근 들어 치기 시작한 것이고, 과거에는 벅구를 주로 쳤다. 요즘 소고는 여자들이 치는데, 원래 농악대에 여자가 끼지 않았으나 최근 사람이 부족해 여자들이 치게 되었다. 포수는 머리에 ‘대장군’이라쓰인 대포수관을 쓰고, 어깨에는 꿩과 짚신이 매달린 망태를 짊어지고 손에는 목총을 든다. 양반은 흰색 도포를 입고 관을 쓰고, 손에는 부채를 든다.
월포농악은 당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음력 정월 3~4일에 당제를 중심에 두고 여러 가지 농악 공연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정월 10일 무렵에 날을 받아 제굿과 헌식을 하면 정월의 농악 연행이 끝나게 된다. 이것으로 볼 때, 월포농악은 정월 세시풍속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제의적·예술적 연행이라고 할 수 있다. 월포농악의 주요 굿판은 당산굿, 제굿, 마당밟이(뜰볿이), 판굿, 문굿이 있다. 이 굿판은 마을의 공동제의인 당제와 헌식 기간에 집중적으로 배치된다. 정월 초사흗날에는 당산굿(당맞이굿), 선창굿, 간척지 제굿, 마당밟이, 문굿, 당제와 제굿이 연행된다. 그리고 정월 열흘을 기준으로 날을 받아 제굿과 헌식이 이루어진다. 이 중에서 판굿은 전승이 거의 중단된 상태이고, 마당밟이는 특별한 요청이 있을 경우에 연행한다.
1. 당산굿은 ‘당산신을 맞이하기 위해 치는 굿’이며 ‘당맞이’라고 불린다. 당제를 지내는 정월 초사흗날 가장 먼저 치는 굿이 당산굿이다. 당산굿은 두 곳에서 연행된다. 첫 번째는 마을 입구 당터(사장나무 앞)에서 산중턱에 있는 당을 향해 치고, 두 번째는 마을 선착장으로 이동해서 바다를 바라보고 친다. 선착장에서 바다를 보고 치는 굿은 바다의 용왕신에게 어업 활동과 관련해 “해상 사업 잘 되게 해주십쇼.”라고 비는 굿이다. 당산굿은 내용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본래 정해진 절차를 빠짐없이 연행하는 ‘당산굿’이고, 다른 하나는 벅구놀이를 제외하고 치는 ‘흘림당산굿’이다. 선착장에서는 ‘흘림당산굿’을 친다.
2. 제굿은 제관이 당에 올라가 제사를 지낼 때, 이에 맞춰 마을에서 당을 바라보면서 치는 굿이다. 제관들이 제물을 진설한 뒤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면 신호에 맞춰 농악대가 굿을 친다. 이렇게 해서 당에서 제관들이 지내는 당제와 마을에서 농악대가 치는 제굿이 같은 시간에 시작해서 같은 시간에 마치게 된다. 30년 전에 조성한 간척지에서도 제굿을 친다. 간척지 제굿은 절차를 축소해서 간단하게 친다.
3. 문굿은 월포농악에서 가장 특별한 굿이다. 문굿은 군법으로서 엄격한 절차를 보여 주는 것이며 상쇠나 치배(군총)의 예능이 집약되어 있는 굿판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문굿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하지 않고 본격적인 굿판이 벌어질 때 연행된다. 농악대회에 나갈 때에는 문굿을 중심으로 공연이 이루어지곤 한다.
4. 마당밟이는 간척지굿을 마치고 밤에 제굿을 치기 전까지 가정집을 돌아다니면서 한다. 그리고 당제를 지낸 다음날부터 며칠간 마을의 모든 가정을 돌면서 마당밟이를 한다. 근래에는 마당밟이를 요청하는 집에 한해서 진행하기 때문에 마당밟이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
5. 판굿은 주로 밤에 연행한다. 군총들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판굿을 칠 집을 선정한다. 보통 새로 성주를 올린 집이나 마당이 넓고 넉넉한 집에서 한다. 판굿을 치게 되면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주위를 돌면서 굿을 친다. 요즘에는 판굿 공연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징 및 의의

월포농악은 현장과의 연계성이 강하다. 이 는 정초 세시풍속의 일환으로 농악이 전승되고 있다는 점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지내는 당제를 전후해서 당산굿-선창굿-간척지굿-제굿-마당밟이-문굿을 연행하고 있다. 요즘 들어 마당밟이는 요청이 있을 때만 하고, 문굿은 축제나 대회에서 주로 치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마을 현장에서 연행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약화되기는 했지만 연행 현장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월포농악의 현장성은 최근 농악의 일반적인 전승 현황에 비춰볼 때 특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 된 농악대의 경우, 무대 공연 중심의 활동이 많다. 월포농악은 공동체의 안녕과 풍년을 빌기 위한 목적으로 초자연적인 존재와 소통하는 시공간에서 연행되고 있다. 일반 오락이 아닌 제의적 연행이므로 거리낌 없는 사람들이 참여해서 정성을 다해 농악을 친다. 그리고 공동체의 축원과 신명을 마음껏 발산하는 축제를 펼쳐간다. 이와 같이 월포농악은 현장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살아 있는 민속으로 전승되고 있다. 이 점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주민들은 30여 년 전에 간척지를 만들어 농지로 만들었는데, 그 뒤로 간척지굿을 새로 추가해서 연행하고 있다. 농경지 확보는 월포 사람들에게 각별한 일로 간주된다.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주민들이 단합해서 간척을 하고 벼농사를 짓게 된 것을 특별하게 여기고 있다. 이런 공동체의 경험을 문화적으로 수용한 것이 바로 간척지굿이다. 그래서 정월에 농악을 칠 때, 바닷가에서 선창굿을 치고 난 다음 간척지굿을 치고 있다. 기존의 생업 공간인 바다와 새로 추가된 농경지를 아우르는 농악 연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성을 토대로 한 창조적인 전승이라고 할 수 있다.
