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농악(高敞农乐)

고창농악

한자명

高敞农乐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송기태(宋奇泰)

정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호남우도농악의 일종.

개관

고창농악은 고창과 영광 지역을 아우르는 영무장농악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과거 영광과 무장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세습무계 걸궁패가 있었는데, 평상시에는 마을의 무업을 담당하였고, 마을굿이나 걸궁 등에서는 상쇠·설장구 등의 연희자로 활동하였다. 당골, 재인들이 주도하는 걸궁이라 하여 당골네 걸궁이라고도 하였다. 1960~70년대까지 세습무계 연희자들과 마을의 농악 예능인들이 함께 걸궁패 활동을 하였다. 이들 걸궁패의 대표적인 인물은 최화집, 김학준, 박성근, 김만식, 신두옥, 신영찬, 김상구, 전경환, 김오채, 황규언 등이 있다. 영무장농악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전북의 고창농악과 전남의 영광우도농악으로 분화되었다. 먼저 영광우도농악이 1987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고, 고창농악은 2000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다. 고창농악은 고故 황규언(상쇠), 고 정창환(고깔소고춤), 정기환(설장구)등이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고, 현재 고창농악보존회에서 보존과 전승 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내용

  1. 농악의 연희자(치배)와 악기
    고창농악에서는 연희자들을 치배 또는 군총이라고 한다. 치배의 구성은 크게 기수, 취수, 악기수, 잡색으로 구분된다. 기수는 영기, 농기, 단기 등을 들고 굿패의 선두에 서고, 취수는 나발과 새납을 분다. 악기수는 쇠, 징, 장구, 통북, 소고를 치며 농악판에서 주된 연희를 펼친다. 잡색은 12명으로 구성된다. 전체 인원수는 30~40명 정도로 영기 2명, 농기 1명, 단기 1명, 나발 1명, 새납 1명, 쇠 4~6명, 징 2~4명, 장구 6~8명, 통북 2~4명, 소고 6~10명, 잡색 12명 등으로 편성된다. 치배의 수는 연행판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진다.
    1) 기수: 깃발은 영기, 농기, 단기 세 종류가 있다. 영기令旗는 깃발에 ‘令’ 자가 적혀 있고 깃대 끝에 삼지창이 달려 있으며 2개가 한 쌍으로 다닌다. 굿패가 행진을 할 때 가장 앞에 서는 기가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판굿이 진행될 때는 농기農旗, 단기團旗와 더불어 정면에 위치한다. 농기는 긴 천에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문장이 쓰여 있고, 깃발의 상단은 적, 청, 황색의 색천으로 장식한다. 단기는 굿패의 이름을 적어 놓은 기다. 깃대와 기의 모양은 농기와 같으며, 기에 해당하는 단체의 이름을 적어 넣는다. 기수는 흰색 바지저고리에 파란색 조끼를 입고 드림을 맨다. 머리에는 백·황·적 삼색 고깔을 쓴다.
    2) 취수: 취수로는 나발수와 새납수가 있다. 나발은 판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중요한 악기로 사용된다. 판에서 중간 중간 흐름이 끊길 때 나발을 불어 흐름을 이어가기도 한다. 흰색 바지저고리에 파란색 조끼를 입고 드림을 맨다. 머리에는 백·황·적 삼색 고깔을 쓴다.
    3) 악기수: 고창농악의 주요 악기는 쇠, 징, 장구, 통북, 소고가 있다. 쇠는 꽹과리, 꽹매기, 매귀라고도 한다. 쇠를 치는 쇠꾼은 흰색 바지저고리에 빨간색 더그레를 입고 드림을 맨다. 머리에는 전립에 부포를 매달아 쓴다. 맨 앞에 서는 쇠를 ‘상쇠’라 하고, 뒤이어 서는 쇠를 각각 ‘수종쇠’, ‘셋째쇠’, ‘종쇠’라고 부른다.
    징은 ‘쟁’이라고도 하며, 쇠의 숫자에 따라 2~4명이 편성된다. 징을 치는 사람을 ‘징잽이’ 혹은 ‘징수’라 한다. 징수는 흰색 바지저고리에 파란색 조끼를 입고 드림을 매고, 머리에는 백·황·적 삼색의 고깔을 쓴다.
    장구는 쇠와 더불어 가락을 이끌어가는 주된 악기다. 장구잽이는 흰색 바지저고리에 파란색 조끼를 입고 드림을 맨다. 머리에는 일반적으로 백·황·적 삼색의 고깔을 쓰지만, 백색으로 된 고깔을 쓰기도 하고, 노란색으로 만든 꽃을 이마에 매기도 한다.
    통북은 쇠와 장구가 연주하는 가락에 힘을 실어 주는 악기다. 통북을 치는 사람은 통북잽이라고 하며, 흰색 저고리와 바지에 조끼를 입고 드림을 맨다. 머리에는 백·황·적 삼색의 고깔을 쓴다.
    소고는 법구(벅구), 밀북이라고도 부르며, 소고치는 사람을 소고잽이, 법구잽이라고 한다. 소고잽이는 흰색 바지저고리에 조끼를 입고 드림을 맨다. 머리에는 백·황·적 삼색의 고깔을 쓴다. 이외에 연행 상황에 따라 열두발 상모를 추가로 편성하기도 한다.
    4) 잡색: 고창농악에는 열두잡색이 있다. 열두잡색은 대포수, 양반, 망구, 참봉, 각시, 중광대, 비리쇠, 조리중, 좌창, 우창, 홍적삼, 동방치마아가씨 등이고, 모든 굿판에서 열두잡색이 갖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을마다 잡색 구성이 다르고 잡색놀이의 형태도 다르다. 현재 구성되어 있는 열두잡색은 고창농악단 결성 당시 원로회원들이 과거 연행되었던 잡색들을 전부 구성한 것이다. 이외에도 마을에서는 다양한 잡색들이 나타나는데 허재비각시, 신사, 동물탈, 엿장수, 농구 등도 파악된다.
  2. 농악의 종류와 내용
    고창에서 농악은 정월 당산제 기간과 여름 농사철에 집중적으로 연행되었다. 정월 당산제 기간에는 문굿, 당산굿, 샘굿, 줄굿과 줄다리기, 매굿, 판굿 등이 연행되는데, 각각 개별로 연행되지 않고 하나의 묶음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들을 통틀어 ‘보름굿’이라고도 한다. 여름 농사 철에는 대부분 마을에서 논매기를 마치고 풍장굿을 친다. 주로 정월과 여름철에 농악 연행이 집중되어 있지만 유두나 칠석, 백중, 추석 등의 세시 절기에도 농악을 치며 놀았다. 세시절기에 연행되는 형태 외에도 주술적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주장매기 등도 연행되었다.
    농악의 연행과 전승이 마을공동체에 기반하고 있지만, 고창 지역의 경우 과거 세습무계 집단의 전문굿 패 활동이 왕성했다. 이들의 활동이 마을 농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농악 연행이 전문 예능으로 발달하였다. 그래서 마을 농악의 틀을 유지하면서 세습무계 집단의 예능이 결합된 형태의 농악이 전승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문굿: 걸궁패가 마을로 들어갈 때 마을 입구에 영기로 문을 세워 놓고 걸궁패의 기량을 시험하는 농악이다. 보통 걸궁을 하기 전에 걸궁패와 마을 사람들이 교섭을 하지만, 교섭을 하지 않고 걸궁을 나가기도 한다. 교섭의 여부와 상관없이 문굿을 통해 걸궁패의 예능 수준을 검증받아야만 마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문굿에는 걸궁패의 기량을 선보이는 다양한 기예가 포함되어 있고, 마을과의 교섭 상황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신호 형태의 연행이 포함되어 있다. 걸궁패가 마을에 도착해서 문굿을 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굿 전체 과정은 복잡하게 진행되지만, 걸궁패와 마을 간의 의사교환 과정을 중심으로 파악하면 ‘문세우기-의사 타진-기량 선보이기-문열기’의 과정으로 집약된다.
    2) 당산굿: 고창 지역의 동제는 당산제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당산제의 경우 유교식 제사와 풍물굿이 결합되어 있기도 하고, 풍물굿으로만 진행되기도 한다. 이 때 당산 앞에서 치는 굿을 당산굿이라고 한다. 주로 정월에 마을굿으로 연행하고, 여름철에 풍장굿을 할 때도 당산굿을 친다. 걸궁패가 마을로 들어갈 때에도 당산굿을 친다. 마을 내에서 풍물굿이 연행될 때에는 항상 당산굿을 먼저 치고 여타의 연행이 이루어진다. 당산굿은 크게 ‘들당산-당산놀리기-날당산’의 순서로 진행된다. ‘들당산’은 굿패가 당산에 들어갈 때 치는 것이고, ‘당산놀리기’는 당산을 즐겁게 하기 위해 각각의 치배들이 나와서 개인놀이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날당산’은 당산굿을 마치고 나서 질굿을 치면서 당산을 나오는 과정이다.
    3) 줄굿과 줄다리기: 고창을 비롯한 호남 서부 지역에는 줄다리기가 활발히 전승되고 있다. 줄다리기는 마을굿의 한 과정으로 연행된다. 줄다리기는 줄을 만들어서 줄굿을 치고, 편을 갈라서 줄다리기를 한 다음 줄을 들고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오방돌기를 한다. 오방돌기를 마치면 당산에 줄을 감아 놓고 당산제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줄굿은 줄다리기 줄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치는 굿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포괄적 의미에서 ‘줄다리기-오방돌기-줄 감기’의 과정을 통칭한다.
    4) 매굿: 고창 지역에서는 마당밟이를 매굿이라고 한다. 매굿은 마을의 당산제와 당산굿 전후에 각각의 가가호호를 돌면서 진행된다. 마을의 모든 가정집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저녁 늦게까지 매굿을 쳤다. 매굿의 기본적인 구성은 ‘문굿-마당굿-조왕굿-철륭굿-성주굿’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짧게 쳐야하는 경우에도 기본적인 구성은 빼먹지 않는다. 여기에 각각의 사정에 따라 샘굿, 곳간굿 등이 추가된다. 최근에는 트랙터나 경운기, 자동차 앞에서도 굿을 친다.
    5) 풍장굿: 풍장굿은 논매기 때 치는 농악으로, ‘두레 풍장’ 또는 ‘만두레 풍장굿’이라고도 한다. 논매기는 보통 3회에 걸쳐 진행되는데, 세벌매기에 해당하는 만두레 때 풍장굿을 친다. 만두레 풍장이 열리면 그 해 농사일을 가장 잘한 ‘상머슴’을 뽑는다. 상머슴은 일꾼들과 굿패를 조직하고, 영기·농기·장화 등 풍장굿에 필요한 여러 물품을 준비한다.
    풍장굿이 열리는 날에는 아침부터 마을에서 굿을 친다. 마을의 당산과 공동샘에 예를 올리는 당산굿과 샘굿을 친 후 질굿을 치며 논으로 향한다. 논으로 향할 때는 풍장패를 조직하여 이동하는데, 농기·영기·장화를 앞세우고 일꾼들과 굿패가 뒤를 따른다. 논에 도착하면 영기·장화·굿패가 양쪽 논두렁에 서서 일꾼들의 흥을 돋운다. 일꾼들은 ‘어우름 소리-진소리-논매기 소리’로 구성된 소리를 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외염싸기’를 하고 논매기를 마친다. 논매기를 마치면 ‘농기-영기-장화-무동-상머슴-주인-일꾼-굿패’의 순서로 마을로 향한다. 이때 상머슴은 소의 등에 타고, 주인은 지게에 올라타고 이동한다. 마을에 도착하면 닭죽을 쑤어 다 같이 나눠 먹고, 밤새도록 판굿을 치며 논다.