월포농악의 가락 명칭은 체계적이고 음악적으로 다채롭다. 연주되는 징의 점수에 따른 명칭으로 채굿이 있다. 채굿에는 외채(일채)부터 이채, 삼채, 사채, 오채, 육채, 칠채, 팔채에 이르는 다양한 장단이 있으며, 특히 삼채는 느린삼채, 중삼채, 자진삼채, 된삼채, 정문삼채 등으로 세분되는 특성도 보인다. 또한 연행 형태에 따른 명칭과 가락이 있다. 쇠싸움, 갈림쇠, 예절굿(인사굿), 노래굿, 진풀이(새끼풀이), 태극진, 미지기, 삼방울진 등이다. 연행 장소에 따른 명칭으로는 문굿, 샘굿, 마당굿, 성주굿, 정지굿, 철룡굿, 질굿(옛질굿, 헐미사질굿), 주행굿(절갱굿) 등이 있다. 음악적 표현과 관련된 명칭으로는 앵모리, 업몰이, 허허굿, 매지는 가락, 양산도가락, 영산다드래기, 창영산, 접창영산 등이 있다. 구음을 이용한 명칭으로는 너나리굿(느린삼채), 니로로, 음마깽깽, 딱징(쇠끝음), 도리동산굿, 중도리동산 등이 있다. 강강술래 부수놀이와 유사한 놀이(멍석풀기, 고사리꺽자, 청어엮자 등)가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또한 북놀이(벅구놀음) 과정에서 진행되는 ‘등치기, 발치기, 수박치기, 땅치기’ 역시 강강술래와 관련이 있다. 춤과 관련된 명칭도 있다. 풍류굿(춤굿), 대풍류, 발림삼채(춤굿) 등이 있다. 월포농악에는 혼소박형 장단이 많은 편이다. 혼소박형 장단은 연주가 쉽지 않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가장 먼저 사라지고 단절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므로 혼소박형 장단이 전승되고 있다는 점 자체가 각별하다고 할수 있다. 혼소박형 장단으로는 옛질굿, 영산다드래기, 창영산, 접창영산, 니로로, 호호굿, 진풀이굿, 굿풀이굿 등이 있다. 이 장단들은 2+3+3+2형과 3+3+2형, 그리고 3+2+3+2형 등 다양한 혼소박의 조합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공통적인 가락 구조를 이용하여 서로 연결하여 연주되고 있다.
월포농악에서는 벅구(북)의 역할이 중요시 된다. 수십 명의 치배들이 연주하는 웅장한 북놀이는 월포농악의 특징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풍물굿에서 북이 강조되는 것은 남해안 지역의 일반적인 특징이지만, 연행자들이 줄어들고 여성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북놀이의 형태도 변하고 있다. 벅구는 북보다 작고 소고보다는 조금 큰 악기이다. 북은 최근 들어 사용한 것이고, 과거에는 북보다 이 벅구를 주로 쳤다. 또한 소고는 여자들이 치고 있는데, 원래 농악대에 여자가 끼지 않았으므로 소고 역시 최근 들어 사용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월포농악의 특징은 수십 명의 남성 연희자들이 연주하는 벅구에 있으며, 벅구를 든 치배들의 춤사위야말로 월포농악의 각별함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벅구를 중시하는 것은 ‘벅구놀이’에 대한 인식에서도 나타난다. 당산굿을 하는 데 있어서 벅구놀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당산굿’이라 하고, 벅구놀이를 빼고 하는 것은 ‘흘림당산굿’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당산굿에 벅구놀이가 포함된 것을 완성된 형태로 여기고, 그렇지 않은 것을 변형으로 간주하는 것에서 벅구놀이에 대한 인식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월포농악은 군악과 관련된 농악 전승으로 간주되고 있다. 전승자들 스스로도 강조하고 있으며, 농악 연행에서도 엄정함과 짜임새 있는 예능을 표현하려고 한다. 농악대원들은 문굿 연행과 여러 형태의 진법에서 일사분란하고 집중력 있는 움직임을 보여 준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군대의 사열을 연상케 할 만큼 절도가 있다. 각 치배 개개인의 흥겨운 춤사위와 전체적인 굿패의 움직임이 조화를 이루며, 상쇠의 지휘 아래 만들어 내는 진법들이 독특하다. 농악이 역사적인 전승맥락을 풍부하게 담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고흥월포농악(이경엽·김혜정·송기태, 심미안,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