판굿

판굿은 말 그대로 판을 벌여놓고 치는 굿이다. 판굿에서는 농악에서 연행되는 대부분의 가락과 진풀이, 놀이 등이 펼쳐진다. 정월에 당산제와 매굿을 마친 후에 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논매기를 마친 후 풍장 굿을 칠 때, 칠석이나 백중 등의 시기에 연행되기도 한다. 각각 시기는 다르지만 판굿의 일반적인 절차는 대동소이하다.
판굿을 치게 되면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구경을 오기 때문에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판굿을 치는 집은 치배들과 구경꾼들을 모두 대접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부잣집이아니고서는 판굿을 벌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따라서 마당이 넓은 부잣집이나 마을 공터에서 판굿을 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고창농악의 판굿은 입장굿으로 시작하여 1마당(오채굿마당), 2마당(오방진마당), 3마당(호호굿마당), 구정놀이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입장굿
    굿패가 판으로 들어오는 굿이다. 질굿을 치면서 판에 들어온다. 이때 소고는 드림을 양손에 잡고 춤을 추며 입장하고, 잡색들은 춤을 추며 좌중의 흥을 돋운다. 질굿이나 춤굿을 추며 입장한 후 원진이 형성되면 가락을 삼채로 넘겨 태극진을 만든다. 삼채를 맺고 인사굿으로 치배들과 관객들에게 인사한 후 마무리한다.

  2. 오채굿마당
    오채굿마당에서는 오채질굿·된오채질굿과 같은 혼소박장단의 가락을 연주한다. 원진을 하며 느리게 오채질굿을 치다가 빠르게 몰아간다. 그리고 다시 풍류굿으로 넘어가 치배들이 발림을 하며 춤을 춘다. 오채굿마당의 진풀이는 원진이 대부분이며, 된오채질굿에서는 반대방향으로 원진이 진행되기도 한다. 벙어리삼채를 연주하는 동안 태극진으로 진풀이의 변화를 주는데, 느린 벙어리삼채에서 된 벙어리삼채로 이어지는 가락의 흐름과 진풀이의 역동성이 잘 조화를 이룬다. 마지막 이채를 몰아갈 때는 상쇠가 장구를 원 안으로 이끌고 와서 미지기로 가락을 몰아가는 개인놀이를 선보인다.

  3. 오방진마당
    오방진마당은 군사놀이의 성격이 강하다. 동살풀이장단으로 동·서·남·북·중앙 다섯 방향에서 달팽이진을 감고 푸는 것을 반복한다. 그리고 일광놀이도둑잽이굿을 행한다. 이 절차는 전시에 휴식을 취하며 행했던 군사놀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오방진 가락에서 소고잽이는 다양한 변주가락을 연주하고, 장구잽이와 소고잽이는 다양한 발짓과 발림으로 춤을 추며 판의 흥을 돋운다. 오방진마당에서는 내는가락, 느린삼채, 홑맺이, 된삼채, 겹맺이 등의 다양한 가락을 연주하고, 일광놀이, 도둑잽이굿 등의 놀이를 선보인다. 도둑잽이굿은 잡색들이 상쇠의 꽹과리를 훔치면서 펼쳐지는 잡색극으로 꽹과리를 훔쳐간 대포수를 징계하여 다스리고, 다시 되살리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4. 호허굿마당
    셋째마당인 호허굿마당은 농사풀이(놀이)의 성격이 강하다. 모든 치배가 “호허!” 하고 외치는 호허굿은 일꾼들을 점호하는 의미로 볼 수 있으며, 이후 구체적인 농사의 모습이 굿 절차로 드러난다. 먼저 자진호허굿은 콩 심는 과정을 보여 준다. 원진 상태에서 원 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한 다음 허리를 숙이고 걸어간다. 이때 소고와 북치배가 콩을 심는 것처럼 양 손을 교대로 땅에 딛는 모습을 보인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콩등지기’는 춤굿가락(느린삼채)을 치면서 두 명씩 짝을 지어 등을 대고 앉아 교대로 허리를 숙이고 하늘을 보는 동작을 반복한다. 이는 콩을 수확한 이후에 짐을 지고 일어나는 모습을 형상화한 동작이다. 콩등지기 가락을 마친 후에는 ‘콩꺾자(달어치기)’라고 하여 원으로 둘러 앉은 치배들을 차례로 일으켜 세워 한 줄을 만든다. 이 모습은 마치 콩대를 꺾는 모습과 비슷하다.
    호허굿마당의 마지막은 상쇠의 개인놀음으로 마무리 된다. ‘콩꺽자’ 이후 삼채를 치며 치배를 두 줄로 도열시킨 상쇠가 가락을 ‘이채덩더쿵’으로 넘겨줄 가운데에서 부포놀음을 선보이며 호허굿마당이 마무리되고, 이후 구정놀이로 넘어간다.

  5. 구정놀이마당
    구정놀이는 악기별로 예능적인 면을 선보이거나 각 개인의 기량을 선보이는 ‘개인놀이’ 마당이다. 최근에는 악기별로 구정놀이를 펼치지만 예전에는 개인별로 나와서 기량을 한껏 뽐내는 자리였다. 구정놀이의 순서는 잡색놀음-소고놀음-북놀음-쇠놀음-설장구 순으로 진행된다.

  6. 퇴장굿
    설장구가 끝나면 이채로 두 줄을 만들어 원진을 만든 후 치배와 관객에 인사한다. 다시 삼채를 내서 두 줄을 만들어 판에서 벗어나 매도지로 마무리한다.

특징 및 의의

고창농악은 다른 지역의 농악과 비교했을 때 다음과 같은 특징과 의의가 있다. 첫째, 지리적으로 호남의 고창·영광·장성·함평 등지에서 권역화된 영무장농악의 전통을 잇고 있다. 둘째, 세습무가 무부들의 걸궁패 활동을 통해 농악 예능이 발달하였고 지역 농악의 틀이 마련되었다. 셋째, 걸궁패의 활동이 활발하여 걸궁패가 마을로 입장할 때 시험을 치르는 문굿이 발달하였다. 넷째, 고깔소고춤이 발달하여 호남우도농악의 멋을 잘 보여 준다. 다섯째, 판굿에서 군사놀이와 농사풀이 형태가 함께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 여섯째, 대포수를 포함하여 열두 잡색이 갖춰져 있고, 잡색들의 역할과 기능이 잘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고창농악(고창농악보존회, 나무한그루, 2009), 세습무계집단의 풍물굿 연행과 지역풍물굿의 전승-고창과 영광지역을 중심으로(송기태, 남도민속연구15, 남도민속학회, 2007).

고창농악

고창농악
한자명

高敞农乐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송기태(宋奇泰)

정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호남우도농악의 일종.

개관

고창농악은 고창과 영광 지역을 아우르는 영무장농악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과거 영광과 무장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세습무계 걸궁패가 있었는데, 평상시에는 마을의 무업을 담당하였고, 마을굿이나 걸궁 등에서는 상쇠·설장구 등의 연희자로 활동하였다. 당골, 재인들이 주도하는 걸궁이라 하여 당골네 걸궁이라고도 하였다. 1960~70년대까지 세습무계 연희자들과 마을의 농악 예능인들이 함께 걸궁패 활동을 하였다. 이들 걸궁패의 대표적인 인물은 최화집, 김학준, 박성근, 김만식, 신두옥, 신영찬, 김상구, 전경환, 김오채, 황규언 등이 있다. 영무장농악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전북의 고창농악과 전남의 영광우도농악으로 분화되었다. 먼저 영광우도농악이 1987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고, 고창농악은 2000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다. 고창농악은 고故 황규언(상쇠), 고 정창환(고깔소고춤), 정기환(설장구)등이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고, 현재 고창농악보존회에서 보존과 전승 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내용

농악의 연희자(치배)와 악기
고창농악에서는 연희자들을 치배 또는 군총이라고 한다. 치배의 구성은 크게 기수, 취수, 악기수, 잡색으로 구분된다. 기수는 영기, 농기, 단기 등을 들고 굿패의 선두에 서고, 취수는 나발과 새납을 분다. 악기수는 쇠, 징, 장구, 통북, 소고를 치며 농악판에서 주된 연희를 펼친다. 잡색은 12명으로 구성된다. 전체 인원수는 30~40명 정도로 영기 2명, 농기 1명, 단기 1명, 나발 1명, 새납 1명, 쇠 4~6명, 징 2~4명, 장구 6~8명, 통북 2~4명, 소고 6~10명, 잡색 12명 등으로 편성된다. 치배의 수는 연행판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진다.
1) 기수: 깃발은 영기, 농기, 단기 세 종류가 있다. 영기令旗는 깃발에 ‘令’ 자가 적혀 있고 깃대 끝에 삼지창이 달려 있으며 2개가 한 쌍으로 다닌다. 굿패가 행진을 할 때 가장 앞에 서는 기가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판굿이 진행될 때는 농기農旗, 단기團旗와 더불어 정면에 위치한다. 농기는 긴 천에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문장이 쓰여 있고, 깃발의 상단은 적, 청, 황색의 색천으로 장식한다. 단기는 굿패의 이름을 적어 놓은 기다. 깃대와 기의 모양은 농기와 같으며, 기에 해당하는 단체의 이름을 적어 넣는다. 기수는 흰색 바지저고리에 파란색 조끼를 입고 드림을 맨다. 머리에는 백·황·적 삼색 고깔을 쓴다.
2) 취수: 취수로는 나발수와 새납수가 있다. 나발은 판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중요한 악기로 사용된다. 판에서 중간 중간 흐름이 끊길 때 나발을 불어 흐름을 이어가기도 한다. 흰색 바지저고리에 파란색 조끼를 입고 드림을 맨다. 머리에는 백·황·적 삼색 고깔을 쓴다.
3) 악기수: 고창농악의 주요 악기는 쇠, 징, 장구, 통북, 소고가 있다. 쇠는 꽹과리, 꽹매기, 매귀라고도 한다. 쇠를 치는 쇠꾼은 흰색 바지저고리에 빨간색 더그레를 입고 드림을 맨다. 머리에는 전립에 부포를 매달아 쓴다. 맨 앞에 서는 쇠를 ‘상쇠’라 하고, 뒤이어 서는 쇠를 각각 ‘수종쇠’, ‘셋째쇠’, ‘종쇠’라고 부른다.
징은 ‘쟁’이라고도 하며, 쇠의 숫자에 따라 2~4명이 편성된다. 징을 치는 사람을 ‘징잽이’ 혹은 ‘징수’라 한다. 징수는 흰색 바지저고리에 파란색 조끼를 입고 드림을 매고, 머리에는 백·황·적 삼색의 고깔을 쓴다.
장구는 쇠와 더불어 가락을 이끌어가는 주된 악기다. 장구잽이는 흰색 바지저고리에 파란색 조끼를 입고 드림을 맨다. 머리에는 일반적으로 백·황·적 삼색의 고깔을 쓰지만, 백색으로 된 고깔을 쓰기도 하고, 노란색으로 만든 꽃을 이마에 매기도 한다.
통북은 쇠와 장구가 연주하는 가락에 힘을 실어 주는 악기다. 통북을 치는 사람은 통북잽이라고 하며, 흰색 저고리와 바지에 조끼를 입고 드림을 맨다. 머리에는 백·황·적 삼색의 고깔을 쓴다.
소고는 법구(벅구), 밀북이라고도 부르며, 소고치는 사람을 소고잽이, 법구잽이라고 한다. 소고잽이는 흰색 바지저고리에 조끼를 입고 드림을 맨다. 머리에는 백·황·적 삼색의 고깔을 쓴다. 이외에 연행 상황에 따라 열두발 상모를 추가로 편성하기도 한다.
4) 잡색: 고창농악에는 열두잡색이 있다. 열두잡색은 대포수, 양반, 망구, 참봉, 각시, 중광대, 비리쇠, 조리중, 좌창, 우창, 홍적삼, 동방치마아가씨 등이고, 모든 굿판에서 열두잡색이 갖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을마다 잡색 구성이 다르고 잡색놀이의 형태도 다르다. 현재 구성되어 있는 열두잡색은 고창농악단 결성 당시 원로회원들이 과거 연행되었던 잡색들을 전부 구성한 것이다. 이외에도 마을에서는 다양한 잡색들이 나타나는데 허재비각시, 신사, 동물탈, 엿장수, 농구 등도 파악된다. 농악의 종류와 내용
고창에서 농악은 정월 당산제 기간과 여름 농사철에 집중적으로 연행되었다. 정월 당산제 기간에는 문굿, 당산굿, 샘굿, 줄굿과 줄다리기, 매굿, 판굿 등이 연행되는데, 각각 개별로 연행되지 않고 하나의 묶음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들을 통틀어 ‘보름굿’이라고도 한다. 여름 농사 철에는 대부분 마을에서 논매기를 마치고 풍장굿을 친다. 주로 정월과 여름철에 농악 연행이 집중되어 있지만 유두나 칠석, 백중, 추석 등의 세시 절기에도 농악을 치며 놀았다. 세시절기에 연행되는 형태 외에도 주술적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주장매기 등도 연행되었다.
농악의 연행과 전승이 마을공동체에 기반하고 있지만, 고창 지역의 경우 과거 세습무계 집단의 전문굿 패 활동이 왕성했다. 이들의 활동이 마을 농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농악 연행이 전문 예능으로 발달하였다. 그래서 마을 농악의 틀을 유지하면서 세습무계 집단의 예능이 결합된 형태의 농악이 전승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문굿: 걸궁패가 마을로 들어갈 때 마을 입구에 영기로 문을 세워 놓고 걸궁패의 기량을 시험하는 농악이다. 보통 걸궁을 하기 전에 걸궁패와 마을 사람들이 교섭을 하지만, 교섭을 하지 않고 걸궁을 나가기도 한다. 교섭의 여부와 상관없이 문굿을 통해 걸궁패의 예능 수준을 검증받아야만 마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문굿에는 걸궁패의 기량을 선보이는 다양한 기예가 포함되어 있고, 마을과의 교섭 상황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신호 형태의 연행이 포함되어 있다. 걸궁패가 마을에 도착해서 문굿을 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굿 전체 과정은 복잡하게 진행되지만, 걸궁패와 마을 간의 의사교환 과정을 중심으로 파악하면 ‘문세우기-의사 타진-기량 선보이기-문열기’의 과정으로 집약된다.
2) 당산굿: 고창 지역의 동제는 당산제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당산제의 경우 유교식 제사와 풍물굿이 결합되어 있기도 하고, 풍물굿으로만 진행되기도 한다. 이 때 당산 앞에서 치는 굿을 당산굿이라고 한다. 주로 정월에 마을굿으로 연행하고, 여름철에 풍장굿을 할 때도 당산굿을 친다. 걸궁패가 마을로 들어갈 때에도 당산굿을 친다. 마을 내에서 풍물굿이 연행될 때에는 항상 당산굿을 먼저 치고 여타의 연행이 이루어진다. 당산굿은 크게 ‘들당산-당산놀리기-날당산’의 순서로 진행된다. ‘들당산’은 굿패가 당산에 들어갈 때 치는 것이고, ‘당산놀리기’는 당산을 즐겁게 하기 위해 각각의 치배들이 나와서 개인놀이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날당산’은 당산굿을 마치고 나서 질굿을 치면서 당산을 나오는 과정이다.
3) 줄굿과 줄다리기: 고창을 비롯한 호남 서부 지역에는 줄다리기가 활발히 전승되고 있다. 줄다리기는 마을굿의 한 과정으로 연행된다. 줄다리기는 줄을 만들어서 줄굿을 치고, 편을 갈라서 줄다리기를 한 다음 줄을 들고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오방돌기를 한다. 오방돌기를 마치면 당산에 줄을 감아 놓고 당산제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줄굿은 줄다리기 줄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치는 굿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포괄적 의미에서 ‘줄다리기-오방돌기-줄 감기’의 과정을 통칭한다.
4) 매굿: 고창 지역에서는 마당밟이를 매굿이라고 한다. 매굿은 마을의 당산제와 당산굿 전후에 각각의 가가호호를 돌면서 진행된다. 마을의 모든 가정집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저녁 늦게까지 매굿을 쳤다. 매굿의 기본적인 구성은 ‘문굿-마당굿-조왕굿-철륭굿-성주굿’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짧게 쳐야하는 경우에도 기본적인 구성은 빼먹지 않는다. 여기에 각각의 사정에 따라 샘굿, 곳간굿 등이 추가된다. 최근에는 트랙터나 경운기, 자동차 앞에서도 굿을 친다.
5) 풍장굿: 풍장굿은 논매기 때 치는 농악으로, ‘두레 풍장’ 또는 ‘만두레 풍장굿’이라고도 한다. 논매기는 보통 3회에 걸쳐 진행되는데, 세벌매기에 해당하는 만두레 때 풍장굿을 친다. 만두레 풍장이 열리면 그 해 농사일을 가장 잘한 ‘상머슴’을 뽑는다. 상머슴은 일꾼들과 굿패를 조직하고, 영기·농기·장화 등 풍장굿에 필요한 여러 물품을 준비한다.
풍장굿이 열리는 날에는 아침부터 마을에서 굿을 친다. 마을의 당산과 공동샘에 예를 올리는 당산굿과 샘굿을 친 후 질굿을 치며 논으로 향한다. 논으로 향할 때는 풍장패를 조직하여 이동하는데, 농기·영기·장화를 앞세우고 일꾼들과 굿패가 뒤를 따른다. 논에 도착하면 영기·장화·굿패가 양쪽 논두렁에 서서 일꾼들의 흥을 돋운다. 일꾼들은 ‘어우름 소리-진소리-논매기 소리’로 구성된 소리를 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외염싸기’를 하고 논매기를 마친다. 논매기를 마치면 ‘농기-영기-장화-무동-상머슴-주인-일꾼-굿패’의 순서로 마을로 향한다. 이때 상머슴은 소의 등에 타고, 주인은 지게에 올라타고 이동한다. 마을에 도착하면 닭죽을 쑤어 다 같이 나눠 먹고, 밤새도록 판굿을 치며 논다.

판굿

판굿은 말 그대로 판을 벌여놓고 치는 굿이다. 판굿에서는 농악에서 연행되는 대부분의 가락과 진풀이, 놀이 등이 펼쳐진다. 정월에 당산제와 매굿을 마친 후에 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논매기를 마친 후 풍장 굿을 칠 때, 칠석이나 백중 등의 시기에 연행되기도 한다. 각각 시기는 다르지만 판굿의 일반적인 절차는 대동소이하다.
판굿을 치게 되면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구경을 오기 때문에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판굿을 치는 집은 치배들과 구경꾼들을 모두 대접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부잣집이아니고서는 판굿을 벌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따라서 마당이 넓은 부잣집이나 마을 공터에서 판굿을 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고창농악의 판굿은 입장굿으로 시작하여 1마당(오채굿마당), 2마당(오방진마당), 3마당(호호굿마당), 구정놀이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장굿
굿패가 판으로 들어오는 굿이다. 질굿을 치면서 판에 들어온다. 이때 소고는 드림을 양손에 잡고 춤을 추며 입장하고, 잡색들은 춤을 추며 좌중의 흥을 돋운다. 질굿이나 춤굿을 추며 입장한 후 원진이 형성되면 가락을 삼채로 넘겨 태극진을 만든다. 삼채를 맺고 인사굿으로 치배들과 관객들에게 인사한 후 마무리한다.

오채굿마당
오채굿마당에서는 오채질굿·된오채질굿과 같은 혼소박장단의 가락을 연주한다. 원진을 하며 느리게 오채질굿을 치다가 빠르게 몰아간다. 그리고 다시 풍류굿으로 넘어가 치배들이 발림을 하며 춤을 춘다. 오채굿마당의 진풀이는 원진이 대부분이며, 된오채질굿에서는 반대방향으로 원진이 진행되기도 한다. 벙어리삼채를 연주하는 동안 태극진으로 진풀이의 변화를 주는데, 느린 벙어리삼채에서 된 벙어리삼채로 이어지는 가락의 흐름과 진풀이의 역동성이 잘 조화를 이룬다. 마지막 이채를 몰아갈 때는 상쇠가 장구를 원 안으로 이끌고 와서 미지기로 가락을 몰아가는 개인놀이를 선보인다.

오방진마당
오방진마당은 군사놀이의 성격이 강하다. 동살풀이장단으로 동·서·남·북·중앙 다섯 방향에서 달팽이진을 감고 푸는 것을 반복한다. 그리고 일광놀이와 도둑잽이굿을 행한다. 이 절차는 전시에 휴식을 취하며 행했던 군사놀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오방진 가락에서 소고잽이는 다양한 변주가락을 연주하고, 장구잽이와 소고잽이는 다양한 발짓과 발림으로 춤을 추며 판의 흥을 돋운다. 오방진마당에서는 내는가락, 느린삼채, 홑맺이, 된삼채, 겹맺이 등의 다양한 가락을 연주하고, 일광놀이, 도둑잽이굿 등의 놀이를 선보인다. 도둑잽이굿은 잡색들이 상쇠의 꽹과리를 훔치면서 펼쳐지는 잡색극으로 꽹과리를 훔쳐간 대포수를 징계하여 다스리고, 다시 되살리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호허굿마당
셋째마당인 호허굿마당은 농사풀이(놀이)의 성격이 강하다. 모든 치배가 “호허!” 하고 외치는 호허굿은 일꾼들을 점호하는 의미로 볼 수 있으며, 이후 구체적인 농사의 모습이 굿 절차로 드러난다. 먼저 자진호허굿은 콩 심는 과정을 보여 준다. 원진 상태에서 원 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한 다음 허리를 숙이고 걸어간다. 이때 소고와 북치배가 콩을 심는 것처럼 양 손을 교대로 땅에 딛는 모습을 보인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콩등지기’는 춤굿가락(느린삼채)을 치면서 두 명씩 짝을 지어 등을 대고 앉아 교대로 허리를 숙이고 하늘을 보는 동작을 반복한다. 이는 콩을 수확한 이후에 짐을 지고 일어나는 모습을 형상화한 동작이다. 콩등지기 가락을 마친 후에는 ‘콩꺾자(달어치기)’라고 하여 원으로 둘러 앉은 치배들을 차례로 일으켜 세워 한 줄을 만든다. 이 모습은 마치 콩대를 꺾는 모습과 비슷하다.
호허굿마당의 마지막은 상쇠의 개인놀음으로 마무리 된다. ‘콩꺽자’ 이후 삼채를 치며 치배를 두 줄로 도열시킨 상쇠가 가락을 ‘이채덩더쿵’으로 넘겨줄 가운데에서 부포놀음을 선보이며 호허굿마당이 마무리되고, 이후 구정놀이로 넘어간다.

구정놀이마당
구정놀이는 악기별로 예능적인 면을 선보이거나 각 개인의 기량을 선보이는 ‘개인놀이’ 마당이다. 최근에는 악기별로 구정놀이를 펼치지만 예전에는 개인별로 나와서 기량을 한껏 뽐내는 자리였다. 구정놀이의 순서는 잡색놀음-소고놀음-북놀음-쇠놀음-설장구 순으로 진행된다.

퇴장굿
설장구가 끝나면 이채로 두 줄을 만들어 원진을 만든 후 치배와 관객에 인사한다. 다시 삼채를 내서 두 줄을 만들어 판에서 벗어나 매도지로 마무리한다.

특징 및 의의

고창농악은 다른 지역의 농악과 비교했을 때 다음과 같은 특징과 의의가 있다. 첫째, 지리적으로 호남의 고창·영광·장성·함평 등지에서 권역화된 영무장농악의 전통을 잇고 있다. 둘째, 세습무가 무부들의 걸궁패 활동을 통해 농악 예능이 발달하였고 지역 농악의 틀이 마련되었다. 셋째, 걸궁패의 활동이 활발하여 걸궁패가 마을로 입장할 때 시험을 치르는 문굿이 발달하였다. 넷째, 고깔소고춤이 발달하여 호남우도농악의 멋을 잘 보여 준다. 다섯째, 판굿에서 군사놀이와 농사풀이 형태가 함께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 여섯째, 대포수를 포함하여 열두 잡색이 갖춰져 있고, 잡색들의 역할과 기능이 잘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고창농악(고창농악보존회, 나무한그루, 2009), 세습무계집단의 풍물굿 연행과 지역풍물굿의 전승-고창과 영광지역을 중심으로(송기태, 남도민속연구15, 남도민속학회, 2007).